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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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독일 제국
오스만 제국
불가리아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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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 만세! (Heil und Sieg!)》[1]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독일 제국
오스만 제국
불가리아 왕국
1. 개요
2. 구성 국가
2.1. 괴뢰국
3. 군사력
4. 전쟁 이후
4.1. 패전 후의 조약
5. 전쟁 범죄
5.2. 러시아군 포로 대상 생체실험


1. 개요


Vereinte Kräfte führen zum Ziel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나아가는 동맹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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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제국 카이저
빌헬름 2세[2]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제[3]
프란츠 요제프 1세
오스만 제국 황제
메흐메트 5세 레샤트
불가리아 왕국 차르
페르디난트 1세
동맹국(同盟國), 혹은 중앙(중부) 열강(Central powers)이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 협상국(연합국)에 대항했던 세력을 일컫는 단어다.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만 제국, 불가리아 왕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918년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이후로는 러시아 제국에서 떨어져 나간 국가들이자 독일 제국의 괴뢰국들인 폴란드 섭정왕국, 벨라루스 인민 공화국, 우크라이나국, 발트 연합 공국도 가입하게 되었다.

2. 구성 국가



2.1. 괴뢰국


모두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1918.03) 이후[4] 독일의 강압에 의해 끌려들어간 괴뢰국들이다.

3. 군사력


동맹국 간의 결속력은 협상국 못지 않게 좋았으나 독일 제국은 나머지 동맹국들 때문에 상당히 골치를 썩여야 했다.
일단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경우 1차대전 내내 러시아와의 대규모 전투에서 승리한 적이 없고, 브루실로프 공세 때는 아예 병력 수십 만에 그대로 괴멸되어 더 이상의 독자적인 전쟁 수행이 불가능해져 가뜩이나 독일이 지탱하고 있던 전 전선의 모든 군사능력을 독일이 대신해 줘야 했다.
세르비아 전선은 더 한심하다. 1차대전의 시작이 오스트리아의 세르비아에 대한 선전포고였음에도 자국보다 훨씬 약소국들인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5]를 거의 밀어내지 못했다. 물량 덕분에 좀 밀어내는가 싶더니 세르비아의 역습에 다시 원상태로 되돌아가 그냥 정체되어 버렸다. 1915년 불가리아 왕국이 참전해 양쪽에서 공격한 이후에야 몬테네그로와 세르비아를 겨우 점령했다. 심지어 오합지졸의 대표주자 이탈리아 왕국을 상대로도 몇 번의 이손초 전투를 제외하면 이겨본 적이 없고, 독일의 지원을 받은 카포레토 전투를 제외하면 이탈리아와의 전투에서도 딱히 우위를 점하지 못한다. 이중제국이 다민족국가로 요동치던 상황을 고려해도 이 정도면 진짜 덩치값 못하고 심각한 수준인 것이다.
튀르크는 이미 '유럽의 환자'가 된 지 오래라서 전선에서 버티는 것 이상의 군사적인 능력 자체를 기대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그래서 갈리폴리 전투를 제외하면 튀르크도 오헝제국처럼 협상국을 상대로 이겨본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1916년까지는 중동 전선에서 영국군과 협공해 오는 아시르-이드리드 토후국군이나 헤자즈 왕국군, 리야드 토후국군을 상대로 악착같이 맹공을 주고받았으며[6] 캅카스 지방에서는 러시아 제국군 상대로 고전하면서도 버텨내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캅카스에 집착한 게 독이 되었다.
불가리아 왕국은 국토면적이 작은 약소국이었고, 독일이나 오헝의 보조 역할이나 하는 정도였다. 사실 국력에 비하면 정말 잘 싸웠다. 2차 발칸 전쟁에서의 수모를 갚아주기 위하여 정말 독이 오를대로 올라서 세르비아, 루마니아, 프랑스, 영국 가리지 않고 전부 다 쳐바르고 다녔다. 예를 들어 오스트리아가 고생고생하면서도 제자리걸음이었던 세르비아 전선이 불가리아 참전으로 그냥 밀려버렸고, 발칸 반도에 파병된 영국, 프랑스군에게까지 이길 정도로 그나마 도움이 되긴 했는데... 그래봐야 국력 자체의 한계는 어쩔 수 없었던 것. 그리고 지정학적으로 협상국의 주요 강대국들과는 러시아를 제외하면 멀리 떨어져 있었고, 인접국가로는 동맹국인 오스만 제국이나 약소국인 자신보다도 한심한 세르비아, 그리스, 루마니아 같은 나라들(거기다 세르비아와 루마니아는 또다른 동맹국인 오-헝 제국과 인접하였기 때문에 양면전선을 치러야 했다)밖에 없었기 때문에 주 전장인 발칸 반도에서 선방할 수 있었다.
결국 동맹국 중에서 쓸만한 놈은 당시 육군 1위, 해군 2위의 강대국인 독일뿐이었다. 독일은 가뜩이나 서부와 동부에서 양면전쟁을 치뤄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가뜩이나 자기 몸 하나 돌보기도 어려운 판국에 전쟁수행능력이 부족한 동맹국들 지원까지 해줘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독일의 병력은 당연히 여기저기 분산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동맹국의 승리란 불가능하였으며, 1차 세계 대전에서의 동맹국 패배는 이미 1918년 훨씬 이전부터 예고되어 있었다.

