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시즈
Pix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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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블랙 프랜시스 Black Francis (보컬, 리듬기타) 킴 딜 Kim Deal (베이스, 백보컬) 데이브 러버림 Dave Lovering 조이 산티아고 Joey Santiago (리드기타)
1. 개요
미국 보스턴 출신의 얼터너티브 록 밴드. 1986년 결성되었다. 소닉 유스와 더불어 가장 영향력 있는 80년대 미국 인디 밴드로 꼽힌다.
2. 멤버
블랙 프랜시스 - 보컬, 세컨드 기타, 주 작곡자. 솔로 활동 초중반엔 프랭크 블랙이라는 이름을 썼다.(2007년부터 쓰지 않게 되었다.) 본명은 찰스 톰슨. 록밴드의 리더 치곤 드물게 뚱뚱한 체형이라서. 록음악계에서 '세상에서 가장 창조적인 뚱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조이 산티아고 - 리드 기타. 필리핀에서 태어난 필리핀인이었지만, 마르코스 대통령의 폭정을 피해 7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 갔다.
킴 딜 - 베이스. 기 센 여걸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블랙 프랜시스와 충돌이 잦았다. 쌍둥이 자매 Kelley Deal과 The Breeders를 결성하여 인디 음악계에 족적을 남겼다.
데이빗 러버링 - 드러머, 마술사. 픽시즈 해체 이후 드럼도 그만 두고 과학 마술과 금속탐지 취미에 매달렸다 돈이 다 떨어져 갈 때 쯤 재결성 연락을 받게 된다.
3. 역사
매사추세츠의 앰허스트 대학교에 재학 중이였던 찰스 톰슨(블랙 프랜시스)과 조이 산티아고는 같은 기숙사에서 살았고 둘 다 록음악 팬이었기 때문에 금방 친구가 된다. 같이 늘 붙어 다니며 음악 얘기도 하고 잼연주도 하면서 음악에 대한 열정이 더욱 불붙게 되었고 결국 록음악인으로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고 둘 다 대학을 자퇴한다.
베이시스트와 드러머가 필요했는데, 그들이 붙인 멤버 모집 광고를 보고 찾아온 킴 딜과 그녀가 데려온 드러머 데이브 러버링이 들어오면서 드디어 1986년 1월에 픽시즈가 결성된다. 이름은 '요정'을 뜻하는 픽시에서 따왔다.
이후 4AD과 계약후, 1987년 EP인 Come On Pilgrim를 발매했다. 그 다음 해엔 스티브 알비니를 프로듀서로 하여 첫 앨범인 Sufer Rosa를 만든다. 발표 즉시 이 앨범은 평자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어냈으며, 지금도 그런지의 흐름을 선취한 앨범으로 각별히 예우받고 있다. 또한 이 앨범은 인디 록 계의 사디스트, 스탈린(비유적인 표현이다.)로 유명한 스티브 알비니의 프로듀싱 스타일을 알 수 있는 앨범이기도 하다. (ex. 대패를 밀어버린 사운드 질감과 미친듯이 광분해대는 기타와 보컬. 요새는 그래도 많이 유화됐다고 하지만...)
파이트 클럽에서 클라이맥스에 쓰인 'Where Is My Mind?'도 여기 실려있다. 참고로 토킹 헤즈의 'Once in a Lifetime'의 화답가라고 한다.
다음 해 그들은 두번째 앨범인 Doolittle을 발표한다. 전작에 비해 팝적인 선율과 조화가 강조된 이 앨범은 1집만큼이나 혁신적이다라는 평을 들으면서 대중들의 호응까지 얻어낸다. 하지만 이때부터 킴 딜과 블랙 프랜시스의 갈등이 심각해졌다.[1] 그 뒤, 보다 차분해진 스타일의 Bossanova와 Trompe le Monde를 발표했다.
그러나 결국 1992년에 밴드는 해체된다.[2] 해체후 킴 딜은 쌍둥이 동생 켈리 딜(Kelley Deal) 과 스로잉 뮤지스의 타냐 도넬리를 끌어들여 만들었던 브리더스로 캐논볼을 비롯한 히트 싱글을 냈고, 블랙 프랜시스는 프랭크 블랙이란 이름으로 솔로 활동을 개시한 후 Teenage of the Year 같은 수작을 내놓기도 했다. 기타리스트 조이 산티아고는 부인과 함께 Martinis라는 밴드를 결성하였는데 여기에 픽시즈의 David Lovering이 잠깐 드러머로 활동한적이 있다. 너무 활동기간이 짧아서 영화 Empire Records의 사운드트랙용으로 재녹음한 Free란 곡에만 참여했는데 전성기 시절의 픽시즈 느낌(특히 귀여운면)이 고스란히 담겨있으니 픽시즈 초기작 팬들은 꼭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2004년에 다시 재결성[3] 했다. 그러나 2013년 킴 딜이 다시 탈퇴했다. 영국에서 녹음 세션을 진행하던 중 한 커피숍에서 쿨하게 집에 가겠다고 얘기했다고 한다.[4] 이후 Bagboy[5] 를 비롯한 새로운 곡을 담은 EP1, EP2, 그리고 정규 LP Indie Cindy를 연이어 발표했으나 평단의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다.
