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쿠이 히데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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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프로야구의 前 세이부 라이온즈, 치바 롯데 마린즈,現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소속의 선발 투수다.
초등학교때 소프트볼을 하고 있었으며 야구는 중학생이 된 이후부터 시작했다. 그 후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다녔던 요코하마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교 입학 때부터 제2의 마쓰자카 다이스케로 불리고 있었는데, 고교 2학년 때 춘계 고시엔 대회에서 1년 선배 나루세 요시히사[1] 등과 함께 출전했다. 준결승까지는 나루세의 구원 투수로서 등판했고 결승전에서는 선발로 나섰지만 히로시마의 고료 고등학교에 3대 15로 패배하고 말았다.
2004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에서 세이부 라이온즈로부터 단독 1순위 지명을 받았다. 세이부에 대한 인상을 묻자 “마쓰자카와 같은 팀에서 뛰게 돼 매우 기쁘고, 세이부에 가고 싶었다”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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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부 라이온즈의 에이스 시절.
2005년 입단할 때부터 많은 기대를 받아 프로 1년차부터 개막 1군 엔트리에 합류했다. 6월 18일, 교류전 최종전인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에서 프로 데뷔 첫 승리를 따냈고, 그 해 2군에서 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이후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가며 고졸 신인인 스미타니 긴지로[2] ]와 함께 10대끼리 배터리를 구성하여 ‘10대 배터리’라고 불릴 정도로 언론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3월 26일의 오릭스 버팔로즈전에서 스미타니와의 콤비를 이뤄 승리 투수가 되었고 또한 4월 23일의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에서는 마찬가지로 스미타니와의 배터리로 자신의 첫 완투승을 따냄과 동시에 완봉승을 기록했다. 10대 배터리로서의 승리 투수가 된 사례는 1989년 '''요코하마 타이요 훼일즈'''의 이시이 다다노리[3] -다니시게 모토노부 이후 17년 만의 일이었다.
6월에는 리그 1위의 평균 자책점과 3승 1패의 성적으로 자신의 첫 월간 MVP를 수상했고 감독 추천으로 올스타전에 첫 출전하였으며 8월 19일의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 ‘세이부 라이온즈 창단 이래 퍼시픽 리그 공식전 통산 2000승째’의 승리 투수가 되었다.
2007년 데뷔 때의 속구 중심의 투구에서 맞춰잡는 투구 유형의 투구폼으로 바꾸며 승리를 쌓아갔다. 4월 3일의 소프트뱅크전에서의 5회초에는 1이닝 4개의 탈삼진을 달성했고 총 시즌 17승을 올려 다승왕 타이틀을 획득하였고 양대 리그 최다인 213 이닝을 기록했다. 완투수 11개는 리그 2위였다. 평균자책점은 2.79였을정도
2008년에는 베이징 올림픽 일본 국가대표로 출전 대만전과 중국전의 선발 등판하여 2승을 올렸다. 한국전에서도 중간 계투로도 등판하며 일본 국가대표팀 투수 중에 최다 이닝을 등판을 했다. 대한민국전에서 구원으로 등판한 상황은 당초의 순번으론 다르빗슈 유가 중간 계투로 등판할 예정이었다. 와쿠이 히데아키는 쉬고 있었다가 예정이 변경되었지만 불펜을 통화하는 전화가 고장이어서 벤치의 지시가 전달되지 못했고 와쿠이 히데아키는 몸이 풀리지 않은 상태로 마운드에 등판하게 되었다고 당시 일본 대표팀 투수 코치였던 오노 유타카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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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일본 국가대표로 발탁돼 주로 중간 계투로 등판하였고,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세이부 시절 달던 등번호 18번을 물려받았다. 그리고 7월에는 4경기에 4승 무패와 평균 자책점 1.64의 성적을 기록하여 월간 MVP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날이갈수록 투구 수가 많아져서 160구 이상 던진 경기가 3경기에 이르는가 하면 한 경기당 평균 투구 수는 132개, 한 이닝당 평균 투구 수는 16.8개에 달할정도 [4] 이러한 혹사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16승 6패로 다승왕 타이틀을 획득하면서 4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으며, 이닝은 12개 구단 투수들 중에서 유일하게 200이닝을 넘었고 11차례의 완투 역시 양대리그 단독 선두, 4차례의 완봉은 양대 리그 최다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다. ERA 2.30, 탈삼진 199개로 본인의 최고기록을 달성했고 양대 리그를 통틀어 유일하게 혼자서 모든 선정 기준을 충족하여 2009년도에 사와무라상을 수상했다.
2010년에는 3년 연속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았으며 교류전에서 4승을 올렸고 그 해 소프트뱅크의 와다 츠요시 다음으로 교류전 통산 17승을 기록했다. 5월 15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전에서는 4타수 3안타 4타점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그 후 이시이 가즈히사와 키시 타카유키 등의 투수들이 연달아 부상으로 이탈하여 매 경기 완투를 전제로 던지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여름에 기록적인 무더위로 인하여 등판 중에 탈수 증상을 일으켜 다리에 쥐가 나 강판되는 등 체력이 꽤나 소모됐을 뿐만 아니라 경기 중반까지 호투하다가 경기 후반에 갑작스런 제구력 난조로 인하여 대량 실점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 14승을 기록했다.
