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지우 콘세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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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포르투갈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7년부터 FC 포르투 감독을 맡고 있다.
선수시절 윙어로 활약했으며, 힘있고 빠른 드리블 능력과 정확한 슈팅 능력을 겸비했다. 루이스 피구, 후이 코스타, 파울레타, 주앙 핀투, 누누 고메스 등과 함께 90년대~2000년대초 포르투갈의 골든 제너레이션의 한 축이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한 클럽에 3년 이상 머문 적이 없었던 저니맨이었다. 1993년 포르투갈 세군다 리가의 FC 페나피엘에서 데뷔했으며, 이후 레사 FC, FC 펠게이라스를 거쳐 1996년 자국 명문인 FC 포르투에 입단했다. 포르투에서 2시즌동안 주전으로 활약하면서 팀의 리그 2연패에 공헌했으며, 1998년 여름 이적 시장에서 이탈리아의 SS 라치오로 이적했다. 라치오 입단 직후 주전 자리를 차지하며 1998-99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 및 1999-00 시즌 세리에 A 우승에 공헌했으며, 2000년 에르난 크레스포가 SS라치오로 이적하는데 이적료와 콘세이상과 마티어스 알메이다를 합쳐서 이 두 선수를 떨이로 얹어서 파르마 FC로 굴욕적인 이적을 했다. 에르난 크레스포는 이 당시 '''역대 3위의 이적료'''를 자랑할 정도로 매우 비싼 선수였다.[3] 파르마에서 2000-01 시즌 코파 이탈리아 준우승에 기여한 뒤 시즌 종료 후 세바스티앙 프레이와의 맞트레이드로 인터 밀란으로 다시 팀을 옮겼으며, 출전 시간이 줄어들자 2003년 자신의 전 소속팀인 라치오로 복귀했으나 역시 주전 자리를 차지하는 데 실패해 겨울 이적시장에서 자신의 또 다른 전 소속팀인 포르투로 돌아가 2003-04 시즌 리그 우승에 일조했다.
이후 2004년 1년 계약으로 벨기에의 스탕다르 리에주에 입단했으며, 입단 첫 시즌인 2004-05 시즌 '벨기에 골든 슈'를 수상하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 뒤 2005년부터 팀의 주장을 맡았으나, 2006년 상대 선수 및 심판에 대한 모욕적인 행위를 해 5개월동안 경기 출전 금지라는 중징계를 받기도 했다. 이후 2006-07 시즌 팀의 컵대회 준우승에 기여했으며, 시즌 종료 이후 쿠웨이트의 카디시야 SC로 이적했다. 이후 2008년 그리스의 PAOK에 입단해 유럽 무대에 복귀했으며, 첫 시즌은 자신의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한 뒤 2008-09 시즌부터 팀의 주장을 맡으며 주전으로 활동했으나, 2009-10 시즌 무릎 부상을 입어 경기에 거의 출전하지 못하자 은퇴를 선언했다.
2.2.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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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우크라이나와의 1998 FIFA 월드컵 지역 예선 경기로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에 데뷔했으며, UEFA 유로 2000에 참가해 독일과의 조별 라운드에서 해트트릭을 터뜨리며 팀의 3:0 승리를 이끄는 등 팀의 4강에 공헌했다.[4][5]
이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도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박지성의 2002년 월드컵 포르투갈전 결승골 당시 박지성 앞에서 볼 컨트롤에 속아 슈팅 각도를 내준 선수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다만, 콘세이상의 실수라 할만한 장면까진 아니었다. 단지 박지성이 너무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을 뿐. 전문 수비수였다면 속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콘세이상은 수비수가 아닌 윙어인지라 욕 먹을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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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경기 막판에 문전 혼전중 흘러나온 공을 그림같은 발리슛으로 반대 방향으로 찬게 골대를 맞고 나왔다. 그 경기에서 포르투갈의 가장 좋은 찬스였고, 당시 엄청난 슈퍼 세이빙을 기록하던 이운재조차 놓쳤는데 만약 이게 들어가서 동점이 되었더라면 미국에 골득실로 앞서서 조 2위로 16강 진출이 가능했었다는 점에서 포르투갈 입장에서는 너무나 아쉬운 기회였다. 공이 골대를 맞고 나온 후 콘세이상의 표정은 머리를 감싸쥐고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
사실 결정적인 두 장면을 제외하고도 이 경기에서 콘세이상의 경기력은 굉장히 처참했는데, 마찬가지로 부진했던 루이스 피구는 그래도 공을 받아서 전진하면서 공격의 물꼬를 틀어보려는 모습이라도 보여주었던 반면, 콘세이상은 마크에 철저하게 지워져서 카메라에 잡히지도 못하는 수준이었다. 더군다나 이 당시 콘세이상과 피구 양쪽 윙은 포르투갈의 에이스인 동시에 전술의 핵심이었다. 계속해서 스위칭을 해가며 사이드 어택을 노렸지만 송종국과 이영표 두 윙백이 워낙 훌륭한 수비력을 보여주었기에 경기 내내 이렇다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 경기를 기점으로 콘세이상의 커리어는 내리막을 향하게 되었고, 2년 후 자국에서 열린 UEFA 유로 2004에서는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다. 지못미. 통산 기록은 56경기 출전에 12골 득점.
