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트리스 저작권 분쟁

 


1. 개요
2. 사건
2.1. 배경: 테트리스, 첫선을 보이다
2.2. 서막: 서방의 발견
2.3. 전개: 돌고 도는 불법 라이선스
2.4. 절정: 닌텐도의 역습
2.5. 결말: 소송전 그리고 미하일 고르바초프
2.6. 이후
3. 출처


1. 개요


세계적인 퍼즐 게임테트리스의 저작권 분쟁에 대해 다룬다.

2. 사건



2.1. 배경: 테트리스, 첫선을 보이다


1984년, 소련 과학 아카데미 소속의 개발자 알렉세이 파지노프가 테트리스를 개발한 이후, 같은 아카데미 소속이던 바딤 게라시모프[1]와 드미트리 파블로프스키가 IBM PC용으로 포팅했다.
이 IBM PC용 버전은 플로피 디스크에 담겨 여러 곳으로 퍼져나갔고, 소련은 물론이거니와 근방의 동구권 국가들 곳곳에 뿌려졌다.
한편, 테트리스의 저작권은 공산주의 이념에 따라 소련 과학기술원에 넘어갔다.

2.2. 서막: 서방의 발견


이렇게 테트리스는 여러 곳으로 퍼져 나가게 되며, 아류 제작자들이 개발한 불법 테트리스들도 판치게 되었는데, IBM PC 밖에도 패밀리 컴퓨터, 애플 II, 오락실 기판, 심지어 아타리 2600(...)용 등등 다양한 플랫폼에 이식된 테트리스들이 암시장에 속속 나왔다.
한편 영국의 기업인이었던 '''안드로메다 소프트웨어'''의 '''로버트 스타인'''은 헝가리를 방문했다가 아류 제작자들이 개발한 불법 테트리스를 보고 이 게임은 분명히 게임 시장에서 성공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그래서 1986년 불법으로 테트리스를 만들어 팔고 있었던 헝가리의 소프트웨어 회사를 구입해 테트리스를 서방에 '''불법으로''' 판매했다.
[image]
안드로메다에서 만든 IBM PC용 테트리스
그 이후 정식 라이선스를 받아내기 위해 1986년 11월 소련으로 건너가 알렉세이 파지노프를 만나고 과학기술원과 협상했지만 실패했다. 협상이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펙트럼 홀로바이트 사에 IBM PC용 라이선스를, 미러 소프트에 코모도어 64아미가용 라이선스를 '''불법으로''' 팔았다. 스펙트럼 홀로바이트 사와 미러 소프트 두 회사 모두 영국의 언론 재벌, '''로버트 맥스웰'''의 미러 그룹의 같은 계열사였다. 참고로, 라이선스가 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기업에게 하위 라이선스를 팔아버리는 것은 당연히 불법이고, 설사 이후에 공식적으로 원 저작자로부터 라이선스를 받는다고 해도 이미 팔아치운 하위 라이선스는 불법이다. 즉, 스펙트럼 홀로바이트와 미러 소프트에서 산 테트리스 라이선스는 '''불법인 것이다.'''
그러나 소련의 저작권을 거래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는 기관은 따로 있었으며 이를 대외무역부의 ''''Elektronorgtechnica''''(약칭 Elorg)[2]에서 담당하고 있었다. 결국 당시 Elorg의 '''알렉산더 알렉신코'''가 이어받아 협상을 했으며, 결국 안드로메다 소프트웨어의 로버트 스타인은 1988년 5월이나 돼서야 가정용 퍼스널 컴퓨터에 한해 라이선스를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소련은 공산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자본주의 국가 특유의 계약서 작성에 익숙하지 않아, 허술하게 계약서가 작성됐다. 라이선스 지불 연체에 대해 연체료 규정이 없었으며, 라이선스를 낸 기기도 '각종 컴퓨터'(different type of computers)라고 적어 놔 비디오 게임기나 아케이드 머신 등으로 확대 해석할 빈틈을 만들었다.
[image]
IBM PC판 스펙트럼 홀로바이트 테트리스. 아타리 테트리스와 함께 가장 유명한 버전일 것이다.
이들 테트리스가 시장에서 성공한 것을 보자 아타리 게임즈에서는 미러 소프트에게서 아케이드 및 비디오 게임기용 하위 라이선스를 따냈고, 1988년아타리 테트리스를 출시하여 잭팟을 터뜨렸다. 서양의 오락실마다 아타리 테트리스가 놓인 것을 본 세가에서도 미러 소프트로부터 일본 시장용 테트리스 라이선스를 얻어서 아케이드용으로 세가 테트리스를 발매, 1989년에 제 3회 게메스트 대상을 차지할 정도로 대성공했다.

