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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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젊은 세대에겐 영화 아저씨의 '1958년 개띠 오명규'로 잘 알려져 있는 편. 실제로 1958년 개띠.
2. 생애
1958년 4월 2일 경상남도 진주시 출생.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부친은 해군 장성을 지낸 송왕호 제독이다.[3] 유명해졌을 때 인터뷰에 의하면 부모님께서 허락한 연영과 입학의 조건이 '''강의 쪽으로 나가는 것'''이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강의도 나가는 편이니 약속은 지킨 셈.
연극계에서는 꽤 알려졌으며,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에스떼라공 역은 자타가 공인하는 명연기였다. 다만 TV나 영화에서는 상대적으로 듣보잡이었는데, 1989년 제작된 미니시리즈 '비극은 없다'에서 사망전대이자 역사의 굴레 아래서 좌절하고 고생하는 지식인으로 출연하여 인지도를 얻었다. 내용 자체가 시대에 맞지 않는 극단적인 반공 노선[4] 이었고 노골적인 NTR, 성묘사 등 꽤 선정적인 이미지로 논란이 많아[5] 인지도가 낮았지만[6] 이때 꽤 괜찮은 이미지를 남겼다. 이후 여러 트랜디 드라마에서 모범적인 회사원 및 원조 실장님 전문 배우로 얼굴을 알렸으며, KBS 드라마 삼국기의 태종무열왕 연기 등으로 이름을 알렸다. 2000년 초반에는 태조 왕건 첫 회에 출연했다. 극초반에 궁예가 철원성을 점령하는 장면에서 철원성주로서 신라의 방어군을 이끄는 장면에서 열연했고, 극중 초반이라 인상도 깊게 남긴 편이었다. [7]
송영창이 대중에게 인지도를 알린 작품 중 하나는 1992년 당시 유행하던 MBC의 샐러리맨 드라마 도시인이 있다. 주인공 최수종 및 동료 여사원으로 배종옥등이 등장하는 이 작품에서 직장 상사역을 맡아 지적이면서도 까탈스러운 인텔리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모습은 2000년 영화 반칙왕까지만 해도 비슷하게 묘사된다. 그 외에 1994년에는 KBS1 <다큐멘터리 극장>의 2대 MC를 맡은 바 있다.
'''하지만 아래 후술될 사건으로 인해 위기를 맞게 된다'''.
3. 출연 작품
3.1. 드라마
- 나쁜 녀석들: 악의 도시 - 배상도
- 모두의 거짓말 - 홍민국
- 삼국기 - 태종무열왕
- 친애하는 기타 여러분 - 이응두
- 제4공화국 - 허문도
- 비극은 없다
- 자백 - 오택진
- 타임즈 - 백규민
- 태조 왕건 - 철원성 성주
3.2. 영화
3.3. MC
- 1994년 다큐멘터리극장 (KBS1)
4. 미성년자 성매매 사건
2000년 9월,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8] 호수 공원 주변 공터에서 전화사서함을 통해 알게 된 16세 청소년에게 15만 원을 주고 그랜저 차량 안에서 성관계를 갖는 등 모두 2차례의 관계를 맺는 혐의를 받있다. 이에 송영창은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은 바 있다. 사건 직후 송영창은 KBS·EBS·MBC 등에 출연하지 않게 되었고, SBS 출연과 연극 무대에서만 활동했다. 미성년자 성매매로 인해 이미지가 굉장히 크게 실추되었던 것이 원인. 그나마 그냥 성매매도 걸리면 말이 많은데, '''미성년자 성매매'''로 걸렸던 것이 크나큰 타격이었다. 보통 이런 사건이 적발되는 것은 현장에서 덮치기보다는 경찰이 잠복근무나 손님을 가장한 함정수사인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잡힌 미성년 피해자가 '''자기에게 잘해주었던 탤런트 아저씨'''를 기억했던 게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이 사건으로 구속되어서 잠시 감옥에 갔었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한 달 정도 옥살이를 한 후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이후 어학연수의 명목으로 가족을 데리고 캐나다에 갔었다고 한다.
그는 결국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물의를 일으켜 구속된 첫 사례가 되었으며 지금도 KBS·EBS·MBC 영구출연정지 연예인 대상자로서 2년 후 같은 혐의로 구속된 이경영과 함께 모든 지상파 출연정지 살생부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자주 언급되는 배우이다.[9] 캐나다 어학연수 이후에는 본업인 연극 무대에서 주로 활동했으며, 중간에 여의도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다 접었다. 2009년에는 관련 업계에서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KBS·EBS·MBC 영구출연정지 이후 한동안 SBS 출연 및 연극무대 등에서만 활동하다가 2004년에 영화 '형사'로 연예계에 복귀했다.# 영화판에서 중량감있는 남자 조연이 고갈[10] 되었고, 그 자리를 이경영이 꿰어차다가 점차 2010년대 후반에는 송영창의 비중이 더 높아지면서 여러 메이저급 영화에서 비중있는 조연으로 영화에 얼굴을 비추고 있다. 맡는 배역들이 사극의 간신이나 조직의 보스, 친일파, 비리 공무원 등 각종 악역으로서 가지각색으로 죽는 사망전대.
[1] 세일러 우라누스로 유명하다.[2] 뮤지컬 배우로 활동 중이다.[3] 참조.[4] 하긴 그럴 만한 게 원작소설이 나온 게 1957년이니 극단적일 수밖에 없었다. 원작자는 장군의 아들 소설 원작으로도 유명한 홍성유.(1928~2002)[5] 방송윤리위원회로부터 경고까지 먹었다. 여자 가슴이 노출되지 않았다뿐이지, 키스씬이 꽤 깊게 나오고 거의 알몸 상태로 나온다든지 지금은 더 난리가 나는 장면들이 속출했으니.[6] 한국 방송 역사상 첫 외주 드라마였으며 나중에 극장용으로 편집돼서 "사랑과 죽음의 기록"이라는 제목으로 1989년 10월 상영되기도 했다. TV 연출은 영화감독인 정진우.[7] 삼국기에서 태종무열왕 역으로서 신라를 상징하는 왕 역할을 했으니 태조 왕건에서도 실질적으로 신라군을 상징하는 얼굴을 가진 그를 캐스팅한 것은 연출진에서 의도한 듯하다.[8] 당시에는 일산동구 및 일산서구로 분리되지 않았다.[9] 다른 점이 있다면 이경영이 모든 지상파인데 비해 송영창은 유독 KBS·EBS·MBC 등에서만 그랬다는 거다.[10] 그냥 조연들은 많지만 '주조연급'이 드물다. 사실 이건 이경영 리즈 시절에도 남자 원톱감이 많지 않단 소린 많이 나왔는지라... 이경영이 다작을 한 원인이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