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버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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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E에서 1987년부터 개최하고 있는 PPV의 명칭. 개최시기는 11월. WWE의 페이퍼뷰 중 레슬매니아 다음으로 가장 오래된 PPV이며, 로얄럼블, 레슬매니아, 섬머슬램과 함께 '''WWE가 자랑하는 4대 페이퍼뷰 중 하나'''이다.
이전 리그베다 위키에선 WWE PPV 항목 중 가장 마지막에 생긴 문서였는데, 무려 2000년대를 대표하는 최악의 PPV 중 하나인 디셈버 투 디스멤버보다 늦게 생겼을 지경. 이는 아래에 언급할 PPV 존폐문제 때문에 개최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던 점도 있지만 레슬매니아를 제외한 PPV 문서들이 2009년 '''12월'''부터 PPV 개최시기에 따라 항목이 생기다보니 개최시기가 11월인 서바이버 시리즈는 '''다른 PPV들에 묻혀버린 것.''' 재밌는 건 WWE에서 가장 오래된 PPV 레슬매니아는 리그베다 위키에 가장 먼저 문서가 생겼는데, 두번째로 오래된 PPV 서바이버 시리즈는 가장 마지막에 생겼다. (...)
의외로 레슬링 팬이나 매니아들도 이 PPV의 명칭을 '''서바이벌''' 시리즈로 잘못 오기하는 경우가 제법 많다. 서바이벌이 서바이버와 발음이 비슷하고 뜻도 어느 정도 통해서 그런 것 같지만 어찌되었던 정식 명칭은 '''서바이버 시리즈''' 이니 되도록이면 제대로 표기하도록 하자.
참고로 존 시나는 이 PPV에서 굉장히 강력한 모습을 보였는데 2011년까지 서바이버 시리즈에서만 7승 무패를 거뒀다. 그러나 2012년 서바이버 시리즈에서 CM 펑크에게 패배하며 무패 기록도 허무하게 깨졌다. 하지만 이후에도 2승을 추가하며 총 전적 9승 1패로 극강의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서바이버 시리즈가 등장하게 된 계기는 태그팀 레슬링에 포커스를 맞추기 위해서였다. 또한 1987년 열린 WWF 레슬매니아 III에서 엄청난 흥행을 거둔 헐크 호건과 안드레 더 자이언트의 대립의 연장선상이 이루어질 이벤트가 필요했단 점까지 맞아떨어지며 이벤트가 개최되는데 힘을 보탠다.
사실 이것뿐만은 아니고, 당시 라이벌 단체였던 NWA의 가장 큰 이벤트인 스타케이드[2] 를 견제하려는 이유도 있었다.
첫 서바이버 시리즈의 개최일은 11월 26일, 추수감사절이었다. 문제는 이미 스타케이드가 매년 전통적으로 추수감사절에 열리고 있었다는 것. 대담한 WWE의 전략 앞에 케이블 TV 사업자들은 서바이버 시리즈와 스타케이드 중 어떤 이벤트를 유통할지 선택해야만 했고, WWE 회장 빈스 맥마흔은 서바이버 시리즈 대신 스타케이드를 방송할 경우 WWF 레슬매니아 IV는 방송할 수 없을 것이라는 뜻의 협박성 경고를 시전했다. 결국 많은 수입을 거둘 수 있는 레슬매니아를 포기할 수 없던 케이블 TV 사업자들이 서바이버 시리즈를 선택하며 입지를 굳히는 데 성공했다. 이때문에 엄청난 손해를 봐야했던 NWA는 다음 해부터 스타케이드를 12월로 옮겨 개최했다.
어쨌든 WWE는 서바이버 시리즈를 미국의 명절인 추수감사절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로 홍보했고, 첫 서바이버 시리즈는 추수감사절에, 이후 개최된 4번의 서바이버 시리즈도 추수감사절 전날 개최를 하며 구실을 맞췄다.
다만 서바이버 시리즈의 개최일이 일요일에 걸치지 않아서 흥행에 차질을 빚는 일이 생기자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2)부터는 개최일을 일요일로 고정하게 되었다.[3] 이후 늘어난 이벤트의 수와 여러 제약들로 인해 서바이버 시리즈가 꼭 추수감사절이 있는 주에 개최되지는 않지만, 가능하면 추수감사절을 전후해 개최하려는 추세가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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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위의 Gobbledy Gooker는 사망한 에디 게레로의 형이자 차보 게레로의 둘째삼촌인 헥터 게레로.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0)에서는 4 대 4 제거 경기를 다섯 번[5] 하고, 생존자들이 선역과 악역으로 뭉쳐 또 제거 경기[6] 를 하는 방식이었는데 다섯 번째 경기와 마지막 경기 사이에(그러니까 하루에 두 경기를 해야 하는 선수들 몸 추스르라고 시간 때우기로) 이 사건이 벌어졌다. 대회 시작 전부터 커다란 달걀 모형을 보여주더니만 알이 깨지자 안에서 왠 칠면조 인형을 뒤집어 쓴 사람이…….