2011시즌 개막을 앞두고 팔꿈치 통증으로 슬럼프에 빠지는 등 부진하며 5월에 2군으로 내려갔다.[5] 이후 1군 복귀를 했음에도 지속적인 팔꿈치 통증과 6월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 날아온 타구를 다리에 맞으며 부상을 당하면서 결국 5년간 계속되었던 두 자릿수 승리는 결국 끝이났다.
2012시즌 5년연속으로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았다. 그러나 이후 3연패를 당하는 등 부진하며 4월에 1군 등록이 말소되었다. 그 후 당시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마무리 투수를 맡고 있던 엔리케 곤잘레스가 부진하며 5월에 1군으로 복귀,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와쿠이가 마무리 투수로 기용되었다. 5월 13일 닛폰햄 파이터즈전에 1이닝 동안 타자 5명을 상대로 1피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기록 프로 데뷔 후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그러나 5월 18일에 발매된 일본의 주간지 '''프라이데이'''에서 스캔들 문제를 기사로 내보내며 곤욕을 치뤘다. 22일에 구단 측은 와쿠이의 출장 선수 등록을 무기한 말소 조치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이후 6월 16일 구단에서 엄중 주의를 주며 징계 해제가 되었고 22일에 1군 복귀하며 시즌 종료까지 세이부의 마무리 투수로서 출전하며 30세이브를 기록했다.
2013년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 선수로 선발되었지만 합숙 중에 또 다시 대표팀 합숙 훈련 도중 숙소에서 한 여성과 밀회하는 장면이 프라이데이에 의해 보도되었다. 구단 측은 그가 미혼인 점을 감안해 엄중 주의를 받았다. [6] 이후 마무리에서 다시 선발로 복귀하였지만 컨디션 저하와 제구력 난조로인해 시즌 중반부터 중간 계투나 선발 등판을 반복했다. 시즌 중반 이후에는 중간 계투로만 등판하며 시즌 종반에는 마무리로 활약하며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에 기여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3차전 1점을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8회 등판했지만 카쿠나카 카츠야에 2점짜리 적시 3루타를 허용하는 등 아웃카운트를 한 개도 잡지 못하며 강판되었다. 이후 시즌종료후 FA자격을 얻으며 치바 롯데 마린즈로 이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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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 세이부 시절의 은사인 이토 츠토무 감독이 이끄는 치바 롯데와 FA 계약을 하며 이적하였다. 이후 12월 20일 세이부 구단을 방문해 인사를 했다고 일본 언론은 보도했다. #
4월 15일 친정팀인 세이부 라이온즈전에 선발 등판, 7이닝 5피안타 8탈삼진 1사사구 2실점으로 호투하며 승리투수가 되며 치바 롯데로 이적 후 첫 승리를 기록했다. 또한 세이부전의 승리로 역대 13번째로 전 구단 상대 승리를 기록했다.
2014시즌은 8승 12패 4.21의 방어율로 시즌을 마감했다.
3월 27일 개막전에 소프트뱅크전에 선발로 등판하여 6이닝 6피안타 무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된다. 4월 4일 라쿠텐 골든이글스전에서는 롯데 이적 이후 처음으로 무사사구 완투승을 기록했다. 이후 순조롭게 승수를 쌓아 갔으며 8월 14일 오릭스전에 선발 등판 7이닝 6피안타 2실점의 호투로 2010년 이후 5년 만에 두 자리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정신차린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와 순위싸움이 격화된 상황에서 꾸준히 이닝을 소화하며 1선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10월 1일 니혼햄전에 등판하여 7이닝 3피안타(1홈런) 6삼진으로 호투하며 시즌 14승을 챙겼다. 10월 6일 라쿠텐전에 등판 하여 10이닝 137구로 시즌 15승을 챙기며 오타니 쇼헤이와 함께 2009년 이후 6년만에 다승왕을 차지했다.
최종 성적은 15승 9패 방어율 3.39. 10월 12일, 퍼시픽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니혼햄 전에서 6.1이닝 '143구' 4삼진 1자책점으로 철강왕의 위엄을 과시하며 팀의 퍼시픽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을 견인했다. 아쉽게도 2015시즌 평화왕 소프트뱅크에게 롯데가 스윕당하면서 더 이상의 등판은 없었다.
시즌이 끝난 후 일본 퍼시픽리그 투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였다.
26경기 등판 188.2이닝 10승 8패 평균자책점 3.01의 준수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완투 5번으로 리그 1위, 수비력도 인정을 받아 2년 연속 퍼시픽리그 투수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시즌 후 7살 연상의 모델 오시키리 모에와 결혼했다.
팀과 함께 본인의 커리어도 나락으로 곤두박질하는 모습.
다패왕 경쟁까지 하다가 후반에 겨우 좀 살아나서 5승 11패 ERA 3.99를 찍었다. 그래도 17시즌 일본야구 최악의 선발투수로 남은 이시카와 아유무보다는 나았지만, NPB의 투고타저를 생각하면 저 평자도 좋은 평자는 아니다. 센트럴-퍼시픽 다 합쳐서 와쿠이는 22위다. 타고투저인 KBO 리그의 평자 19위 문승원의 평자가 5.33인 걸 감안하면 그냥저냥 무너지지 않고 선발로 계속 돌아주긴 했구나 이 수준.
