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군정청
[템플릿사진출처]
[clearfix]
1. 개요
나치 독일이 프랑스 제3공화국을 붕괴시키고 1940년부터 1944년까지 약 4년 동안 프랑스에 세워진 군정청을 말한다.
나치 독일은 1940년 5월 프랑스를 침공했다. 독일군의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6월 14일 수도 파리까지 함락되어 무너진 프랑스는 1940년 6월 22일 프랑스 콩피에뉴 숲에서 독일과 휴전 협정을 맺었다. 콩피에뉴[1] 숲은 제1차 세계 대전 때 독일제국이 프랑스에 항복 문서를 서명한 장소로서, 프랑스에게 굴욕을 주려는 아돌프 히틀러의 의도였다.
콩피에뉴 숲에서 맺은 협정은 사실상 프랑스의 항복과 다름없었다. 협정 결과 알자스-로렌이 나치 독일에 합병되었고 프랑스 북부[2] 의 영토는 독일이 직접 통치, 프랑스 남부는 비시 프랑스가 통치하게 되었다.
나치 독일의 프랑스 점령 초반에는 비교적 프랑스를 우대해주었다. 필리프 페탱이 의회의 동의를 얻어 출연한 비시 프랑스를 독립 국가로 인정해주었으며, 독일이 점령한 프랑스 지역에도 프랑스의 주권이 인정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나치 독일은 프랑스를 종속시키기 위해 프랑스계 기업들을 독일계 기업에 흡수시키거나 프랑스의 수입과 수출을 통제했다. 주권을 유린당한 프랑스인들은 지하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벌이거나 자유 프랑스에 가담했다. 1942년 11월, 연합국이 비시 프랑스령 북아프리카를 점령하자(횃불 작전) 나치 독일은 일방적으로 비시 프랑스를 침공하여 비시 프랑스 정부는 명목상으로만 존재하게 되고 프랑스 전역이 나치 독일의 수중에 들어왔다.
1944년 6월 6일,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하여 파리가 해방되었고 독일군이 패퇴하기 시작했다. 이때의 유명한 일화로 아돌프 히틀러가 파리 주둔 독일군 사령관인 디트리히 폰 콜티츠에게 파리의 모든 기념물과 건축물들을 폭파시키라고 지시했다. 히틀러는 무려 9번이나 전화하며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Brennt Paris)?'라고 콜티츠에 물었다고 한다. 하지만 콜티츠는 히틀러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만약 콜티츠가 히틀러의 지시를 따랐다면 에펠탑이나 개선문 같은 파리의 유명한 랜드마크들은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콜티츠가 파리를 불태우지 않기로 결정하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자, 아내는 '당신이 자랑스럽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후에 콜티츠는 파리 명예시민증을 받기도 했다.
2. 관련 문서
[템플릿사진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EB%82%98%EC%B9%98_%EB%8F%85%EC%9D%BC#/media/File:Flag_of_German_Reich_(1935%E2%80%931945).svg,https://ko.wikipedia.org/wiki/%EB%82%98%EC%B9%98_%EB%8F%85%EC%9D%BC#/media/File:Reichsadler_der_Deutsches_Reich_(1933%E2%80%931945).svg, https://ko.wikipedia.org/wiki/%EC%B6%94%EC%B6%95%EA%B5%AD#/media/File:France_map_Lambert-93_with_regions_and_departments-occupation.svg[1] 백년전쟁 때에는 잔 다르크가 이곳을 지키다가 적에게 붙잡혔던 곳이기도 하다.[2] 프랑스 본토의 약 3/5에 달하는 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