자기들도 그걸 아는지 이걸 자체 패러디로 한번 더 써먹었다. 마리즈 지못미.
이후에 일하러 가는 병맛넘치는 시리즈를 만들었다(...). 어쨌건 그 이후에도 서바이버 시리즈 시즌이 되면 간간히 언급되는 어쩌면 WWE가 망할때 까지 계속 언급될 영원한 네타 캐릭터다.[7]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7)에서 나온 몬트리올 스크류잡 사건은 20세기 WWE를 넘어 프로레슬링 역사에 남을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8]
사건의 여파만 설명하자면 빈스 맥마흔은 평범한 회장에서 가장 악독한 회장 캐릭터로 변신했고, 숀 마이클스는 악동을 넘어 캐나다에선 속된 말로 죽일 놈 취급까지 받았다. 브렛 하트는 이 사건 이후 13년간 WWE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이러한 상황을 통해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이라는 엄청난 캐릭터가 탄생하게 된다. 가장 큰 전환점이라면 이 사건 이후로 새로운 흥행 카드를 가지게 된 WWF는 자신들을 앞지르던 라이벌 단체 WCW를 흥행에서 역전한 뒤 엄청난 수익을 거두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4년 후인 2001년엔 파산당한 WCW를 인수했다. 게다가 미국 내 3위 프로레슬링 단체였던 ECW까지 매입해버렸다.
서바이벌 시리즈를 대표하는 전통의 제거 경기.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0) 언더테이커의 충격적인 데뷔 역시 이 경기였다. 초창기에는 태그팀 단위의 10:10 제거 경기로서 한 태그팀 멤버가 탈락하면 자동으로 다른 멤버 역시 탈락되는 방식이었으나[10] WWF 서바이버 시리즈(1989)부터 개인 단위로 4:4 혹은 5:5 등의 스타일이 정착되었다. 첫 서바이버 시리즈부터 지금까지 웬만해선 이 경기가 적어도 한 개, 보통은 두세 개씩 개최되었다.[11] 그러나 이 경기가 없었던 이벤트들도 있는데, 그럴 때는 밑에 적힌 경기들로 인해 열리지 않았다. 지금까지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경기는 WWF 서바이버 시리즈(2001)에서의 팀 WWF vs 팀 WCW & ECW의 '''"Winner take all"'''[12] 경기이고, WWE 서바이버 시리즈(2003)의 팀 오스틴 vs 팀 비숍이나 WWE 서바이버 시리즈(2005)의 팀 RAW vs 팀 스맥다운, WWE 서바이버 시리즈(2014) 팀 시나 vs 팀 어소리티도 기억에 남는 명경기들로 손꼽히고 있다.
서바이버 시리즈 역사상 최초의 스윕 경기는 WWE 서바이버 시리즈(2006)의 팀 DX vs 팀 RA)TED RKO의 5 대 5 경기[13] 로 한 팀이 전혀 제거되지 않고 상대 팀 멤버들을 모두 제거시키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결과는 일방적이지만 경기 자체는 꽤 재밌었다.[14] 두 번째 스윕 매치는 WWE 서바이버 시리즈(2014)에서 나왔는데 다름 아닌 디바 서바이버 시리즈 매치였다.[15] 다만 이 경기의 퀄리티는 첫번째 스윕 매치에 전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재미가 없었다.
이후 아래 항목에 있는 것처럼 제거 경기 자체의 질적인 저하 등으로 페이퍼뷰의 위기, 혹은 제거 경기를 만드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라는 말들이 있었지만, WWE 서바이버 시리즈(2014)에서 오랜만에 '''역대급 제거 경기'''를 만들어냈다. WWE 서바이버 시리즈(2003)의 팀 오스틴 VS 팀 비숍과 중후반부가 대단히 비슷하게 진행된 것이 특징이다.
참고로 1996년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6) 제거 경기 중 지미 스누카, 사비오 베가, 플래시 펑크, 요코주나 팀 대 파룩, 베이더, 디젤, 레이저 라몬[16] 팀 간의 경기는 서바이버 시리즈 역사상 유일하게 승패가 가려지지 않은 제거 경기였는데, 양 팀에서 1명씩 탈락한 상황에서 모두가 서로 난투극을 벌여 결국 더블 DQ로 끝나고 말았다.
RAW와 스맥다운이 브랜드화 되어 갈라지게 된 이후엔, 각 브랜드에서 남녀 5명씩을 위클리쇼를 통해 선발해 서시 당일 시합을 치르게 하고 있는 것이 전통으로 굳어지고 있는데, 최근엔 NXT까지 가세하면서 삼파전 양상을 띄고 있다.
