클라우스 킨스키

 

Klaus Kinski
(1926년 10월 18일 ~ 1991년 1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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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친딸 성폭행 논란


1. 개요


독일배우. 본명은 니콜라우스 카를 귄터 낙신스키(Nikolaus Karl Günther Nakszyński).
독일폴란드 사이에 끼어있던 도시인 단치히 자유시의 소포트에서 폴란드인 약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궁핍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집주인이 어머니에게 성관계를 요구하자 화가난 아버지는 집주인에게 폭행을 가했기 때문에 집 가족들은 몇 없는 살림살이를 들고 거리로 나왔고 킨스키는 공공보육원에 보내졌다. 그 후 구두닦이, 시체 운반 등으로 전전해 살고 금고를 털기도 했으며 학교에서는 선생님을 폭행하고 도망쳤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군 육군 사병으로 징집되었으나, 전쟁 후시에 탈영을 해 사형선고를 받자 탈옥해 총에 맞아 체포됐다. 네덜란드에서 영국군과 전투 중 사로잡혀 포로가 되기도 했다.
영화배우 일을 시작한 뒤로 무려 135편에 달하는 작품에 출연하였다. 출연작을 선택하는 기준은 언제나 출연료였다. 일본 포르노에도 출연한 적이 있다.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과 일한 적이 많다. 세르조 레오네 감독의 작품 《석양의 건맨》에서 리 밴클리프와 벌인 신경전 장면[1]은 영화사 명장면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영화 《위대한 침묵》에서도 악당으로 나왔다. 원래 배우들이나 연출자, 감독들 중에서는 악역으로 나왔어도 실제로는 선량하고 점잖은 경우가 많다. 영화 상에서의 배우가 보이는 광기와 실제 배우의 모습은 다르니까... 물론 예외도 있는데, '''바로 킨스키가 그렇다.'''
그는 《아귀레, 신의 분노》 촬영 내내 헤어초크 감독과 싸우지 않은 날이 없었다. 밑의 예시들은 이 영화의 제작 당시에 있었다고 하는 그의 기행들이다.
  • 부하를 혼내는 장면을 촬영할 때 단검으로 부하 역을 맡은 배우의 머리를 내리치는 장면에서 진짜로 너무 세게 내리치는 바람에 배우가 다쳤다. 얼마나 세게 내리쳤는지 철로 된 투구가 움푹 패였다고 한다.
  • 중간에 영화를 그만두겠다고 하자, 제작비에 전 재산을 쏟아 부은 헤어초크 감독은 그에게 총을 겨누면서 처신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그를 죽이고 자신도 죽겠다고 협박했다.[2] 헤어초크 본인의 다큐멘터리 《나의 친애하는 적》을 보면 실제 사건은 이랬다. 킨스키가 광분하며 촬영장을 떠나려 보트를 타자, 헤어초크가 그 뒤에 대고 말하길 "내 텐트에 권총이 하나 있는데, 당신이 여기를 떠나면 난 그 물건을 당신에게 쏠 것이고 마지막 남은 한 발로 내 머리를 쏠 테요"라고 통보했다고 한다. 이에 아무리 또라이인 킨스키라도 이 정도까지 협박하자 바짝 쫄아서 연기를 계속했다고(...).
한편 킨스키의 말에 따르면, 위대한 피츠카랄도 촬영 당시 헤어초크가 완전히 자제력을 잃고 엑스트라들에게까지 함부로 대했고, 심지어 눈에 띄는 동물들을 모두 잔인하게 학대했다고 한다. 퐁고 강 급류에 라마를 집어넣어 익사시킨 적[3]도 있다. 한 번은 킨스키를 그렇게 만들어서 급류에 떠밀어 보낸적도 있다고(물론 살았다). 그런데 킨스키 같은 제정신이 아닌 배우의 말을 어떻게 믿을지, 얼마나 믿어야 할지 의문이다.[4]
특히 촬영장에서 킨스키가 워낙 다혈질인 성격을 감추지 않은 덕에, 감독 본인은 물론 다른 배우들이나 제작진들과의 관계 또한 원만하지 못했다. 한 번은 촬영 중에 킨스키의 지랄(...)이 하도 악화되자 원주민 역 배우로 분했던 현지 원주민들이 킨스키에게 화가 쌓여 헤어초크 감독에게 '''"저 사람, 죽일까요?"'''라고 물어 왔다고 한다. 이 때 원주민들은 헤어초크 감독을 킨스키보다 더 무서운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킨스키가 매일같이 화를 내는 반면 헤어초크 감독은 그 꼴을 매일 보면서도 꿈쩍 하나 안 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화 내는 놈보다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고 있는 놈이 더 무서웠던 것.''' 어쨌든 이 질문에 헤어초크 감독은 "영화를 촬영해야 하니 '''지금은''' 안 됩니다"라고 답했다. 물론 영화 촬영이 끝나고도 킨스키는 죽지 않았지만, 헤어초크는 '''그 때 원주민 배우들을 말린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킨스키와 헤어초크 이 두 사람이 얼마나 골 때리는 콤비였는지 단편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
하지만 본인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 헤어초크의 촬영 과정도 킨스키의 발광 못지 않게 배우들과 제작진에게는 말 그대로 큰 고난이었다. 당시 헤어초크는 진짜 남미 페루정글에 영화 제작팀을 끌고 들어가서 촬영을 하였는데, 장소가 장소인지라 촬영장도 막장이어서 벌목꾼 한 명이 활영 도중 독사에게 물려 다리를 절단했을 정도였다. 덕분에 보상비로 10년 치 벌목비를 줘야 했는데, 이 난리는 예고에 불과했다. 그 다음부터도 사고가 잇따랐는데, 스태프 6명을 태운 비행기가 산에 충돌하여 전원 사망했던 것. 그나마 이건 보험도 있고 했지만 두둑한 보상금도 따로 내줘야 했다... 이런 사고 말고도 영화 제작도 난항을 맞아서 주인공 피츠카랄도 역을 맡기로 한 배우는 몇번이고 갈렸다.[5] 참고로 이 《위대한 피츠카랄도》의 내용은 배가 산으로 가는 영화였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배를 산으로 끌고가서 산을 넘어버리는 내용이다.''' 당연히 스탭들이 배를 산으로 끌고가야했다(...)