3. 지도자 경력
2010년 선수 은퇴 이후 자신의 전 소속팀인 스탕다르 리에주에서 코치로 있었으며, 2012-13 시즌 SC 올랴넨스와 2013-14 시즌 아카데미카 드 코임브라 감독을 거쳤다.
2014-15 시즌은 SC 브라가의 지휘봉을 잡았다. 브라가에서는 전 시즌 9위였던 팀을 4위로 올려 놓았으나 시즌후 경질되었다.
이후 2015년 9월부터 비토리아 SC의 감독을 맡았다. 리그 10위로 시즌을 마친 후 상호 계약을 해지하였다.
무직 상태로 머물다가 2016년 12월 리그앙 19위로 처진 FC 낭트와 2년 계약을 맺었고, 팀을 7위로 올려놓으며 시즌을 마쳤다.
2017년 6월 친정팀 인 포르투의 감독으로 이적하게 되었다. 2017-18시즌 라이벌구단 SL 벤피카의 5년 연속 우승을 저지하고 5년만에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4. 이야깃거리
EA스포츠의 FIFA 99 게임에서는 선수들의 이름이 "R. Carlos", "J. Ahn" 과 같이 이니셜+성 형태로 되어 있는데, 세르지우 콘세이상만 유일하게 "SérgioConceição"이라고 전체 이름이 빈칸 없이 표기되었다. 다른 선수들은 뒤쪽 이름만을 불러주는 해설자도 저 이름을 다 불러 준다. 이는 당시 유명 축구 선수 중 브라질 국가대표 미드필더로 레알 마드리드 등을 거친 플라비우 콘세이상과 혼동을 피하기 위함으로, 당시 축구 중계시에도 이 두 선수의 이름은 풀네임으로 부르는 것이 관행이었다. 이름에 빈칸을 넣지 않은 것은 당시 해당 게임에 존재하던 15자 이름 제한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당시 숙소호텔 미용사 아가씨에게 반해(..) 날마다 머리를 하러 갔다고 한다. 끈질기게 구애했지만 안타깝게도 콘세이상이 유명선수인지 몰랐던 미용사에게 까였다고 한다. [6]
[1] 재정난으로 2005년 해체[2] 이게 왜 엄청 굴욕적인 이적이냐 하면 콘세이상과 '마티어스 알메이다'에다가 당시 기준으로 '''이적료 역대 3위에 해당되는 현금'''까지 얹어서 에르난 크레스포와 바꾼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콘세이상이 이적한 게 아니라 크레스포가 이적하는데 이적료를 지불하고 떨이로 콘세이상을 준 것이기 때문에 굴욕적인 것이다.[3] 1위 지네딘 지단, 2위 루이스 피구였다.[4] 1990 이탈리아 월드컵과 UEFA 유로 1996 우승을 경험한 노장 스타플레이어들로 이루어진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일방적으로 두들겨 조별리그에서 탈락시킨 충격적인 경기였다. 독일은 이후 한동안 녹슨 전차군단이라 불리며 슬럼프에 빠졌지만, 세대교체를 통해 02 월드컵 준우승을 차지하며 부활했다.[5] 그리고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포르투갈은 독일과 만나기만 하면 지금까지 모두 패만 하고 있다.[6] 참고로 2000년 당시 연봉이 '''1477만 달러'''였다. 그 때의 환율로 계산해도 '''162억원.''' (!) 다만 아무리 남자쪽이 돈을 잘 번다고 해도 이것만 보고 반드시 교제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무엇보다 '''외국인'''이라는 점에서 언어가 안 통한다면 교제가 잘 되기 힘든지라 그 아가씨가 마냥 실수했다는 투로 보는건 좀 무리가 있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