서바이버 시리즈에서 처음 열렸던 기믹 매치 또는 특이한 조항이 있었던 경기.
위에서 언급되어있듯 WWE에서 레슬매니아 다음으로 오래된 PPV임에도 불구하고 폐지 위기에 놓여있는 상황이다. 최근 열리는 서바이버 시리즈에서 이벤트를 대표하는 제거 경기들이 얕은 개연성과 낮은 질로 인해 비판받고 있고, 이로 인해 흥행도 갈수록 하락하는 실정이다.
이때문에 빈스 맥마흔이 "서바이버 시리즈의 폐지"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루머들이 여러 해외 레슬링 뉴스 사이트들에서 나왔었고, 실제로 2010년 2월 열린 WWE 언론 간담회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공식적으로 "서바이버 시리즈를 개최하지 않고, 이를 대체할 이벤트를 위한 방안을 찾고 있다."고 발표하며 이벤트의 폐지가 공식화되기 직전까지 갔었다.[21]
하지만 2010년 6월, 2010년 WWE PPV 개최 예정 일정표에 서바이버 시리즈가 추가되며, 일단 2010년까지는 개최가 확정이 되었다.
그러나, WWE 섬머슬램(2010)에선 7 대 7 제거 경기가 열린데 이어 WWE 나이트 오브 챔피언스(2010)에서도 6인 제거 경기가 치뤄졌고, WWE 서바이버 시리즈(2010)를 4주 앞두고 개최된 PPV WWE 브래깅 라이츠(2010)에서 마저 7 대 7 제거 경기가 열리며 서바이버 시리즈를 대표하는 "제거 경기" 의미 자체가 많이 약해진 상태라 덩달아 이벤트의 존재까지 퇴색된 상태이다.
물론 서바이버 시리즈를 대표할 새로운 컨셉의 경기가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최악의 경우 "식상하다"는 평과 함께 2010년을 끝으로 막을 내릴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해있었으나 브랜드 분리가 유명무실해지면서 브랜드간 제거 경기가 펼쳐지던 브래깅 라이츠가 폐지되고 다른 PPV에서도 제거 경기를 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서바이버 시리즈는 존속하게 되었다.
브랜드 재분리가 이루어진 2016년부터는 브래깅 라이츠와 비슷하게 진행된다.
서바이버 시리즈 2002에서 열린 WWE 챔피언 쉽에서 빅 쇼를 상대로 브록 레스너의 괴력을 볼 수 있는데 이날 브록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다른 WWE 선수들이 들지 못했던 거구인 빅 쇼를 F-5로 날리는 괴력을 선보여 폴 헤이먼은 물론 관중들을 놀라게 했다.
덧붙여 2002년도는 5 vs 5 제거 경기가 열리지 않았다. 대신 위에도 언급했듯이 최초의 엘리미네이션 챔버 매치가 그 자리를 메꿨는데 결과적으로는 훌륭한 선택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흔히 있었던 제거 경기 대신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경기 방식을 앞세웠고 PPV의 대부분의 시간을 여기에 투자하여 어필하는 전략이 성공한 셈이다. 게다가 엘리미네이션 챔버 매치 또한 이 경기의 명칭인 "서바이버 시리즈"에 걸맞는 경기방식이기도 했다.
그 외에도 서바이버 시리즈 2002는 위에서 언급된 6인 엘리미네이션 테이블 매치와 우먼스 챔피언쉽 하드코어 매치[22] 가 열리는 등 이전의 시리즈보다 더욱 다양한 매치업을 선보였다.[23]
1. 개요
WWE에서 1987년부터 개최하고 있는 PPV의 명칭. 개최시기는 11월. WWE의 페이퍼뷰 중 레슬매니아 다음으로 가장 오래된 PPV이며, 로얄럼블, 레슬매니아, 섬머슬램과 함께 '''WWE가 자랑하는 4대 페이퍼뷰 중 하나'''이다.
이전 리그베다 위키에선 WWE PPV 항목 중 가장 마지막에 생긴 문서였는데, 무려 2000년대를 대표하는 최악의 PPV 중 하나인 디셈버 투 디스멤버보다 늦게 생겼을 지경. 이는 아래에 언급할 PPV 존폐문제 때문에 개최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던 점도 있지만 레슬매니아를 제외한 PPV 문서들이 2009년 '''12월'''부터 PPV 개최시기에 따라 항목이 생기다보니 개최시기가 11월인 서바이버 시리즈는 '''다른 PPV들에 묻혀버린 것.''' 재밌는 건 WWE에서 가장 오래된 PPV 레슬매니아는 리그베다 위키에 가장 먼저 문서가 생겼는데, 두번째로 오래된 PPV 서바이버 시리즈는 가장 마지막에 생겼다. (...)