2017년 시즌 후에 FA로 풀리게 되었는데, 예상 외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다.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이 다수이긴 한데, 사실 예전부터 메이저리그 진출에 미련을 가지고 있었던 선수였던데다 이미 작년 시즌 종료 후 포스팅 시스템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할지도 모른다는 루머가 돈 적도 있었기에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는 반응도 있긴 하다. 올해의 부진으로 일본에 남아봤자 커리어에 걸맞는 대형 계약을 따는 건 불투명하니 기왕 이렇게 된 거 꿈도 쫓고 잘 풀리면 메이저리거에 안 풀려도 미국 성적을 기반으로 FA재수가 가능하기 때문에 겸사겸사 내린 선택으로 보인다.
일단 고졸 1년차부터 1군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두 번째 FA임에도 나이는 만 31세로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다. 다만 일본에서 많은 이닝을 던졌으며 전성기가 거의 끝나갈 시점이라 앞으로 내리막밖에 남지 않았고[7] , 어쩌면 올해의 부진이 단순히 한 해 안식년이 아닌 하락세의 시발점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점도 있다. 하지만 FA라서 별도의 포스팅 비용이 필요없어 저렴한데다가, 선발과 불펜이 모두 가능하고 지금까지 많은 이닝을 던졌음에도 큰 부상 없이 풀시즌을 소화해 내구성이 증명되었으며, 커리어만 놓고 보자면 한때 NPB에서도 탑 클래스까지 올라본 투수였던데다 최근 몇 년 동안에도 수준급 선발투수로 활약했다는 점은 어필할 만한 요소가 될 것이다. 물론 전성기 시절의 폼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기에 다른 일본 탑 클래스 선발투수들처럼 대형 계약을 따내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하위선발이 필요한 팀 중 짧은 계약으로 긁어볼 만한 팀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예상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이듬해인 2018년 1월 26일, 메이저리그 진출을 포기하고 롯데 잔류를 결정했다. 몇몇 팀으로부터 오퍼를 받기는 했지만, 메이저리그 계약을 제시한 팀은 없었다고 한다.
'''이닝은 잘 먹으니까 선발 자리는 유지하긴 하는데 퍼포먼스는 기대이하'''
6월 23일 기준 13경기 4승 6패 ERA 4.54로 작년의 부진이 계속되고 있다.[8] 그런데 경기당 소화이닝은 6이닝이 넘고, 이닝이 전체 3위로 이닝이팅은 잘 하는 중이라 선발 로테이션은 꾸준히 돌고 있다.
시즌이 끝났을 때 기록은 22경기 150.2이닝 7승 9패 ERA 3.70. 팀내에서 유일하게 규정이닝을 달성했으며 경기당 퍼포먼스는 분명 별로였는데 최종 성적은 승운을 제외하면 마이크 볼싱어 다음으로 좋았다.
4선발로 시즌을 시작한다.
4월 2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의 원정경기에 선발등판하였으나 4이닝 5실점(4자책)으로 털리고 패전투수가 되었다.
4월 16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전에 선발등판하여 무사사구 완봉승을 거두었다!
5월 15일 오릭스 버팔로즈 상대로 7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으나 타자들이 아무것도 못하면서 노 디시젼.
6월 1일 기준 9경기 55이닝 3승 2패 ERA 3.76 기록중.
그러나 그 후로 점점 털렸고, 9월 24일 최종전에 롱릴리프로 나와서 신나게 맞아주면서 롯데 입단 후 커리어로우를 찍었다.
시즌 최종 성적은 18경기 104이닝 3승 7패 ERA 4.50으로 완벽하게 망했다.
2019년 12월 19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로 현금 트레이드된다는 뉴스가 나왔다. 미마 마나부의 보상선수 후보로 많이 언급되고 있던 상황에서 충격의 트레이드 소식이 나오면서 보상선수 픽도 오리무중으로 빠졌다.[9]
팀에서는 길터주기용 트레이드라고 했다. 팬들은 이해는 하지만 달랑 현금만 받고 트레이드 하기엔 아까운 자원이었다는 말이 많다. 아무튼 이로서 키시 타카유키, 마키타 가즈히사, 아사무라 히데토 등 수많은 옛 세이부 동료들과 다시 재회하게 되었다.
자신을 내보낸 롯데 상대로 만난 첫 경기에서 5이닝 2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그 이후 7/29 기준으로 평균 6이닝 이상을 던지면서 5번 선발 등판하여 4승을 추가하여 개막전 포함 5승 무패로 다승 단독 선두를 차지하고 있다.
8/5일 리그 1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전에서 9이닝 131구 무실점 8탈삼진 2사사구 1피안타[10] 로 완봉승을 거두며 철강왕의 위엄을 과시하고 있다. 6승 무패로 다승 선두를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평균자책점도 2.33을 기록해 1위로 올라섰다.
8월 12일 친정팀 세이부와의 맞대결에서 6.2이닝 2실점을 기록하며 승리투수가 된다. 같은 날 승리를 거둔 옆 리그의 스가노 도모유키와 더불어 7승 무패를 기록하며 다승 선두를 질주. 평균자책점은 2.38로 소폭 상승하였으나 여전히 리그 1위에, 54탈삼진을 기록하며 이 부분도 2위를 마크했다. 1위 야마모토 요시노부와는 5개차로, 리그 트리플 크라운 및 12년만의 사와무라상 수상도 노릴 수 있게 되었다.
