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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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現 NC 다이노스 2군 감독. NC 다이노스의 스카우트 팀장, 단장직을 역임했으며 2018년에는 김경문 감독의 사퇴 이후 NC 다이노스의 감독대행을 맡았다. 2018 시즌 당시 KBO 리그 1군 감독 중에서 유일하게 '''프로 선수 경험이 없는 사람'''이다.[4]
전국 야구계의 변방인 춘천고등학교 야구부 출신[5] 최초의 프로 감독이기도 하다.
2. 선수 경력
현역 시절 포수로 활약했지만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배명고를 졸업한 후 홍순호, 구윤 등과 함께 중앙대에 입학했지만 대학 졸업 후 프로 지명은 받지 못했다.[6] 본인 말로는 프로 2개 구단에서 입단 제안이 들어왔지만 어깨 부상이 너무 심해서 먼저 거절을 했다고 한다. 결국 당시 한국실업야구의 강팀 중 한 곳이던 한국화장품 야구단에 입단했지만 그곳에서도 주전은 꿰차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1992년 퇴단하고 지도자의 길로 접어든다.
3. 프런트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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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우트 팀장 시절.
아마 야구 생활을 끝내고 2011년 신생 구단 NC 다이노스의 스카우트 팀장을 역임했다. 이때 박민우, 나성범, 이민호 등 팀의 주축이 되는 선수들을 픽하면서 팀의 기틀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으나 그 이후에는 상위 라운드에서의 선택이 조금 아쉽다는 평가도 있다. 관련 기사
2017년부터는 승부조작 고의 은폐 혐의 등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배석현 단장 대신 구단의 3대 단장으로 선임되었다. 하지만 단장으로서의 평가도 미묘한게, 180만 달러를 주고 데려온 제프 맨쉽이 부상으로 돈 값을 못하거나 메디컬 문제가 드러난 로건 베렛을 그대로 영입하는 등 외국인 선수들에 대한 문제가 많았기 때문. 또한 2018 시즌을 앞두고는 불펜 투수들과 연봉 고과 문제로 트러블이 발생하기도 했다. 뒤늦게 드러난 사실이지만 KBO 트레이드 이면 계약 파문이 드러나면서 이에 대한 책임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볼 수 있다.
4. 지도자 경력
4.1. 아마추어 시절
NC 다이노스로 오기 전까지는 주로 고교야구 감독을 맡았다. 특히 2002년부터 10년간 재직했던 장충고 감독 시절에는 전국대회 우승권과 거리가 멀었던 팀을 수 차례 우승시키며 팀의 전성기를 이끌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체육교사로서 일반 학생들에게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장충고 감독 시절 지도했던 제자들로는 유희관, 오현택, 이용찬, 이두환, 김명성, 강윤구, 백용환, 최원제, 박민석, 김준완, 이승우, 김상호, 김동한, 김경모, 윤영삼 등이 있다. 참고로 이수중 감독 시절 제자 중에는 황재균과 KBO 리그 신인왕 중 최악의 선수도 있다.
4.2. NC 다이노스 감독 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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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부터 팀을 이끈 김경문 감독이 2018년 6월 3일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면서 감독 대행을 맡게 되었다.[8] 팀 전력이 투타에서 완전히 악화된 가운데 치고 올라가기 보다는 선수단을 잘 추스려 신축 야구장 시대를 기약하기 위한 교두보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 본인은 "형님 같은 리더가 되겠다"거나 "선수단이 동요하지 않고 안정감을 느끼도록 하는 게 우선"이라고 언급하며 선수단 안정화가 우선임을 밝혔다.
하지만 김경문 감독을 내치고 그 자리에 앉힌 사람이 프로 경력이 없는 사람인데다가 직전 직급이 단장이라는 점은 좀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라는 평이 많다. 2015년 마이애미 말린스가 기존 감독인 마이크 레드먼드를 경질하고 단장이었던 댄 제닝스를 감독에 앉힌 경우도 있긴 하지만 KBO 리그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결정. 물론 프런트에서 의지를 가지고 내려보낸 것일 수도 있고 본인이 프로 현장에 대해 개인적인 의욕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유영준 단장 본인도 몰랐다고 언급한 것이나 김경문 감독과 함께 했던 최일언, 김평호 등 현장 코치진이 예의를 이유로 대행 자리를 거절한 것을 보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측면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결국 6월 4일 김평호 수석코치, 양승관 타격코치는 구단에 사의를 표했다.#
감독 교체의 배경을 두고 로건 베렛 영입 과정에서 나타난 갈등이 크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베렛의 메디컬 문제는 이미 기사화된 바가 있고, 김경문 감독도 아픈 선수를 영입한 구단에게 불만을 털어놓았다는 것. 그럼에도 구단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김경문 감독은 베렛에게 무기한 2군 처분을 내리며 없는 선수 취급을 한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유영준 감독 대행에게도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는 볼 수 없다.
