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게이머 연습생
1. 개요
프로게이머가 되기 전의 단계이며, 정식 프로게이머가 되기 위해 지나가는 일종의 과정. 하지만 준프로게이머라기보단 프로게임단에서 가능성을 보고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을 통해 선발하여 연습하는 선수라고 보는 게 더 알맞겠다. 또한 치열한 커리지매치와 준프로평가전을 거쳐 프로게임단 드래프트에 뽑힌 신인 프로게이머들도 대부분 이 생활을 한다.
초창기 때에는 그 실태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 프로게이머들과 프로게임단 연습생 출신들의 증언 및 관련 이야기가 속속 나오면서 이제는 공공연한 사실이 된 항목이다.
2. 상세
2.1. 현실은 시궁창
몇몇 방송에 출연하는 극소수 프로게이머를 보고서는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인기도 있고 좋아하는 게임을 하면서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이라 만만히 생각하고 있는 학교를 중퇴한 중고등학생들로 이루어진다.[1] 그렇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다.
일단 온라인 연습생과 숙소 연습생으로 나뉘는데 온라인 연습생의 경우는 큰 메리트는 없다. 실력을 키워 숙소 연습생들과 내부를 통해 로테이션되는 게 온라인 연습생들의 1차 미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숙소 연습생이 되면 그 팀에 소속되어 '''문자 그대로 일어나서 밥 먹고 잘 때까지 게임만 하는 생활을 한다.''' 얼핏보면 좋을 것 같지만 '''게임을 하고 싶을 때 하는 것과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의 차이는 매우 엄청나다.''' 쉬는 시간도 거의 없다시피하며 심지어 휴일날이나 명절 때에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연습만 한다.[2] 거기다가 하루종일 키보드와 마우스만 쥐고 있으면 손목부상을 비롯한 각종 부상의 위험이 매우 크며[3] 장시간 연습에 따른 정신적 피로와 시력 저하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이 모든 것들이 하루 스케쥴에 포함되는 것들이다. 가히 '''게임하는 기계로 키워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프로게임단들은 이런 살인적인 스케쥴을 소화하는 대가로 숙식만 제공을 해주거나 한달에 30~50만원 정도의 월급만 제공했다.[4]
한 방송사에서 프로게이머 연습생들이 연습하는 연습실을 찾아가 인터뷰했던 적이 있다. 인터뷰에 의하면 이런 환경에서도 진짜 1군 로스터에 포함되고 방송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는 극소수고 대부분은 중간에 그만둔다고 한다.[5][6]
하이트 스파키즈 소속 프로게이머(이거나 연습생)의 숙소가 '''서울시 종로구의 모처'''에 있는데, 보면 한 3~4인이 가정용으로 살면 딱 좋은 건물에서 10여명 이상이 산다. 또 저녁 10시 이전엔 그들이 밖으로 나오는 걸 거의 볼 수 없다.
이러한 프로팀에 들어가는 방법은 배틀넷에서 실력이 괜찮거나 잘하는 친한 유저가 있으면 혹은 PC방 대회에서 잘하는 선수가 보이면 추천하여 데리고 와서 팀생활을 하고 대회에 나가면 그게 프로게이머였다.
이전 서술에 초창기에는 프로게이머와 프로팀이라는 개념이 없다고 나와있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한국 최초의 프로게이머인 신주영이 등장한 시기는 국내에 대회가 생기기 이전[7] 이었다. 신주영은 그래서 PGL 즉 미국 프로리그에 진출하여 프로게이머가 되었다. 개인이 대회에 나가는 수준에서 시작해서 이들 명성이 높아져서 프로게이머가 생긴게 아니라 프로게이머 등장이 먼저고 이후 대회가 생겼다. 최초의 프로게이머 신주영의 등장, 최초의 프로게임 리그 KPGL 출범, 케스파 출범, 게임채널 등장 이런 순이었다. 더군다나 초창기엔 게임은 큰 의미가 없었다.