의외로 레슬링 팬이나 매니아들도 이 PPV의 명칭을 '''서바이벌''' 시리즈로 잘못 오기하는 경우가 제법 많다. 서바이벌이 서바이버와 발음이 비슷하고 뜻도 어느 정도 통해서 그런 것 같지만 어찌되었던 정식 명칭은 '''서바이버 시리즈''' 이니 되도록이면 제대로 표기하도록 하자.
참고로 존 시나는 이 PPV에서 굉장히 강력한 모습을 보였는데 2011년까지 서바이버 시리즈에서만 7승 무패를 거뒀다. 그러나 2012년 서바이버 시리즈에서 CM 펑크에게 패배하며 무패 기록도 허무하게 깨졌다. 하지만 이후에도 2승을 추가하며 총 전적 9승 1패로 극강의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2. 유래
서바이버 시리즈가 등장하게 된 계기는 태그팀 레슬링에 포커스를 맞추기 위해서였다. 또한 1987년 열린 WWF 레슬매니아 III에서 엄청난 흥행을 거둔 헐크 호건과 안드레 더 자이언트의 대립의 연장선상이 이루어질 이벤트가 필요했단 점까지 맞아떨어지며 이벤트가 개최되는데 힘을 보탠다.
사실 이것뿐만은 아니고, 당시 라이벌 단체였던 NWA의 가장 큰 이벤트인 스타케이드[2] 를 견제하려는 이유도 있었다.
첫 서바이버 시리즈의 개최일은 11월 26일, 추수감사절이었다. 문제는 이미 스타케이드가 매년 전통적으로 추수감사절에 열리고 있었다는 것. 대담한 WWE의 전략 앞에 케이블 TV 사업자들은 서바이버 시리즈와 스타케이드 중 어떤 이벤트를 유통할지 선택해야만 했고, WWE 회장 빈스 맥마흔은 서바이버 시리즈 대신 스타케이드를 방송할 경우 WWF 레슬매니아 IV는 방송할 수 없을 것이라는 뜻의 협박성 경고를 시전했다. 결국 많은 수입을 거둘 수 있는 레슬매니아를 포기할 수 없던 케이블 TV 사업자들이 서바이버 시리즈를 선택하며 입지를 굳히는 데 성공했다. 이때문에 엄청난 손해를 봐야했던 NWA는 다음 해부터 스타케이드를 12월로 옮겨 개최했다.
어쨌든 WWE는 서바이버 시리즈를 미국의 명절인 추수감사절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로 홍보했고, 첫 서바이버 시리즈는 추수감사절에, 이후 개최된 4번의 서바이버 시리즈도 추수감사절 전날 개최를 하며 구실을 맞췄다.
다만 서바이버 시리즈의 개최일이 일요일에 걸치지 않아서 흥행에 차질을 빚는 일이 생기자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2)부터는 개최일을 일요일로 고정하게 되었다.[3] 이후 늘어난 이벤트의 수와 여러 제약들로 인해 서바이버 시리즈가 꼭 추수감사절이 있는 주에 개최되지는 않지만, 가능하면 추수감사절을 전후해 개최하려는 추세가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4]
3. 시리즈 주요 장면
3.1. Gobbledy Goo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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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위의 Gobbledy Gooker는 사망한 에디 게레로의 형이자 차보 게레로의 둘째삼촌인 헥터 게레로.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0)에서는 4 대 4 제거 경기를 다섯 번[5] 하고, 생존자들이 선역과 악역으로 뭉쳐 또 제거 경기[6] 를 하는 방식이었는데 다섯 번째 경기와 마지막 경기 사이에(그러니까 하루에 두 경기를 해야 하는 선수들 몸 추스르라고 시간 때우기로) 이 사건이 벌어졌다. 대회 시작 전부터 커다란 달걀 모형을 보여주더니만 알이 깨지자 안에서 왠 칠면조 인형을 뒤집어 쓴 사람이…….
자기들도 그걸 아는지 이걸 자체 패러디로 한번 더 써먹었다. 마리즈 지못미.
이후에 일하러 가는 병맛넘치는 시리즈를 만들었다(...). 어쨌건 그 이후에도 서바이버 시리즈 시즌이 되면 간간히 언급되는 어쩌면 WWE가 망할때 까지 계속 언급될 영원한 네타 캐릭터다.[7]
3.2. 몬트리올의 악몽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7)에서 나온 몬트리올 스크류잡 사건은 20세기 WWE를 넘어 프로레슬링 역사에 남을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8]
사건의 여파만 설명하자면 빈스 맥마흔은 평범한 회장에서 가장 악독한 회장 캐릭터로 변신했고, 숀 마이클스는 악동을 넘어 캐나다에선 속된 말로 죽일 놈 취급까지 받았다. 브렛 하트는 이 사건 이후 13년간 WWE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이러한 상황을 통해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이라는 엄청난 캐릭터가 탄생하게 된다. 가장 큰 전환점이라면 이 사건 이후로 새로운 흥행 카드를 가지게 된 WWF는 자신들을 앞지르던 라이벌 단체 WCW를 흥행에서 역전한 뒤 엄청난 수익을 거두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4년 후인 2001년엔 파산당한 WCW를 인수했다. 게다가 미국 내 3위 프로레슬링 단체였던 ECW까지 매입해버렸다.
