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벌(영화)

 


'''이준익 감독의 삼국시대 시리즈'''
'''황산벌'''
'''→'''
'''평양성'''
'''황산벌''' (2003)
''Once Upon A Time In A Battlefield''

'''감독'''
이준익
'''각본'''
최석환, 조철현
'''제작'''
이준익, 조철현
'''기획'''
조철현
'''조감독'''
이성호
'''촬영'''
지길웅
'''조명'''
한기업
'''미술'''
권진모, 강승영
'''음악'''
오석준
'''출연'''
박중훈정진영이문식, 류승수
'''장르'''
사극, 블랙코미디
'''제작사'''
씨네월드
'''배급사'''
[image] 씨네월드
'''개봉일'''
[image] 2003년 10월 17일
'''상영 시간'''
104분
'''총 관객수'''
[image] 2,771,236명
'''상영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1. 개요
2. 등장인물
2.1. 백제 측
2.2. 신라 측
2.3. 그 외
3. 줄거리
4. 평가
4.1. 사투리
4.2. 전통적 영웅상 뒤집기
4.3. 관객과 학계의 반응
5. 여담
6. 명대사
7. 관련 문서


1. 개요



왕의 남자로 유명한 이준익 감독의 출세작이다. 주요 인물 밖에도 각종 단역과 카메오 등 화려한 캐스팅이 돋보인다.[1]
포스터만 믿고 "코미디 영화네?"라는 반응을 보인 사람들도 꽤 있었다.[2] 물론 반은 맞지만... 실상은 '''전통 사극의 클리셰를 뒤집고 비튼 사극'''이다.
처음 크랭크인 될 당시 TV 광고로 쓰인 영화의 예고편은 이 영화를 한편의 코미디로 광고했고, 영화의 초중반부가 상당한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으로 채워져 있기에[3] 관객 대다수는 역사를 배경으로 한 평범한 코미디, 혹은 적당한 수위의 블랙 코미디 정도로나 받아들였지만...
'''한국 코미디 영화와 사극 영화의 역사에 남을 명작이라는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다.'''

2. 등장인물




2.1. 백제 측


>''우리는 명색이 결사대여! 아, 결사대가 일당 10도 못혀? 아그들에게 단단히 일러라. 죽기 전에 신라놈들 열놈 죽였는가 안 죽였는가 나한테 확인 받고 뒤지라고! 알겠능가!"
"야!"[4]
"할당량 못 채우고 뒤진 놈은 나가 아주 죽여버릴겨 그냥..."
백제 5천 결사대의 지휘관. 역사대로 출전 전 자기 손으로 처자식의 목숨을 끊고 좌평들을 위협하여 결사대를 이끌어 김유신의 신라군을 상대로 분전하지만, '거시기'의 정체를 간파한 김유신의 총 공격을 물리치지 못하고 끝내 황산벌에서 전사한다. 성격은 "밥은 역시 전쟁터에서 먹는 밥이 젤루 거시기혀." 라는 대사에서 미루어 알 수 있듯 FM에 부합하는 모범적인 군인 캐릭터다. 작중 김유신에 비해 훨씬 젊은 분장을 하고 있지만 최소 20년은 넘게 전장에서 구른 베테랑이다[5]. 전투 전 휘하 장수들에게 손자병법의 구절을 인용하며 훈시를 하고, 화랑 관창의 자살성 돌격을 보고 김유신의 의도를 어느정도 간파하는 등 지장의 면모도 갖추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잔꾀를 부리기 보단 정직하고 우직하게 싸우는 것이 성미에 맞는 듯 하다. 계백의 이러한 성격은 신라군 내부에서도 유명한지 김유신의 동생인 김흠순은 "계백이 글마 전략은 무조건 열심히 싸우는 기데이. 무대뽀로 말이다." 라고 짧게 평가하기도 한다.
>"우리는 한 끼를 먹어도 반찬이 40가지가 넘어, 이 XX놈들아."
백제군의 일반 병사. 보성 벌교 출신의 평범한 시골 농부로, 백제 장수가 "5천 결사대의 핵심은 느그들이여!" 라며 사기를 진작시키는 모습으로 보아 나름대로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병사들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었지만 영화 초반부에 병사들끼리 나누는 대사[6]를 보면 그렇지도 않은 듯 하다. 일반 병사들 사이에서의 신망도 두터운지 2대2 기마 궁술 대결을 벌일 때 백제 깃발을 몸에 두르고 맨 앞에서 응원을 리드하기도 하고, 나중에 관창을 생포하러 성벽 밖으로 나간 병사들 중에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죽음이 닥쳐온 순간까지 고향의 어머니를 생각하는 효자이며, 그런 어머니를 보러 가라고 계백이 살려 보낼 때도 계백과 함께 싸우다 죽겠다고 발버둥 치는 충신이며, 자기가 먹던 밥을 동료 병사에게 선뜻 내어주기도 하는 마음씨 넓은 친구이기도 하다. 이 때, 계백이 거시기를 살려준 것이 바로 계백과 거시기를 비롯한 몇 남은 병사들이 요새의 작은 공간에서 항전하려고 할 때, 부하가 계백을 위해서 구멍을 파 탈출시키려고 노력하는데도 계백이 거절했다. 그러다가 작은 공간에서 겁을 먹고 있던 병사들이 있던 와중에 거시기가 "걱정하지 마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잖요?"라며 계백이 결사대로 나가기 전에 자주 말했던 말을 듣자 계백이 표정을 바꾸며 "거시기, 난 자네를 살려남기고 싶구만."라며 계백을 위해 파놓은 탈출 구멍에 부하들에게 시켜 그를 살려 보낸다. 본인은 자기도 같이 싸우다 죽고 싶다며 저항했으나 이내 명령 받은 부하들에게 못 이겨 탈출한다. 계백이 죽기 직전에 산속에서 지켜보는 모습과 그런 거시기에게 눈빛으로 빨리 도망가라는 듯 쳐다보는 것이 영화의 백미. 결국은 영화 마지막에 어머니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계백아...니가... 거시기 혀야겄다."
삼천궁녀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백제의 마지막 군주. 영화에서는 왕답지 않게 서민적인 말투가 특징이고 삼천궁녀 이야기는커녕 궁녀 자체가 등장하지 않으며, 사치와 향락을 즐기는 모습조차 나오지 않다. 다만 신하복과 자식복이 없는지 대놓고 왕명을 거역하는 중신들과 둘째를 제외하면 무능한 모습만 보여주는 아들들 때문에 양쪽에서 고통받는 비운의 군주. 중신들과의 관계가 틀어질 대로 틀어져 군사적으로 당군을 막는 작전을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계백이 신라군을 어떻게든 저지하고 있는 동안 소정방과 쇼부[7] 를 쳐서 외교적으로 당군이 물러나게 하려 했으나 결사대가 전멸해버려 계획은 실패한다.[8][9].
의자왕의 둘째 아들. 웅진성으로 도망을 가자느니, 소정방에게 뇌물을 바치자느니, 아버지에게 자살을 종용하며 "우덜이 죽으면 약발이 안먹혀라.~" 라는 희대의 패드립을 날리는 한심한 다른 아들들과는 달리 끝까지 사비성에서 싸우자며 강단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중신(귀족)들을 대표하는 임자를 상대로도 강도 높은 비난을 하는 등 왕권과 신권이 갈등하는 백제 말기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캐릭터 중 한명이다.
>"대가리?!'' 그때는 얼마전에 죽은 제갈공명 대가리도, 나같이 생각했을 것이여![10]
의자왕의 과격한 왕권 강화정책을 마뜩찮게 여기는 백제의 기득권이자 대귀족계층인 대성팔족 측 좌평. '환관'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로 인상이 다소 알밉고 간사해보이며 목소리와 말투가 진짜 극중 아주 큰 웃음 유발을 할 정도로 엄청나게 우스꽝스러운 연기톤이 정말 일품이고 큰 백미다. 의자왕의 국방정책에 계속 비협조적이었고 결국 백제가 멸망해버린 탓에 역사를 잘 모르는 관객들은 그야말로 극혐하는 캐릭터지만, 동료 신하와 함께 "그 나라가 우덜 나란가? 느들 부여 씨 나라제", "3년 전 왕이 왕자들 마흔한명 죄다~ 좌평으로 임명해분 뒤로는, 우덜 나라는 없어져부럿제!"라는, 백제 멸망의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를 깔끔하게 요약한 대사를 날리기 때문에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간간히 회자되는 캐릭터다.