2.3. 전개: 돌고 도는 불법 라이선스


[image]
분쟁 발생 이전 패밀리 컴퓨터(일본판, BPS) 버전 라이선스 내역
'''하지만 스펙트럼 홀로바이트, 미러 소프트, 아타리 게임즈, 세가까지 모두 자신들이 가진 테트리스 라이선스가 불법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1988년 1월, 테트리스는 라스베가스의 국제 가전 박람회(CES)에 스펙트럼 홀로바이트 부스에서 최초로 공개 전시되었다. 일본에서 게임 회사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던 '''헹크 로저스'''(Henk Rogers)[3]는 이 때 테트리스를 처음 봤으며, 성공을 예감하고 테트리스를 일본 시장에 팔기 위해 일본 내 테트리스 판매 권한을 갖고 있 었던 일본의 배급사 ASCII사와 접촉했다. ASCII는 라이선스는 갖고 있었으나 게임이 너무 구식이라고 생각해 출시는 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흔쾌히 헹크 로저스에게 일본 시장에서 모든 플랫폼의 테트리스 게임을 만들어 판매할 수 있는 라이선스를 내주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원했던 비디오 게임기용 라이선스가 이미 아타리 게임즈에 팔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헹크 로저스는 다시 미국으로 날아가 아타리 게임즈와 협상을 시도했으나 처음엔 거절 당했다. 이에 그는 아타리 게임즈 본사 주차장에 진을 치고 기다렸다가 저녁 먹으러 나가던 나카지마 히데유키 당시 아타리 게임즈 사장을 붙잡아 저녁 식사 자리에서 그를 설득한 끝에 일본 내 비디오 게임기용 테트리스를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30만 달러에 얻는데 성공한다. 이후 BPS는 패미컴용 테트리스를 개발했으나 초기 주문량은 4만 장으로 너무 저조했다. 이에 헹크 로저스는 닌텐도에 가서 지원을 요청했고, 닌텐도가 직접 패키지를 디자인하고 홍보한 덕에 게임의 주문량은 20만 장을 넘어서게 되었다. 최종적으로 BPS의 패미컴 테트리스는 200만 장을 판매하면서 대성공을 거둔다.
1988년 9월, 헹크 로저스는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의 아라카와 미노루 사장을 찾아갔다. 당시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는 게임보이의 미국 출시를 계획 중이었는데 이를 안 헹크 로저스는 게임보이의 번들 게임으로 테트리스가 완벽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는 게임보이의 미국 발매 시 번들 게임으로 슈퍼 마리오 랜드를 계획하고 있었지만, 헹크 로저스는 슈퍼 마리오 랜드를 주로 즐기는 연령층은 어린이들이지만 테트리스는 누구나 좋아할 게임이기 때문에 테트리스를 번들 게임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라카와 미노루 사장은 이를 듣고 헹크 로저스에게 휴대기기용 테트리스 라이선스를 확보하라고 말했다.
헹크 로저스는 휴대기기용 테트리스의 라이선스를 얻기 위해 아타리 게임즈와 스펙트럼 홀로바이트에 접촉했고, 결국 스펙트럼 홀로바이트에 라이선스를 준 안드로메다 소프트웨어의 로버트 스타인에 휴대기기용 라이선스를 얻기 위해 협상을 시작했다. 그러나 몇 달이 돼도 로버트 스타인에게서 휴대기기용 라이선스를 얻지 못하자, 시간이 촉박했던 헹크 로저스는 라이선스를 직접 얻기 위해 소련을 방문하기로 마음먹었다. 스펙트럼 홀로바이트의 같은 계열사였던 미러 소프트 역시 게임보이용 테트리스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로버트 맥스웰'''의 아들이었던 '''케빈 맥스웰'''을 대리인으로 소련에 보냈다. 안드로메다 소프트웨어의 로버트 스타인 역시 같은 이유로 소련에 방문했다. 결국 3명이 1989년 2월 21일 같은 목적으로 소련을 방문하면서 '''동시에 라이선스 획득 경쟁이 시작되었다.'''