4. 경기
4.1. 트래디셔널 일리미네이션 매치[9]
서바이벌 시리즈를 대표하는 전통의 제거 경기.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0) 언더테이커의 충격적인 데뷔 역시 이 경기였다. 초창기에는 태그팀 단위의 10:10 제거 경기로서 한 태그팀 멤버가 탈락하면 자동으로 다른 멤버 역시 탈락되는 방식이었으나[10] WWF 서바이버 시리즈(1989)부터 개인 단위로 4:4 혹은 5:5 등의 스타일이 정착되었다. 첫 서바이버 시리즈부터 지금까지 웬만해선 이 경기가 적어도 한 개, 보통은 두세 개씩 개최되었다.[11] 그러나 이 경기가 없었던 이벤트들도 있는데, 그럴 때는 밑에 적힌 경기들로 인해 열리지 않았다. 지금까지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경기는 WWF 서바이버 시리즈(2001)에서의 팀 WWF vs 팀 WCW & ECW의 '''"Winner take all"'''[12] 경기이고, WWE 서바이버 시리즈(2003)의 팀 오스틴 vs 팀 비숍이나 WWE 서바이버 시리즈(2005)의 팀 RAW vs 팀 스맥다운, WWE 서바이버 시리즈(2014) 팀 시나 vs 팀 어소리티도 기억에 남는 명경기들로 손꼽히고 있다.
서바이버 시리즈 역사상 최초의 스윕 경기는 WWE 서바이버 시리즈(2006)의 팀 DX vs 팀 RA)TED RKO의 5 대 5 경기[13] 로 한 팀이 전혀 제거되지 않고 상대 팀 멤버들을 모두 제거시키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결과는 일방적이지만 경기 자체는 꽤 재밌었다.[14] 두 번째 스윕 매치는 WWE 서바이버 시리즈(2014)에서 나왔는데 다름 아닌 디바 서바이버 시리즈 매치였다.[15] 다만 이 경기의 퀄리티는 첫번째 스윕 매치에 전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재미가 없었다.
이후 아래 항목에 있는 것처럼 제거 경기 자체의 질적인 저하 등으로 페이퍼뷰의 위기, 혹은 제거 경기를 만드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라는 말들이 있었지만, WWE 서바이버 시리즈(2014)에서 오랜만에 '''역대급 제거 경기'''를 만들어냈다. WWE 서바이버 시리즈(2003)의 팀 오스틴 VS 팀 비숍과 중후반부가 대단히 비슷하게 진행된 것이 특징이다.
참고로 1996년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6) 제거 경기 중 지미 스누카, 사비오 베가, 플래시 펑크, 요코주나 팀 대 파룩, 베이더, 디젤, 레이저 라몬[16] 팀 간의 경기는 서바이버 시리즈 역사상 유일하게 승패가 가려지지 않은 제거 경기였는데, 양 팀에서 1명씩 탈락한 상황에서 모두가 서로 난투극을 벌여 결국 더블 DQ로 끝나고 말았다.
RAW와 스맥다운이 브랜드화 되어 갈라지게 된 이후엔, 각 브랜드에서 남녀 5명씩을 위클리쇼를 통해 선발해 서시 당일 시합을 치르게 하고 있는 것이 전통으로 굳어지고 있는데, 최근엔 NXT까지 가세하면서 삼파전 양상을 띄고 있다.
4.2. 기타
서바이버 시리즈에서 처음 열렸던 기믹 매치 또는 특이한 조항이 있었던 경기.
- 케스킷 매치 (1992)
- 데들리 게임 토너먼트 (1998)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8)에서 당시 공석이던 WWF 챔피언[18] 을 가리기 위해 펼쳐진 토너먼트로 굉장히 크게 개최가 되었다. 16강부터 결승전까지 당일 이벤트에서 모두 개최가 되었으며, 총 12경기가 토너먼트 경기로 펼쳐졌다.[19] 많은 경기들로 인해 이 해 서바이버 시리즈에선 제거 경기가 개최되지 않았고, WWF 태그팀 챔피언쉽과 WWF 우먼스 챔피언쉽만이 토너먼트가 아닌 경기로 열렸다. 우승자인 더 락은 16강에서 빅 보스맨을 상대로 기습 롤업으로 4초(...)만에 승리,8강에서 캔 샘락에게 무기사용, 4강 언더테이커전에선 케인의 난입으로 DQ승, 결승에선 결말대로의 편파판정 등 온갖 반칙이란 반칙은 모두 구사하며 기념비적인 첫 챔피언 등극에 성공했다(...) 다만, WWF에선 야심차게 준비한 토너먼트는 이미 킹 오브 더 링 토너먼트가 있는 상황에서 열린데다가 모든 경기가 하룻밤에 열려서 지루하단 평을 많이 받았고, 결말은 몬트리올 스크류잡의 패러디에 불과해 이벤트의 전체 평가도 좋지 않았다. 이후 WWE 서바이버 시리즈(2015) 시즌에서도 WWE 챔피언쉽에 공석이 발생하자, 서바이버 시리즈에서 이를 1일 토너먼트로 결정하겠다고 밝혔고 로만 레인즈가 우승했다. 그러나...
