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아농 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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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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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아농 조약과 생제르맹 조약에 따라 분할된 오헝제국 영토
1. 개요
2. 조약 이후와 빈 중재(Vienner Schidsspruch)
3. 현재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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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아농 조약을 비난하는 헝가리 우표[1]
빨강색은 마자르인이 다수인 지역, 주황색은 독일인 비율이 높은 지역이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 협상국헝가리 왕국이 체결한 조약. 협상국은 패전한 동맹국에게 각각 조약을 통해 영토를 분할했다.
  • 독일 제국: 베르사유 조약
  • 오스트리아 제국: 1918년 9월 10일에 생제르맹 조약으로 단독 강화 후 이중 제국을 해체했다. 미국과는 1921년 8월 21일에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 헝가리 왕국: 트리아농 조약
  • 불가리아 왕국: 뇌이 조약으로 그리스와 세르비아에 영토를 할양했고, 그리스에게 지중해와 접한 남부 영토를 잃었다.
  • 오스만 제국: 무드로스 정전협정으로 1918년 10월 30일에 항복했다. 그 후 세브르 조약을 체결, 아나톨리아 일부 지역만을 건사할 뻔했지만 터키 독립전쟁이 일어났고 로잔 조약에서 지금의 터키 영토를 보장받은 채로[2] 터키 공화국이 세워지며 멸망한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분할되면서 헝가리도 대규모 영토 손실이 있었다. 헝가리는 조약의 체결로 인해 72%의 영토를 잃어 전쟁 전 325,441km2에 달하던 헝가리의 영토는 93,073km2가 되었으며 64%의 인구를 잃어 2090만 명에서 760만 명이 되었다. 그리고 국경의 변화로 1070만 명의 헝가리인 중 31%인 330만 명이 헝가리 국경 외부에서 살게 되었다.[3]
헝가리 고유의 영토라고 할 수 있는 부분까지 민족 구성을 핑계로 루마니아 왕국이나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왕국 등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트리아농 조약에 의해 설정된 국경선 밖에 헝가리인이 상당히 분포하고 있었다는 게 문제였고, 특히 트란실바니아가 루마니아에 넘어가면서 헝가리 민족(마자르인)이 영토 내에 고립되는 일이 벌어졌다.
또한 철도에 있어서도 타격이 매우 컸는데, 국토 여기저기로 뻗어 있던 철도망의 상당 부분을 상실하고 부다페스트를 중심으로 방사상으로 뻗어나가는 노선만 남게 되었다. 또한 복선 철도의 부설도 조약으로 금지되어 물류 수송에도 상당한 지장을 주었다.

2. 조약 이후와 빈 중재(Vienner Schidsspruch)


당연히 헝가리는 트리아농 조약에 대해 불평등한 조약이라고 분노했으며 전쟁을 일으킨 건 오스트리아인데 왜 헝가리가 희생양이 되어야 하느냐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사실 1차 대전 때 헝가리도 적극적으로 참전한 건 부인할 수 없다. 여하간 특히 대부분의 영토를 빼앗아간 루마니아에 대해 적개심이 불타올랐는데 1919년 결국 루마니아와 다시 전쟁까지 했지만 오히려 패전하여 부다페스트까지 함락되고 만다.
결국 억울한 조건을 모두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화해를 맺었지만 원한은 잊지 않아 "'''Nem, nem, soha!''' (안돼, 안돼, 절대로!)"라는 슬로건이 유행했고, 섭정 호르티 미클로시가 이끄는 헝가리 왕국은 잽싸게 나치 독일의 편에 서서 뮌헨 협정과 빈 중재 등으로 1차 대전 때 빼앗긴 땅을 조금이나마 회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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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결국 나치 독일이 패망하자 헝가리 역시 똑같이 패배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고 회복한 영토도 트리아농 조약 때의 영토로 되돌아갔다.

3. 현재


헝가리는 이 조약에 대해 지금도 매우 크게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각종 행사와 기념물을 통해 잊지 말자고 기리고 있다. 또 특히 루마니아와의 국민감정이 매우 나쁘다.

[1] 우표 속 사람은 마차시 1세이며, 조약으로 줄어든 헝가리 영토에는 조약 전후의 영토 변화와 조약을 비난하는 문구인 Nem! Nem! Soha! (헝가리어로 ''안돼! 안돼! 절대로!''라는 뜻.) 를 넣었다.[2] 1939년에 알렉산드레타가 있는 하타이 지방이 추가로 터키에 병합된다.[3] 이들 중 1921년까지 헝가리 영내로 이주하지 않은 사람은 트리아농 조약에 따라 헝가리 국적이 박탈되고 거주 국가의 국적이 부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