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폰 큄멜
1. 개요
은하영웅전설의 등장인물. 은하제국의 남작 작위를 지닌 귀족이다. 큄멜 사건의 주모자. OVA 성우는 미츠야 유지. 을지판에서는 퀸멜로 번역했는데, 이는 하쿠엥의 특성을 무시하고 죄다 ㄴ 받침으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의 사촌동생이다. 상당한 미남이긴 하지만 선천성 대사이상이란 병을 달고 태어났던 까닭에 몸이 극한으로 약해져 있어서 미남형 얼굴을 알아보기 어렵다. 치료용으로 만들어진 특수한 유제(乳劑)를 장기간 복용하면 완치할 수 있었지만,[1] 은하제국은 개조 루돌프 대제가 반포한 열악유전자 배제법에 따라 선천적 이상을 가진 아이는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역설했기 때문에 치료용 유제는 귀족을 대상으로 소량 생산되어 값비싸게 팔리고 있어 하급 남작 귀족 가문 출신인 큄멜은 그 비싼 약을 살 수 없었다. 하지만 오래 살기 어렵다는 의사들의 예상을 깨고 19세까지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남작가에 고용된 사람들이 병수발[2] 을 하고 있었다. 숙부인 프란츠 폰 마린도르프도 귀족중에서도 양식이 있는 양심가라 재산관리는 물론 뒤에서 잘 보살펴주었다.[3]
건강 상태가 이렇다보니 정치에도 관여할 상황이 안 되어서 큄멜은 은하제국에서 내전이 벌어졌을 때도 중립을 유지한 소수의 귀족 중 하나였다. 물론 관여할 만한 상태였더라도 프란츠를 따라서 라인하르트를 지지하든 중립을 선택하든 둘 중 하나를 택했겠지만 말이다.
2. 큄멜 사건
세상에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꿈이 있었지만, 몸이 약해서 이루기가 어려웠고 본인 스스로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평생의 대부분을 침대에 누워 기침에 시달리며 살아오길 19년, 이렇게 죽을려고 태어났냐며 마음 속으로 생각했고 내가 죽으면 세상은 나를 더이상 거론하지 않고 잊을 것이다, 이럴바에는 뭐라도 좋으니 이름을 역사에 남기고 싶었다고 생각했다. 결국 사촌누나인 힐다를 이용해 은하제국 카이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을 자신의 집에 초대하여 암살하는 계획에 동참한다. 이 계획의 뒤에는 지구교가 있었으며,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니고 결혼해 자손을 남기는 레벨조차 못하는-[4] 죽는 자신을 비관해서 '''나쁜 짓을 해서라도'''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싶어서 지구교의 음모에 가담한 것이다.
병약해 집안에서만 산 몸이지만 자신이 하는 짓이 큄멜가의 몰락뿐 아니라 자신을 성심껏 돌보아주고 사랑해준 마린도르프 부녀까지 끌고 들어간다는 걸 알 정도의 사리분별은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사고를 치고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에게 빈정거리기도 한다. 긴 병상 생활이 오히려 마음을 삐뚤어지게 한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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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제플입자를 가득 준비하고 기폭장치를 가지고 있다는 걸 말해줘도 정작 라인하르트는 무덤덤하게 "즉위로부터 겨우 14일. 이렇게나 단명한 왕조는 역사상 유례를 찾아 보기 힘들 것이다.[5] 본의는 아니라 하나 이 한 가지로 역사에 이름이 남을지도 모르겠군. 불명예스러운 이름이지만 후세의 평가를 지금 신경 써도 소용이 없겠지. 마찬가지로 경이 짐을 죽이 이유도, 새삼 들어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그대가 뭔 마음으로 이런 짓을 하든지 말든지 알고 싶지도 않으니 마음대로 하게."라면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아서 큄멜이 오히려 놀랐다가 곧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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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하게 미소 짓는 로엔그람과 대조적으로 분노로 일그러진 큄멜.
이를 본 힐데가르트는 '만약에 카이저께서 살려달라고 빌거나 겁먹었더라면 틀림없이 하인리히는 기폭장치를 내던지면서 천하의 제왕도 나에게 겁을 먹었다면서 이것만으로 만족한다. 기뻐했을 테지...하지만 카이저는 자존심을 목숨같이 여기는 분. 상대가 틀렸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라인하르트는 싫은 놈의 명령을 거부할 권리를 얻기위하여 군직에 몸을 담았던 사람이다. 그런데 목숨이 아깝다고 살려달라며 하인리히의 명령에 따르는 건 이제까지 살아온 라인하르트의 사고방식, 나아가 죽은 키르히아이스와 약속까지 어기는 것이기에 라인하르트는 차라리 그냥 죽는 길을 골랐던 것이다.[6]
물론 슈트라이트나 키슬링은 '제발 폐하...생각을'이란 생각을 하며 간절하게 바라봤지만 OVA나 원작에서도 무표정한 얼굴로 조금도 겁을 먹지 않아 하인리히에겐 작은 만족감도 주질 못했다. 이렇게 시간을 끌면서도 연이어 기침을 심하게 하며 몇 번이나 쓰러질 듯하다가 기회를 노리는 키슬링을 보며 기폭장치를 집어들고 멈추게 했다. 그리고 심한 기침과 같이 말했다.