2.2. 신라 측


>"너거 당나라 개새끼들, 내 언젠가는 이 땅에서 싸그리 쓸어버릴 기라!!"
>세상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기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기야!!
>"다 미친 기야, 전쟁은 미친 놈들 짓인 기야! 화랑들을 계속 보내! 꽃은! 화려할 때 지는 기야!!"
신라의 대장군. 영화 중반까지 정체불명의 백제말, '거시기'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해 전전긍긍하지만, 결국 계백과 장기를 두며 거시기의 뜻을 파악하고, 비가 오는 날 투석기로 찰흙을 투척하는 전략을 통해 백제군을 격파한다. 초중반까진 약간 허당끼 있는 모습만 보여주지만,[11]화랑들을 자살돌격 시키면서 "전쟁은 미친놈들 짓인기야!" 라고 일갈한 뒤 부터는 위엄있는 대장군의 면모를 보인다. 속된 말로 싸가지가 없는 성격으로 아무리 친척지간[12]이라곤 해도 자신의 왕인 김춘추에게도 말을 편하게 놓으며,[13] 나당연합군 총사령관인 소정방을 상대로도 말 한마디 안 지고 되려 역정을 내는 등 은근히 굳이 받을 필요 없는 미움을 사는 사람.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 보면 신라국에 대한 자긍심이 남달라 당나라에 아첨하는 김춘추와 소정방을 꺼리는 것이지 그저 고집만 센 꼰대는 아니다. 총공격 전 휘하 장수들과 김법민을 향해 "우린 다 친척이제? 남이 아닌기라." 라며 혈통간의 갈등을 끝내고 신라를 하나로 모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배달 가는기다." 라는 말을 통해 신라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자고 말한다. 종국엔 소정방 면전에 칼까지 들이밀며 "너거 당나라 놈들, 내 언젠가 이 땅에서 싹 쓸어버릴 기라!!"라고 일갈하며 당당히 퇴장한다.
>"하모! 저거들은 악의 축 정도가 아이라, 악의 덩어리라 카이!"
태종 무열왕. 영화 첫 장면인 정상회담씬 부터 당나라의 편을 강하게 들며 고구려, 백제와 대립각을 세우고, 소정방을 영접할 때도 "얼라만 보냈다고 뭐라 칼거 같아서." 김법민 혼자 보내지 않고 대장군인 김유신을 함께 보내는 등 당나라의 환심을 사기 위해 부던히 노력하는 인물. 또한 그 과정에서 끝없이 의자왕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을[14] 숨기지 않고 드러내면서 의자왕의 신변 처리만큼은 어떻게 해서든 얻어내려고 감정을 숨기지 않고 표출하기도 한다. 더불어서, 전후처리에 보낼 사신에게 자신은 김유신같은 꼰대보다 젊은 피를 믿는다면서 어느정도 김유신에 대해서도 불만이 있음을 간접적으로도 표현하고 있다. 문제는 그 젊은 피로 보낸 사신이 별로 유능하지 못해서 계속 전후처리 협상에 소정방에게 끌려다니고 간신히 하루 더 연장 운운하다가 일갈만 당하고 있을뿐, 이렇다할 협상에서 제대로 된 주도권을 잡지 못하면서 김춘추의 인물보기가 부족함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
>"인자 당나라와 고구려는 대장군하고 내가 맡을껴! 아부지는 빠지소!"
후일 문무왕이 될 인물이다. 아직 젊은 탓인지 초반에 거시기에 대한 정보를 알기 위해 글짜를 맞추고 있는 대장군인 김유신에게 계속 총공격을 하자며 재촉하고, 심지어는 김유신을 향해 "지금은 내가 왕이야! 내 말을 거역하면은 마, 대장군이고 나발이고 당장 직위 해제야!" 라고 외치다가 김유신에게 한대 얻어맞고[15] 칼부림 직전까지 가는 등 혈기 넘치는 모습이다. 하지만 결국 김유신의 진심을 알고 감화된 것인지 김유신이 소정방에게 칼을 들이미는 장면에서 김유신의 편에 서며 되려 아버지인 김춘추에게 반발한다. 역사상으로 김유신은 문무왕의 외삼촌이다. 다만 아버지인 김춘추가 연신 김법민의 누이가 되는 고타소를 언급하며 직접적으로 의자왕에 대해 강한 원한을 표하는데 불구하고 그 부분만큼에 대한 묘사는 전무하다.[16]
>"내는 인자 신라편 몬 든다. 니 알았제?"
김법민의 동생. 원래는 권력에 큰 욕심이 없고 신라인으로서의 자세를 지킨 인물이었지만, 영화상에서는 친당파로 희화화 되었다. 김법민 앞에서 공공연하게 "나는 신라 왕자 신분보다 당나라 관직이 우선이다." 라고 발언하고,[17] 아무리 소정방의 말을 번역하는 것이라지만 자신의 외삼촌이자 까마득히 나이가 많은 김유신을 상대로 대놓고 하대하는 등 시건방진 인물이다.
>"가늘고 길게 산 사람치고 역사에 이름남는 사람 있드나?"
김유신의 동생이자 화랑 반굴의 아버지다. "내도 죽고 싶다. 죽고 싶어 미치겠다. 하지만, 내는 죽으봐야 약발이 안 멕힌다." 라는 명대사의 주인공 되시겠다. 완전한 까막눈은 아니지만 학문이 짧은지 김품일에게 '글자도 모르는 놈'이라는 수모를 당하기도 하며,[18] 바로 뒤이어 "가야 출신 개빽다구"라는 모욕까지 당하며 신라 귀족간의 갈등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금일부로 붕우유신 임전무퇴 화랑도 세속오계 그거 다 개소리다. 화랑하믄 관창, 관창하믄 화랑, 이거면 끝!"
김법민의 사돈[19]이자 화랑 관창의 아버지다. 자신의 상관인 김유신에게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김유신이 뻔히 보고 있는 앞에서 김유신의 동생인 김흠순을 '개빽다구' 라고 깔보면서 자신은 신라 정통 진골 출신임을 강조하는 자존감 높은 인물. 김흠순이 피해자의 입장이라면 김품일은 가해자의 입장에서 신라 내부 갈등을 보여준다. 고증으로 보면 큰 반전이 있는데, 그도 가야 출신 이다.(...) 감독이 알고 했는지 의문인 부분이다.
  • 김천존 (김윤태[20] 扮)
신라군의 선봉장. 평소엔 김유신의 호위무사 역할을 하며 김유신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거의 모든 역사적 인물이 희화화되는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진중한 모습을 지키고 있는 인물이며, 후반 총 돌격 장면 이전엔 말 한마디 없이 묵묵히 서있는 모습이 대부분. 다만 김유신이 "총공격? 지금 하까?" 라고 말을 툭 던진 뒤 갑자기 칼을 빼들고 "전구운! 돌겨역!"을 외치며 신라군 진영을 뛰어다닐 때 김유신을 말리지조차 않고 여전히 각 잡힌 채로 김유신 뒤를 졸졸 따라 다니는 것은 개그 포인트다.

2.3. 그 외


영화 초반에 당 고종, 의자왕, 무열왕과의 정상회담(...) 신에서 짧게 등장한다. 고구려와 백제를 변방 오랑캐로 취급하는 고종에게 고구려의 역사를 거론하며 맞서다가 고종이 하늘의 아들 운운하자 '니 아바디 당태종이가, 형제들 쳐죽이고 황제 된 것도, 하늘이 정한 질서네?' 라고 받아치는데, 카메오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짧게 등장했지만 이 영화의 주제 의식을 가장 먼저 보여주는 인물. 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평양성(영화)에서도 일부분 등장한다.
정상회담 신에서만 짧게 등장했다.
  • 소정방 (고목춘(가오 무 춘, Gao Mu Chun) 扮)
당 고종의 발음과 비교해보면 바로 알 수 있지만 실제로 담당배우가 중국인이다. 영화, 드라마 뿐 아니라 1급 경극 배우로도 평가받는 40년 경력의 베테랑 배우로 유명한데, 본작에서는 소국을 깔보는 거만한 모습과 대국의 중신으로서의 위엄을 함께 갖추고 있는 소정방의 성격을 명품 연기로 멋지게 표현했다.

3. 줄거리


5만 신라군 총사령관으로 나선 김유신은 작은 조카[21]이자 신라 왕자인 김인문의 시건방진 어그로성 통역[22]+당나라 소정방의 어거지로 인해 말도 안 되는 기간 내에 황산벌을 지나 당군의 군량미를 공급해야 하는 일명 '배달' 상황에 놓인다.[23] 덕물도 앞바다까지 조공을 운반하기 위해선 백제군을 뚫어야 하는데, 백제에는 ‘김유신’의 영원한 숙적 ‘계백’이 버티고 있으니...
당나라 배들이 서해 덕물도 앞바다에 닻을 내리자 백제 ‘의자왕’과 중신들은 긴장한다. 고구려를 치러 가는 것일 거라고 애써 자위하던 그들은 신라군이 남하하여 탄현으로 오고 있다는 전갈에 신라와 당나라가 백제를 공격하려는 것임을 확인하며 불안에 휩싸인다. 그러나, ‘의자왕’에게 적개심을 품은 중신들은 자신들의 군사를 내 주지 못하겠노라 엄포를 놓고, ‘의자왕’은 자신의 마지막 충신 ‘계백’장군을 부른다. 무언의 술 다섯 잔 속에 ‘의자왕’으로부터 황산벌 사수를 부탁받은 ‘계백’은 목숨 바쳐 싸우기 위해 자신의 일족까지 모두 죽이고 황산벌로 향하는데...
응원전, 욕싸움[24], 두 장수의 일기토(맞짱), 인간장기 게임을 넘나드는 5천 백제군과 5만 신라군의 전투는 의외로 4전 4패로 백제군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당나라와 약속한 7월 10일이 다가온다. 그러나 김유신과 계백 간의 "인간 장기"에서 계백이 '거시기'의 진실[25]을 스스로 밝히게 되면서 김유신은 관창을 비롯한 화랑의 카미카제를 연상시키는 자폭 돌격과 진흙을 통해 군복을 벗을 수 없는 백제군의 움직임을 제약하는 방식[26]으로 스스로 갑옷을 벗게 만든 후에 총공격을 감행 백제군을 전멸시켜 승리를 거뒀고, 결국 계백은 화살에 고슴도치가 되어버린 뒤 마지막에 부인과의 대화[27]를 떠올리면서 김흠순에게 참수당한다.