8월 19일 닛폰햄과 대결에서도 8이닝 1실점을 기록하며 승리하여 8승 무패를 기록하며 다승 선두를 유지했다. 이와 더불어 평균자책점도 2.21로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2017년부터 하락세를 타고 있었기 때문에 롯데가 현금만 받고 트레이드해줬는데 롯데를 나가자마자 다시 2016년 이전으로 회춘했다... 롯데가 비싼 돈 주고 FA로 모셔온 미마 마나부가 4점대 ERA로 죽을 쑤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롯데 팬들로서는 배가 아플만한 상황.[11]
8월 26일 롯데전에서는 7이닝 2자책점으로 호투했지만 타선의 침묵으로 시즌 첫 패를 기록했다.
9월 2일 닛폰햄전에서는 6이닝 3자책점 5탈삼진으로 QS를 기록했지만 승패를 기록하지 못했다.
9월 9일 소프트뱅크전에서 5이닝 8실점으로 털려버리면서 패전을 기록하고, 평균자책점도 3.19로 폭등하여 야마모토 요시노부에게 1위 자리를 내어주고 만다.
9월 16일 오릭스전에서는 6이닝 1자책점으로 호투했지만 패전을 기록했다.
9월 23일 롯데전에서는 7이닝 3자책점 7탈삼진으로 호투하며 승리를 기록, 한달만에 9승을 기록하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다승 1위를 굳건히 유지했다.
9월 30일 소프트뱅크전에서는 8이닝 5탈삼진 2자책점을 기록하며 승리를 기록하여 10승고지에 올라서는데 성공했다.
결국 시즌 130이닝 11승 4패 방어율 3.60 130K로 생애 두 번째 다승왕을 거머쥐며 리바운딩에 성공. 소프트뱅크의 센가 코다이, 이시카와 슈타와 함께 공동 다승왕이자 방어율, 탈삼진 리그 4위, 이닝 3위의 우수한 성적. 시즌 전까지만 해도 퇴물 다 돼서 길터주기용으로 현금만 받고 보내줄 정도로 정말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는데 뜬금없이 리그 정상급 투수로 되살아났다.
전 시즌 활약에 힘입어 개막전 선발로 낙점되었다.
스리쿼터 폼에서 나오는 평균 구속 142 km/h, 최고 구속 151 km/h 의 직구를 가지고있다. 보통 140 km/h 정도에만 머물러 있지만 2012년에는 마무리로 기용되었을 때에는 평균 구속 약 145 km/h를 기록했다. 공의 릴리스 포인트가 좋고 밸런스가 잡힌 폼에서 날카로운 구속과 직구 와 다양한 변화구를 던지는 정통파 우완투수이며, 거기다 평소 러닝을 많이 한 덕분에 하체의 힘도 강해 9회에도 140 km/h를 넘기며 구속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지구력을 가지고 있다. 변화구는 슬라이더, 커브, 포크볼, 체인지업, 슈트 등을 던지며 “어느 구종이라도 스트라이크를 잡을 수 있어 승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타자에게서는 상대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라고 말하는 반면 “삼진을 잡을 수 있는 결정구가 없기 때문에 한 경기의 투구 수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 외 2011년 견제사 양대리그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투구외적인 주자견제능력, 투수 수비력도 뛰어나며, 변화구가 먹통이 되었을 때 레퍼토리를 수정하는 등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소위 말하는 경기운용능력이 매우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다만 탈삼진율은 2015년 기준으로 통산 6.66으로 그렇게 높지는 않으며. 딱 일본인 투수 하면 생각나는, 제구력과 수싸움, 다양한 변화구로 쇼부를 보는 전형적인 일본식 피네스 피처에 가까운 스타일이다. 특이사항으로 통산 몸에 맞는 공 101개로 현역 NPB 투수 중 1위, 전체 16위에 올라 있을 정도로 사구(死球)가 많은 편이다. 몸쪽 승부가 잦고 히가시오 오사무의 뒤를 따라 그걸 팀 차원에서 권장하는 세이부의 에이스로 활약한 기간이 길기 때문으로 추정.
타격은...암만 타석에 설 일 없는 파리그 투수라지만 이를 감안해도 안 좋은 듯. 프로데뷔 3년만에 첫 안타를 쳤으며 6년만에 첫 타점을 뽑았을 정도로 교류전에서 괴멸적인 타격을 선보였다.[12]
1. 개요
일본프로야구의 前 세이부 라이온즈, 치바 롯데 마린즈,現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소속의 선발 투수다.
2. 선수생활
2.1. 프로 입단 전
초등학교때 소프트볼을 하고 있었으며 야구는 중학생이 된 이후부터 시작했다. 그 후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다녔던 요코하마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교 입학 때부터 제2의 마쓰자카 다이스케로 불리고 있었는데, 고교 2학년 때 춘계 고시엔 대회에서 1년 선배 나루세 요시히사[1] 등과 함께 출전했다. 준결승까지는 나루세의 구원 투수로서 등판했고 결승전에서는 선발로 나섰지만 히로시마의 고료 고등학교에 3대 15로 패배하고 말았다.
2004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에서 세이부 라이온즈로부터 단독 1순위 지명을 받았다. 세이부에 대한 인상을 묻자 “마쓰자카와 같은 팀에서 뛰게 돼 매우 기쁘고, 세이부에 가고 싶었다”라고 대답했다.
2.2. 프로 입단 후
2.2.1. 세이부 라이온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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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부 라이온즈의 에이스 시절.