2.4. 절정: 닌텐도의 역습


당시 Elorg의 디렉터였던 니콜라이 벨리코프는 '''처음에 BPS의 헹크 로저스를 만났다.''' 헹크 로저스는 니콜라이 벨리코프를 만나자마자 패미컴용 테트리스를 보여주고 이것을 제작하고 유통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니콜라이 벨리코프는 패미컴이 뭔지도 몰랐고 그것에 대한 라이선스를 허가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헹크 로저스는 혼란 속에 더 많은 NES 카트리지를 내놓았으나 반응은 매한가지였다. 그리고는 둘 다 서방 세계에서 여태껏 유통된 테트리스들이 불법이라는 것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다. 헹크 로저스는 인터뷰에서 이때를 회상하면서 이제 저작권법 위반죄로 굴라크 같은 곳에 끌려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공포에 질렸었다고 한다.
하지만 니콜라이 벨리코프는 그 대신 이전에 로버트 스타인과 맺은 계약서를 보여주었고, 헹크 로저스는 상술한 계약서의 허점을 발견했다. 라이선스의 목적이 '''각종 컴퓨터(...different type of computers)'''로 쓰여져 있었던 것이다. Elorg 측에서 이것은 당연히 IBM이나 애플의 홈 컴퓨터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게임기는 대상 외였던 것이지만, '''로버트 스타인은 마치 자신이 모든 시스템에 대한 테트리스의 라이선스를 가진 것처럼 행세'''했던 것이다. 추가적인 대화에서 니콜라이 벨리코프는 닌텐도가 비디오 게임 시장의 70%를 장악했다는 소리를 듣고는 헹크 로저스와 휴대기기용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이후 덤으로 닌텐도에게 비디오 게임용 라이선스를 살 수 있는지 3주 내로 답변을 달라고 말했다. 헹크 로저스는 얼마를 원하든 갖게 될 것이라고 말한 후 곧바로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 다음으로 안드로메다 소프트웨어의 로버트 스타인을 만났다. 1988년에 맺은 계약서가 허술하게 작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이를 갱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니콜라이 벨리코프는 두 가지 계약서를 제안했다. 하나는 아케이드 게임에 대한 라이선스 제공 계약이었다. 그리고 로버트 스타인은 허술한 계약을 이용해 라이선스 비용을 이태껏 지불하지 않고 있었는데, 니콜라이 벨리코프는 두 번째로 먼저 런던에 믿을 만한 영국 은행 계좌에 밀린 라이선스 비용 15만 달러를 바로 입금할 것, 그리고 가혹한 연체료 규정을 집어넣었다. 그러나 가혹한 연체료 규정은 '''계약서 상에서 모호해 확대 해석이 가능했던 컴퓨터라는 단어를 프로세서, 모니터, 하드 드라이브, 키보드 및 운영 체제가 있는 장치로 정의해 라이선스를 확대 해석할 틈을 없애기 위한 전략'''이었고, 실제로 로버트 스타인은 이 가혹한 연체료 규정을 고치기 위한 연체료 협상에 매몰돼 추가된 문구는 놓치고 말았다. 이 계약서 변경을 통해 로버트 스타인이 가진 테트리스 라이선스는 PC와 아케이드 기기로 제한됐다.[4]
그 이튿날 세 번째로 미러 소프트의 대리인, 케빈 맥스웰을 만났다. 니콜라이 벨리코프는 이전에 헹크 로저스와 대화했을 때 수많은 테트리스 불법 NES 테트리스 팩을 건네받았는데 이를 내밀며 이에 대해 질문했다. 케빈 맥스웰은 불법 NES 테트리스 팩에 적혀 있는 미러 소프트를 보고 나서야 미러 소프트에서 비디오 게임용 라이선스를 주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불법 게임팩임을 인정했다. 그리고 비디오 게임용 라이선스 계약을 맺길 원했고 7만 5천 달러의 선급금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니콜라이 벨리코프는 이미 닌텐도에 베팅하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였기 때문에, 미러 소프트에게는 '''닌텐도의 제안서에 대해 응찰할 수 있는 권리만 줬다.''' 케빈 맥스웰은 응찰을 포기했기 때문에 빈 손으로 런던에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헹크 로저스는 소련에서 들은 얘기를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의 아라카와 미노루 사장에게 전달했고, 헹크 로저스와 아라카와 미노루 사장, 그리고 하워드 링컨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 부사장 셋은 그 다음달인 1989년 3월 15일, 비밀리에 소련을 방문했다. 1989년 3월 22일 BPS의 헹크 로저스,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의 아라카와 미노루 사장, 하워드 링컨 부사장 그리고 Elorg의 니콜라이 벨리코프 4인은 닌텐도와 '''비디오 게임에 대한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법정 소송을 통해 불법 테트리스 유통을 막기로 합의했다.''' 이 계약으로 닌텐도가 Elorg에게 300만~500만 달러의 선급금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아타리 게임즈의 무단 게임 발매와 NES용 테트리스 라이선스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의 부사장 하워드 링컨은 그 계약 성사에 대해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We knew we had those bastards by the balls. We knew we were going to make a fortune on this product and they, in turn, were going to get kicked in the head."'''

