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성시

 




平城市 / Phyongsong City
평성시
平城市 / Phyongsong City
국가
북한
광역시도
평안남도
행정구역
20동 15리
시간대
UTC+9

1. 개요
2. 역사
3. 행정구역
4. 교통
5. 경제
6. 남북통일 이후?


1. 개요



평성 시가지 주행 영상(2016[1])
평안남도의 도시. 평안남도의 도청 소재지이다. 2008년 당시 인구 28.4만명.

2. 역사


'''북한의 도시 가운데 가장 급성장한 도시'''라고 할 수 있다. 8.15 광복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순천군 사인장(舍人場)이라는 조그만 촌락(1944년 당시 인구 '''8천명'''!)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놀랍게도 도청 소재지가 되었다. 당시 행정구역상으로는 순천군 사인면과 후탄면(厚灘面) 지역이었다. 평성이란 이름은 원래부터 있던 지명이 아니라 '평양(平)의 북쪽을 지키는 성새(城)'란 뜻으로 1965년에 새로 지은 이름.
광복 이후 평양직할시 용성구역에 속하였다가 1965년 평성구가 신설되었고, 1968년 평남도 인민위원회가 옮겨왔으며(당시 인구 겨우 2만8천), 1969년 독립된 시(인구 11만)가 되었다. 평양의 위성도시 역할을 하며, 이 덕분에 개천보다 인구가 적지만 도청 소재지가 되었다. 한국으로 치면 (도청 소재지 여부를 제외하면)성남시와 비슷한 포지션.[2]
대덕연구단지가 위치하여 대한민국 과학의 메카로 불리우는 대전광역시처럼, 과거에는 평성시도 북한에서는 이와 유사한 위상을 갖고 있었다. 북한의 국가 과학연구기관인 '''국가과학원'''이 바로 평성에 위치했기 때문. 또한, 북한에서 김일성종합대학 못지 않은 명문대학으로 통하는 평성리과대학(국가과학원 산하 대학)도 이곳에 속했었는데... 국가과학원과 관련 기관들이 위치했던 구역들이 북한의 과학자 우대정책의 일환으로 1995년 평양직할시에 편입되어 은정구역으로 개편되면서, 평성시는 과학메카로서의 위상을 잃게 되었다. 하지만, 평성 시가지와 은정구역은 경계가 매우 애매한 수준이라...
평양에 편입된 평성리과대학과는 달리, 인근의 평성교원대학, 평성의과대학, 평성사범대학은 여전히 평성에 위치해있다.

3. 행정구역


총 20동 15리로 이루어져있다.
  • 관할 동: 평성동, 사인동, 구월동, 냉천동, 덕성동, 두무동, 문화동, 보덕동, 봉학동, 삼화동, 상차동, 송령동, 양지동, 역전동, 오리동, 옥전동, 은덕동, 주례동, 중덕동, 하차동, 학수동
  • 관할 리: 경신리, 고천리, 백송리, 삼룡리, 어중리, 성남리, 운흥리, 월포리, 율화리, 자모리, 자산리, 청옥리, 하단리, 화포리, 후탄리

4. 교통


교통시설로는 철도는 평성역 등이 있으며 '''평성버스터미널'''도 있다. 2014년 2월 14일에 방영된 KBS 파노라마에서 이 버스터미널의 모습이 공개되었는데 시설은 남한의 60~70년대 버스주차장의 모습과 흡사하다. 알려진 바로는 평성에서 북한 전국 약 49개 노선이 운행하고 있다고. 평양행 버스는 붉은별역까지 운행한다.