2005년 입단할 때부터 많은 기대를 받아 프로 1년차부터 개막 1군 엔트리에 합류했다. 6월 18일, 교류전 최종전인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에서 프로 데뷔 첫 승리를 따냈고, 그 해 2군에서 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이후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가며 고졸 신인인 스미타니 긴지로[2] ]와 함께 10대끼리 배터리를 구성하여 ‘10대 배터리’라고 불릴 정도로 언론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3월 26일의 오릭스 버팔로즈전에서 스미타니와의 콤비를 이뤄 승리 투수가 되었고 또한 4월 23일의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에서는 마찬가지로 스미타니와의 배터리로 자신의 첫 완투승을 따냄과 동시에 완봉승을 기록했다. 10대 배터리로서의 승리 투수가 된 사례는 1989년 '''요코하마 타이요 훼일즈'''의 이시이 다다노리[3] -다니시게 모토노부 이후 17년 만의 일이었다.
6월에는 리그 1위의 평균 자책점과 3승 1패의 성적으로 자신의 첫 월간 MVP를 수상했고 감독 추천으로 올스타전에 첫 출전하였으며 8월 19일의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 ‘세이부 라이온즈 창단 이래 퍼시픽 리그 공식전 통산 2000승째’의 승리 투수가 되었다.
2007년 데뷔 때의 속구 중심의 투구에서 맞춰잡는 투구 유형의 투구폼으로 바꾸며 승리를 쌓아갔다. 4월 3일의 소프트뱅크전에서의 5회초에는 1이닝 4개의 탈삼진을 달성했고 총 시즌 17승을 올려 다승왕 타이틀을 획득하였고 양대 리그 최다인 213 이닝을 기록했다. 완투수 11개는 리그 2위였다. 평균자책점은 2.79였을정도
2008년에는 베이징 올림픽 일본 국가대표로 출전 대만전과 중국전의 선발 등판하여 2승을 올렸다. 한국전에서도 중간 계투로도 등판하며 일본 국가대표팀 투수 중에 최다 이닝을 등판을 했다. 대한민국전에서 구원으로 등판한 상황은 당초의 순번으론 다르빗슈 유가 중간 계투로 등판할 예정이었다. 와쿠이 히데아키는 쉬고 있었다가 예정이 변경되었지만 불펜을 통화하는 전화가 고장이어서 벤치의 지시가 전달되지 못했고 와쿠이 히데아키는 몸이 풀리지 않은 상태로 마운드에 등판하게 되었다고 당시 일본 대표팀 투수 코치였던 오노 유타카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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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일본 국가대표로 발탁돼 주로 중간 계투로 등판하였고,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세이부 시절 달던 등번호 18번을 물려받았다. 그리고 7월에는 4경기에 4승 무패와 평균 자책점 1.64의 성적을 기록하여 월간 MVP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날이갈수록 투구 수가 많아져서 160구 이상 던진 경기가 3경기에 이르는가 하면 한 경기당 평균 투구 수는 132개, 한 이닝당 평균 투구 수는 16.8개에 달할정도 [4] 이러한 혹사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16승 6패로 다승왕 타이틀을 획득하면서 4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으며, 이닝은 12개 구단 투수들 중에서 유일하게 200이닝을 넘었고 11차례의 완투 역시 양대리그 단독 선두, 4차례의 완봉은 양대 리그 최다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다. ERA 2.30, 탈삼진 199개로 본인의 최고기록을 달성했고 양대 리그를 통틀어 유일하게 혼자서 모든 선정 기준을 충족하여 2009년도에 사와무라상을 수상했다.
2010년에는 3년 연속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았으며 교류전에서 4승을 올렸고 그 해 소프트뱅크의 와다 츠요시 다음으로 교류전 통산 17승을 기록했다. 5월 15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전에서는 4타수 3안타 4타점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그 후 이시이 가즈히사와 키시 타카유키 등의 투수들이 연달아 부상으로 이탈하여 매 경기 완투를 전제로 던지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여름에 기록적인 무더위로 인하여 등판 중에 탈수 증상을 일으켜 다리에 쥐가 나 강판되는 등 체력이 꽤나 소모됐을 뿐만 아니라 경기 중반까지 호투하다가 경기 후반에 갑작스런 제구력 난조로 인하여 대량 실점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 14승을 기록했다.
2011시즌 개막을 앞두고 팔꿈치 통증으로 슬럼프에 빠지는 등 부진하며 5월에 2군으로 내려갔다.[5] 이후 1군 복귀를 했음에도 지속적인 팔꿈치 통증과 6월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 날아온 타구를 다리에 맞으며 부상을 당하면서 결국 5년간 계속되었던 두 자릿수 승리는 결국 끝이났다.
2012시즌 5년연속으로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았다. 그러나 이후 3연패를 당하는 등 부진하며 4월에 1군 등록이 말소되었다. 그 후 당시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마무리 투수를 맡고 있던 엔리케 곤잘레스가 부진하며 5월에 1군으로 복귀,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와쿠이가 마무리 투수로 기용되었다. 5월 13일 닛폰햄 파이터즈전에 1이닝 동안 타자 5명을 상대로 1피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기록 프로 데뷔 후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그러나 5월 18일에 발매된 일본의 주간지 '''프라이데이'''에서 스캔들 문제를 기사로 내보내며 곤욕을 치뤘다. 22일에 구단 측은 와쿠이의 출장 선수 등록을 무기한 말소 조치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이후 6월 16일 구단에서 엄중 주의를 주며 징계 해제가 되었고 22일에 1군 복귀하며 시즌 종료까지 세이부의 마무리 투수로서 출전하며 30세이브를 기록했다.