3.1. 정복


흔히 동맹국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추축국과는 달리 제대로 점령한 나라가 전혀 없으며, 지들끼리 뻘짓하다가 협상국에게 개털린 걸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는 이와 전혀 다르다. 물론 추축국만큼은 아니지만 동맹국도 점령한 협상국이 여럿 있다.
대표적으로 1914년 일찌감치 독일 제국에게 병합당한 룩셈부르크벨기에가 있고, 1915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게 점령당한 세르비아 왕국, 1916년 몬테네그로 왕국알바니아 공국 역시 오헝제국에게 점령당한다. 1918년에는 독일+오스트리아+불가리아 연합 병력이 루마니아 왕국을 점령하여[7] 부쿠레슈티 조약을 체결했다. 조약에 따라 루마니아는 독일을 비롯한 동맹국에게 자원과 돈, 농산물을 바치면서 충성을 맹세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항복하고 아우구스트 폰 마켄젠의 군정이 설치되었지만 그 해에 동맹국이 패망하며 오헝제국과 불가리아에게 영토 일부(트란실바니아+부코비나+남부 도브루자)를 할양받았다.[8]
또한 러시아 제국 역시 동맹국에게 사실상 항복했다고 봐야 한다. 러시아 혁명 때문이기는 했으나 독일 제국과 체결한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은 영토 할양을 포함하고 있어 항복이나 다름이 없다. 조약으로 인해 러시아는 국토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희귀자원과 20%에 달하는 인구를 고스란히 독일에게 잃었다(소련 수립후 2차대전을 거쳐 발트해와 벨라루스, 우크라이나는 소련이 망할 때까지 유지했지만 나중 일이다).

4. 전쟁 이후


협상국 입장에서는 이 녀석들 때문에 4년 간이나 고생을 했기 때문에 이 녀석들이 아예 전쟁 자체를 일으키지 못하게 하려고 이런저런 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게 만들었다. 그로 인해 동맹국들은 역사상 듣도보도 못할 정도로 치욕스러운 패배를 맛봐야 했다.[9] 그런데 치욕스러워도 너무 치욕스러웠기 때문에 동맹국들, 특히 독일과 헝가리는 오히려 협상국에 대한 증오가 더 높아져서 반항하게 되고, 결국 협상국의 너무 가혹한 압박은 동맹국들이 더욱 막장으로 막나가게 되는 결과를 낳게 만든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협상국은 국제연맹을 만들고, 우드로 윌슨14개조 평화원칙을 제시한다. 그러나 대공황으로 인한 여파와 구 동맹국들의 복수의 칼날과 파시즘의 확산으로 인해 국제연맹은 허수아비로 전락하고, 결국 '''제2차 세계 대전'''이라는 더 큰 비극을 낳고 만다.