4. 평가



4.1. 사투리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사투리'''다.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사투리로 대화'''하며, 격식도 거의 갖추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28] 대표적으로 김인문(문무왕의 동생)이 김유신에게[29] "몇 살 묵었노?" 등이 있다.[30] 또, 계백(박중훈분)은 의자왕(오지명분)과의 독대에서 거의 거리낌없이 행동하기도 한다. 이렇듯 이 영화의 모든 대사는 사투리로 이루어진다.[31] 재미있는 점은 당시 백제에서 지배층이 쓰는 말과 백성들이 쓰는 말이 다르다고 하는데 그게 초반에 말을 통해 보여진다는 점이다. 당시 백제 귀족들은 왕을 어라하로 일반 백성들은 건길지로 불렀다고 한다. 어찌보면 조선시대 신료들이 '주상', '전하', '상감' 등으로 백성들은 왕을 '나랏님', '상감마마' 등으로 부른 것과도 비슷하다. 나머지 어떻게 다른지는 사료가 부족해서 연구가 어려운 편이다.
'''사투리는 표준어에 비해 촌스럽고 투박하다는 편견'''이 널리 있기 때문에 나라의 운명이 걸린 "진지한 역사적 상황"에 '세련된' 표준어가 아닌 '투박한' 사투리는 뭔가 어색하다. 보통 퓨전사극 열풍이 불기 이전인 이 시기의 역사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련된' 표준어[32]로 "무게잡는" 배우, 시적 대사를 읊는 영웅들의 모습과는 정 반대였다.
물론, 그 "진지한 사극"들도 엄밀히 말해 현대의 역사관과 표준어관에 맞춰 개편된 이미지였음은 당연하고. 모델이 되는 역사 속 인물들은 현대의 표준말 따윈 쓰지도 않았을 것이며, 실제로 위대한 대의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영웅이라기보다는 현대의 기업가, 혹은 정치인과 같이 자신의 이해타산에 맞춰 행동하는 인물에 가까웠을 것이므로 영화 속 사투리라는 장치와 자신들의 이해타산을 계산하는 인물들의 면면을 통해 그런 "현대식으로 개편된" 이미지들을 제거하고자 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시기 백제는 충청도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33] 의자왕을 비롯한 왕족들과 충청남도 부여 출신인 계백 등 모든 백제 측 주요 등장인물이 모두 전라도 사투리를 쓴다.[34] "~하쇼잉." 같은 비음이나 "아따" 등의 추임새, "~해불자!" 와 같은 말은 전라도 사투리만의 특징이다. 충청도 사투리가 나오긴 하지만 단역에 그치고 있다.[35] 대중들에게 익숙한 전라도 사투리와 경상도 사투리를 비교해서 보여주는게 영화의 재미를 더 줄 수 있어서 그랬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사실 무왕의자왕은 즉위 전 지역기반이 지금의 익산시인 금마저였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자면 이 둘에 한해서는 호남 사투리를 써도 고증오류까지는 아니다. [36]

게다가 신라군 중에 소소하게 강원도 사투리를 쓰는 병사가 있다던지 하는 것도 깨알 같은 재미. 다만 현실적 한계로 사투리의 차이로 진영 내 갈등요소를 세세하게까지 보여주기는 어려웠던 모양. 두 주연배우가 모두 서울 출신인 탓인지 사투리는 발연기이기도 했고, 주제의식을 사투리로 100% 표현해낸 것은 김법민으로 분한 대구 출신의 안내상 뿐이다. 김인문 역의 류승수는 영남 사투리 자체는 정확하게 구사하긴 했는데 부산 출신이라 사로계 진골이 아닌 가야계 말투가 되고 말았다. 거기에 더해 김춘추 역의 이호성은 연기톤은 위엄있게 잡았지만 수도권 억양에 어휘만 경상도 사투리를 넣은 것 같은 경상도 사투리를 들려줬다. 다만 대구 출신인 김선아의 악에 받친 호남 사투리 연기는 그야말로 일품이다.

4.2. 전통적 영웅상 뒤집기


기존의 영웅상 비틀기는 영화 초반부에 고구려, 백제, 신라, 의 지도자들이 자신의 지방 사투리를 쓰면서 대화하는 정상회의 장면부터 매우 확실하게 드러난다.[37]

당고종: 현재 동북아의 긴장은 우리 당나라가 정한 국제 질서를 변방의 약소국인 너희 고구려와 백제가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38]

연개소문: '''니네 당나라 몇 년 됐서. 50년도 안 됐디, 우리 고구려는 700년 됐시야, 700년!'''

당고종: 연개소문! 그대가 천하의 질서를 어기려 하는가?

연개소문: 질서? 하하하하. 그거이 누구래 정하는 건디?

당고종: 그 질서는 하늘이 정했고, 짐은 하늘의 아들 천자다!

연개소문: 보라우. '''니 아바이 당태종이가 형제들 쳐 죽이고 황제 된 것도 하늘이 정한 질서네?'''

김춘추: 황제께선 지금 이 정권의 철학적 정통성을 말씀하고 안있나.

연개소문: 정통성? 기래, 내레 쿠데타[39]

일으켜서 정권잡았다, 와? 김춘추, 너레 반쪽자리 왕족 주제에[40] 김유신이랑 짝짜꿍해서리 정권 잡디 않았서? 의자왕, 니 아바이도 서자디?[41] 여기 정통성 있는 놈이레 누구레 있어야? '''전쟁은 정통성 읎는 놈들이, 정통성 세울려고 하는 기야아!'''

의자왕: 아따, 고것이 '''정치적 경륜'''이제.

김춘추: '''하루가 멀다꼬 쳐들어와, 남의 백성 쳐 쥑이는게 정치적 갱륜이가?''' 니놈 왕 되고 지난 20년간 우리 신라는 하루도 편할 낼이 없었데이!

의자왕: 아, 즉위 초기에 정권 장악하고 국론통일할라면 다들 하는거 아니여?

김춘추: 대야성에서, '''내 딸내미 죽이삔거'''[42]

벌써 잊어쁫나?

의자왕: '''느그 신라 쒸벌럼들''' 554년[43]

옥천 땅에서 우리 고조할아버지 성왕죽여서 어따 묻었어?[44] '''지난 100년동안 느그 조상하고 우리 조상하고 전쟁하믄서 있었던 일, 한번 씨부려 보까?!'''

김춘추: 니캉 내캉은 같은 하늘 아래서 살 수 읎는 존재데이!

당고종: 그만! 너희들이 막 나가니까 나도 노골적으로 말하겠다. '''강대국이 까라면 까!'''

의자왕: '''뭘 까라는지 구체적으로 말해보랑께?'''

당고종: 조공은 강대국이 정한 국제 질서에 순응하겠다는 약소국들의 의사 표시다. 왜 고구려와 짜고 신라의 조공길을 막나?

의자왕: '''아, 김춘추 저것이 싸가지 없이 노니께!'''

당고종: 너희 고구려는 왜 하지 말라는 천리장성을 쌓아 주변국을 긴장시키는가?

연개소문: '''내래 성을 쌓든 까 부수든 너래 무슨 상관이야! 함 해보자 이기야!?'''

김춘추: 저 놈이 감히 황제에게!

연개소문: 뭐이 어드레? 야, 김춘추!

김춘추: 야, 연개소문!

당고종: 그만! '''짐은 오늘 고구려와 백제를 천하의 질서를 위협하는 '악의 축'으로 선포한다!'''[45]

김춘추: '''하모! 절마들은 저거 악의 축 정도가 아이라, 악의 덩어리라 카이!'''

연개소문: '''뭐이야? (의자를 집어던지며) 이런 썅!!'''

의자왕: '''저새끼 저거 축에도 못끼는 새끼가 저거 말하는 것 좀 보랑께~!'''

연개소문: 야, 김춘추! 너 떼놈들한테 알랑방구 고만 뀌라우! 썅.(퇴장)

김춘추: 의자 너 이 새끼, 니는 내 손에 죽는데이.

의자왕: 뭐? '''시방 선전포고 하는 거여, 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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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도적인 메시지는 황산벌 전투에서 가장 극적인 두 장면들, '''화랑 관창의 출진 직전 장면'''과 '''계백을 이야기 할 때 빼놓기 어려운 가족들을 베는 두 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관창: (빈정거리며) 아부지, 지금 누가 시켜가 이러는 거 아이지예?

김품일: 하모. 시상에 누가 시킨다고 지 새끼 디지라고 등떠밀 애비가 어딨겠나?[46]

관창: 아부지, 이거 진짜 개죽음 아니지예?

김품일: 장난하나? 니는 뜬데이. 뜬데이. 반드시 뜬데이. 화랑 관창. 역사에 길이 남으리. 관창아. 꿈은 이루어진데이. 그럴라믄 니 그냥 죽으면 안 된데이. 정신 바짝 차리고 죽어야 한다. 폼~나게. 비~장하게. 장~렬하게.

중간엔 관창과 함께 전사한 화랑 반굴[47]과 그의 아버지 김흠순과의 대화에서 "나도 죽고 싶다. 죽고 싶어 미치겠다. 그런데, '''늙은 놈은 죽어봤자 약발이 안 먹힌덴다.'''"같은 대사도 있었다. 뒤에도 나오지만 약발 타령은 의자왕 마지막 신에서 다시 한번 등장. 근데 이번에는 반대로 젊은 왕자들이 '''우들이 죽으면 약발이 안 먹혀라'''라고 나온다.
한편 계백이 전장에 나가기 전, 아내와 자식들을 살해하는 장면 또한 이를 잘 나타내 주는 장면이다.

계백: 살아서 치욕을 당하느니 명예롭게 죽어야지... (독약을 가리키며) 그거... 마시고 먼저 가소.

계백의 아내[48]

: 머시라고라잉? ...아시방 이녁(계백)이 그런 말 할 자격있당가요잉? 아 글먼 우들이 아이고 서방님 아이고 아부지 이 약사발 쳐먹고 다 뒤지불라요... 아 이랄줄 아셨소? 예끼 이 냥반아.

계백: 길게 끌면 추해지오... 깨끗하게 갑시다.

계백의 아내: 오매~ 아 긍게 시방 생때거튼 내 새끼들한테 자진해서 다 뒤져버리라고라잉? (계백의 아이들이 불안해 한다.) 씨만 뿌려놓고 밤낮 칼싸움(전쟁)하러 싸돌아댕긴 인간이 말이여, 인쟈 와갔고 뭐시 어쪄고 저쪄?!

계백: (일어서며 칼을 뽑는다) 그거 마시고 죽을껴, 내 칼에 죽을껴?

계백의 아내: (무섭지만 참으며 꿋꿋하게 아이들을 뒤로보내 보호하며) 나가 시집와가꼬... 이날 평생 악밖에 안남은 년이여! ...염병하고... 그라고 인간아 니가 뭣을 해준게 있냐? 뭣을 응? ...전쟁을 하든가 말든가, (울분에 차서) '''아! 나라가 쳐망해불든가 말든가 아 그것이 뭣인디 니가 내 새끼들을 죽여분다 살려분다 그래야!'''

(계백, 심란해진다.)

계백의 아내: (구슬프게 말하며) 느그 애비 애미도 살았서도... '''느그 애비 애미도... 이라고 죽여불라냐잉?'''

계백: 호랭이는 죽어서 꺼죽을 냉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냉긴다고 혔다![49]

('''절망스러워하며 울부짖는다''') '''제발 깨끗하게 가장께?!'''