5. 경제


전형적인 행정·학술 기반의 소비도시라고 할 수 있지만, 1990년대 경제난은 평성의 모습을 크게 바꾸었다. 평성의 과학자들이 경제난을 이유로 북한에서 처음 장사를 했다는 소문이 있다고 한다. 수도 평양이 외부인 출입을 엄격히 금지하고, 북한의 시장들이 주로 도서 국경도시들을 통해 수입하는 형태로 소비재를 충당하면서, 평성은 도서 지역과 평양을 이어주는 허브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평성시장은 북한을 대표하는 도매시장으로 자리매김하였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 매대 3~4만석 규모로 가히 북한 최대의 시장이라 할 정도로 성장했다.
동아일보의 취재에 따르면, 이곳은 경공업 생산품과 대외 무역 물품이 집산(集散)한다. 전국의 도매상이 생필품 및 식량을 매집하려 평성을 찾는다. 의류 산업도 발달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평양을 보조하는 수도권 도시 구실도 한다. 소득수준이 신의주와 함께 평양 다음으로 높다.
이곳 출신 탈북자인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수상자 이정렬(리정렬) 씨[3]에 의하면, "평성은 골고루 잘사는 도시"이며, 못사는 사람이 거의 없고, 평균을 내면 북한에서 평양 다음으로 잘산다고 한다. 남포는 훨씬 못 미치고, 함흥은 평성 사람들이 돈 들고 놀러가는 곳이라고 말한다. 평성에서는 신발, 옷도 생산하는데, 중국에서 도면을 가져와 만든다고 한다. 북한에는 저작권 개념이 없어 견본을 공장에 갖다 주면 똑같이 만들어낸다고 한다. 신의주, 혜산에서 중국 제품을 떼와 유통시키기도 한다고 한다.
북한 정부는 2009년 화폐개혁을 앞두고 평성시장에 대대적인 탄압을 가해 이곳을 '''문자 그대로 초토화'''(...)를 시키고 대신 매대 7~8천석 규모의 중덕장과 하승장을 개설했다. 평성시장을 축소해 북한 시장 전체의 동반 침체와 축소를 노린 것으로, 북한 시장경제에서 평성시장의 지위가 어떠한 것인지 잘 보여주는 반증이라고 하겠다.
또 북한에 자본주의 물결이 불게 되면서 미국 달러를 어마어마하게 보유한 신흥 부자들이 굉장히 많아졌는데, 이런 부자들은 규제를 많이 받고 잘못 하나 저지르면 재산 다 뺏기고 함경북도 내륙 지방으로 쫒겨날 위험이 있는 평양보다는 지방을 선호한다고 한다. 신의주시, 라선특별시, 청진시 등 외화와 외국문화가 유입되는 국경지대 혹은 항구도시에도 많이 살고 있지만, 물류의 중심지로서 외화와 외국상품이 많이 들어오고 평양 바로 옆에 있어서 언제든지 평양으로 놀러 갈 수 있는 평성에 부자들이 많이 산다고 한다.
고적으로는 안국사(安國寺) 등이 있다.

6. 남북통일 이후?


통일 후에도 이미 평성이 북한지역 제일의 상업도시이자 물류의 중심이 되었고, 또한 구북한의 중추지 평양으로 모든 것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현재의 위치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통일 후에는 정치적으로나 지역균형으로써나 평양이 지나치게 비대해지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견제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평성도 수원시 하위호환(성남시와 비슷한 수준) 정도까지는 개발될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예로는 베를린 서쪽에 있는 브란덴부르크 주의 주도 포츠담이 있다.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성장한 도시라 한국 주도의 통일시에는 행정구역이나 이름이 바뀔 가능성도 있는 거 아니냐는 의견이 있으나(순천시로의 환원(통합) 등), 가능성은 낮다. 딱히 북한정권 찬양성, 김일성 일가와 얽힌 이름도 아니고, 평양의 평+성(城) 형태의 합성어 지명은 남한에서도 사례가 많이 있는데다 신흥도시 특성상 딱히 되돌릴만한 역사성 있는 옛지명이 있는 것도 아니며, 평성 시가지와 순천 시가지 간의 거리도 꽤 멀고 독자적으로 성장한 도시라 행정구역 및 지명이 그대로 존속할 가능성이 높다.
[1] 7차 당대회가 올해 열린다는 내용이 담긴 선전물이 있다.[2] 각각 수도 서울과 평양에 접하고 위성도시라는 점, 역사가 짧은 신흥도시 지역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3] 2016년에 탈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