온게임넷 스타리그, MSL을 비롯한 개인리그와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KeSPA 등이 생기게 되며 프로게임리그가 발달이 되는 반면, 초창기만 해도 상당히 적었지만 날이 갈수록 늘어나기 시작하다가 매주마다 열리는 '''커리지매치''' 대회가 개최하게 된다.[8] 커리지매치는 '''준프로자격증 획득 공인대회'''로써 KeSPA홈페이지에 공시되는 커리지매치가 열린다는 게시글을 통해 참가비를 입금한 뒤 이후에 발표되는 조 편성 배정공문을 받고 경기장소[9] 에 가서 그 조에 속한 참가자들과 게임한다. 한 조에 64강부터 시작이며 우승을 하면 준프로자격증을 얻을 수 있는데, 클랜정모할 겸 친목질을 하러오거나 한번정도 나가보고 싶어서 재미로 참가하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진짜로 프로게이머가 되고자 엄청난 실력을 갈고닦은 재야의 고수 등등 수많은 날고 기는 사람들이 참여하여 피튀기는 전쟁터의 광경을 볼 수 있다.[10]
그 이외에 특채로 준프로게이머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엘리트 스쿨리그라고 하여 당시 전국의 초중고등학교가 참여할 수 있었다. 같은 학교 재학생을 기준으로 3명의 아마추어[11] 와 지도교사로 하여 팀을 이루어 본선에 진출한 다음, 이 대회에서 1, 2위를 차지하게 되면 '''준프로게이머 자격이 부여'''됐다. 엘리트 스쿨리그 이외에 케스파에서 준프로 자격을 부여하는 대회도 비정기적으로 존재했는데 대표적으로 WCG 2006 국가대표 선발 예선전에서 이재훈을 잡고 상위 라운드에 진출한 도재욱, 2005년 베이징에서 열린 CKCG 아마추어 대회에서 준우승하여 이를 본 STX SouL측에서 드래프트 시킨 김윤환이 있다.[12] 또는 게임단에서 유저의 플레이를 보고 가능성이 있다 싶으면 추천선수로 드래프트하여 바로 프로게이머로 승격시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준프로자격을 얻는 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프로게이머가 되지 못하고 경우가 많은데, 프로게임단의 '''많은 프로게이머 선발'''로 인해 그 인원은 프로팀에 충족하거나 혹은 상당히 많아지게 되었다. 결국 시간이 지나갈수록 1, 2군 프로게이머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프로가 되지 못하는 준프로들은 불어나게 된다. 그리고 팀에서 실력이 떨어지는 2군 프로게이머들이 있을시엔 어떠한 빌미를 잡든간에 방출시키고 프로측에서는 이들보다 실력있고 비전있는 준프로를 드래프트로 선발한다. 결국 선택받지 못한 준프로와 최하위에 위치하는 온·오프라인 연습생들까지 메리트는 당연스럽게 상당히 줄어든다. 애초에 이런 대접을 하는 것 자체가 '너 짤라도 뽑을 인간들 많음' 이라는 프로게임단 관계자들의 마인드를 가감없이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프로게이머 연습생(궁극적으론 프로게이머)이 되고 싶은 청소년들을 모아서 숙소를 만들어 돈을 받고 게임을 가르쳐 주는 곳도 우후죽순 생기기도 했다(물론 숙식도 하지만 보통 한달의 45~50만원의 큰돈이 들어간다). 또한 명문 클랜들은 따로 숙소를 마련해서 이 곳에서 합숙하며 전문적인 프로게임 능력을 다지고 클랜 내의 우수 인력을 프로게임단으로 배출하기도 한다.[13] 그렇게 나온 게이머들은 클랜명과 자신의 아이디를 달고 클랜의 명예를 드높히기도 한다.
그나마도 재능이 받쳐주지 못하면 견디지 못한다. 일단 컨트롤이 빨라야 하는데 손이 느려서 그게 불가능한 사람은 애초에 프로게이머가 될 생각을 버려야 한다. 괜히 손이 느린 사람이 프로게이머 연습생이 되었다가 중간에 그만두거나 결국 게임 그만둘 때까지 연습생을 벗어나지 못해서 이후 진로가 꼬이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손이 느리더라도 정확명료한 컨트롤로 게임을 잘 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대표적인 손이 느린 프로게이머로는 진영화가 있다.''' apm이 거의 '''200'''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아니면 250이 넘는 경우도 있다고 하나 여기서 더 웃긴건 '''200밑으로도 떨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손이 느릴 뿐이지 정확도 만큼은 손에 꼽힐 정도로 뛰어나서 프로토스의 특성을 더해 뛰어난 정확도로 게임을 잘 하는 경우가 진영화이나, 진영화는 정말 극히 일부의 예외일 뿐이다. 너도 나도 그 정도 apm으로 프로게이머를 할 수 있었다면 진영화는 특별하지 않다. 꼭 무슨 얘기 하면 아닌데? 하면서 극소수의 예외사례를 가져와서 꼬투리를 잡으며 분위기 망치는 사람이 있다. 세상 모든 것에는 예외라는 것이 있고 대체적으로 무엇에 관해서 얘기할 때는 대상의 일반적인 특성, 전체적인 경향성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지 소수의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2.2. 스타크래프트 몰락 이후
2011년 ~ 2012년경, 스타크래프트의 몰락과 리그의 해체, 그리고 스타크래프트 2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과정에서 스타판의 현실이 널리 알려진데다가 스타2로 넘어가게 되면서 더이상은 답이 없음을 알게 되어 e스포츠와는 손을 떼버리고자 하는 기존 스타크래프트 연습생들과 준프로게이머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하고, 현 프로게이머들도 게임의 종목이 바뀌면서 제 위치가 듣도 보지도 못한 선수들한테 역전당하거나 게임 자체가 이전과는 다른 게임을 하는지라 흥미를 잃어버리게 되거나 슬슬 군입대를 준비하려는 등 게임을 그만두려는 선수들이 생기면서 은퇴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태로 인해 심지어 높으신 분들도 위기감을 느끼고 연습생들을 '''모셔갈려고 힘을 썼었다.''' 그러나, 리그 오브 레전드의 등장으로 인해 리그 오브 레전드 쪽에 많은 프로게이머 지망생이 생기며, 스타크래프트 2에서는 연습생을 구하기 힘이 들어 드래프트가 사라졌을 정도로 문제고,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는 인력이 넘쳐나면서, 오히려 대리랭 등의 관련한 폐단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나마도 알짜배기 유망주들은 중국 등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질적인 하락도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설상가상으로 스타크래프트 2 승부조작 사건이 터져 그 여파로 프로리그가 폐지되어 대부분의 팀이 해체되었다. 결국 국내에서는 옛날의 스타크래프트의 휘황찬란한 영광과 흥행은 스타2에서는 발현하지 못하고 그저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게 되고 몰락한 게임이라고 인식하게 되는 사태까지 발생한다.