계백의 아내: (눈물을 흘리며) 뭐시 어쩌고 어쪄? 아가리는 삐뚤어졌어도 말은 똑바로 씨부려야지. (절망스럽게 울부짖는다) '''호랭이는 가죽 땜시 뒤지고, 사람은 땜시 뒤지는 것이여! 이 인간아!'''[50]

(계백, 고개를 돌리며 이를 물고 '''아내와 아이들을 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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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과 김유신, 그리고 관창이 활약한 황산벌 전투는 의심할 여지없이 한국사의 무수한 영웅담 중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목들에서, "황산벌"은 "황산벌 전투"를 영웅들의 이야기로 해석하길 거부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역사적 영웅들을 자신의 욕망을 가진 평범한 인물들로 그리고, 그들이''' '''역사에 남을 이름에 집착하는 모습을 그린 점''' 등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영웅이어야 마땅할 이들인 관창, 그리고 계백의 삶과 최후, 그리고 역사에 남은 그들의 "영웅적인 행적"은 아버지의 부추김에 넘어간 철없는 젊은이의 자살돌격이 되고, 계백의 경우 가족들에겐 그저 위선적이고 아내와 아이들을 죽이는 잔인한 인물이 됐다. 이것은 후반에 미치지 않고서는 전쟁을 할 수 없다는 김유신의 자조적인 대사에서 잘 나타난다.[51]
결국 관창을 비롯한 화랑들은 아버지의 부추김에 넘어가 백제군 진영으로 돌진하다가 의미없이 전사하고, 이 모습을 보면서 사기충천하여 백제군을 쳐부숴야 할 신라 병사들은 "이라고 있는 거 인제 나는 무십다..."라고 중얼거리며 출전하는 화랑들을 측은하게 바라볼 뿐이다. 화랑들의 자살돌격을 목격하는 계백과 백제군조차 '대체 이런 미친 짓거리를 왜 하는 거냐'라는 반응을 보이며 분위기가 무거워진다. 거기에 초반에 나왔던 즐거운 분위기의 식사시간과 달리 주먹밥으로 처연하게 간신히 식사하는 백제 병사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본 영화가 보여주려 하는 메시지 또한 크게 두드러진다. 그리고 백제군과 신라군, 두 군대의 마지막 사기충전하는 모습 또한 초반의 응원전 분위기가 아니라 피를 입에 묻히거나 점령하고 나면 백제의 땅은 너희의 것이다 라는등으로 전쟁의 분위기를 한껏 드러내면서 본격적으로 처절함의 시작을 알린다.
마지막 순간에 부인의 유언을 떠올린 계백 역시 이름 때문에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허무하고 미친 짓인지를 깨닫고 다른 누구도 아닌 평범한 병졸, 이름도 모르는 병사 거시기를 탈출시키며 "죽을 때 죽더라도 뭔가 하나는 남겨야지. 난 자네를 남기고 싶네"라는 말을 남긴다.
그 뒤 계백과 부하들[52]은 장렬하게 뛰쳐 나가지만 궁병들에게 너무나도 허무하게 쓰러진다. 무수한 영웅담의 영웅이 아닌, 일당백의 장수로 단 한명으로 수십만을 상대한 장비와 같은 존재가 아닌, 너무나도 나약한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53]

4.3. 관객과 학계의 반응


역사에 대한 해석에 엄격하고, 그에 따라 '''영웅서사에서 벗어난 역사극'''의 시도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한국에서 이런 "영웅 없는 역사극"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이런 점들 때문에 영화 개봉 이후 영화평은 "감독이 역사를 단순한 코미디로 만들었다."#는 의견과 "훌륭한 역사극이다."란 의견으로 크게 양분되었다.
역사학계의 입장은 후자에 가까웠다. 사실 역사라는 학문이 제일 좋아하는 게 사서를 액면 그대로 믿기보다는 거꾸로 보고 비틀어 보고 뒤집어 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근거없이 떠들어대는 불쏘시개들과 같은 의미가 아니라 어느 정도 근거를 가진 재해석이었기 때문이다.[54] 황산벌 전투에서 전해지는 건 '계백이 처자식을 죽이고 결사대 5천을 이끌어 김유신의 5만 대군과 맞섰고, 4차례 교전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이에 화랑들이 자살 돌격으로 신라군의 독기를 올려 결국 신라가 승리했다' 정도 밖에 없으니, 어떻게 싸웠는지, 계백의 최후가 어땠는지, 신라와 백제의 언어가 어떻게 달랐는지 등은 해석과 상상의 범위이므로, 굳이 뽑자면 김인문이 친당파처럼 나오는게 가장 큰 고증오류라고 할 수 있다.
영화가 개봉되고 십수년 뒤와 달리, 이 영화가 개봉되었던 2000년대 초반에만 해도 백제의 멸망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두고 백제, 신라와 관련해서 일반 대중이 가지고 있던 인식은 그저 '의자왕이 삼천궁녀 끼고 술이나 퍼 마시다가 나라를 말아먹었다더라', '신라는 당나라에 영혼까지 팔아서 동족을 핍박한 민족 반역자 집단이더라' 정도였다.
그러나 극중에선 의자왕 이야기, 특히 백제 멸망의 원인을 두고 하는 이야기라면 삼국사기 등에 묘사된 의자왕의 타락 이야기를 근거로 으레 나올 법도 한 궁녀라고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으며, 그 대신 백제 지배층의 내부 분열과 전술적 오판 등을 묘사한다. "그 나라가 우덜 나란가? 느들 부여씨 나라제.", "3년 전 왕이 왕자들 41명을 죄다 좌평에 앉혀 놓은 뒤로는 우덜 나라는 없어져부렀제![55]"란 백제 귀족들의 대사 등을 통해서는 백제 왕실과 귀족 집단의 분열과 반목 양상을 입체적으로 묘사해 주고, 나당 연합군의 진로를 두고 고구려로 갈지 백제로 갈지 몰라 갈팡질팡하다가 백제로 온다는 소식에 대경실색해서는 패닉 상태에 빠지는 백제 지배층의 모습 또한 묘사했다.
백제 지도부가 나당 연합군이 백제로 쳐들어오리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 실제에 가깝다. 일단 한반도 서쪽 연안을 지나 중국으로 가는 연안 항로를 대체하는, 황해를 직접 가로지르는 직항 항로는 삼국시대 말기에야 활용되기 시작하는데, 그 새로운 항로로 13만 대군이 날아오리라는 것은 미처 생각하기 어렵다. 또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것이 백제의 충신 가운데 하나로 기억되는 성충의 상소문인데, 그걸 읽어보면 "어라하, 이제 술 그만 마시고 여자들이랑 그만 노세요!" 라는 식의 언급은 전혀 언급되어있지 않으며, "어라하! 당나라와 신라가 분명히 쳐들어옵니다! 이제부터 어떻게 대책을 강구해보죠!"라는 것이 골자다.
또한, 신라와 백제의 관계를 두고도 같은 민족 어쩌고 하는 일반 대중의 민족주의적인 관점은 그다지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제대로 드러나는 것은 무려 1세기에 걸쳐서 이어진 지긋지긋한 피의 원한 관계뿐이다. '''"의자, 네놈이 왕 되고 지난 20년 동안 우리 신라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데이!"''' 라는 김춘추의 노기 어린 대사라든가, '''"느그 신라 씨벌놈들, 554년 옥천 땅에서 우리 고조 할아버지 성왕을 죽여서 어따 묻었어? 지난 100년 동안 느그 조상이랑 우리 조상이랑 전쟁하면서 있었던 일들 한 번 씨부려 볼까?"''' 라는 의자왕의 욕설섞인 대사 등을 통해서 볼 수 있다.
나당 연합군 내부 사정을 두고도 객관적이고 적절한 묘사가 이어진다. 신라 왕인 김춘추를 관등서열의 말단에 놓고 당나라 사람들을 그 위에 놓으면서, 신라군을 당군의 지휘 하에 두어 당나라가 신라보다 우위에 있음을 확실히 하려는 당나라의 모습과, 그걸 불쾌하게 여기면서도 "배 돌려 그냥 갈까?"하고 묻는 당군의 질문 앞에서는 X 씹은 표정만 지어 보이면서도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따를 뿐인 신라군을 묘사하면서, 신라가 당나라에 길 수밖에 없었다는 안습한 상황을 보여주는 한편, 그래도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땐 당나라 대장 소정방에게 칼을 뽑아 들며''' "느그 당나라 개새끼들, 내 언젠가는 이 땅에서 싸그리 쓸어버릴끼다!" ''' 라고 외치는 신라 대장군 김유신의 대사에서는, 신라도 마냥 끌려다니기만 했던 게 아니며, 약소국임에도 최소한의 자존심만큼은 분명히 지키고자 했다는 객관적인 역사 인식을 보여준다.
실제로 668년 고구려 평양성 함락이후 불과 2년뒤에 670년 나당연합은 깨지고 나당전쟁이 시작된다. 이유는 당이 여전히 백제땅과 대동강 이남에 당군을 주둔시키고 한반도 자체를 복속시키려 했다는 점이다 신라역시도 당이 이렇게 나올거라는것을 어느정도 예상한듯한 모습을 보여주는것이 바로 이 나당전쟁이다. 670년 신라군과 고구려유민들로 구성된 2만의 병력이 압록강을 건너 요동을 공격하며 시작된전쟁은 7년간 이어지고 그막바지 매소성 전투 기벌포 전투 대패한 당나라는 때마침 일어난 토번의 발호로 여러전선을 유지하기 힘들어 결국 물러난다. 물론 병력은 물렸지만 여전히 백제와 고구려 왕족들을 내세워 한반도 복속의 야욕을 버리지 않았고 전쟁후 신라와는 완전히 적국으로 돌아선다. 이관계는 성덕왕 시절까지 이어지고 이때쯤 당은 측천무후 시대를 거치며 여러 외세와의 전쟁으로 신라의 영토를 인정해주고 한반도에서도 사실상 손을 털어버렸다. 성덕왕 시절 다시 국교를 회복한 신라와 당의 관계는 당의 멸망시까지 이어진다.
이러다보니 은근히 보수우익이라는 이들이 불쾌해하며 이준익 감독이 좌빨이라는 둥 악평을 남겼다. 극우 논객인 조갑제월간조선조갑제닷컴을 통해 악평을 남겼다(조갑제닷컴)(대자보).[56]
하지만 관객들에겐 대체적으로는 코미디 영화로 받아들여졌고 일단 홍보도 그렇게 이루어졌다. 어쨌든 황산벌은 한국 코미디 영화 역사에 길이남을 흥행에 성공하며 대박을 거두었다. 이 흥행으로 키드캅 같은 나홀로 집에의 아류작을 만든다든가 성스러운 피 같은 영화를 수입해왔다가 큰 손해를 본다든가[57] 하며 듣보잡 감독으로 전전하던 이준익 감독의 명성을 크게 알린 영화다. 다만, 이준익 감독은 이 영화로 명성을 얻게 되었지만 그 이전부터 제작자로서 참여한 달마야 놀자가 대박을 거뒀다.