'''우리는 그 새끼들의 불알을 잡을 수 있게 됐습니다. 우리는 이 제품으로 돈을 벌었고, 결국 그들은 뒤통수를 맞게 되었습니다.'''[5]


2.5. 결말: 소송전 그리고 미하일 고르바초프


Elorg와 닌텐도는 안드로메다 소프트웨어, 미러 소프트 그리고 아타리 게임즈에게 "비디오 게임용 테트리스는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에게 권한이 있기 때문에 유통하지 말라"라고 각각 텔렉스와 팩스를 보냈다. 그러나 아타리 게임즈에서는 자회사였던 텐겐의 명의로 패미컴용 텐겐 테트리스에 '''30만 개의 팩을 생산하는데 3백만 달러를 포함, 수백만 달러를 이미 개발, 패키징, 마케팅에 투자한 상태였다.''' 아타리 게임즈는 1989년 4월 13일, 테트리스에 대한 저작권 등록을 신청했고, '''4월 말 닌텐도에게 테트리스를 NES로 배포할 권리를 주장하면서 반독점법 혐의로 고소했다.''' 닌텐도는 즉시 상표권 침해 혐의로 반소했다.[6]
한편 일본에서는 아타리 게임즈로부터 일본 한정 아케이드 라이선스를 받은 세가의 아케이드용 테트리스가 엄청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이 기세를 몰아 메가 드라이브용 테트리스 출시를 계획하고 개발까지 완료했으나 아타리 게임즈와 닌텐도의 소송전으로 출시를 포기했다.[7] 아직도 일본에서는 테트리스하면 세가의 테트리스를 본좌로 친다.
또한 미러 소프트 역시 Elorg의 결정에 반발했다. 미러 소프트의 대리인이었던 '''케빈 맥스웰은 당시 소련의 서기장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에게 이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Elorg를 협박했다.''' 케빈 맥스웰의 아버지 로버트 맥스웰은 영국의 언론 재벌 미러 그룹의 총수였지만, 제 1차 중동전쟁 시절 이스라엘에서 체코슬로바키아의 무기를 수입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면서 이스라엘에 영향력 있는 인사가 됐고, 니키타 흐루쇼프,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유리 안드로포프의 연설 또는 책을 출판해 서방에 판매해 소련과도 밀접한 관계였을 뿐 아니라, 레바논 전쟁 덕에 고르바초프와 개인적인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로버트 맥스웰은 영국의 통상산업부 장관에게 이 문제에 대해 개입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소련 크렘린궁의 당 고위 관계자들에게 이 관련 편지를 보냈고, 결국 소련 모스크바로 건너가 고르바초프를 만날 수 있게 됐다. 사업 얘기를 위해 고르바초프와 만나 주목적이었던 테트리스에 대한 얘기를 꺼냈고, 고르바초프에게서 '''그 일본 기업에 대해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대답을 받아냈다.''' 실제로 니콜라이 벨리코프에 대해 KGB의 내사가 이루어지기도 했으나 모두 무혐의로 결론났고 그의 직책도 유지되었다. 무엇보다 당시 나라가 거의 망하기 직전이라 정신이 없었던 고르바초프에게는 별로 관심도 없고 신경쓰지도 못할 주제였기 때문에 결국 더 이상 아무런 변화없이 '''립 서비스로만 끝나고 말았다.'''
법원에서 아타리 게임즈는 로버트 스타인의 원래 1988년에 맺은 계약인 컴퓨터에 대한 테트리스 라이선스를 인용하면서 NES는 패밀리 '''컴퓨터'''이므로 테트리스 게임을 NES에 내는 것이 정당하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닌텐도는 1989년 4월 말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의 부사장 하워드 링컨이 한 번 더 소련에 건너가 Elorg의 니콜라이 벨리코프 계약서의 의도에 대한 녹취록 및 여러 가지 증거 자료를 수집했고, 이를 법원에 제출했다. '''이 덕에 소송은 닌텐도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1989년 5월 17일, 법정 소송중임에도 불구하고 텐겐 테트리스는 일간지 전면 광고 아래 출시됐고, 닌텐도는 법원에 판매 금지해 달라고 요청했다. 1989년 6월 14일, '''법원에서는 닌텐도의 주장을 인정해 텐겐 테트리스의 제작 및 판매를 금지하는 예비 결정을 내렸다.''' 1989년 5월 17일 출시 후 1989년 6월 14일 법원이 판매 금지 결정을 내릴 때까지 텐겐 테트리스는 대략 5만 장이 판매됐다. 결국 11월 14일, 1심에서는 닌텐도의 승소 판결이 내려졌고, 아타리 게임즈는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지만 1993년 1월 역시 '''항소심에서도 닌텐도가 승소하면서, 텐겐 테트리스에 대한 단종 명령이 내려졌다.''' 결국 아타리 게임즈에서는 텐겐 테트리스를 포기하고 도소매점에 풀린 카트리지를 전량 회수해, 나오지 못한 카트리지까지 총 26만 8천장의 카트리지를 파기했다. 그동안 시장에 나와있던 카트리지는 수집가들이 눈에 불을 켜고 긁어 모았고, 약 30년이 넘은 오늘날에는 신품 기준으로 무려 '''700달러 이상의 가격'''에 팔리고 있다.