4. 음악 스타일과 음악계에 미친 영향
음악 스타일을 보면 파격적인 곡 구조와 노이즈 기타 사운드, 미친듯이 광적으로 질러대는 보컬, 엽기적인 가사 등 과격하고 실험적인 면과 아름다운 멜로디 감각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고 이런 요소들이 서로 기가 막히게 잘 융합/조화되었는데, 이런 특이한 색깔이 픽시즈의 개성적인 매력의 원천으로 작용했다.[6]
이들의 이런 독특한 사운드는 주류 록과는 당연히 달랐을 뿐 아니라, 음악적 센스와 아이디어가 이미 바닥을 드러냈는데도 그저 대안없는 분노만을 계속 토해내던 기존 하드코어 펑크와도 차별화 된 음악이었다. 이런 픽시즈의 음악 스타일을 많은 후배 밴드들이 추종하면서 새로운 음악 조류(얼터너티브 록)가 생성되고 발전한 것이다. 그래서 픽시즈를 가리켜 90년대 초반 록음악계에 불어닥친 거대한 판도 변화의 원동력이자 배후 조종자같은 존재였다고 평가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그런지 계열 음악들의 직접적인 선조에 해당한다. 단적으로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은 '우리는 픽시즈를 베꼈다'였다고 고백했을 정도.
특히 한 곡 내에서 강약의 대비를 강조하는, 소위 'loud quiet loud[7] '라고 불린 다이내믹한 곡 구조는 픽시즈 이후 너바나를 비롯한 많은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가사 역시 파격적인데, '''무슨 마약하시길래 이런생각을 했어요?'''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뒤틀려 있다. 그의 가사는 초현실주의, 변태 섹스 중독자, 외계인, 괴물, 해커, UFO, 근친상간, 서프광, 성경에 등장하는 폭력 사건 등을 소재로 삼았으며, 구체적인 가사 내용 역시 현지인조차 이해하기 힘든 수준이라고 한다. 이 파격적인 가사 역시 그런지/얼터너티브 세대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 출신이지만 영국에서 먼저 인정받았고 대접도 더 좋았던 밴드기도 하다. 계약 레이블였던 4AD가 영국에 근거지를 두고 있다던가, 2번째 앨범 판매량이 영국에서 가장 좋았다던가...노이즈+팝 멜로디라는 실험이 지저스 앤 메리 체인이나 더 폴 때문에 영국인들에게 예전부터 친숙했기 때문에 인기가 좋았다는 게 정론으로 인정받고 있다.
5. 픽시즈에게 영향을 준 것들
픽시즈의 이런 독창적이면서 괴이하게 매력적인 음악은 어디에서 온 것이고 무엇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인가?
주 작곡자이자 리드보컬, 밴드 리더인 블랙 프랜시스가 밝힌 자기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뮤지션들로는 허스커 듀, 캡틴 비프하트, 이기 팝, 비틀즈, 데이빗 보위, 블랙 플래그, The Gun Club[8] , 카스(The Cars)등이 있다. 그 중 특히 이기 팝은 부틀렉까지 죄다 찾아 들었을 정도로 광팬이라고 한다. 비틀즈에 대한 애정도 상당한데, 특히 화이트 앨범을 엄청나게 좋아해서 화이트 앨범의 수록곡들이 자신의 실험적이고 예측불허인 작곡 스타일에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밝히기도 했다.[9]
그리고 의외지만, 그의 찢어질듯 절규하며 내지르는 창법 스타일도 비틀즈로 인해 얻게 된 것이라고 한다. 픽시즈 결성 전에 비틀즈의 "오 달링"[10] 을 모창해 보려고 시도했지만 고음 부분이 잘 안되자 옆에서 보던 친구가 "그냥 그년을 엄청 미워하는 것처럼 소리질러버려 봐![11] 라고 해서 정말 그런 심정으로 소리 질렀는데 그게 그대로 블랙 프랜시스 특유의 창법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이런 음악 이외에도 영화 이레이저 헤드, 안달루시아의 개, 그리고 구약성서에 나오는 폭력적이거나 기이한 이야기들도 그의 음악에 큰 영향과 영감을 줬다고 한다. 이레이저 헤드에 관하여서는 그 주요 삽입곡인 'In Heaven'을 직접 커버해서 부르기도 했고, 안달루시아의 개는 곡 'Debaser'의 가사에 영화 제목이 나온다("나는 안달루시아의 개야!").