5. 여담



  •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오는 OST인 김세준의 야야야가 꽤나 명곡이다. 참고로 부른 사람은 배우 김세준이 아닌 동명이인이다.
  • 복식이나 무기면에서는 조금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 우선 작중 백제군과 신라군이 쓰는 칼이 모두 엑스칼리버처럼 생겼다. 삼국시대에는 대체로 환두대도를 사용했다. 갑옷은 신라군이든 백제군이든 고증에 그렇게 맞지는 않는것 같아보인다.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는 찰갑을 주로 썼는데, 백제는 철갑, 신라는 가죽이 갑옷의 주소재인 것으로 묘사된다.그렇지만 백제의 관복과 의자왕의 의상과 고구려 연개소문의 철갑 갑옷은 어느 정도 틀에 부합하는것처럼 보이나 백제 왕자들의 관모(모자)장식에 은색 장식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또 백제의 상징을 봉황으로 선정해놓은 것까지는 좋았으나 신라의 국기를 천마로 지정해놓는 것은 부정확하다. 우선 천마총에서 발견된 천마도(벽화인 것같지만 사실 안장에 그려진 그림)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 같지만 사실 역사학자들은 이 그림이 천마인지 기린인지 아직도 논쟁중이다. 그리고 신라는 계림국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닭이나 계룡을 신성시 여겼고 심지어는 미추왕릉으로 추정되는 묘에서 계룡모양새의 유물이 발견됐다. 그럴거면 차라리 계룡이나 닭을 국기에 형상화 시키는 게 더 나았을거라는 의견도 있다.
  • 식문화분야까지 범위를 넓혀보자면 작중에서 옥수수가 등장하는 오류까지 있다.[58] 이때 옥수수는 아직 유라시아에 전래되기 한참 전인데다가[59] 작중 시간대 기준으로 옥수수의 모습은 오늘날의 통통한 옥수수의 모습이 아니라 강아지풀 같은 모습에 가까웠다. 즉, 옥수수의 조상뻘되는 식물인 테오신테(Teosinte)이다.[60]
  • 작중 내내 김유신은 당나라 측 인물들과 김춘추에게 유독 까칠한 모습을 보이며 반목하는데, 실제로 김유신은 김춘추와 달리 당을 경계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당나라군이 백제를 멸망시킨 뒤 사비성 근처에 진영을 설치하고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자 다미공이라는 인물이 신라군을 백제군으로 변장시켜 당나라를 공격하자는 계책을 내놓는데, 김유신은 "이 말은 취할 만 하니 마땅히 따르소서." 라고 동의했지만 김춘추는 이를 거절했다.
  • 극 초반부 삼자대면에서 연개소문(이원종)이 "쿠데타"라는 단어를 쓰는데 쿠데타의 어원은 프랑스어다. 엄격하게 따지자면 현대 한국인들이 구사하는 어휘는 당시와 확연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겠지만, 그냥 이 경우는 관객들에게 친숙한 어휘 + 코미디를 표방한다는 의지로 사용한 듯하다. 마찬가지로 의자왕이 553년 운운하는 것도 서력기원으로, 관객들이 쉽게 알아듣게 하기 위한 장치. 사실 극중 '쇼부'도 등장한다. 의자왕이 계백에게 버티라고 하며 버티고 있으면 소정방과 쇼부를 쳐보겠다고 한다.
  • 극 초반 사비성에서 백제 좌평과 우평이 군사회의를 할 때 인천이라고 말하는데, 삼국시대에는 인천이 아니라 '미추홀'이라고 불렀다. 근데 이 영화에서는 사비성이나 웅진성, 기벌포같은 지명을 제외하고는 거의 현대 지명을 그대로 쓰기 때문에 따지는 게 별 의미가 없다. 거시기의 출신지가 조선시대까지 존재했다가 각각 순천과 보성에 병합된 낙안군의 당시 지명인 분차군(낙안읍성의 그 낙안이다.)이 아니라 보성 벌교[61]로 나오거나 영화 초반에 의자왕이 성왕이 죽은 곳을 관산성이라 하지 않고 옥천이라고 언급하는 걸 보면... 대동강을 패수라는 당대 이름을 쓰지 않고 그대로 대동강으로 쓴 것도 있고
  • 후반부 전투 장면은 반전(플롯에서의 반전이라는 의미와 전쟁 반대라는 의미 모두 해당한다.)으로까지 여겨지게 된다. 우리가 잘 아는 역사극에서 장수들이 무쌍난무를 하는 모습은 여기서 나오지 않는다. 맨 처음의 맞짱도 한국에 맞게 화살을 쏘고 중반에 나오는 맞짱도 개그로 끝난다. 맞짱 때 신라군 장수가 칼 들고 달려들자, 백제군 장수는 미소를 지으면서 여유있게 칼을 뽑으려 하는데 잘 뽑히지 않아서 손잡이를 부여잡은 채 어쩔 줄 몰라 한다. 결국 마지막에 겨우 빼기는 하는데, 그 빼는 순간 손잡이에 신라군 장수가 얻어맞아서 끝이다. 장수들이 작전을 짜고 병사들의 사기를 고취시키지만, 전장에서는 뒤에서 지휘만 할 뿐이다. 이 부분은 오히려 고증이 잘 된 것이다.
  • 중반부의 인간 장기는 영화의 백미다. 장수들의 수싸움으로 인해 병사들이 어떻게 개죽음을 당하면서 희생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실 이 부분에서 영화의 반전은 시작된다. 인간 장기를 두는 김유신과 계백을 플레이어로 장기말이 된 병사들을 스타크래프트의 유닛으로 대입하면 의미심장 하게 해석 될 수도 있다.
  • 인간 장기 장면에 옥의 티가 있는데, 마, 상, 차가 각각 셋씩 나온다. 정리해 보면 계백의 마(馬)/상(象)/차(車), 김유신의 상(象)이 셋이다. 게백의 마가 셋인 것은 마 둘이 잡혔는데도 계백의 마가 김유신의 말을 잡은 것에서 확인 가능. 상이 셋인 것은 계백이 멍이야를 부를 때 사(士) 옆에 상이 하나 있는 것으로 확인 가능. 김유신의 상도 둘이 잡혔는데 또 다른 상이 상장을 친다. 차의 경우 하나가 잡혔고 김유신이 상장을 칠 때 계백 쪽 구석에 차가 뻔히 있는데도 상을 잡으러 오는 게 또 다른 차. 잡힌 차까지 합쳐서 세 개다.
이하 공격 → 잡힌 병사 순서.
김유신 象 → 계백 兵
계백 兵 → 김유신 象
김유신 馬 → 계백 象
계백 包 → 김유신 馬
계백 象 → 김유신 ?
김유신 馬 → 계백 車
김유신 馬 → 계백 馬
김유신 象 → 계백 包
김유신 ? → 계백 象
김유신 包 → 계백 馬
계백 ? → 김유신 象
계백 馬 → 김유신 ?
계백 車 → 김유신 象, 외통.
  • 전투에서 병사들은 밀고 죽을 때까지 때리고 도망치고 울고 불고 하면서 처절하게 싸운다. 말 위에서 한 대 때리면 누가 맞고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보통 사극과는 다른 것이다. 주로 당하는 쪽인 백제 병사들의 처절한 모습이 많이 보이지만, 그저 사기를 올리기 위해 출진해 죽어가는 화랑들과 성에 갇혀서 본대와 고립되어 백제군에게 처참하게 살육당하는 신라의 선발대의 모습도 처절하기 그지 없다. 근데 이 장면에서 엑스트라들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비장한 전쟁답지 못하게 다들 대충 싸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따지고 보면 죽기 싫은 상황에서 공포감으로 몸을 사려야 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 이쯤 가면 개그나 다름 없던 사투리조차도 진지함과 처절함을 강조하는 도구로 쓰이게 된다. 신라와 백제 양군의 처절한 전투 장면과 사방에서 들려오는 울부짖음, 그리고 백제군의 대다수가 신라군에게 살해당하고 전투가 거의 종결될 무렵 계백이 이름도 모르는 병사 하나를 탈출시키는 장면은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명장면이다.
  • 굳이 백제의 중심부였던 충청도가 아닌 전라도 사투리를 소재로 한 것, 신라는 그저 쌀배달꾼이었던 것, 무식하게 싸우는 계백에 비해 온갖 잔머리를 굴리는 김유신의 모습[62] 등을 보면 무게 중심이 백제, 나아가서 지역감정에 피해를 입은 전라도 쪽에 두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신라의 사정도 충분히 대변해준다.
  • 신라가 살아남아야 되기에 당나라와 편을 먹은 것부터 그렇기에 당나라에서 받는 차별, 당나라에 빌붙은 자가 오히려 신라를 더 무시하는 것,[63] 그걸 통해 김유신이 계속 열폭하는 모습을 통해 신라에게도 그만한 사정이 있었다는 걸 보여준다. 김유신이 소정방에게 칼을 들이대는 장면은 이런 약소국의 자존심과 나아갈 길을 보여준다. 결론을 말하자면, 상당히 중립적인 태도로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키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 영화 종반부에서 소정방이 의자왕의 처분 등 기타 백제전투의 전후처리 협상을 자기 멋대로 하자 격노한 김유신이 "이딴 식으로 할 거면 고구려보다 너희 당나라를 먼저 치겠다"라 일갈하는 장면은 실제 역사와 비슷하다. 엄밀히 말하면, 소정방에게 직접 일갈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태종 무열왕조를 보면 소정방이 신라군이 약속한 날짜에 늦었다는 이유로 신라 장수 김문영을 처형하려 하고, 그에 분개한 김유신은 신라군에게 '먼저 당나라 병사와 결전을 치른 뒤 백제를 깨뜨리겠다' 라 하며 칼도 아니고 무려 도끼를 들고 당군 진영으로 쳐들어갔다. 그를 본 당군 장수 하나가 소정방에게 '신라 쟤네들, 낌새가 이상한데요?' 라고 고했고, 그러자 소정방은 신라 장수를 풀어주었다.
  • 영화에서는 신라군 최고 지휘부인 김유신과 태자 김법민(훗날 문무왕)이 갈등하는 양상을 묘사했는데, 이를 통해 신라계 진골가야계 진골(신김씨) 간의 있었던 내부 갈등을 묘사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유신의 부모가 결혼하는 과정에서 볼 수 있든 가야계에 대한 차별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김유신과 김춘추계의 사이는 다르게 봐야 될 부분이다. 김유신과 태자 법민은 외삼촌과 조카 관계로 김유신의 누이 김문희가 문무왕의 모친이다. 친가로 신라 진골, 외가로 가야계 진골의 피를 물려받았던 문무왕은 즉위후 외가인 가야계 진골 집안의 권위 향상에 신경을 썼는데, 특히 김유신 사후 외삼촌을 흥무대왕(興武大王)에 추존하여 왕으로 격상시켰다.
  • 이 영화의 사투리는 현실을 그대로 재현한 것은 아니다. 물론 고구려어, 백제어, 신라어가 차이가 있었고 그 차이가 (전혀 다른 말 정도는 아닌) 사투리에 가까웠을 것이란 것이 정설이다. 지금의 사투리는 조선 이후에나 생긴 것으로, 어떻게 보면 "더빙판"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마치 고대 이집트어를 영어로 번안한 십계이집트 왕자처럼 말이다. 거기에 중국어 역시 당시 쓰던 언어는 중세 중국어로 현재 쓰는 북경어랑은 발음이 거리가 멀다. 물론, 당시의 모습을 살리는 것은 이런 사투리 대사로 더욱 성공했다.[64] 해학과 고증을 모두 성취한 것이다.