일단 팀 수습이라는 1차 과제는 이뤘고, 9월에는 7연승까지 하는 등 시즌 막판까지 kt wiz와의 치열한 탈꼴찌 싸움을 했으나 아쉽게도 탈꼴찌에는 실패했다.
시즌 종료 후인 10월 17일 구단이 이동욱 수비코치를 2대 감독으로 선임하면서 공식적으로 감독 대행직을 끝냈다. 본인은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었다"며 소회를 밝혔고 이동욱 신임 감독에게는 선수들의 부상 방지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부상으로 인해 온전한 전력으로 싸운 적이 별로 없던 게 못내 아쉬웠나 보다.
4.3. NC 다이노스 2군 감독
이동욱 감독 취임식에서 유 전 감독대행이 2019시즌 코치로 합류한다고 발표되었다. #
2018년 11월 23일 2군 감독을 맡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2군 감독으로 부임한 첫 해인 2019년, 팀은 28승 13무 54패 승률 0.341이라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하며 첫 리그 꼴찌를 기록했다. 하지만 전력이나 운용상의 문제가 있던 것은 아니고 승리보다는 유망주 육성에 초점을 맞춰 시즌을 치렀기 때문이다. 자체 22인 엔트리를 쓰고 야수들의 교체를 최소화 하면서 최대한 선수들에게 기회를 부여했다. 투수들 역시 경기 내용이나 이닝보다는 철저하게 투구수로 끊어가는 운용을 보였다. 퓨처스 최하위 NC, 엔트리를 22명만 쓴다?
2020년에는 12연승을 거두는 등 호성적을 올리고 있다. 박준영이나 박시원 등 상위 지명을 받은 선수들이 2군에서 좋은 활약을 해주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5. 역대 감독 전적
감독대행 시절 전적이 좋다고 볼 수는 없지만, 희한하게도 엘롯기 상대로는 매우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엘롯기 상대로는 18승 11패, 승률 '''0.621'''을 기록하였다. 엘롯기 세 팀 다 2018년 전력에 비해 낮은 성적을 기록하면서 팬들에게 무수한 비판을 받았는데, 이 원인은 어쩌면 유영준 대행의 탁월한 지도력(?) 때문일수도 있다.[10]
6. 기타
- 장충고 감독 시절 고교야구의 악폐습인 집합, 구타, 가혹행위를 엄격하게 금지하였다.
- 장충고를 전국대회 우승으로 여러 차례 이끌자 모교인 배명고등학교 동문들의 원성을 들었다고 한다.
- 중학생 유망주들을 스카우트 할 때 유망주들과 학부모들이 "감독님은 좋은데 학교(장충고)가 별로다"는 말을 자주 들어서 스카우트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 천하장사 소시지를 무지 좋아한다. 엔갤에 가끔씩 목격설이 올라오는데 거의 다 편의점에서 그것만 찾았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1] 기계 유씨 26세손 '濬'자 항렬, 개화사상가 유길준, 前 문화재청장 유홍준, 국회의원 유기준과 항렬이 같다.[2] 체육교육과 82학번[3] 6월 3일부터[4] 나머지 감독들은 전부 KBO 리그 선수 경력이 있고 트레이 힐만 당시 SK 감독은 마이너리그에서 뛴 경험이 있다. 의외이지만 키움 장정석 감독 역시 1군에서 대주자/대수비/대타 등으로 나름 존재감을 과시한 선수였다. 당시 이강철과 더불어 최고의 잠수함 투수였던 박충식을 상대로 만루홈런을 친 바 있다. 대신 장정석 감독은 지도자 경력이 그 전까지 전무했다.[5] 모교가 아니라 지도자로서다.[6] 이 당시 유영준의 대학 입학 동기들의 이름을 보면 엄청 화려하다. 고교야구 흥행 시대의 마지막 영웅이었던 박노준과 김건우를 비롯해 민경삼, 김상국, 이건열, 장채근, 김동기, 김정수, 차동철, 김대현 등이 유영준과 동기생이다. 대부분 KBO 리그에서 한가락 이름을 날린 선수들이다. 특히 유영준과 포지션이 겹치는 포수만 해도 장채근, 김동기, 김상국 등 3명이나 된다.[7] 팽팽한 투수전으로 진행됐으나 우익수쪽으로 날아간 타구를 우익수가 잡았다가 놓치며 1실점했고 그게 결승전의 유일한 득점이었다. 참고로 결승전이 잠실 야구장에서 열렸다.[8] 사실상 NC의 두 번째 감독 대행이다. 첫 번째 감독대행은 김평호 코치로, 김경문 감독이 2017년 7월 지병으로 입원하게 되어 잠시 감독 대행을 맡은 바 있다.[9] 감독 대행[10] 사실 강팀의 조건 중 하나는 양민학살이다. 즉, 시즌 꼴찌였던 NC를 이 세 팀은 쉽게 잡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어려움을 겪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