- Winner Take All (2001)
팀 WWF vs 팀 얼라이언스의 대립을 마무리지은 PPV. 미드카터 타이틀을 통합매치로 치러 유러피언-TV 챔피언, 인터컨티넨탈-US 챔피언, 태그팀 챔피언을 통합했다. 그리고 메인이벤트는 전통적인 서바이버 시리즈의 매치인 5 VS 5 엘리미네이션 매치로 이긴 팀이 진 팀의 단체를 흡수하는 경기로 펼쳐졌는데 결정적인 순간 커트 앵글의 배신으로 팀 WWF(더 락, 크리스 제리코, 언더테이커, 케인, 빅 쇼)가 팀 얼라이언스(스티브 오스틴, 커트 앵글, 랍 밴 댐, 부커 T, 셰인 맥맨)를 이기고 WCW,ECW를 흡수했지만... PPV 이름에 걸맞게 이기는 팀이 모든 것을 가져가는 PPV였지만 그런거에 비해서 마지막 경기가 너무 허무하게 끝난 면이 있었던지라... 그래도 이 후의 서바이버 시리즈 매치들과 비교하면 충분히 재밌는 경기이다.
- 6인 엘리미네이션 테이블 매치 (2002)
WWE 서바이버 시리즈(2002)의 오프닝 경기. 3분의 경고(리코 & 자말 & 로지) vs 제프 하디 & 더들리 보이즈(버버레이 & 스파이크) 의 경기에서 펼쳐진 태그팀 테이블 매치. 기존 테이블 매치에서 제거 방식이 추가되었고 토네이도 태그팀 매치 룰이 추가로 적용되어있다. 막판에 디본이 난입해 마지막 남은 리코를 버버레이와 함께 더블팀으로 제거한다. 이후 3인 더들리 보이즈가 재결성되며 디본은 RAW로 이적한다. 이외에도 제프 하디와 스파이크 더들리의 스턴트 플레이가 돋보이는 경기였다.
- 엘리미네이션 챔버 (2002)
2002년 당시 RAW 단장이던 에릭 비숍의 (각본상)아이디어로 개최가 된 이 경기는 엄청난 호평을 받으며, 나중에는 아예 단독 PPV로 창설되는데 성공한다. WWE 서바이버 시리즈(2002)에서 열린 경기는 트리플 H(C) vs 숀 마이클스 vs 크리스 제리코[20] vs 부커 T vs 케인 vs 랍 밴 댐의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경기로 역대 엘리미네이션 챔버 경기들 중에서도 제일 명경기로 손꼽히는 경기이다. 덕분에 2002 서바이버 시리즈는 전통적인 5 VS 5, 또는 4 VS 4 제거 매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역대급 서바이버 시리즈로 평가 받는다.
5. 위기
위에서 언급되어있듯 WWE에서 레슬매니아 다음으로 오래된 PPV임에도 불구하고 폐지 위기에 놓여있는 상황이다. 최근 열리는 서바이버 시리즈에서 이벤트를 대표하는 제거 경기들이 얕은 개연성과 낮은 질로 인해 비판받고 있고, 이로 인해 흥행도 갈수록 하락하는 실정이다.
이때문에 빈스 맥마흔이 "서바이버 시리즈의 폐지"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루머들이 여러 해외 레슬링 뉴스 사이트들에서 나왔었고, 실제로 2010년 2월 열린 WWE 언론 간담회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공식적으로 "서바이버 시리즈를 개최하지 않고, 이를 대체할 이벤트를 위한 방안을 찾고 있다."고 발표하며 이벤트의 폐지가 공식화되기 직전까지 갔었다.[21]
하지만 2010년 6월, 2010년 WWE PPV 개최 예정 일정표에 서바이버 시리즈가 추가되며, 일단 2010년까지는 개최가 확정이 되었다.
그러나, WWE 섬머슬램(2010)에선 7 대 7 제거 경기가 열린데 이어 WWE 나이트 오브 챔피언스(2010)에서도 6인 제거 경기가 치뤄졌고, WWE 서바이버 시리즈(2010)를 4주 앞두고 개최된 PPV WWE 브래깅 라이츠(2010)에서 마저 7 대 7 제거 경기가 열리며 서바이버 시리즈를 대표하는 "제거 경기" 의미 자체가 많이 약해진 상태라 덩달아 이벤트의 존재까지 퇴색된 상태이다.