[1] 물론 정말로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도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은 그냥 '게임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혹해서 된다.[2] 휴식시간에도 싱글플레이 스커미시나 유즈맵 등으로 컨트롤 연습을 하거나 타 팀이나 자기네 팀 연습생들끼리 네트워크 대련도 했다.[3] 치질, 디스크, 안구건조증, 수근관 증후군이 직업병이라 할수 있다. 프로게이머 중에 부상떄문에 경기력에 악영향을 끼쳐 결국 선수생활을 은퇴한 경우도 많다. 대표적으로 최연성과 김준영이 이 손목터널 증후군으로 인해 선수생명에 큰 지장을 줘서 결국 은퇴했으며, 손찬웅 역시 손견제라 불리며 스타리그에서 4강을 찍는 등 한창 치고 나가야 할 시절에 허리 디스크로 인해 선수 생활을 중단하다 결국 은퇴를 선언했다.[4] 그나마 SK나 KT같이 일반인들이 이름만 들어도 다 알 수 있는 수준의 대기업이 운영하는 팀이 이랬지 그 외의 팀은 숙식만 제공하는 수준에서 그쳤다.[5] 전 스타크래프트1 프로게이머 출신의 한 선수가 개인 방송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1군 상대로 약 30% 정도의 승률 즉 10판해서 3판 정도만 따낸다면 1군 진입도 가능하다고 하는데, 이게 언뜻 보면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을 수 있겠지만 해당 선수는 그걸 계란으로 바위치는 것에 비유했을 정도로 힘든 일이라 표현했다.[6] 당장 드래프트/스타크래프트 시리즈 항목을 봐도 별도의 문서가 생기지 않은 게이머들은 물론이고, 문서가 있어도 다른 종목으로 전향하거나 은퇴 후에 인터넷 방송으로 빛을 본 게이머들이 꽤 많다.[7] 소규모 PC방 대회 제외, 신주영 시대엔 PC방 대회 중에서도 작은 규모 대회만 있었다.[8] 2011년 이후에는 루키리그로 대체되었다. 이때부터 드래프트 참가자가 루키리그 입상자로 제한되어 많이 줄었다.[9]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예선경기장이자 PSL이라고 불리는 경기장소인 용산 보조 경기장, 또는 지정된 PC방에서 경기를 한다. 보조경기장은 물론이며 PC방에서도 커리지매치가 이루어지는 자리에는 근처에도 못가게 진행자들이 통제한다.[10] 특히 커리지매치 현장은 준프로가 되어 너무 기쁜 나머지 울고불고 하거나, 아깝게 혹은 운이 따르지 않아 패배한 나머지 너무 분해서 샷건을 날리거나 경기가 끝나고나서도 차마 자리에 일어나지 못하거나 우는 광경이 나타난다. 심지어 상대방과 입씨름하며 싸우거나, 본체를 끄고 도망치는 등의 인성질, 이 전에 배틀넷에서 채팅으로 싸우고 난 뒤 커리지매치 경기장이 만남의 광장이 되어 현피를 뜨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11] 순수 아마추어만을 위한 대회이므로 준프로와 프로는 참가접수가 불가능하다.[12] 다만 김윤환은 도재욱과 달리 커리지 매치 입상 경력이 있다.[13] 특히 명문 클랜의 높은 분들은 프로팀 관계자들과 서로 연락이 되어 실력 좋은 연습생들을 프로팀에 소개시켜 주니깐 프로팀에 입단이 가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