  • 지역감정이 삼국시대부터 생긴 것인양 오해를 할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실제로 지역감정은 1969년 신민당과 3선개헌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가 "영남은 고속도로까지 개설하는 정부가 호남선은 복선마저 제대로 않고 푸대접 하고 있다. 경상도정권을 타도하자"라 주장한 것과 박정희 정권이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을 견제하고자 신라 대통령론을 내세우며 호남권에 대한 지역감정을 조장한 이후 조금씩 갈등이 생기다가 1987년 6월 민주 항쟁 이후 지역당 체제[65]가 성립하고, 이어 3당 야합으로 민주자유당이 탄생하여 호남이 정치적으로 고립되면서 고착화된 최근의 유산이다.[66] 무엇보다 백제의 중심지는 멸망할 때까지 경기도-충청도 일대를 벗어나지 않았다. 백제가 건국된 이후 약 470년 동안 수도는 한강 유역의 위례성이었고, 고구려의 대공세에 경기도 일원을 실함한 이후 문주왕 시대에 웅진(충청도 공주)으로 천도했다가 성왕 대에 사비성(충청도 부여)으로 다시 천도, 그곳에서 멸망을 맞이한다. 한편 전라도(특히 영산강 유역)는 마한 세력만의 독특한 지방색을 가지고 있었으며 단 한번도 백제의 중심지가 된 적이 없었다. 현대에 사료상으로 확인되는 것은 <관세음응험기> 등에 무왕이 익산으로 추정되는 지역으로 천도했다고 한 것과 견훤이 거병 시에 백제가 금마산(익산)에서 개국했다고 한 것 정도가 떡밥이지만 당대의 정사 사료에는 그런 거 없다. 이상의 사료에 대해 익산이 부수도였거나 일종의 신도시 같은 개념이었다고 보기도 하지만 백제 멸망 당시에도 정사 사료에서 확인되는 백제의 수도는 여전히 사비(부여)였다. 전투 전에 김유신이 뻐꾸기들을 이용해서 백제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시키는 부분은 지역감정이라기 보다도 적국에 대한 적개심의 고취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이게 다 백제놈들 때문 아잉교. - 저 백제 문디 새끼들하곤 같은 하늘 아래 몬 산다.
>우리 신라와 백제는 원래부터 뿌리가 다르다 아이가. 조상이 다르다 이 말이다.
>글마들 말투가 그게 뭐꼬. 거시기가 뭐고! 갸들은 응큼하데이. 속을 알 수가 없다 이 말이다.
>이 좁은 땅에서 우리 후손들이 편하게 살려면 한 쪽은 망해야 하는 기야. 밟을 때는 확실히 밟아야 하는 거거든. 그래야 못 개기지. 안 그러면 우리는 두고두고 골치 아프데이.
  • 영화에서 충청도 병사가 딱 한번 나온다. 이유는 너무 말이 느려서. "있잖여유~" 다만 이는 충청도 사투리에 대한 오해이고 실제로는 이렇게 느리지 않으며, 설령 느리다 하더라도 말 자체를 상당히 축약하기 때문에 의사소통에 전혀 어려움이 없다. 일례로 우스개용 게시판에 있는 "있자나유~ 아부지~ 돌~굴러와유~ 위험행기로 얼릉 피하셔유~"는 "압지 피햐!" 로 압축이 가능하며, 이는 실제로도 흔히 쓰이는 표현이다.
  • 영화의 핵심인 거시기가 의미하는 것은 즉 "머시기 헐 때꺼정 갑옷을 거시기한다."는 매우 단순하게도 승리하기 전(혹은 죽기 전)까지 갑옷을 벗지 않는다. 신라군은 이 생소한 말에 쓸데없이 머리를 굴린다. 이 거시기의 뜻을 알아내려고 현존하는 한자 중 거,시,기 세 글자를 모조리 뒤져 그럴듯한 말을 찾아내려고 하기까지 한다. 인간장기 중간 때까지만 해도 김유신은 계백을 설득해서 백제군과의 마찰을 피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지휘관의 명령으로 어떤 결과가 초래할진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거시기 할 때까지가 '지원군이 올 때까지'인지, '양동작전이 성공할 때까지'인지, 원래 의미인 '죽을 때까진/승리할 때까진'인지 매우 애매모호하기 때문에 신라로선 헷갈려 미치는 판이니...이걸 또 한자를 조합해서 해석하려는 암호해독관의 안습한 노력이 참으로 볼만하다.[67] 그리고 인간장기 대결에서 그 뜻을 겨우 알아낸 김유신은 반굴과 관창을 포함한 화랑들을 자폭돌격용으로 써서 신라군을 독오르게 만듦과 동시에 백제군의 정신상태를 약간 흔들리게 만든다. 결국 마지막에 진흙을 던져서 갑옷을 스스로 벗게 만들어 백제군을 약화시켜 전멸시킨다. 우리는 여기서 사소한 정보라도 한순간의 반전을 가져올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양군의 응원전 또한 감상 포인트다. 쾌지나칭칭나네~. 뱃놀이 나간다~.
  • 그리고 거시기는 맨 마지막에 홀로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한 백제인 병사[68]가 계백에게 자신의 이름을 대충 둘러댄 일종의 가명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병사의 이름이 정말로 '거시기'인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가명. 자세한 것은 거시기#s-2 항목의 4번 참조.
  • 마지막에 창고안에서 계백 장군이 거시기에게 '난 자네를 남기고 싶다'라는 장면에서 아주 잘 들으면 바깥에서 "계백이 니 거 안에서 뭐하노!! 안 싸울끼가?! 퍼뜩 나온나!!" 라고 신라군의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는게 들린다. 계백과 거시기의 대화, 그리고 음악소리에 묻혀 잘 안들린다. 다만 억양과 발음으로 볼때 김유신의 동생인 김흠순으로 보인다.
  • 백제 측에서 보성, 벌교 사람들을 불러서 신라 병사들에게 욕 공격을 시전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덕에 담당 감독이 고소미를 먹어야만 했다.(뉴스) 결국 개봉 후에 판매된 DVD에는 처음 화면에 '특정 지역을 비하하려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찍혀서 나오게 되었다. 참고로 굳이 '주먹 자랑하지 마라'라는 말로 유명한 벌교를 언급하는 것 또한 작중에서 백제가 충청도가 아닌 전라도 위주로 묘사된 것처럼 현실풍자에 더 가깝다.
  • 놓치기 쉬운 장면이지만, 초반부 백제가 보낸 첩자가 한창 어설픈 정탐을 하면서 '백제 갈라믄 탄현 지나서 황산벌 거쳐가면 금방인데, 골비었다고 여까지 오겠능교?'라며 운을 띄우자 정작 신라군 병사들은 서로 어리둥절해 하며 '니 알았나?' / '내는 몰랐는데?' / '야, 임마 우리가 백제길을 우찌 아노 문디자슥'이라는 현실적인 반응을 보이며 깐다. 그러자 첩자는 당황해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사극에서 흔히 나오는, 지리에 통달한 백성/군사들이라는 클리셰를 깬 장면이다. 어설프게 일관하다가, 막판에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바람에 들통나서 단체로 두들겨 맞고 사로잡힌다. 이 첩자들을 연기한 배우는 신현준김승우이다. 참고로 이 둘은 그냥 친구인 박중훈 보러 촬영장 구경 왔다가 카메오출연을 제의 받게 되었는데[69], 단역을 예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수락했다가 무려 23컷짜리 콘티를 받고 이건 사기야! 를 외치며 밤새도록 촬영해야 했다고... 심지어 둘 다 서울특별시 출신인데 전라도 사투리와 경상도 사투리 양쪽을 다 연기해야 했다.
  • 계백이 전투에 패해서 부상을 입고 김유신을 만날 때 계백은 한과 울분과 억울함 등등 눈물을 머금고 김유신을 바라보고 그런 김유신은 그를 같은 장수로서 동정한다. 이 때, 김유신이 항복하는 계백을 바라보면서 "와 이리 덥노...?"[70]라고 말을 건네자 계백은 "겁나게 덥구마잉..."라고 대답한다. "와 이리 덥노?" 는 계백과 김유신이 장기를 둘 때 김유신이 의도치 않게 '거시기'의 의미를 파악할 때 던졌던 질문이다. 그 때는 계백이 "거시기 하기 전엔 절대 못벗제!" 라고 당차게 대답했지만, 지금은 패배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김유신의 말에 담담히 동의하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정진영, 박중훈 두 배우의 열연이 어우러져서 영화를 보는 관객이 슬퍼지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명장면이다. 신라 측에서도 그저 전쟁광인양 정복에 미쳐있는 것은 아니고 그들 또한 사람인 것을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 사실 영화 황산벌 이전에 황산벌 전투를 배경에서 서로 사투리로 대화한 방송이 있었다. 1990년대 SBS에서 토요일 저녁에 방송한 코미디 프로그램인데 같은 장면을 표준어를 쓰는 진지한 버전과 사투리를 쓰는 코믹한 버전으로 나누는 코너였다. 계백과 관창의 대화와 대결도 표준어 버전과 각자 사투리 버전 대화 버전으로 나왔다. 계백 역은 실제로 전라남도 출신인 개그맨 김병조가 맡아서 전라도 사투리를 썼는데, 영화와 같은 사투리 고증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 이후 조금 더 리얼한 사투리 개그가 하나 등장했는데, SBS 에서 진행한 코미디 프로의 한 코너였던 백제본기가 그것. 백제 왕으로는 최양락이 나왔고[71], 충청도 출신 개그맨들이 주로 등장했다. 여기서 백제왕실은 철저하게 충청도 사투리를 사용했는데, 이를테면 사극에서 대전에 왕이 들어올 때 내관들이 하는 대사인 "주상전하 납시오"를 "대왕마마 들어와~유~"라든가, "즈언하~ 죽여주시옵소서"를 "즈언하~ 죽여줘유~" 정도로 바꾼다든가. 거기다 고구려 사신으로 등장하는 개그맨 김종국은 평안도 사투리를, 신라 사신 김은우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고, 그걸 중간에 통역관이 받아서 충청도 사투리로 전달하는 등 제대로 개그요소가 폭발했던 작품이었다. SBS판 고전해학극장 정도의 느낌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대중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다. 또 알려졌다고 해도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그저 "거, 개그맨들이 참신하네. 저런 생각을 다 하고" 정도로 끝나는 것이라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한 것도 있다. 영화는 2000년대에 나왔으니 이 두 케이스가 훨씬 먼저 나왔다.
  • 꽤 예전에 나온 영화라 당시 출연한 단역들 중에 뜨게 되는 배우들이 많다. 이 영화를 보다가 어 이 배우 여기 나왔구나 싶은 얼굴들이 굉장히 많다. 부여태 역을 맡은 임형준, 임자 역의 우현, 문지기로 위장한 신라 첩자역의 김병철(배우), 암호 해독관 역의 정해균, 신라 뻐꾸기 역의 조달환 등. 감독 이준익도 백제군 북치는 병사로 나왔다.
  • 백제 병사들이 최종전 전에 백마를 죽여 피를 입에 바르는 장면을 잘 보면 죽었을 백마가 귀를 꿈틀대고 있다. 더미 등이 아니라 진짜 백마를 눕혀놓고 찍은 것이다. DVD에 포함된 다큐멘터리 촬영장면을 보면, 카메라에 보이지 않는 장면에서 촬영스태프가 말 머리를 누르고 있었다.
  • 드라마 대왕의 꿈의 황산벌 전투는 이 영화를 오마쥬하거나 모티브로 따온 듯한 연출이 존재한다. 김유신과 계백이 바둑을 두는 장면이라거나 계백이 죽기 전 부하 장수를 탈출시키는 등이 있다.
  • 너의 목소리가 보여 7에 이 영화의 주연인 박중훈이 출연했는데, 미스터리 가수로 황산벌에서 박중훈의 딸 배역을 맡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등장했다. 하지만 아니었고, 급격하게 이 실제 배역을 맡은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6. 명대사