- "위대한 피츠카랄도" 예고편
이하는 킨스키와 헤어초크와의 신경전에 관련된 일화.
  • 킨스키는 주기적으로 헤어초크에게 전화를 해서 독설을 퍼부었다. 특히 그의 연기력을 감독이 지적하면 감독과 제작진들의 면전에서 입에 흰 거품이 나도록 독설을 하였다. 다만 이와 별개로 감독의 지적을 받아들여 연기를 수정했다.
  • 그런데 헤어초크도 만만치 않았다(...) 헤어초크는 겉으로는 무덤덤하게 대응했으나 실제로는 킨스키의 계속된 독설에 화가 치밀어 그의 집을 불태울려고 가솔린이 가득 담긴 통을 가지고 그의 집으로 갔으나 '킨스키의 개'가 무서워서 실행에 못 옮겼다고 한다.(...)
저렇게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면서도 《아귀레, 신의 분노》에서 시작된 헤어초크와의 인연은 결국 그 뒤로 《보이체크》, 《노스페라투》, 《위대한 피츠카랄도》, 《코브라 베르데》 등을 같이 작업하면서 15년간 계속 이어진다. 킨스키가 사망한 뒤 헤어초크 감독은 애증이 많았던 그를 기리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인 나의 친애하는 적 (My Best Fiend)를 만들었다.
자녀들 중에서 배우가 된 자녀는 딸 폴라 킨스키, 나스타샤 킨스키, 아들 니콜라이 킨스키[6]이다. 폴라와 나스타샤는 빼어난 미모에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야성적인 분위기가 더해져 독특한 매력을 발산했다. 특히 나스타샤는 8-90년대를 풍미하던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배우였는데 무보수로 비단뱀을 감고 찍은 누드로도 유명하다. 나스타샤 킨스키의 대표작으로 《테스[7], 《캣 피플》 등이 있다. 하지만 킨스키는 가족들과도 관계가 파탄나서 3번의 결혼 모두 이혼으로 끝났고 그의 장례식에도 참석한 가족이 아들 니콜라이 킨스키 밖에 없을 정도였다.
니콜라이 킨스키는 영화 《클림트》에서 클림트와 친했던 화가 에곤 실레 역을 맡았는데, 실제 실레의 모습과 놀랄 만큼 닮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2. 친딸 성폭행 논란


