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석유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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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광역시 중구 종가로 305 (우정동)에 위치한 한국석유공사 본사 사옥.
'''에너지 그 이상'''의
'''가치'''를 '''실현'''하는 '''기업'''
한국석유공사 CEO 인사말 中
'''에너지기업 선두주자 한국석유공사의 꿈은 세계속에서 더욱 빛납니다.'''
한국석유공사 회사소개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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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석유자원의 개발, 석유의 비축, 석유유통구조의 개선에 관한 사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1979년 3월 3일[3] 에 설립된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시장형 공기업. 본사는 울산광역시 중구 종가로 305 (우정동)에 있다.
근거 법률은 「한국석유공사법」이다. 설립 당시에는 '한국석유개발공사'라는 이름이었으나 1999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1970년대 오일 쇼크를 겪은 당시 정부는 석유자원의 선제적 확보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유전, 생산광구를 소유하거나 지분을 가지고 있을 경우에는 비상 상황에 석유수급에 큰 도움이 된다. 그에 따라, 국가 차원에서 유전개발에 직접 뛰어들 목적으로 이 회사가 설립되었다.
설립 당시 이 회사의 약칭은 '''유개공'''이었으며, 이는 유공(대한석유공사, 現 SK이노베이션)와 구분하기 위함이었다. 현재는 따로 약칭은 없다. 옛날 유공과 구분하기 위해 '유공' 대신 '석공'으로 줄여서 부른다는 얘기가 있으나 '석공'은 이미 대한석탄공사의 약칭으로 쓰이고 있다.
노조는 한국노총 공공산업노련 소속이다.
2. 역대 임원
2.1. 이사장
1984년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에 따라 이사장제가 신설되었으나, 1997년에 폐지됨.
- 이종호 (1984~1987)
- 윤성민 (1987~1988)
- 이상익 (1988~1990)
- 류근환 (1990~1991)
- 최문규 (1991~1993)
- 유양수 (1993~1996)
- 이재옥 (1996~1997)
2.2. 사장
- 김동조 (1979~1980)
- 이원조 (1980~1986)
- 최성택 (1986~1990)
- 유각종 (1990~1993)
- 장석정 (1993~1998)
- 나병선 (1998~2001)
- 이수용 (2001~2002)
- 이억수 (2002~2005)
- 황두열 (2005~2008)
- 강영원 (2008~2012)
- 서문규 (2012~2016)
- 김정래 (2016~2017)
- 이재웅 사장대행 (2017~2018)
- 양수영 (2018~ )
3. 주요 사업
주요 설립 목적은 아래와 같다.
현재는 점차 그 사업영역이 더 넓어졌다.
- 석유유통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한 알뜰 주유소의 운영과 그 유통업무.
- 국내에 석유정보 제공: 자동차를 몰고 있는 위키러라면 한번쯤 들어가 봤을 오피넷 운영도 이곳에서 한다. 또한 더욱 전문적인 업계 자료는 패트로넷에서 접할 수 있다.
- 시추선 사업: 국내 유일의 시추선인 '두성호'를 운영하며 수익을 내고 있다.
- 에특회계(에너지 및 자원사업 특별회계): 에너지 및 자원관련 기금 운용
특히 우리나라가 산유국이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회사가 바로 이곳이다. 울산 앞바다의 '''동해-1''' 가스전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천연가스와 석유[7] 를 생산 하고 있으며, 천연가스는 가스관을 통해 가정에 바로 공급되고 있다.
이 때문에 '''언론에서 아직도 "우리나라는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입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면, 석유공사 임직원들은 속이 답답해진다.'''[8][9]
4. 위기
대한민국 정부에서 자원외교가 추진될 당시, 큰 역할을 맡았다. 이 과정에서 캐나다의 하베스트社를 비롯한 해외 석유회사들을 매입하였다.
특히 2010년 9월에는, 영국의 석유회사인 다나 페트롤리엄의 주식을 대규모 공개매수하여 적대적 M&A에 성공하였다. 기사 영국 공정거래청에서는 이 적대적 M&A를 승인하여 정식으로 자회사에 편입하는데 성공. 이 당시에 대한민국 기업(사기업이든 공기업이든)이 적대적 인수합병에 성공한 최대의 기업이라서 화제가 되었다. 이렇게 회사의 규모와 역할이 점점 커질 것이라 기대되었으나...