  • 연개소문의 대사 (위 본문내용 참조)
  • 계백: 손자병법에는 말이여, 지키는 군사쪽이 10분지 1만 되더라도 이길 수 있다고 했어.[72] 저짝 5만, 이짝 5천. 5만 대 5천, 간단한 산수 아니여? 우리는 명색이 결사대여! 아, 결사대가 일당십도 못혀?! 아그들에게 단단히 일러라. 죽기 전에 신라놈들 열놈 죽였는가 안 죽였는가 나한테 확인 받고 뒤지라고! 알겠능가! 할당량 못 채우고 뒤진 놈은 나가 아주 죽여버릴겨 그냥...
  • 계백: 자 그래서 이번 황산벌 전투에서 우리의 전략 전술적인 거시기는 한 마디로, 뭐시기 할 때꺼정 갑옷을 거시기한다, 바로 요거여. 알겄제?
  • 거시기: 우리는 한 끼를 먹어도 반찬이 40가지가 넘어! 이 X벌놈들아![73][74]
  • 신라 병사: 절마들, 얼라가 어무이 뱃속에서 나올때도 '워매X벌!' 그카고 나온다 카는 놈들 아이가.. [75]
  • 김유신: 니(계백)는, 전쟁은 알아도 정치는 모른데이. 정치를 모리는 장군은, 부하들을 개죽음하게 만드는 아주 무책임한 장군이데이.[76]
  • 김유신: 계백아, 인간은 지가 아무리 날고 긴다 캐도 지 입으로 지 팔꿈치도 핥지 못하는 존재데이.
  • 김유신: 직위해제...?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자슥이. 니가 적진에 뛰어들어 목을 바칠 수 있다면, 그 칼로 내 목을 치라!! ...니(김법민)나 니 애비(태종 무열왕)는, 정치는 알아도 전쟁은 모린데이. 세상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기야!
  • 김품일: 금일부로 붕우유신, 임전무퇴, 화랑도 세속오계, 그거 다 개소리다. 화랑하면 관창, 관창하면 화랑 그거면 끝!
  • 거시기: 조카면 조카고 사위면 사위지, 조카면서 사위는 도대체 어느 나라 개족보 얘기여?
  • 거시기: 니 입에서 존대말이나 좀 나오라 캐라~ 계백이가 니 친구가? (이 말을 들은 동료가 거시기의 뒷통수를 후리며 "그럼 계백이가 니 친구여?")
  • 관창: 니는 누가 시키가 니 가족을 몰살시킸는갑제?[77]
  • 김유신: 그래 미칬다. 자슥 죽으라고 보낸 니는 안 미칬나? 제 식구들 쳐 쥑이고 나온 계백이는 제정신이가! 다 미친 기야. 미쳐야 하는 기야. 전쟁은 미친 놈들 짓인 기야! 화랑들을 계속 보내! 꽃은 화려할 때 지는 기야![78]
  • 계백: 자랑스러운 백제 아그들아! 뭐달라고 백마의 피를 입술에 발란 것이더냐... 시방. 그것이 바로 죽음의 맹세 아니여?! 사는 것은 불확실한 것이여!! 이 징헌놈의 인간 시상에! 확실한 건 딱 하나뿐이다! 고것은 바로! 사내가 미련과 변명을 버리고, 우리 오늘 여그 황산벌에서 (칼을 뽑으며) 아쌀하게!! 거시기 해불자!!!
  • 김유신: 그랬구마. 거시기 해버렸구마.[79]
  • 김유신: 우린 당나라를 위해서 싸우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서 싸우는 기다. 알긋제?..... 우리는...우리 자신을 위해...살(쌀) 배달 가는 기다. [80]
  • 계백: (최후의 돌격 직전에) 자, 외통수에 걸렸으면 장기판을 싸게 걷어야제! 전군! 문 열어!!
  • 계백과 김유신 최후의 대면, 김유신: "와 이리 덥노...?", 계백: "겁나게 덥구마이...."
  • 계백과 아내의 문답(위 본문내용 참조)
  • 의자왕, 아들들이 죽어야지 그나마 치욕을 당하지 않는다며 자살을 종용하자, "아, 니들이 죽지 그러냐?" 아들들 왈, 우리들이 죽으면 약발이 안 먹혀라!!!
  • 김유신: 당나라 느그 개새끼들 자꾸 이딴 식으로 나오면.... 우린 고구려보다 느그들을 먼저 칠끼다!!![81]
  • 김유신: 총공격? 지금 할까? 전구운~! 돌겨억!! 공격하라! 전군 공격하라! 전구운~! 총~ 돌격하라! 공격하라! 공겨억!![82][83]