그러니 키슬링은 멈춰서서 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리고 상관인 슈트라이트가 "남작이 뭔가 말하게끔, 시간을 끌도록 하게. 섣불리 자극하지 말고." 라고 한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가만히 있어!"
잰 듯한 타이밍에 터져 나온 하인리히의 목소리는 크지도 강하지도 않았으나, 격정의 광맥이 공중에 드러나 키슬링의 폭발을 미연에 막기에 충분한 박력이 있었다.
"가만히 있어. 앞으로 몇 분이니까. 앞으로 몇 분만, 내 손에 우주를 쥐고 있게 해 줘."
키슬링은 도움을 청하듯 힐다를 바라보았으나, 그녀는 거에 대답해줄 수 없었다.
"바로 이 몇 분을 위해 나는 살아왔어. 아니, 그게 아니지, 죽지 않고 온 거야. 조금만 더, 죽지 않고 있게 해 줘."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6권 <비상편>, 김완, 이타카(2011), p.64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 오딘의 지구교도 지부를 박살낸 케슬러의 명령으로 들이닥친 제국군 헌병들을 두고 대치하던 도중, 말없이 펜던트[7] 를 계속 만지작거리는 걸[8] 호기심을 두고 그 펜던트를 보여달라고 한다.
그러자, 그동안 무표정에 느긋하던 라인하르트는 분노어린 얼굴로 반응하고 "이건 그대와 상관없으니 들어줄 수 없네!" 라는 말을 차겁게 했다. 이에 큄멜도 "여기의 지배자가 누군지 잊은 겁니까? 어서 보여주시죠!" 대응했지만 라인하르트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절대로 줄 수 없다고 맞받아쳤다. 물론 키슬링과 슈트라이트는 "폐하!"를 연발하면서 창백해졌는데 예상과 달리(?) 큄멜은 강제로 펜던트를 빼앗으려고 덤벼들었다가 열 받은 라인하르트가 싸닥션을 날린 틈[9] 을 타 폭탄의 기폭 스위치를 떨어뜨렸다. 그러자 슈트라이트는 달려가서 기폭 스위치를 잡고, 키슬링은 그야말로 '''광속으로''' 남작을 덮쳐버려 팔을 비틀며 쓰러졌다. 힐데가르트가 급하게 그만하라고 말하는데 키슬링이 보니 남작은 다 죽어가는 얼굴로 경련하고 있었다. 키슬링이 무안하듯이 팔을 풀었고 힐다가 달려갔다.
큄멜은 아까같이 서늘한 얼굴과 반응을 보이던 거랑 달리 이제 아무 여한도 없다는 듯이 예전처럼 병약해도 순수한 듯한 얼굴로 돌아갔다. 그리고 슬퍼하는 힐데가르트를 뒤로 하고 마지막 미소를 지으며 "나쁜 짓이라도 좋으니 이름을 남기고 싶었다"고 말하며 숨을 거둔다. 어차피 말하던 대로 그 치료용 밀크를 먹는다 해도 결국은 곧 죽을 목숨이라 이 사건을 일으키기 전부터 계속 기침을 했고 얼굴빛도 창백해져 있었다."하인리히, 넌 '''바보'''야......."
사촌동생의 연약한 몸을 지탱하며 힐다는 속삭였다. 그렇게나 명민하고 풍부한 표현력을 가진 그녀가, 그때는 간신히 그 말만을 했을 뿐이었다. 하인리히는 웃었다. 바로 조금 전 보였던 악의에 가득 찬 웃음이 아니라, 죽음에 의해 표백되어가는, 거의 무구한 웃음이었다.
"난 무엇인가를 해내고 죽고 싶었어요. 아무리 나쁜 짓이라도, '''바보''' 같은 짓이라도 좋았어요. 무언가를 해낸 다음 죽고 싶었어요...... 그뿐이었어요."