그런데 최근 친딸 폴라 킨스키가 아버지가 자신을 5세~19세까지 성적으로 학대했다고 증언했다. 폴라는 아버지를 대 배우라고 존경해하는 사람들 앞에서 늘 마음의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 나스타샤 킨스키 역시 이복 언니인 폴라의 주장을 두둔하고 자신도 성폭행까지는 아니라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고 증언하였다. 나스타샤의 아버지가 폭군이었다는 발언 내용으로 볼때 전형적인 가정폭력범으로 의심된다. 나스타샤는 독일 신문 『빌트』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4 ~ 5세였을 당시 클라우스 킨스키가 도망갈 수 없을 정도로 껴안았고 성폭행하려 했던 사실을 밝혔다. 실제로 킨스키는 1950년대에 여성을 스토킹하고 교살하려다 경찰에 체포 당해서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이때 반사회성 성격장애를 진단받았다고 전해진다. https://www.thelocal.de/20080722/13215
폴라의 자서전과 별개로 이복 동생 나스타샤의 증언도 있고, 상술한 과거의 전적들로 폴라의 주장이 설득력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 이게 사실로 밝혀질 경우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겠다. 고인드립은 덤. 무엇보다 실제 영화상의 광기에 찬 모습과 《아귀레, 신의 분노》에서 딸과 결혼하겠다고 외치던 광기에 찬 모습이 오버랩된다는 반응도 있다. B급 호러물인 《크롤 스페이스》에서 변태적인 집주인으로 나와 여성 세입자들을 몰래 훔쳐본다든지 스릴러 《줄리의 공포》에선 목욕하고 나온 친딸이 대충 수건으로 몸을 가리고 전화를 하는데 괴상한 눈으로 쳐다보던 아버지 배역같이 꽤나 변태적인(물론 영화상에서 연쇄살인 범인이 아니긴 했지만) 연기를 보여서 이 사건 보도를 보면서 영화상 그 연기들이 그럼....? 놀라던 사람까지도 있다고.
이 때문에 현재 독일어권에서 클라우스 킨스키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지미 새빌에 대한 영미권 사람들의 인식과도 비슷해진 상황이다. 물론 성범죄의 스케일로만 따지면 지미 새빌이 클라우스 킨스키보다 훨씬 심했지만... 자세한 건 지미 새빌 문서 참고.

[1] 술집에서 밴클리프가 도발하려고 일부러 킨스키의 멜빵에 성냥을 긋고 담배를 피우려는데 분노한 킨스키는 담뱃불을 꺼버리고 서로 노려보며 신경전을 벌인다. 이 영화의 독일판 포스터 일부는 클라우스 킨스키가 자국 배우라서 그런지 비중이 있는 것처럼 표현한 포스터들도 있다. 1 2[2] 헤어초크 본인은 이 일화가 사실이 아니라며 부정했다. 하지만 일행 중에 총을 가진 사람은 자신 뿐이었다는 이야기를 조심스레 덧붙였다고...[3] 지금은 그랬다간 동물보호단체에게 고소를 비롯하여 지독하게 당한다. 동물보호법이 강화되었기 때문.[4] 실제로 킨스키는 후술될 친딸 성폭행 논란을 제외하고라도, 당시부터 베를린의 극장에서 일하다가 모난 성격으로 인해 매니저와 대판 싸우고 해고되었던 것으로 유명했다. 이 극장 외에 다른 회사에서도 일했으나 똑같은 문제를 일으켜 해고당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킨스키는 정신병원에서 공식적으로 반사회성 성격장애 진단까지 받았던 바 있다.[5] 처음 주인공 역에 캐스팅 된 건 잭 니콜슨이었지만 촬영장에 나타나질 않았고, 다음 대타인 워렌 오츠 역시 페루의 기후에 적응하지 못해 하차. 그 또 다음 대타였던 제이슨 로바즈는 촬영이 시작되자마자 아메바성 이질에 걸려 병원에 입원. 그 뒤로도 믹 재거, 마리오 아도르프 등이 뒤를 이었지만 결국 모두 하차했고 원래 배역 중에 남아 있던 사람은 여주인공 역을 맡은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한 사람 뿐이었다고...[6] 폴라와 나스타샤, 니콜라이는 모두 어머니가 다른 이복 남매이다.[7]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