물론 서바이버 시리즈를 대표할 새로운 컨셉의 경기가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최악의 경우 "식상하다"는 평과 함께 2010년을 끝으로 막을 내릴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해있었으나 브랜드 분리가 유명무실해지면서 브랜드간 제거 경기가 펼쳐지던 브래깅 라이츠가 폐지되고 다른 PPV에서도 제거 경기를 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서바이버 시리즈는 존속하게 되었다.
브랜드 재분리가 이루어진 2016년부터는 브래깅 라이츠와 비슷하게 진행된다.
6. 기타
서바이버 시리즈 2002에서 열린 WWE 챔피언 쉽에서 빅 쇼를 상대로 브록 레스너의 괴력을 볼 수 있는데 이날 브록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다른 WWE 선수들이 들지 못했던 거구인 빅 쇼를 F-5로 날리는 괴력을 선보여 폴 헤이먼은 물론 관중들을 놀라게 했다.
덧붙여 2002년도는 5 vs 5 제거 경기가 열리지 않았다. 대신 위에도 언급했듯이 최초의 엘리미네이션 챔버 매치가 그 자리를 메꿨는데 결과적으로는 훌륭한 선택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흔히 있었던 제거 경기 대신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경기 방식을 앞세웠고 PPV의 대부분의 시간을 여기에 투자하여 어필하는 전략이 성공한 셈이다. 게다가 엘리미네이션 챔버 매치 또한 이 경기의 명칭인 "서바이버 시리즈"에 걸맞는 경기방식이기도 했다.
그 외에도 서바이버 시리즈 2002는 위에서 언급된 6인 엘리미네이션 테이블 매치와 우먼스 챔피언쉽 하드코어 매치[22] 가 열리는 등 이전의 시리즈보다 더욱 다양한 매치업을 선보였다.[23]
7. 역대 메인이벤트 정보
[1] 이름이 매번 바뀐다. 그래도 2006년부터 이 세 단어는 꼭 들어간다.[2] 이후 역사를 잇는 NWA-WCW, WCW에서도 가장 큰 이벤트로 자리매김한다. 간단히 비유해서 WCW의 레슬매니아. [3] 2004년과 2005년에 개최된 RAW의 단독 PPV인 WWE 타부 튜즈데이 역시 이런 이유로 흥행이 부진했고 2006년부터는 일요일로 개최일을 옮기고 WWE 사이버 선데이로 이름을 갈았다.[4] 서바이버 시리즈가 추수감사절이 없는 주에 개최가 될 경우, 추수감사절이 있는 주에 개최되는 RAW나 스맥다운이 "추수감사절 특집 쇼"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 때의 RAW나 스맥다운의 대진표가 PPV급인 것 아니고 기껏해야 몇몇 선수들이나 디바가 복장을 화려하게 입거나 의상 컨테스트를 벌이는 정도다.[5] '리전 오브 둠'은 첫 경기, 언더테이커는 두 번째 경기, 그리고 서전 슬로터는 다섯 번째 경기에 나왔다. 이들이 WWF로 옮기고 나서 선수로 참가한 첫 PPV였고, 모두 반칙패로 떨어졌다. 언더테이커가 유명하지만, 슬로터도 1:4로 몰리고도 혼자 셋을 떨어뜨리고 막판까지 버텼다.[6] 악역은 두 번째와 세 번째만 이겼지만 세 번째 경기는 악역이 넷 다 남아서(이들이 '팀 비저너리스'다. 이 경기의 탈락자 중 숀 마이클스도 포함되어 있다) '선역 3 : 악역 5'로 대결.[7] 과거 한국의 어떤 프로레슬링 전문 사이트에서는 이 고블디 구커(Gobbledy Gooker)가 등장했던 순간을 WWE 최악의 장면으로 꼽기도 했다.[8] 보통 이 사건을 애티튜드 시대의 시발점으로 꼽을 정도로 프로레슬링의 판도를 바꾼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9] 이름이 '''매번 바뀐다'''. 그래도 2006년부터 이 세 단어는 꼭 들어간다.[10] WWE 서바이버 시리즈(2016)에서 오랜만에 10:10 제거 경기가 다시 열렸다.[11] 1987년부터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0)까지는 모든 경기가 이 방식으로 진행되다가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1)부터 다른 경기들도 함께 진행하게 되었고,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2)부터는 이 경기의 비중이 줄어든다.[12] 승자가 모든 것을 가진다 - 대회 홍보 때 주어를 단수형, 동사도 현재형이 아니라 원형으로 썼다[13] 팀 DX는 트리플 H, 숀 마이클스, 매트 하디, 제프 하디, CM 펑크로 구성. 