4.1. 패전 후의 조약


  • 독일 제국 - 베르사유 조약: 독일이 다시 깽판치는걸 막기 위한 조약으로 배상금이 무려 1320억 마르크. 현재 한화로 따지면 거의 10경(!)에 달하는 배상금이였다고 전해진다. 물론 이후 도스 안, 영 안 등으로 제법 삭감해줬다. 독일은 이 배상금을 2010년에 지불을 마쳤다. 사실 나치 독일이 일방적으로 베르사유 조약을 파기했기에 공식적으로 나치를 부정하는 현 독일 입장에서 무시하기는 꺼림칙했을 것이다. 다만 독일은 사실상 도이치족 위주 단일민족국가여서 영토도 많이 잃었으나 나라 자체가 공중분해 된 오헝제국과 오스만보다는 나았다.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생제르맹 조약, 트리아농 조약: 사실 어떻게 보면 베르사유 조약보다 가혹하였다. 왜냐하면 저 두 조약 때문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완전히 공중분해 되어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등으로 갈기갈기 찢겨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는 두번 다시 강대국이 될 수 없었다.[10]
  • 오스만 제국 - 세브르 조약: 터키 역시 오스트리아-헝가리처럼 완전히 공중분해 되어 갈기갈기 찢기고 두번다시 강대국이 될수 조차 없는 위기에 빠졌지만 아타튀르크터키 독립전쟁을 일으켜서 그나마 오스트리아-헝가리처럼 찢기지는 않았다. 식민지를 잃었을지언정 본토는 지켰다. 그리고 당연히 세브르 조약도 파기되고 로잔 조약으로 개정되었다.
  • 불가리아 왕국 - 뇌이 조약: 일부 영토를 그리스 왕국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에게 잃는 정도.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지중해로 통하는 해안선을 그리스로부터 잃어버리게 되어 이때부터 불가리아는 루마니아처럼 흑해를 통해서만 해상무역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독일과 터키, 불가리아는 본토를 거의 지켜냈고 분단되지도 않았다.[11] 이후 독일은 여전히 강대국이고 터키도 지역 강대국 지위를 지키게 된다.

5. 전쟁 범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추축국의 전쟁 범죄 만행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동맹국 역시 수많은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대표적인 것이 독일 제국의 벨기에의 강간과 오스만 튀르크의 아르메니아 학살이다.
벨기에 강간은 독일이 벨기에를 침공하여 점령한 이후, 벨기에 빨치산들이 원인이 되었는데 밤에 독일군의 야영지 근처에 있는 성당에서 총알이 날아와 독일 병사 몇 명을 죽인 것이 원인이 되었다. 누가 쐈는지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독일군 병사의 오발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에 독일군은 빨치산이 한 일이라고 단정하고 빨치산으로 의심되는 모든 민간인들을 잡아서 남자, 여자, 노인, 아이 할 것없이 학살한다. 루뱅에서는 300여명이 살해당했고 디낭에서는 674명이 살해당했으며, 벨기에 전역에서 총 천 여명(최대 6천 여명이라는 주장도 있다.)이 독일군에 의해 학살당하였다. 독일 정부는 2001년 이 만행에 대하여 벨기에 정부에게 공식으로 사과하였다.
이 외에도 독일 제국의 1899년에 헤이그 조약으로 국제법으로 금지된 독가스(염소가스)를 선제 살포한 행위, 파리런던을 선제 폭격하여 수많은 민간인들을 죽게 한 행위도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전쟁범죄라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5.1. 아르메니아 학살


아르메니아 학살은 여러가지 원인과 이유가 있다. 오스만군이 러시아군에게 지속적으로 패배하니까 러시아 인근에 거주하던 아르메니아인들이 러시아군과 내통했다고 생각하였다는 주장도 있고, 아르메니아인들을 강제로 이주시키는 과정에서 그랬다는 주장도 있고, 또한 그냥 화풀이로 죽였다는 주장도 있다.
중요한 것은 오스만군에 의해 100만 명이나 되는 아르메니아인 및 아시리아인이 죽었다는 것. 이것은 1차 세계 대전에서는 유례가 없는 대학살이다. 심지어 '아르메니아 학살을 최초의 홀로코스트'라고 평가하는 사학자들도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터키 정부는 여전히 아르메니아에게 사과를 거부하고 있고, 자신들의 과거사를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UN유럽 연합이 아르메니아에게 사과할 것을 촉구하자, 터키는 "UN과 유럽연합과의 모든 외교관계를 끊겠다!" 라는 개소리도 했다. 다만 아이러니한 것은 아르메니아 학살을 비난하는 서구열강들 또한 해외 식민지나 타민족에게 자행한 학살의 비판에서도 그리 썩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5.2. 러시아군 포로 대상 생체실험


