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 오브 더 링

 


1. 개요
2. 역사
2.1. 킹 오브 더 링의 탄생과 태동기
2.2. PPV 시절
2.3. 위클리 스페셜을 통한 개최
3. 특징
4. 우승자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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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WWE가 1985년부터 비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는 싱글 엘리미네이션 방식의 토너먼트 이벤트.
1985년 처음 이벤트가 개최된 이래 1993년부터 2002년까지는 월간 PPV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2002년을 끝으로 4년간 진행되지 않다가 2006년부터는 간헐적인 특집 형태로 RAW스맥다운 등 위클리 쇼에서 이벤트가 개최되고 있다.

2. 역사



2.1. 킹 오브 더 링의 탄생과 태동기


첫 킹 오브 더 링 토너먼트가 개최된 것은 1985년으로 당시 돈 무라코가 영광스러운 첫 킹 오브 더 링이 되었다. 본격적인 토너먼트의 컨셉이 잡힌 것은 그 다음해 1986년 이벤트. 당시 우승자 할리 레이스가 킹 오브 더 링 우승자임을 과시하기 위해 왕관과 망토를 착용하고 다른 레슬러들을 도발하면서 "우승자 = 레슬링의 왕"의 설정이 생기게 되었다. 이후 킹 오브 더 링 토너먼트를 우승하는 선수에게는 왕관을 수여하는 우승 세레머니가 거행되었고, 일정 기간 동안 이름에 왕의 칭호를 붙힐 수 있는 혜택 (''King'' ~~)을 얻게 된다. 이 중 일부 레슬러들은 토너먼트 우승을 발판 삼아 아예 본인의 캐릭터를 왕으로 변경해 활동하기도 했는데, 위에 언급된 할리 레이스를 비롯해 킹 메이블 그리고 킹 부커, 킹 코빈 등이 있다.[1]

2.2. PPV 시절


1993년부터 월간 PPV 중 하나로 개최가 되었는데 개최시기는 6월이었다. PPV로 존재하던 시기엔 로얄럼블, 레슬매니아, 썸머슬램, 서바이버 시리즈와 함께 '''WWE의 5대 PPV''' 중 하나였으나 킹 오브 더 링이 PPV로서 폐지가 되면서 지금의 '''WWE 4대 PPV''' 개최가 자리 잡게 되었다.
PPV로 진행되던 당시에는 매년 16강 토너먼트 형식으로 개최가 되었다. 이름 그대로 토너먼트가 이 이벤트의 볼거리인데 몇 번의 이벤트를 제외하면 예선과 본선을 몇 주간에 걸쳐서 진행했기 때문에 예선은 RAW스맥다운에서 치루고 8강이나 4강 경기부터 PPV를 통해 진행되었다. 다만 킹 오브 더 링 토너먼트와 무관한 경기들도 PPV에서 펼쳐졌다. 대표적인 경기가 그 유명한 '''셰인이 실신한 줄 알았습니다'''로 잘 알려진 커트 앵글 VS 셰인 맥맨.[2] PPV시절 메인이벤트는 모두 킹 오브 더 링과 무관한 경기들이었다. 대부분은 WWE 챔피언쉽으로 펼쳐지나, 이례적으로 1999년은 챔피언쉽이 아닌 경기가 메인이벤트였다.
2003년부터 WWE가 실시한 단독 브랜드별 PPV 정책[3]과 비대해진 로스터로 인해 폐지되었다.

2.3. 위클리 스페셜을 통한 개최


그러나, 2006년 4월 말부터 5월 말까지 1달동안 스맥다운에서 킹 오브 더 링을 가리는 형식으로 부활했고 2년 후인 2008년부터는 2년에 한 번 "WWE의 왕"을 가리기 위해 RAW에서 예전처럼 브랜드와 관계없이 예선을 통과한 선수들에게 참가 자격이 주어지고 있다.
가장 최근 펼쳐진 이벤트는 2015년 4월 진행된 이벤트로 무려 5년만에 부활했다. 8강전은 RAW에서, 4강과 결승은 WWE 네트워크를 통해서 방송되었다.
2019년 8월 19일 RAW를 통해서 4년만에 다시 진행될 예정이다.