픽시즈의 독특한 사운드를 만들어내는데 크게 기여하는 리드 기타리스트인 조이 산티아고는 지미 헨드릭스, 레스 폴, 웨스 몽고메리, 조지 해리슨, 쳇 앳킨스를 자기에게 영향을 준 기타리스트들로 꼽았다. 조이는 자신의 기타를 "모가 나고 구부러진 (angular and bent)" 사운드라고 묘사했다. 비틀즈의 "Savoy Truffle" 등의 곡에서 조지 해리슨이 보여준 bent note 사운드에 매료돼서 그 연주 기법을 픽시즈 곡들에도 많이 써먹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사운드는 곡 'Hey'에서 그 진수를 느낄 수 있다.
1980년대 하드코어 펑크도 영향력이 큰 편으로, 노이즈와 팝 멜로디의 조화라는 점에서 허스커 듀의 직계 후손이라 할 수 있다. 비슷하게 노이즈를 추구했던 소닉 유스가 아방가르드 영향을 받아 지적인 면모가 드러났다면 픽시즈는 그보다는 로큰롤의 본능적 흥겨움에 가까웠던 편. 이때문에 다이노서 주니어랑 종종 엮이기도 한다.
6. 그 외
국내에서는 커트 코베인을 경유하거나 파이트 클럽에 삽입된 'Where Is My Mind?'를 통해 팬이 된 케이스가 많다.
영화 <500일의 썸머>에서 조셉 고든레빗이 부른 Here Comes Your Man이 Doolittle에 수록되어 있는 곡이다.
7. 정규 음반 목록
- Surfer Rosa (1988)
후에 Come On Pilgrim 과 함께 재발매 된다.
- Doolittle (1989)
- Bossanova (1990)
- Trompe le Monde (1991)
- Indie Cindy (2014)
- "Head Carrier" (2016)
- "Beneath the Eyrie" (2019)
[1] 블랙 프랜시스는 여러모로 빌리 코건식의 독재자형 리더였고 킴 딜의 곡을 수록하는 일에 반대했다. 때문에 킴 딜은 밴드에서 겉돌았고 솔로 활동에 눈을 돌리면서 서서히 밴드가 와해되기 시작한다.[2] 어느날 갑자기 블랙 프랜시스가 BBC 라디오에서 생방송 인터뷰중에 해체를 선언한 뒤, 밴드 멤버들에게 해체를 알리는 팩스를 보내는 것으로 끝났다.[3] 해체때와 비슷하게, 라디오 방송에서 프랭크 블랙(블랙 프랜시스)이 픽시즈 재결성에 대한 농담을 던졌는데 사람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여 연락이 쇄도하고, 이에 프랭크 블랙도 고무되어 다시 시작했다. [4] 다만 저번 해체때와 달리 딱히 불화는 아니라고 한다. 되려 나머지 멤버들은 다시 들어오는 것도 반긴다고 밝혔다.[5] 킴 딜을 대신하여 베이시스트 The Muffs의 리더 Kim Shattuck을 기용. 하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다른 픽시즈 멤버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고되었다. 현재 투어링 멤버로는 zwan, a perfect circle등에서 활동한 Paz Lenchantin이 활동중이다.[6] 조이 산티아고와 찰스 톰슨이 처음 밴드를 시작할 때 블루스 펜타토닉 스케일 쓰는 음악은 하지 말자고 못박아 두었다고 한다.[7] 픽시즈 재결성 이후를 다루는 다큐멘터리의 제목이기도 하다.[8] LA출신의 포스트펑크 록밴드. 사이코빌리 장르 창시자로 꼽힌다.[9] 픽시즈가 영국 라디오 락음악 프로인 '존 필 쇼'에 출연하여 라이브 연주한 곡들을 모은 "Pixies at the BBC" 앨범에 비틀즈의 화이트앨범 수록곡인 "Wild Honey Pie"를 커버한 버전이 수록되기도 했다.[10] 앨범 애비로드의 수록곡[11] "Scream it like you hate that bi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