2.6. 이후


[image]
분쟁 발생 이후 패밀리 컴퓨터(일본판, BPS)버전 라이선스 내역
닌텐도에서는 게임보이의 미국 동시 발매 게임으로 슈퍼 마리오 랜드게임보이 테트리스(북미, 유럽 한정)를 발매하였고[8] 특히, 게임보이용 테트리스는 게임보이로 발매된 게임 가운데 '''가장 많은 판매량(3천 5백만 장)을 기록'''하면서 게임보이의 성공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참고로 판매량 2위는 포켓몬스터 레드·그린인데, 2천 3백만 장이다.
알렉세이 파지노프는 소련 붕괴 후 1991년에 미국 시애틀로 이민가서, 1996년에 테트리스의 저작권을 일부 돌려받고[9], 이듬해에 블루 플래닛 스튜디오의 헹크 로저스의 도움을 받아 Elorg와의 합자회사 더 테트리스 컴퍼니를 세웠다.[10] 2005년 더 테트리스 컴퍼니는 역으로 Elorg를 1500만 달러에 인수하면서 더 테트리스 컴퍼니는 현재 알렉세이 파지노프의 테트리스 홀딩스와 헹크 로저스의 블루 플래닛 스튜디오가 5:5로 소유한 기업이 됐다.
그리고 당시에 패배자였던 세가에서는 2010년대 들어서 제한적이지만 하지만 일본 내 테트리스 게임 제작 권리를 되찾았다. 이전까지는 아리카에서 맡고 있던 일본내 아케이드용 테트리스 개발권리가 세가로 넘어간 것. 근데 정작 라이선스 취득 후 세가에서 낸 아케이드 게임은 데카리스라고 커다란 스틱으로 조작하는 빅 테트리스(...)가 전부다. 콘솔쪽에는 뿌요뿌요 테트리스 같은 것도 내놓았지만...

3. 출처



[1] 참고로, 당시에 16세였다고 한다. 고등학생이... [2] 소련의 정부 기구였으나, 1991년에 민영화되었다.[3] 원래는 네덜란드 태생이며 세계를 여기저기 돌면서 거주했다. 현재는 미국 하와이 거주 중. 당시에는 일본에서 BPS(Bullet Proof Software)라는 게임 회사를 만들었었다.[4] 이 계약으로 인해 아타리 테트리스는 Elorg에게서 인정받았다.[5] 아타리가 준비 중이었던 텐겐 테트리스는 라이선스 분쟁도 있었지만, 당시 NES로 출시하는 모든 게임들에 닌텐도가 심사를 하고 스티커를 붙여 준 Seal of Quality 인증을 거부한 최초의 게임이었다. 닌텐도 입장에서는 이 게임에 어그로가 끌릴 대로 끌릴 수 밖에 없던 셈이다.[6] 이 소송 말고도 아타리 게임즈NES의 보안용 락아웃칩인 10NES를 무단으로 복제해 사용하다가 닌텐도에게 저작권 침해 혐의로 고소당해 소송 중이었다.[7] 이 때 세가에서 메가 드라이브용 테트리스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한 게임이 바로 컬럼스이다.[8] 게임보이 발매 초기에 번들 게임으로 주었다. 그러나 번들 게임으로 주었다고 해도 이 정도 팔린 건 대단하다.[9]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을 취하기 시작한 1985년이나 돼서야 소련의 과학기술원 및 Elorg와 10년 임대 계약 을 맺을 수 있었다. 실질적인 창작자인 알렉세이 파지노프의 저작권은 임대 계약 기한이 만료된 1996년부터 인정하기 시작했다.[10] 테트리스에 대한 권리를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회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