3. 특징


WWE의 최강자를 가리기 위해 펼치는 토너먼트. 이 토너먼트의 우승자는 '''킹 오브 더 링'''의 칭호를 얻게 되며, 다음 킹 오브 더 링이 열리기 전까지는 맘대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실제로는 하이미드카더에서 메인이벤터로 승급시키려는 선수 전용이다.
1:1 대진 특성상 선수의 기량이 중요하지만, 운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부분. 한 선수가 우승을 위해선 3~4경기를 치뤄야하는데, 이때 준결승과 결승은 같은 날 펼쳐지기때문에 체력적인 변수가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4강에서 A와 B의 경기가 A가 3분만에 이기면서 끝난 반면, C와 D의 경기가 30분에 걸친 혈투 끝에 간신히 C의 승리로 끝났을 때 결승에서 유리한건 당연히 A. 예시와 같은 상황 때문에 킹 오브 더 링에서는 객관적인 전력을 넘어서는 이변도 종종 발생하는 편이다.
월드컵처럼 대진표의 운에 따라서 8강부터 내리 메인이벤터만 만나서 힘을 다 빼고 결승에 올라오는 경우가 있는 반면, 16강-8강-4강에서 약한 상대 만 만나거나 부전승으로 인해 충분한 체력을 바탕으로 승리 [4] 하는 "결승 확보 대진표"가 나올 수도 있다. 추가로 토너먼트 전부터 악연을 가진 상대가 난입해 경기를 방해하는 케이스는 ''매번'' 발생하기 때문에 생각치도 못한 선수가 우승자가 되는 경우도 종종 나오고 있다.
어쨌든, 킹 오브 더 링은 로얄럼블과 마찬가지로 WWE의 확실한 차세대 메인이벤터 등용문이었고, 킹 오브 더 링을 따낸 선수들은 대부분 메인이벤터 푸시를 제대로 받았다. 다만 로얄럼블 우승자 출신 선수들에 비해 하이미드카더에서 메인이벤터로 실제 진입한 선수는 절반 정도였고, 챔피언벨트까지 따낸 경우는 이보다 더 적은 숫자였다는 부분은 다소 아쉬운 점. 하지만 1993~2002년까지를 보면 하이미드카더에 머무른 선수는 섐락과 빌리 건 정도이며 오웬 하트와 메이블은 짧게나마 메인이벤터를 맡았다. 그리고 나머지 여섯 명은 '''전설적인 선수가 되었다'''. 이 정도면 한때는 충분히 제 역할을 했다.
이후 06년 킹 부커의 활약도 돋보였으나 이미 메인이벤터를 경험한 선수였기에 그닥 파격적이진 않았고[5] 윌리엄 리걸은 킹이 된 직후 약물로 징계를 받아 푸쉬를 말아먹는가 하면 셰이머스도 킹 칭호를 받은 후 오히려 존 모리슨에게 수차례 패하며 킹 칭호를 스스로 떼어 버리고 턴페이스 했다. 그리고 2015년 킹 오브 더 링 우승을 따낸 웨이드 바렛 역시 자버화 되고 말았다. [6]
4년 만에 열린 킹 오브 더 링에서 배런 코빈이 우승하면서 부활 이후 악역 선수가 우승하는 전통이 계속되었고 현재 스맥다운의 주축 악역 중 한 명으로 활약하고 있다. 자버화 우려는 어찌 넘어가는 모양새.
그리고 2020년 말까지 코빈이 꾸준히 악역 미드카더로 활약을 이어가면서 킹 부커 이후 명맥이 사실상 끊겼던 거만한 왕 기믹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4. 우승자 목록


년도
우승자
참고
1985
돈 무라코
[7]
1986
할리 레이스

1987
랜디 새비지

1988
테드 디비아시 Sr.

1989
티토 산타나

1991
브렛 하트

1993[8]

1994
오웬 하트
[9]
1995
메이블[10]

