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당

 





'''작위'''
석성후(石城侯)
'''최종직위'''
소무장군(昭武將軍) 겸 관군태수(冠軍太守)
겸 도독 (都督)
'''성씨'''
(韓)
''''''
(當)
''''''
의공(義公)
'''생몰기간'''
(? ~ 227년[1])
'''고향'''
유주 요서군 영지현
1. 개요
2. 정사
2.1. 손견 휘하
2.2. 손책 휘하
2.4. 진란 토벌
2.7. 강릉 전투
2.8. 죽음
2.9. 사후
3. 연의
4. 기타
5.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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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한 말과 삼국시대 오나라의 인물. 자는 의공(義公). 유주 요서군 영지현 사람. 오나라 인물들 중 찾아보기 힘든 최북방 출신이다.
황개, 정보와 함께 손가 3대를 받든 오의 숙장으로 셋 중 가장 오래 살았다. 그러나 자식을 잘못 둔 탓에 죽고나서 위나라 땅에 묻혀버렸다. 생전보다 사후가 더 불행한 인물.

2. 정사



2.1. 손견 휘하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숙하고, 힘이 세어 손견에게 신임을 받았고, 정벌에 따라 두루 돌아다녔으며, 수차례 위험과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적을 무너뜨리고 사로잡아 별부사마가 되었다.
오서에 따르면 한당은 근로와 고생함 속에서도 공을 세웠으나, 군대의 하인으로서 영웅 호걸들에게 분속되었기에, 작위를 더해주지 못하고, 손견이 세상을 떠날 때, 별부사마로 삼은 것이다.

2.2. 손책 휘하


손책이 동으로 장강을 건너 3군을 토벌하는데 따라가니, 선등교위로 승진하여 병사 2천 명과 기병 50필을 받았다. 유훈을 정벌하는데 따라가 황조를 격파하고, 돌아와 번양을 토벌하며, 낙안현장을 맡으니, 산월족들이 두려워 하며 복속하였다.

2.3. 적벽대전


후에 중랑장으로 주유 등과 함께 조조를 막아 격파했다.
황개전 주석 오서에 따르면 적벽의 전투 중에, 황개는 유시(流矢)에 맞아서, 차가운 날씨에 물속에 추락하였는데, 오나라 군대 사람들에게 구해졌지만, 그들은 황개인지 몰라 측간 중에 두었다. 황개는 자기 힘으로 큰 소리를 내어 한당을 부르니, 한당이 이를 듣고 말했다.

이는 공복(황개)의 소리다.

그에게 향해 가서 눈물을 흘리며, 그의 옷을 풀어 바꿔 입으니, 마침내 살아나게 되었다.

2.4. 진란 토벌


장패전에 따르면 장료가 진란을 토벌하던 때에, 장패는 별동대로써 환현에 진출하여 오의 장수 한당을 격파하여 손권이 진란을 구원하는 것을 막아냈다. 한당은 병사를 보내어 장패에 대항하였으나, 장패는 이들과 봉룡에서 싸웠고, 한당이 재차 병력을 보내어 협석에서 장패를 영격하였으나, 장패는 더불어 싸워 이를 격파하고 귀환하여 서구에 주둔하였다.

2.5. 번성 공방전


또한 여몽과 함께 남군을 습격해 취하니, 편장군으로 승진하고, 영창태수가 되었다.

2.6. 이릉대전


의도의 전역 때에는 육손, 주연 등과 함께 촉을 공격했다. 탁향에 주둔하며 촉을 대파하니, 위열장군으로 승진하고, 도정후에 봉해졌다.

2.7. 강릉 전투


조진이 남군을 공격하자, 한당이 동남쪽을 막아내었다. 외방에서 사령관으로 있으며 장수와 병사들을 고무하여 힘쓰게 하여 한마음으로 굳건히 수비하고, 또한 감찰관을 공경히 바라보고, 법령을 받들어 준수하니, 손권이 이를 훌륭하게 여겼다.

2.8. 죽음


223년, 석성후에 봉해지고, 소무장군으로 승진하며, 관군태수를 맡고, 나중에 또 도독의 칭호가 더해졌다. 죽음에 임하여서는 해번의 병사 1만 명으로 단양의 도적을 토벌하여 격파하였다.
병들어 죽으니, 아들 한종이 후작을 잇고 병사를 영솔했다.

2.9. 사후


이렇게 그의 행적을 보면 오의 훌륭한 충신이지만, 아들 교육 하나를 제대로 못한 것 때문에 그의 사후는 매우 씁쓸하다.
227년 손권이 석양 정벌을 떠나면서 그 해 부친상을 당한 한종에게 아버지의 뒤를 이어 무창을 지키도록 하였다. 하지만 한종은 음란하고 법이나 도리를 지키지 아니한 짓을 하였다. 손권은 괘씸했지만 아버지 한당을 생각해서 책문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종은 스스로 잘못을 알고 있어서 속으로 두려운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아버지 한당의 관을 싣고 가족과 모친의 집안에 속한 부곡들 남녀 수천명을 데리고 위나라로 달아났다.'''[2] 위에서는 그를 장군으로 삼고, 광양후에 봉했다. 그 뒤 한종은 수차례 오나라 변경을 침범하고 백성들을 살해하여, 손권이 항상 이를 갈았다.
후일 동흥제 전투 당시 한종이 위의 선봉으로 오의 정봉과 맞섰다. 하지만 위에 와서도 정신을 못차렸는지 적과 대치중인데도 술을 마시고 잔치를 즐기다 결국 패하고 전사했다. 제갈각은 생전 손권이 그를 증오한 것을 기억해 그 머리를 베어 손권의 묘에 가져다바쳤다.