팀 RATED RKO는 에지, 랜디 오턴, 쟈니 나이트로, 그레고리 헴즈, 마이크 녹스 & 켈리 켈리로 구성되었다.[14] 단 어디까지나 5대 5 경기 최초의 스윕이고 4대 4 경기의 스윕은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0) 팀 바이퍼스(제이크 더 스네이크 로버츠, 지미 스누카, 숀 마이클즈, 마티 제너티) 대 팀 비저너리스(릭 마텔, 폴 로마, 허큘리스, 워로드)와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1) 핵소 짐 더간의 팀 대 콜로넬 무스타파(아이언 시크)의 팀 경기, 그리고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5) 더 다크 사이드(언더테이커, 사비오 베가, 헨리 가드윈, 파투) 대 더 로얄스(메이블, 아이작 양켐, 헌터 허스트 헴슬리, 제리 롤러)로 세 번 있었다.[15] 페이지, 카메론, 썸머 래, 레일라 VS 나탈리아, 알리샤 폭스, 나오미, 에마. 후자 팀이 승리했다.[16] 당시 케빈 내쉬와 스캇 홀이 WCW로 이적하면서 다른 선수가 대신 뛰었는데, 특히 디젤은 이 선수가 역할을 맡았다.[17] 이때는 경기가 끝나고 나서 진 쪽을 관에 넣었을 뿐이다. 당시에는 "Coffin Match"라고 했는데, 경기에 나온 coffin은 그 뒤의 casket과 생김새가 다르다 - 무엇보다 경첩도 안 붙었고, 자물쇠를 채울 고리도 없어서 관뚜껑을 덮고 못을 박았다. 상대를 관에 넣고 뚜껑을 닫는 쪽이 이기는 경기는 WWF 로얄럼블(1994)에서 처음 선보인다.[18] 챔피언이었던 스티브 오스틴을 케인과 언더테이커가 동시에 커버하여 승자가 모호해져 공석으로 뒀다.[19] 16강 토너먼트인데 14경기가 아니라 12경기인 이유는 16강에서 케인과 언더테이커는 경기 없이 부전승으로 올라왔기 때문이다.[20] 당시 월드 태그팀 챔피언(파트너 : 크리스찬)이었으며 당시 테마로 쓴 Saliva의 "King of My World"가 라이브로 나왔다. 참고로 Saliva는 WWE 서바이버 시리즈(2002)의 오프닝곡인 "Always"도 불렀다.[21] 서바이버 시리즈 폐지설이 나올때마다 WCW의 경기 방식 중 하나였던 워 게임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루머가 나오기도 했다.[22] 트리쉬 스트래터스(C) vs 빅토리아(現 타라). 그야말로 (기믹상)광녀 빅토리아에 어울리는 경기였다.[23] 이 당시 여성 디비전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했던 시절이다. 사실 여성 하드코어 매치가 그다지 흔하지는 않다.[24] 現 올스테이트 아레나.[25] 現 XL 센터.[26] 前 캐피탈 센터.[27] 現 벨 센터.[A] A B 現 엔터프라이즈 센터.[28] 당시 공석의 WWF 챔피언을 가리기 위해 토너먼트 경기가 당일 다수 열렸다.[29] 現 에밀리 아레나.[30] 이기는 팀의 단체로 지는 팀의 단체가 흡수 된다는 조항이 있었다. 당시 더 락 & 크리스 제리코 & 언더테이커 & 케인 & 빅 쇼 팀은 팀 WWF였고,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 & 랍 밴 댐 & 커트 앵글 & 부커 T & 셰인 맥맨 팀은 WCW & ECW 연합군이었다.[31] 現 퀵큰 론즈 아레나.[32] 이기는 팀은 승리 팀의 멤버가 1주씩 돌아가며 총 4주간 일일 RAW GM을 맡을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다.[33] 브랜드 대항전으로 당시 숀 마이클스 & 케인 & 빅 쇼 & 칼리토 & 크리스 매스터스 팀은 팀 RAW였고, 바티스타 & 레이 미스테리오 & 존 브래드쇼 레이필드 & 바비 래쉴리 & 랜디 오턴은 팀 스맥다운이었다.[34] 現 웰스 파고 센터.[35] 現 TD 가든.[36] 現 캐피탈 원 아레나.[37] 만약 웨이드 배럿이 승리하게 되면 존 시나는 넥서스에서 해방되지만, 랜디 오턴이 승리할 경우 WWE를 떠나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38] 만약 존 시나 팀이 패배할 경우 존 시나를 제외한 팀원 전원이 해고 당하고, 세스 롤린스 팀이 패배할 경우 어쏘리티는 모든 권력을 잃는다는 조항이 있었다.[39] 現 스테이트팜 아레나.[40] 역대 서바이버 시리즈 중 유일하게 디바 매치가 메인이벤트를 장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