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아농 조약
1. 개요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 협상국과 헝가리 왕국이 체결한 조약. 협상국은 패전한 동맹국에게 각각 조약을 통해 영토를 분할했다.
- 독일 제국: 베르사유 조약
- 오스트리아 제국: 1918년 9월 10일에 생제르맹 조약으로 단독 강화 후 이중 제국을 해체했다. 미국과는 1921년 8월 21일에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 헝가리 왕국: 트리아농 조약
- 불가리아 왕국: 뇌이 조약으로 그리스와 세르비아에 영토를 할양했고, 그리스에게 지중해와 접한 남부 영토를 잃었다.
- 오스만 제국: 무드로스 정전협정으로 1918년 10월 30일에 항복했다. 그 후 세브르 조약을 체결, 아나톨리아 일부 지역만을 건사할 뻔했지만 터키 독립전쟁이 일어났고 로잔 조약에서 지금의 터키 영토를 보장받은 채로[2] 터키 공화국이 세워지며 멸망한다.
헝가리 고유의 영토라고 할 수 있는 부분까지 민족 구성을 핑계로 루마니아 왕국이나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왕국 등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트리아농 조약에 의해 설정된 국경선 밖에 헝가리인이 상당히 분포하고 있었다는 게 문제였고, 특히 트란실바니아가 루마니아에 넘어가면서 헝가리 민족(마자르인)이 영토 내에 고립되는 일이 벌어졌다.
또한 철도에 있어서도 타격이 매우 컸는데, 국토 여기저기로 뻗어 있던 철도망의 상당 부분을 상실하고 부다페스트를 중심으로 방사상으로 뻗어나가는 노선만 남게 되었다. 또한 복선 철도의 부설도 조약으로 금지되어 물류 수송에도 상당한 지장을 주었다.
2. 조약 이후와 빈 중재(Vienner Schidsspruch)
당연히 헝가리는 트리아농 조약에 대해 불평등한 조약이라고 분노했으며 전쟁을 일으킨 건 오스트리아인데 왜 헝가리가 희생양이 되어야 하느냐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사실 1차 대전 때 헝가리도 적극적으로 참전한 건 부인할 수 없다. 여하간 특히 대부분의 영토를 빼앗아간 루마니아에 대해 적개심이 불타올랐는데 1919년 결국 루마니아와 다시 전쟁까지 했지만 오히려 패전하여 부다페스트까지 함락되고 만다.
결국 억울한 조건을 모두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화해를 맺었지만 원한은 잊지 않아 "'''Nem, nem, soha!''' (안돼, 안돼, 절대로!)"라는 슬로건이 유행했고, 섭정 호르티 미클로시가 이끄는 헝가리 왕국은 잽싸게 나치 독일의 편에 서서 뮌헨 협정과 빈 중재 등으로 1차 대전 때 빼앗긴 땅을 조금이나마 회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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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결국 나치 독일이 패망하자 헝가리 역시 똑같이 패배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고 회복한 영토도 트리아농 조약 때의 영토로 되돌아갔다.
3. 현재
헝가리는 이 조약에 대해 지금도 매우 크게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각종 행사와 기념물을 통해 잊지 말자고 기리고 있다. 또 특히 루마니아와의 국민감정이 매우 나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