1996
스티브 오스틴
[11]
1997
트리플 H
[12]
1998
켄 샴락
[13]
1999
빌리 건

2000
커트 앵글

2001
에지

2002[14]
브록 레스너
[15]
2006
부커 T
[16][17]
2008
윌리엄 리갈
[18]
2010
셰이머스

2015
배드 뉴스 바렛
[19]
2019
배런 코빈

[1] 이외에도 '킹'의 칭호를 쓴 레슬러들이 있긴 하다. 마초킹, 킹 하쿠, 킹 더간 등. 하지만 이들은 킹 오브 더 링에서 승리한 건 아니고 킹 하쿠는 킹 할리 레이스에게 이겨서, 킹 더간 역시 킹 하쿠를 이겨서 자칭한 것이고 마초킹 역시 킹 더간에게 승리해서 얻은 칭호다. 다만 마초킹 랜디 새비지는 킹 오브 더 링에서 우승한 경력은 있다.[2] 앵글은 이 때 토너먼트에도 참가했기 때문에 이 날 총 3경기를 치뤘다.[3] 로얄럼블, 레슬매니아, 썸머슬램 그리고 서바이버 시리즈를 제외한 나머지 PPV들은 RAW스맥다운 중 한 브랜드만 참여해서 개최하는 방식. WWE 배드 블러드(2003)부터 실시되었으나 갈수록 부진한 흥행과 얇아지는 선수층의 문제로 인해 2007년 2월을 끝으로 폐지되었다.[4] 2008년 윌리엄 리걸은 이 방법을 제대로 이용했다.[5] 그래도 나름 왕 기믹을 실감나게 연기한 부커로 인해 제대로 먹혀서 현재까지 최고의 왕 기믹으로 회자되고 있으며, 부커 본인도 WWE 커리어 중 이 시기를 가장 좋아한다고. 가끔 이 기믹으로 등장하기도 한다.[6] 사실 실제로 킹 오브 더 링의 저주라고 해서 킹 오브 더 링 우승자들의 행보에서 안습한 면이 나타나는 것을 저주로 칭하기도 했다. 몬트리올 스크류잡을 당한 브렛 하트, 오웬 하트의 파일드라이버를 맞고 심각한 목 부상을 당한 스티브 오스틴, PPV 도중에 추락사를 당한 오웬 하트, 킹 오브 더 링 등극 후에도 영 푸쉬를 못 받은 메이블과 빌리 건, 잦은 부상으로 인해 젊은 나이에 은퇴한 에지 등. 그나마 트리플 H나 브록 레스너가 여기에 해당되지 않다 볼 수 있지만, 두 사람 모두 멘탈 면에서 크게 욕 먹는다는 점을 생각하면...[7] '''첫''' "킹 오브 더 링."[8] 이 때를 기점으로 5대 PPV로서의 지위를 얻는다.[9] 하트 형제, 3회 우승 기록 세움.[10] 최근에는 비세라나 빅 대디 V로 알려져있는 넬슨 프레지어[11] 그 유명한 "Austin 3:16"가 이 대회 우승 이후 등장했다. 자세한건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 항목 참조.[12] WWE의 원래 계획에 따르면 트리플 H는 WWF 킹 오브 더 링(1996)에서 우승할 예정이었으나, 이벤트 직전 커튼 콜 사건으로 징계를 받게 되면서 한 해 미뤄졌다.[13] 처음으로 UFC 출신 선수가 우승했다. 몇 년 후에는 반대로 WWE 킹 오브 더 링(2002) 우승자 브록 레스너가 UFC로 건너갔다.[14] 이 때를 마지막으로 PPV로서의 킹 오브 더 링은 사라진다.[15] 유일하게 킹 오브 더 링 2002 우승자에겐 WWE 언디스퓨드 챔피언쉽 도전권이 주어졌다. 브록은 WWE 섬머슬램(2002)에서 더 락을 꺾고 WWE 챔피언에 오르면서, 당시 최연소 월드 챔피언 기록을 세웠다.(현재 최연소 월드 챔피언기록은 WWE 섬머슬램(2004)에서 WWE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했던 랜디 오턴이 가지고 있다.) 이후 브록은 스맥다운과 독점계약을 맺는다. 이런 과정을 잘만 활용했어도 킹 오브 더 링이 5대 PPV로서 계속 남았을 지도 모른다.[16] 우승 당시엔 부커 T였는데, 우승 이후 자신이 "WWE의 왕"이라면서 기믹을 아예 '''킹 부커'''로 바꿔버렸다. 테마곡, 등장 퍼포먼스, 옷차림 그리고 말투까지...[17] 그래도 나름 왕 기믹 중에서는 제법 잘 나간 케이스. 부커 T 본인도 오히려 이 시기를 더 좋아할 정도. 사실 이 기믹 후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을 거머쥐는 등 초창기 시절보다 더 푸쉬를 받긴 했다. 지금도 아주 가끔씩 위클리 쇼 특집 때 등장해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18] 당시 WWE는 푸쉬를 줄려고 했는데 약물복용이 걸렸다. 본인이 말아먹은 케이스.[19] 우승 이후 기믹을 킹 바렛으로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