2013년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 선수로 선발되었지만 합숙 중에 또 다시 대표팀 합숙 훈련 도중 숙소에서 한 여성과 밀회하는 장면이 프라이데이에 의해 보도되었다. 구단 측은 그가 미혼인 점을 감안해 엄중 주의를 받았다. [6] 이후 마무리에서 다시 선발로 복귀하였지만 컨디션 저하와 제구력 난조로인해 시즌 중반부터 중간 계투나 선발 등판을 반복했다. 시즌 중반 이후에는 중간 계투로만 등판하며 시즌 종반에는 마무리로 활약하며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에 기여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3차전 1점을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8회 등판했지만 카쿠나카 카츠야에 2점짜리 적시 3루타를 허용하는 등 아웃카운트를 한 개도 잡지 못하며 강판되었다. 이후 시즌종료후 FA자격을 얻으며 치바 롯데 마린즈로 이적하였다.
2.2.2.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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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 세이부 시절의 은사인 이토 츠토무 감독이 이끄는 치바 롯데와 FA 계약을 하며 이적하였다. 이후 12월 20일 세이부 구단을 방문해 인사를 했다고 일본 언론은 보도했다. #
2.2.2.1. 2014 시즌
4월 15일 친정팀인 세이부 라이온즈전에 선발 등판, 7이닝 5피안타 8탈삼진 1사사구 2실점으로 호투하며 승리투수가 되며 치바 롯데로 이적 후 첫 승리를 기록했다. 또한 세이부전의 승리로 역대 13번째로 전 구단 상대 승리를 기록했다.
2014시즌은 8승 12패 4.21의 방어율로 시즌을 마감했다.
2.2.2.2. 2015 시즌
3월 27일 개막전에 소프트뱅크전에 선발로 등판하여 6이닝 6피안타 무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된다. 4월 4일 라쿠텐 골든이글스전에서는 롯데 이적 이후 처음으로 무사사구 완투승을 기록했다. 이후 순조롭게 승수를 쌓아 갔으며 8월 14일 오릭스전에 선발 등판 7이닝 6피안타 2실점의 호투로 2010년 이후 5년 만에 두 자리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정신차린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와 순위싸움이 격화된 상황에서 꾸준히 이닝을 소화하며 1선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10월 1일 니혼햄전에 등판하여 7이닝 3피안타(1홈런) 6삼진으로 호투하며 시즌 14승을 챙겼다. 10월 6일 라쿠텐전에 등판 하여 10이닝 137구로 시즌 15승을 챙기며 오타니 쇼헤이와 함께 2009년 이후 6년만에 다승왕을 차지했다.
최종 성적은 15승 9패 방어율 3.39. 10월 12일, 퍼시픽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니혼햄 전에서 6.1이닝 '143구' 4삼진 1자책점으로 철강왕의 위엄을 과시하며 팀의 퍼시픽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을 견인했다. 아쉽게도 2015시즌 평화왕 소프트뱅크에게 롯데가 스윕당하면서 더 이상의 등판은 없었다.
시즌이 끝난 후 일본 퍼시픽리그 투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였다.
2.2.2.3. 2016 시즌
26경기 등판 188.2이닝 10승 8패 평균자책점 3.01의 준수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완투 5번으로 리그 1위, 수비력도 인정을 받아 2년 연속 퍼시픽리그 투수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시즌 후 7살 연상의 모델 오시키리 모에와 결혼했다.
2.2.2.4. 2017 시즌
팀과 함께 본인의 커리어도 나락으로 곤두박질하는 모습.
다패왕 경쟁까지 하다가 후반에 겨우 좀 살아나서 5승 11패 ERA 3.99를 찍었다. 그래도 17시즌 일본야구 최악의 선발투수로 남은 이시카와 아유무보다는 나았지만, NPB의 투고타저를 생각하면 저 평자도 좋은 평자는 아니다. 센트럴-퍼시픽 다 합쳐서 와쿠이는 22위다. 타고투저인 KBO 리그의 평자 19위 문승원의 평자가 5.33인 걸 감안하면 그냥저냥 무너지지 않고 선발로 계속 돌아주긴 했구나 이 수준.
2017년 시즌 후에 FA로 풀리게 되었는데, 예상 외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다.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이 다수이긴 한데, 사실 예전부터 메이저리그 진출에 미련을 가지고 있었던 선수였던데다 이미 작년 시즌 종료 후 포스팅 시스템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할지도 모른다는 루머가 돈 적도 있었기에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는 반응도 있긴 하다. 올해의 부진으로 일본에 남아봤자 커리어에 걸맞는 대형 계약을 따는 건 불투명하니 기왕 이렇게 된 거 꿈도 쫓고 잘 풀리면 메이저리거에 안 풀려도 미국 성적을 기반으로 FA재수가 가능하기 때문에 겸사겸사 내린 선택으로 보인다.