1917년 당시, 러시아 제국 포로들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자행하기도 했다. 그 포로수용소는 쾨니히스베르크에 있었으며, 이름은 뮌스터 수용소. 그 환경은 매우 열악했고 하루가 멀다하고 제국군들의 구타가혹행위가 이어졌다고 전해진다. 독일군은 각 인종 별로 발성의 방법이 분명히 다를 거라는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혀 포로들에게 노래를 부르게 하였고 그것을 녹음하였으며, 포로들의 얼굴을 석고로 뜨기까지 했다.
당시 러시아군 포로들 가운데에는 일본 제국의 압박을 피해 제정러시아로 망명하여 러시아군에 입대한 고려인들도 있었다. 때문에 당시 고려인들이 한국말로 부른 아리랑이나 민요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1차 대전이 끝난 이후, 러시아군 포로들과 고려인들의 행방은 묘연하였고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추측되는 바로는 열악한 수용소 생활로 인해 병사하였거나, 제국군의 생체실험에 이용당해 죽었을 거라는 의견이 압도적이다.
현재 독일 동부지역에는 당시 러시아군 포로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져 있는데, 상당수가 이름 없는. 정확히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포로들이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에서 막대한 양의 곡물생필품을 민간인들로부터 수탈하였고, 우크라이나인들을 강제 노역에 동원하기까지 했다.

[1]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제작된 독일 제국프로파간다 포스트카드에 그려진 일러스트레이션이다.[2] 빌헬름 2세에겐 독일 제국의 국기 뒤에 하나의 깃발이 더 보이는데 이는 독일 제국군 군기이다. [3] 헝가리에서는 국왕이었다.[4] 다만 폴란드 섭정왕국은 1916년에 세워졌다.[5] 세르비아의 형제국가를 자처하며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했다.[6] 실제로 중동 전선에서는 오스만 제국군이 이긴 적도 꽤 많다.[7] 당시 루마니아는 동맹국이 사방에 둘러싸인 상황에도 어렵게 버텼다. 하지만 당시 루마니아는 전쟁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카르파티아 산맥을 낀 이중제국을 공격하고 불가리아 전선에서는 방어만 하는 최악의 전략을 택한데다가 제대로 된 병력 충원과 이동도 이루어지지 않았다.[8] 러시아에게서 베사라비아도 받았지만 베사라비아는 1940년에 소련에게 잃고 훗날 몰도바로 독립한다. 1차대전이 끝난 직후가 루마니아의 영토가 가장 넓었던 때였다.[9] 라이프치히에서 털리고 파리가 점령당한 나폴레옹 1세프랑스 제1제국이나 스당 전투에서 털리고 파리가 마찬가지로 점령당한 나폴레옹 3세프랑스 제2제국도 이 정도로 수치스러운 조약을 맺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본토가 점령당한 것도 아니고 동부 전선은 동맹국이 결국 승리한 것이나 다름 없었고 독일이란 국체와 국민은 온전히 보전 받은 상태에서 이런 조약을 강요받았으니... 2차대전은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10] 이후 이들의 역사는 안습 그 자체다. 오스트리아는 독일에 병합당했다가 독일의 패망으로 해방되었고, 헝가리는 제2차 세계 대전독일과 동맹을 맺고 과거의 영토를 일부 수복했으나 도중에 괴뢰국으로 전락해 버렸고, 전쟁 이후 소련의 위성국이 되어 1980년대 후반까지 소련의 간접적 공산 통치 아래 살아야 했다.[11] 독일은 단치히, 서프로이센, 포젠, 고지 슐레지엔이 새로 독립한 폴란드로 다시 넘어가고 터키는 현재의 시리아와 요르단, 이라크, 팔레스타인, 헤자즈 주변 지역이 영국, 프랑스 위임통치령으로 넘어가는 등 어느 정도 손실이 있었다. 터키는 이후 이 영토를 그대로 보존했지만 독일은 전쟁을 또 한 번 일으켰다가 또 패전하면서 동프로이센, 포메른, 전 슐레지엔을 포함한 동쪽 영토를 폴란드에 넘겨주었음은 물론 가 둘로 나뉘어지게 된다, 불가리아는 독일의 강압으로 추축국에 가입했다가 1944년소련과 강화를 맺고 연합국으로 전향한다, 전쟁이 끝난후,오히려 영토가 줄어들기는 커녕 루마니아한테서 도브루자 지방의 절반을 얻어냈으나 그 대가로 1990년까지 소련위성국으로 지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