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이스토세
Pleistocene / 更新世
1. 개요
지질 시대 구분에서 약 258만 년 전부터 약 1만 년 전까지의 시기를 일컫으며, 신생대 제4기의 거의 대부분의 시기를 차지한다. 플라이스토세라는 명칭은 그리스어로 '가장 새로움'이라는 뜻에서 왔다. 한자로 갱신세(更新世)라고 부르기도 한다.
2. 상세
이 시기에 빙하에 실려온 흙들이 퇴적되어 지층을 형성했는데, 18세기경 지질학의 태동기에는 이 지층이 성경 속 노아의 홍수의 흔적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거기서 유래되어 홍적세(洪積世, Diluvium)라는 명칭이 많이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거의 사장되어가고 있다.
플라이스토세라는 용어는 지질학적인 측면보다는 인류 고고학적인 면에서 규정되는 성격이 강해, 구석기 시대와 거의 일치한다. 예전에는 플라이스토세의 상한을 약 180만 년 전으로 잡고 있었는데, 이는 올두바이 협곡 등지의 발굴결과를 토대로 한 것. 이후 최근의 연구결과로 점점 원시인류의 지적활동의 상한이 올라가면서 플라이스토세의 시작도 258만 년 전으로 올라갔다.
플라이스토세는 지질학적인 용어로, 가장 최근의 빙하기가 시작된 시기를 말한다. 2009년 IUGS(국제 지질 과학 연맹)에서 2588ky BP에서 11.7ky BP까지의 시기(대략 260만 년 전에서 1만2천 년 전)로 정의했다. 20세기의 문헌에는 플라이스토세를 180만 년 전 부터의 시기로 지칭했었는데, 이는 빙하기의 시작을 180만 년 전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지질학적 발견이 이어지면서 빙하기의 시작이 260만 년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에 따라서 플라이스토세의 시작 연대를 260만 년 전으로 확장하게 된 것이다. 우연히도 이 시기는 구석기 시대와 겹치게 되는데, 이는 현재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올도완 석기의 제작시기인 260만 년 전과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300만 년이 넘은 pre-Oldowan석기가 발견된 보고가 나오기 때문에 플라이스토세를 구석기 시대와 동일시 하는 관점은 지양되어야 할 것 같다. 인류의 출현이나 구석기시대는 주로 빙하의 영향을 받지 않은 아프리카 대륙이므로 플라이스토세의 빙하기와는 직접적 관계는 없다.
2.1. 빙하기
플라이스토세의 특징은 빙하기로, 아시아에서는 오늘날의 몽골,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미국의 오대호 부근까지 빙하가 확장되었다. 육지는 오늘날과 거의 비슷한 형태였으나 많은 양의 바닷물이 빙하에 갇히면서 해수면도 낮아져, 한반도는 일본 열도와 연결되어 있었으며 동해는 내륙 호수가 되었다. 시베리아와 알래스카도 베링 육교로 연결되어 있었다.[1]
창작물에서 지표가 빙하로 덮이고 털코뿔소, 컬럼비아매머드, 울리매머드가 활보하고 원시인류가 석기로 사냥하는 장면이 나온다면 전형적인 플라이스토세의 이미지. 다만 실제로는 20세기 들어 연구가 진행되면서 플레이스토세라고 해서 항상 추웠던 것만은 아니고 중간중간 기온이 올라가고 빙하가 후퇴하는 간빙기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이러한 빙기-간빙기의 교대와 그에 따른 원시인류의 생활상의 변화는 현재도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분야.
특히 플라이스토세 말기에 마지막 빙하절정기인 2만4천년~2만 7천년 이후 지구의 기온이 점차 오르고 빙하가 후퇴하던 중에 플라리스토세가 끝나는 1만 3천년에서 1만 2천년 사이에 북반구의 기온이 갑자기 20도 정도 뚝 떨어지고 다시 빙하기가 돌아온 시기가 있는데 이를 Young Dryas 기라고 부른다. 이런 갑작스런 빙하기의 도래는 2004년 미국 SF 영화인 투모로우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이의 원인으로는 열을 적도에서 고위도 지방으로 순환시키는 북대서양의 해류 순환이 갑자기 달라진 것을 꼽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설이 있다. 2018년에 그린랜드 북부에서 직경 31 km 정도의 대형 운석 크레이터가 발견되자 이로 인해 대량의 담수가 북대서양에 유입되어 해류를 바꿨다는 주장도 있다.
[1] 플라이스토세의 마지막 시기에 베링 육교를 통해 인류가 아메리카로 넘어간 것이 정확히 언제쯤인가는 아직도 논쟁거리 중 하나다.[2] 칼데라의 전체 면적이 서울만하다.[3] 전체 면적이 제주도만하다.[4] 최대 수심 500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