일단 고졸 1년차부터 1군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두 번째 FA임에도 나이는 만 31세로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다. 다만 일본에서 많은 이닝을 던졌으며 전성기가 거의 끝나갈 시점이라 앞으로 내리막밖에 남지 않았고[7] , 어쩌면 올해의 부진이 단순히 한 해 안식년이 아닌 하락세의 시발점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점도 있다. 하지만 FA라서 별도의 포스팅 비용이 필요없어 저렴한데다가, 선발과 불펜이 모두 가능하고 지금까지 많은 이닝을 던졌음에도 큰 부상 없이 풀시즌을 소화해 내구성이 증명되었으며, 커리어만 놓고 보자면 한때 NPB에서도 탑 클래스까지 올라본 투수였던데다 최근 몇 년 동안에도 수준급 선발투수로 활약했다는 점은 어필할 만한 요소가 될 것이다. 물론 전성기 시절의 폼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기에 다른 일본 탑 클래스 선발투수들처럼 대형 계약을 따내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하위선발이 필요한 팀 중 짧은 계약으로 긁어볼 만한 팀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예상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이듬해인 2018년 1월 26일, 메이저리그 진출을 포기하고 롯데 잔류를 결정했다. 몇몇 팀으로부터 오퍼를 받기는 했지만, 메이저리그 계약을 제시한 팀은 없었다고 한다.
2.2.2.5. 2018 시즌
'''이닝은 잘 먹으니까 선발 자리는 유지하긴 하는데 퍼포먼스는 기대이하'''
6월 23일 기준 13경기 4승 6패 ERA 4.54로 작년의 부진이 계속되고 있다.[8] 그런데 경기당 소화이닝은 6이닝이 넘고, 이닝이 전체 3위로 이닝이팅은 잘 하는 중이라 선발 로테이션은 꾸준히 돌고 있다.
시즌이 끝났을 때 기록은 22경기 150.2이닝 7승 9패 ERA 3.70. 팀내에서 유일하게 규정이닝을 달성했으며 경기당 퍼포먼스는 분명 별로였는데 최종 성적은 승운을 제외하면 마이크 볼싱어 다음으로 좋았다.
2.2.2.6. 2019 시즌
4선발로 시즌을 시작한다.
4월 2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의 원정경기에 선발등판하였으나 4이닝 5실점(4자책)으로 털리고 패전투수가 되었다.
4월 16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전에 선발등판하여 무사사구 완봉승을 거두었다!
5월 15일 오릭스 버팔로즈 상대로 7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으나 타자들이 아무것도 못하면서 노 디시젼.
6월 1일 기준 9경기 55이닝 3승 2패 ERA 3.76 기록중.
그러나 그 후로 점점 털렸고, 9월 24일 최종전에 롱릴리프로 나와서 신나게 맞아주면서 롯데 입단 후 커리어로우를 찍었다.
시즌 최종 성적은 18경기 104이닝 3승 7패 ERA 4.50으로 완벽하게 망했다.
2.2.3.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시절
2.2.3.1. 2020 시즌
2019년 12월 19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로 현금 트레이드된다는 뉴스가 나왔다. 미마 마나부의 보상선수 후보로 많이 언급되고 있던 상황에서 충격의 트레이드 소식이 나오면서 보상선수 픽도 오리무중으로 빠졌다.[9]
팀에서는 길터주기용 트레이드라고 했다. 팬들은 이해는 하지만 달랑 현금만 받고 트레이드 하기엔 아까운 자원이었다는 말이 많다. 아무튼 이로서 키시 타카유키, 마키타 가즈히사, 아사무라 히데토 등 수많은 옛 세이부 동료들과 다시 재회하게 되었다.
자신을 내보낸 롯데 상대로 만난 첫 경기에서 5이닝 2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그 이후 7/29 기준으로 평균 6이닝 이상을 던지면서 5번 선발 등판하여 4승을 추가하여 개막전 포함 5승 무패로 다승 단독 선두를 차지하고 있다.
8/5일 리그 1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전에서 9이닝 131구 무실점 8탈삼진 2사사구 1피안타[10] 로 완봉승을 거두며 철강왕의 위엄을 과시하고 있다. 6승 무패로 다승 선두를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평균자책점도 2.33을 기록해 1위로 올라섰다.
8월 12일 친정팀 세이부와의 맞대결에서 6.2이닝 2실점을 기록하며 승리투수가 된다. 같은 날 승리를 거둔 옆 리그의 스가노 도모유키와 더불어 7승 무패를 기록하며 다승 선두를 질주. 평균자책점은 2.38로 소폭 상승하였으나 여전히 리그 1위에, 54탈삼진을 기록하며 이 부분도 2위를 마크했다. 1위 야마모토 요시노부와는 5개차로, 리그 트리플 크라운 및 12년만의 사와무라상 수상도 노릴 수 있게 되었다.
8월 19일 닛폰햄과 대결에서도 8이닝 1실점을 기록하며 승리하여 8승 무패를 기록하며 다승 선두를 유지했다. 이와 더불어 평균자책점도 2.21로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2017년부터 하락세를 타고 있었기 때문에 롯데가 현금만 받고 트레이드해줬는데 롯데를 나가자마자 다시 2016년 이전으로 회춘했다... 롯데가 비싼 돈 주고 FA로 모셔온 미마 마나부가 4점대 ERA로 죽을 쑤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롯데 팬들로서는 배가 아플만한 상황.[11]
8월 26일 롯데전에서는 7이닝 2자책점으로 호투했지만 타선의 침묵으로 시즌 첫 패를 기록했다.
9월 2일 닛폰햄전에서는 6이닝 3자책점 5탈삼진으로 QS를 기록했지만 승패를 기록하지 못했다.