이후에는 안타깝게도... 하베스트와 그 자회사인 NARL의 인수과정에 대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특히 2014년 하반기부터 지속된 저유가로 인해, 수익에 큰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하베스트 자체가 수명이 끝난 유전이었기 때문에 채산성이 없다.
공공기관 중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연속으로 적자가 난 곳이 13군데인데, 해당 기관들 손실액의 무려 90% 이상이 한국석유공사의 것이다.#
2016년 한국가스공사와 통합이 거론되었으나, 통합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석유공사의 핵심이었던 E&P사업의 축소는 이뤄지게 되었다.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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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당시에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했었고, 이후에 위 사진의 평촌신도시 옛 본사 건물에 입주하였다. 2014년 11월에 매각이 확정되었는데 금액이 무려 702억 원... 주소는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관평로212번길 57, 지번 주소로 관양동 1588-16이었다. 건물 내에 외환은행 지점이 있었는데 청산 이후 이곳에 있던 은행도 이사할 듯. 현재 이 자리에는 '힐스테이트 에코 평촌'이라는 주상복합이 들어왔다. 현재 본사는 울산의 우정혁신도시로 이전하였다.
개그콘서트 코너였던 억수르의 이름을 바꾸게 한 직접적인 원인제공자이기도 한데, 그 전의 코너 이름을 생각해 보면 오일머니와 직접 연관이 있는 회사이니만큼 당연한 압박이긴 했다.
참고로 코스피에 상장되어 있는 한국석유와는 전혀 상관없는 회사이다. 한국석유(또는 한국석유공업)는 사기업이다! 이름이 비슷해서 그런지 한국석유 주식에 투자한 사람들이 석유공사에 전화하여 요새 주가가 왜 이러냐고 석유공사 직원에게 따지는 상황도 드물게 발생하곤 한다.(...) 또한, 어르신들은 유공과 헛갈려 하기도 한다. SK이노베이션이 유공이던 시절에 설치한 시설에 대한 민원이 뜬금없이 여기로 날라오기도 한다.
6. 노동조합 현황
참고
[1] ‘한국석유공사’로의 사명 변경일은 1999년 1월 1일이다.[2] 공기업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서 일괄 제외되었고 따라서 공기업은 금융 회사(...)나 중소기업(...)은 당연히 아니므로 단순히 법적으로 해석(대기업집단도 아니고 중소기업도 아닌 기업을 중견기업으로 본다)하면 중견기업에 속한다고 해석할 여지가 없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규모랑 관계가 없이 '공기업'들에 대한 예외로 인한 것이라 일반 기업집단의 기준으로 규모를 중견기업이라 보기는 어렵다. 아예 금융업처럼 분류에서 제외된 것이기 때문에 대-중견-중소 분류와 별개로 봐야할 것이다. 대기업 이상의 규모를 갖춘 공기업들이 많은데 이들을 중견기업으로 분류하는 자료나 기사는 없다.[3] 당시 사명은 ‘한국석유개발공사’였다. ‘한국석유공사’로의 사명 변경일은 1999년 1월 1일이다.[4] 한국가스공사, 포스코대우 등도 유전개발을 하고 있으나, 아예 회사의 존재목적이 유전개발인 이 회사와는 조금 다르다.[5] 그러나 유전탐사를 했던 것은, 과거의 역사가 될 지도 모르는 기로에 서 있다. 아래의 '위기' 항목 참조.[6] 엑슨모빌, 로열 더치 쉘, BP plc, 토탈, 셰브런. 이상 다섯 회사를 보통 메이저 석유회사라고 한다.[7] '컨덴세이트' 라는 초경질유가 생산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검은 원유와는 조금 다르다.[8] 물론, 컨덴세이트가 아니라 원유를 생산해야만 산유국이라는 주장도 있다.[9] 그러나 동해-1가스전은 2018년에 고갈될 것으로 보이며, 2016년 10월부터 생산을 개시한 동해-2가스전 또한 2020년 고갈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상업성있는 유전/가스전의 탐색을 계속 하고는 있으나 성과가 좋지 않다. 이대로라면 곧 한국은 비산유국으로 돌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