한 마디, 한 마디를 기이할 정도로 또박또박, 하인리히는 아름다운 소년 같은 사촌누이에게 말했다. 그는 용서를 구하려도고 하지 않았으며, 힐다도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큄멜 남작 가문은 제 대에서 끝납니다. 제 병든 몸 때문이 아니라, 제 어리석음 때문에요. 제 병은 금세 잊히겠지만, 어리석음은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 주겠지요."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6권 <비상편>, 김완, 이타카(2011), p.72
그 뒤 라인하르트를 죽이려고 한 지구교도가[10] 테오도르 폰 뤼케에게 사살당하면서 유품을 보고 지구교의 음모라는게 알려진다. 사실 이미 지구교 오딘지부 소탕작전이 끝나있던 상황이었는데 이는 욥 트뤼니히트가 지구교 얘기를 꺼내 정보를 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큄멜 저택에 있던 라인하르트 일행은 그걸 몰랐고 이걸 보고 지구교가 벌인 짓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하마터면 마린도르프 부녀가 큰 곤욕을 당할 뻔했다. 하지만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의 조언과 라인하르트의 명령 -'반역자가 쏜 총을 처벌하겠느냐'- 때문에 하인리히의 친족인 마린도르프 부녀와 하인리히 폰 큄멜 역시 큰 처벌 없이 넘어가게 된다. 본인이 죽기도 했고 당주가 없어진 가문이 폐문하는 선에서 넘어간 듯. 큄멜 저택을 비롯한 남은 재산들은 이전처럼 마린도르프 가문에서 관리하여 처분했을 것으로 보인다.
힐다는 아버지에게 큄멜이 라인하르트를 죽일 생각은 없었을지도 모르나 잘못하면 다 저 세상에 갔을지도 모르고 그 자리를 지켜본 지구교도가 있는걸 감안하면 추측일 뿐이다. 그러나 하인리히의 심정을 비추어 추측하면 본인은 암살 시도 자체에 의의를 두고[11] 성공따위는 알바가 아니라는 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로엔그람 왕조의 중신인 마린도르프 부녀를 생각하면 그냥 실패로 끝나길 빌었을지도 모른다. 위에 말하던 대사나, 라인하르트가 당당하게 굴자 되려 실망과 분노의 기색을 띈 얼굴과 반응을 보면 그냥 쇼를 하면서 황제를 굴복시킨 잠깐의 시간을 목적으로 했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라인하르트를 암살하기는 커녕 지구교의 종말을 앞당긴 인물이 되겠다. 하인리히로서는 지구교에 대한 신앙심을 일절 내비친 적은 없다.[12] 어차피 그에게 제플입자를 제공한 지구교 측도 그를 단지 소모품으로 봤을 뿐이기에 상당히 비뚤어진 인격으로 마지막을 다하던 하인리히는 자신을 이용한 지구교를 비웃으면서 죽어갔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큄멜 남작은 지구교 몰락의 그 시작을 알린 인물로도 기억될지도 모른다.
그 외에 등장인물과의 접점으로는 힐다의 소개로 에르네스트 메크링거와도 만난 적이 있었다. 당시 여러 영웅들의 이야기에 심취했던 큄멜에게 가장 적합한 인물일 것이란 이유였는데 이후로도 관계가 계속됐는지 여부는 불명. 어쨌든 메크링거는 큄멜과 같은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은 대개 대리만족을 위해 애완동물을 키우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것이 없어서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애니나 원작에서는 다재다능한 인물들을 무척 존경해오던 큄멜 남작이 그러한 다재다능한 인물인 메크링거와 만날때 엄청 기뻐하며 메크링거의 경력까지 줄줄줄 꿰고 있어서 메크링거도 이렇게 알아주다니 쑥쓰럽다고 말했다. 당연히 화가이자, 음악가이자 예술가로서 다재다능하면서도 군인으로서도 능력자인 메크링거를 잘 알았기에 이렇게 만나봐서 영광이라고 무척 좋아했다. 메크링거도 자길 존경한다는 큄멜 남작에 대하여 미소와 같이 여러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남작이 이런 사고를 저지르고 죽은 뒤에 힐다는 물론 메크링거도 남작을 안타깝게 여기며 회상했다고 한다.
3. 그밖에
여담이지만 그가 좋아했던 역사상의 인물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 조조, 라자르 카르노[13] , 투그릴 벡[14] 등이 있었다. 스스로 역사상 다재다능한 인물들을 존경한다며 말했고, 그래서 힐다가 메크링거를 소개했다. 자신의 병약에서 오는 무능함에 대해 이런 인물들을 동경해왔고, 그런 의미에서 암살 기도는 단지 역사에 남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카이저에 대한 일종의 열폭도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원작이나 OVA에서는 그의 방에 이들 초상화가 걸려있다는 게 나온다.
참고로 큄멜 저택은 오딘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