9월 9일 소프트뱅크전에서 5이닝 8실점으로 털려버리면서 패전을 기록하고, 평균자책점도 3.19로 폭등하여 야마모토 요시노부에게 1위 자리를 내어주고 만다.
9월 16일 오릭스전에서는 6이닝 1자책점으로 호투했지만 패전을 기록했다.
9월 23일 롯데전에서는 7이닝 3자책점 7탈삼진으로 호투하며 승리를 기록, 한달만에 9승을 기록하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다승 1위를 굳건히 유지했다.
9월 30일 소프트뱅크전에서는 8이닝 5탈삼진 2자책점을 기록하며 승리를 기록하여 10승고지에 올라서는데 성공했다.
결국 시즌 130이닝 11승 4패 방어율 3.60 130K로 생애 두 번째 다승왕을 거머쥐며 리바운딩에 성공. 소프트뱅크의 센가 코다이, 이시카와 슈타와 함께 공동 다승왕이자 방어율, 탈삼진 리그 4위, 이닝 3위의 우수한 성적. 시즌 전까지만 해도 퇴물 다 돼서 길터주기용으로 현금만 받고 보내줄 정도로 정말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는데 뜬금없이 리그 정상급 투수로 되살아났다.
2.3. 2021 시즌
전 시즌 활약에 힘입어 개막전 선발로 낙점되었다.
3. 플레이 스타일
스리쿼터 폼에서 나오는 평균 구속 142 km/h, 최고 구속 151 km/h 의 직구를 가지고있다. 보통 140 km/h 정도에만 머물러 있지만 2012년에는 마무리로 기용되었을 때에는 평균 구속 약 145 km/h를 기록했다. 공의 릴리스 포인트가 좋고 밸런스가 잡힌 폼에서 날카로운 구속과 직구 와 다양한 변화구를 던지는 정통파 우완투수이며, 거기다 평소 러닝을 많이 한 덕분에 하체의 힘도 강해 9회에도 140 km/h를 넘기며 구속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지구력을 가지고 있다. 변화구는 슬라이더, 커브, 포크볼, 체인지업, 슈트 등을 던지며 “어느 구종이라도 스트라이크를 잡을 수 있어 승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타자에게서는 상대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라고 말하는 반면 “삼진을 잡을 수 있는 결정구가 없기 때문에 한 경기의 투구 수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 외 2011년 견제사 양대리그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투구외적인 주자견제능력, 투수 수비력도 뛰어나며, 변화구가 먹통이 되었을 때 레퍼토리를 수정하는 등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소위 말하는 경기운용능력이 매우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다만 탈삼진율은 2015년 기준으로 통산 6.66으로 그렇게 높지는 않으며. 딱 일본인 투수 하면 생각나는, 제구력과 수싸움, 다양한 변화구로 쇼부를 보는 전형적인 일본식 피네스 피처에 가까운 스타일이다. 특이사항으로 통산 몸에 맞는 공 101개로 현역 NPB 투수 중 1위, 전체 16위에 올라 있을 정도로 사구(死球)가 많은 편이다. 몸쪽 승부가 잦고 히가시오 오사무의 뒤를 따라 그걸 팀 차원에서 권장하는 세이부의 에이스로 활약한 기간이 길기 때문으로 추정.
타격은...암만 타석에 설 일 없는 파리그 투수라지만 이를 감안해도 안 좋은 듯. 프로데뷔 3년만에 첫 안타를 쳤으며 6년만에 첫 타점을 뽑았을 정도로 교류전에서 괴멸적인 타격을 선보였다.[12]
4. 연도별 기록
[1] 절묘한 컨트롤과 독특한 디셉션을 자랑하는 좌완 투수. 치바 롯데에서 활약 후 FA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로 이적했으나 그곳에서는 먹튀화. 2019년부터는 오릭스 버팔로즈에서 뛰었으나 1시즌만에 방출을 당했다.[2] 2006년 세이부에 입단해 2018까지 18년동안 세이부의 포수로 활약했다. 2018년 시즌 후 FA권리를 행사하여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하여 현재까지 뛰고 있다.[3] 나중에 이시이 타쿠로로 개명하고, 타자로 전향하여 10여년간 요코하마의 주전 유격수-1번타자로 활약한다. 1998년에는 도루왕을 차지하며 요코하마의 현재까지 마지막 일본시리즈 우승에 공헌하였다.[4] 8월부터 9월에 걸쳐서 5경기 연속 9회까지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두 경기에서만 승리 투수가 되었고 그 중 두 차례는 동점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와 완투로도 기록되지 않았을 정도다...[5] 이때 오른쪽 팔꿈치에서 유리 연골이 발견되었다.[6] 이때 스기우치 도시야도 스캔들 문제로 곤혹을 치뤘다. [7] 2020년에 팀을 옮기고 부활한 것을 보면 이것은 설레발이긴 했다. 물론 메이저리그에서 통하기 어렵다는 것은 지금도 중론이지만.[8] 평균자책 퍼시픽리그 18위.[9] 보상선수도 필승조 사카이 토모히토가 결정되면서 의외의 픽이 나왔다.[10] 9회 1사까지 노히트 상태였다.[11] 웃긴 것은 9월 29일 기준 미마가 다승 2위다. 미마는 규정이닝 투수중 ERA 최하위권인 걸 생각하면... [12] 다만 2010년 요코하마와의 교류전에서 1경기 3안타 4타점(...)을 뽑은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