3.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손견의 휘하 장수로서 큰 칼을 잘쓰는 용장이었다. 동탁 토벌전 때부터 종군하여 많은 전공을 올린다. 반동탁 연합군에 참가한 손견이 데려온 사천왕으로 황개, 정보, 조무와 함께 첫 등장한다.
손견군이 유표의 양양성을 공격할 때 황조의 부장 장호가 똑같이 대도를 쓰는 걸 보고 일기토를 떠 장호를 죽인다. 이후 거센 바람 때문에 깃발이 부러지자 한당은 손견에게 좋은 징조가 아니니 군사를 거두라고 진언했지만 손견은 듣지 않았다. 이후 손견은 황조를 추격하다가 전사한다.
손책의 강동 평정에 종군한다. 손책군이 엄백호군을 공격할 때 한당을 보내 엄여와 싸우게 하고 그동안 뒤로 돌아간 장흠과 주태가 엄여를 공격하니 엄여는 패해 성으로 도망쳤다.
이후로도 군의 중핵으로서 여러 곳에서 전공을 세웠으며, 특히 주태와 함께 출전한 전투가 많았다.
적벽대전 직전 조조군의 선봉대를 주태와 함께 영격해 초촉을 죽였다. 황개가 적벽에서 조조군의 함선들을 불태우고 화살에 맞아 강에 빠지지만 한당이 황개를 구했다.
남군 공방전에서 주유가 죽은 척한 뒤 조인을 유인하여 대파하는데 여기에 한당도 참여한 것으로 언급된다. 정사에서 한당은 이 시기에 진란을 구원하러 갔으니 여기에 있을 수가 없다. 한당이 남군을 습격해 취했다는 기록은 여몽이 주도로 나와있으니 번성 공방전 시기이다.
이릉대전에서 서전에 주장이되고 주태를 부장으로 삼아 10만 정예병을 이끌고 촉군과 싸우다가 관흥, 장포, 황충, 사마가 등에게 대패하였다. 한당이 손견 또래로서 이미 70에 가까운 나이[3]임에도 그런 묘사 없이 잘만 싸운다. 이후 대도독이 된 육손을 어리다고 깔보고 반목하다가 육손의 계책에 감복하여 효정산에서 촉군을 크게 물리친다. 정사에서 육손을 갈구는 장수들의 이름들은 나오지 않았는데 단지 한당이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악역을 떠맡은 것이다.

4. 기타


북쪽인 요서 지방 출신임에도 남방의 험한 기후에서 꽤 오래 살았다. 오나라의 요절징크스를 빗겨간 사례 중 하나이다.
초창기부터 직위를 자세히 보면 그다지 높지가 않다. 뛰어난 커리어와 풍부한 연륜[4]을 감안하면 의외인 케이스. 말년에도 역시 활동 기간이 긴 것에 비해서 직위는 생각보다 높지 못하다. 출신지가 동떨어져서 강동의 호족들에게 출세에서 밀린 것[5]같기도 하다.[6]
국내 삼덕들이 종종 불한당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5. 미디어 믹스


한당/기타 창작물 문서 참조.

[1] 자치통감에 의하면 227년으로 기록되었다.[2] 도망가면서 자기 아버지 시체는 챙겼는데, 이 시절 역적 집안은 연좌제 등으로 어떤 꼴을 당할지 모르고, 부관참시등으로 시체라고 안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손권에게 한당이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해보면 한종을 증오할지언정 한당에게 뭔 짓을 하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결국 한종이 자기 아버지 시체를 들고 간 건 '''위나라에 잘보이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크다.[3] 손견보다 많이 어려서 유비와 비슷한 연배라고 쳐도 이미 60대 초중반이다.[4] 손견 시대 때부터 활약한 정보, 황개, 한당의 나이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그와 비슷한 시기에 커리어를 함께 했던 주치가 손견과 동갑인 156년생인걸 감안하면 이들의 생년도 그와 비슷한 150년대 초반~중반 정도에 걸쳐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정보 같은 경우는 적벽대전 때 손오의 군권 1인자인 주유에게 반감을 표명할 만큼 관록이 있었고 동오의 제장 중 가장 나이가 많아 정공이라고 불렸다는 기록으로 볼 때 손견보다도 연상으로 보여진다.[5] 그런데 한당처럼 정보도 출신지가 동떨어졌지만 정보는 우대받았다.[6] 손오의 한당과 비슷하게 개국공신의 반열에 오를만큼 경력이 뛰어나고 연륜이 쌓였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지위가 높지 않았던 케이스로는 촉한의 조운과 조위의 만총을 들 수 있다. 그래도 만총은 매우매우 장수해서 말년 조예~조방 시절에 태위까지 영전했고 조운은 추증해서 순평후 대장군까지 올랐다. 한당도 정상적인 케이스라면 충분히 추증됐을 법도 하지만 아들 놈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