7. 관련 문서




[1] 김승우, 신현준, 전원주, 오지명, 김선아 등 호화 캐스팅이다. 도깨비, 스카이캐슬로 유명해진 김병철도 신라측 첩자로 등장한다.[2] 실제로 15세 치고는 상당히 잔혹한 전투씬과 18세로 때려도 블러 처리가 될 각종 욕설로 인해, 비디오가 나올때 가벼운 코미디인줄 알고 아이들과 보다가 난리난 부모들이 많았다고 한다.[3] 중반에 펼쳐지는 욕지거리 배틀은 이 영화의 등급(15세)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성인적 개그를 보여 준다. 특히 하얀 물 뿜는 그 장면이 대표적이다.[4] 반말이 아니라 예의 사투리. 참모진들의 대답.[5] 다만 실제 역사에서는 황산벌 전투 이전까지 어디에서 뭘 했는지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6] '병사 A: 자넨 뭣하다 왔는가? / 병사 B: 놀다 왔지라~'. 다만 병영에 오래 있던 것은 맞는 듯. 앞서 계백의 부관이 병사들을 모아놓고 내리갈굼하는 장면에서 자기 복무일수가 엄청 오래됐다고 하는 장면이 있다. 덤으로 이 또한 아래 문단의 '전통적 영웅상 뒤집기' 의 일부라고 볼 수도 있다. '결사대' 라는 비장한 이름으로 나간 병사들 역시 평범한 사람들이었음을 보여주는 장치. 이러한 점은 영화 후반부에 백제군이 대부분 몰살당할 때 적과 싸우기보다 전우의 죽음을 슬퍼하는 장면에서도 드러난다.[7] 실제 영화에서 나오는 표현이다. 백제와 의 교류가 활발했던 것을 생각하면 나름 적절한 표현일지도?[8] 다만, 이 작전 직전에 자식들과의 대화가 참 가관이다. 둘째 아들은 계백이 막는 동안에 웅진성으로 피하자고 했으나 셋째는 왕족이니 죽을거면 왕족답게 죽자고 항의하나 이것도 의자왕이 생각해도 답이 없었다. 그런데 첫째가 묘안이 있다고 했는데 그건 바로 소정방에게 뇌물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받아봐서 잘 암직한) 뇌물의 파워에 대한 이야기를 주야장천 내놓자 의자왕이 "첫째야, 이리 와 봐라.(왕자가 다가오자)니가 어찌... 그 뇌물에 대해서 그리 빠삭하다냐?"라고 묻자 아들은 그런 걸 묻지 마시고 소정방에게 자신을 보내면 제대로 타협을 보겠다고 하자 의자왕이 "그래, 내가 소정방에게 전하려는 것을 제대로 전하거래이."라며 갑자기 상투를 감싼 왕관을 벗더니 그대로 박치기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박치기를 맞고 고통스러워하는 아들을 향해 "그그... 꼭 전해잉? 알았지?(아이고 머리야.)"라고 고통스러워 하는 것이 개그 포인트다.[9] 실제로 백제는 들이닥친 소정방과 당군에게 사신과 예물을 보내며 망국을 막아달라고 애원했으나 소정방이 거부한 역사적 기록이 있다.[10] 제갈량의 사망은 서기 234년, 황산벌 전투는 660년이므로 얼마전 치곤 상당히 시대 차이가 난다.[11] 사실 이 부분도 말투와 행동이 우스꽝스러워 보일 뿐이지 내용을 찬찬히 보면 하나같이 뼈가 들어 있다. 그야말로 온갖 실전 경험을 겪은 신라 최고의 명장다운 베테랑의 관록이 묻어 나온다.[12] 김춘추는 김유신의 여동생과 결혼한 매제이므로 손아래 서열이다. 그런데 또 김유신의 장인이기도 하다!![13] 오죽하면 김춘추가 '우리 신라는 다 좋은데 이 위아래 없는 말투는 다 없어져야 한다'고 푸념할 정도. 그러자 또 '그게 우리 신라 전통이라며 살갑고 좋지 않냐'고 바로 받아친다.[14] 정상회담에서도 나오지만 의자왕이 자신의 딸을 죽였다 라면서 계속 의자왕 당사자에 대한 개인적인 복수를 언급한다[15] 이 장면의 카메라워크가 매우 인상적이다.[16] 실제 역사에서는 아버지 무열왕뿐만 아니라 문무왕 역시 백제 멸망 전쟁에 직접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백제 마지막 태자인 부여융에게 침을 뱉으면서 백제가 자신의 누이를 죽였음에 대해 일갈하기도 하였다. [17] 이건 사실 공직자로써의 기본적인 자세다. 한국계 최초로 주한미국대사를 지낸 성 김 같은 경우는 오히려 철저히 미국대사 신분을 강조하며 공식 석상에서는 무조건 영어로 발언할 정도였다.[18] 거시기 암호 해독을 위해 글자 조합을 하기도 하는데, 까막눈이라기보다는 그냥 천자문을 전부 다 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애초부터 장군이라면 어명을 받는 문서를 읽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다 전문적인 교육도 받았을테니 글을 모르는 경우가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암호 해독관이 거, 시, 기 자가 발음되는 한자를 다 모아놓았던 나무 조각을 김흠순이 자기도 한 번 해보려는 김품일이 뭐라고 하자 "아, 내도 많이 맞췄다. 거시... 기!"라며 한자를 보여줬는데 전부 '기'자로 발음 되는 한자다.[19] 김품일의 형인 대야성주 김품석은 김법민의 누이 고타소의 남편이다.[20] 뒷날 KBS 드라마 정도전에서 조영규 역을 맡은 배우다.[21] 큰 조카는 당연히 문무왕이 되는 김법민으로 극 중 배역은 안내상이 맡았다.[22] 해당 배역 배우였던 류승수의 연기가 일품이었다. 예를 들면 소정방이 "그대 나이가 어떻게 되오"라고 물으면 "몇살 묵었노"라고 통역하는 식.[23] 이 장면에서 고증오류가 있는데, 그려져있는 세계지도가 조선 태종 때 만들어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다.[24] 신라군 선발대 6명이 백제 진영에 와서 창과 방패를 내던진 다음에 먼저 섹드립을 위주로 백제군을 도발한다. 그러나 백제군 측에서 보성 벌교 출신 병사 세 명을 앞세워 수위 자체가 다른 패드립과 잔인한 욕을 퍼부으며 곧바로 응수한다. 신라군 선발대는 결국 멘탈이 나가서 리타리어... 이 장면을 자세히 보면 신라군은 욕을 할 때 가볍게 폴짝거리는데 백제군은 기합을 넣고 가오를 잡은 뒤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으며 욕을 퍼붓는다.[25] (승리하거나)'''죽을 때 까지 갑옷을 벗지 않는다'''. 그동안 계책 없이 우직하게 밀고들어오던 계백이지만 나라의 사활을 건 전투이기에 혹시 모르는 비장의 수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변수를 두고 함부로 군을 움직일 수 없었던 김유신은 계백의 입으로 '거시기'가 무엇인지 듣고, '''남겨둔 비책따윈 없이, 평소처럼 우직하게 싸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영화 초반부에 계백이 휘하 장군들에게 '전쟁터에 나갈 땐 아예 갑옷을 꼬매입고 와 부러라.' 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사가 있으므로, 관객들은 빤히 알고 있는 사실을 신라인들만 골머리를 앓았다.[26] 부관이었던 천존에게 '병사들에게 지시해서 투석기를 전진배치시키고 구덩이를 파다 찰흙덩어리를 만들라.'고 시킨다.[27] 부인(배우는 김선아.)이 '호랭이는 가죽 땜시 디지고, 사람은 이름 땜시 디지는겨, 인간아!'라고 절규하며 말하고, 이에 계백은 고개를 돌리고 칼을 내리친다.[28] 김춘추 왈, '''"우리 신라는 다 좋은데, 이 위아래 없는 말투는 싹 뜯어 고쳐삐야 한데이"''' 이에 답하는 김유신 왈, '''"어데, 이기 우리 전통아이가, 얼메나 살갑고 좋노?"'''[29] 김유신은 660년 기준 김인문보다 나이가 2배 이상 많으며, 김인문의 외삼촌이기까지 하다.[30] 이 경우는 김인문이 당나라 장수 소정방의 질문을 통역한 것이라서 격식을 따지기에는 좀 문제가 있어보이긴 하지만 일부러 굉장히 건방진 말투의 초월번역이다. 사실, 소정방의 말투가 건방질지언정 아랫사람에게 격식있는 말투로 위엄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31] 거기다가 추가로 영화 첫 장면에서 잠시 등장하는 유일한 고구려 인물인 연개소문은 당시 고구려가 즉 지금의 이북 땅이었으므로 북한의 말투까지 함께 같이 들을 수 있는 건 덤.[32] 사실, 과거 한 때 방영되던 TV사극 중에는 배우들 대사가 옛 궁중 말투를 땄다 주장하려는 듯한 특이한 말투를 쓴 작품도 있었다. 한중록을 드라마로 만든 KBS의 '하늘아 하늘아'의 말투가 꽤나 유명하다. 하지만 시청자 반응이 별로라 이어지지 못햇다.[33] 정확히는 무왕 이후론 전북 포함. [34] 그 중에서도 이문식우현은 실제로 전라도 출신인데, 이문식은 전라북도 순창군, 우현은 광주광역시 출신이다.[35] 백제 왕궁에 당의 침공을 알리러 온 전령이었다. 말 하는 걸 듣다가 답답해서 속터져하는 백제 조정이 나온다.[36] 게다가 김유신도 본적은 금관가야지만, 태어난 곳은 충북 진천이다. 만약 영화의 사투리를 본래 출생지를 따져가며 만들었으면 백제 귀족들과 김유신이 같은 충청도 사투리를 써야 했을 수도 있다.[37] 당 고종과 연개소문이 서로 논박하면서 싸우는 장면인데 의자왕은 연개소문에게 붙어서 눈치만 보고, 김춘추는 당에 붙어서 따까리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실제로 4국가의 지도자가 한데 모여서 정상회의를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38] 이하 고종의 대사는 모두 중국어로 이루어져 있다.[39] 쿠데타는 프랑스어에서 정변(政變)을 뜻하는 Coup d'État 에서 유래된 말로, 실제로는 몇백 년 후에 만들어진 단어이지만 이 영화의 특성상 쓰이게 된 것이다.[40] 김춘추신라 역사상 최초로 성골 출신이 아닌 진골 출신으로 왕이 되었다.[41] 무왕의 출신이 불확실한 것을 반영한 대사인 듯.[42] 대야성 전투 대 무열왕의 딸 고타소가 사망한 것은 백제군의 침공이 직접적 원인이 아니었고, 남편인 김품석이 내분으로 인해 대야성문이 열려버리자 아내 고타소를 죽여버리고 자신도 자결한 것이다. 물론 대야성에서 전투 중이기도 했고, 어차피 김춘추로선 구실이야 갖다붙이면 될 일이었다.[43] 서력기원을 인용했는데 쿠데타처럼 관객을 위한 대사다.[44] 실제 사실일 가능성은 낮지만 일본서기에 따르면 신라군은 성왕의 목을 신라 왕궁 북청 계단 밑에 묻었다.[45] 정확히는 (영화에서는 등장하지 않지만) 까지, 당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부시 미대통령의 그 발언에 대한 패러디. 영화에는 안 나오지만 대본에는 왜 당나라 기술자들을 빼돌려 '''초강력 쇠뇌''' 같은 대량살상무기를 만드냐는 대사도 있었다.(대신 영화에서는 연개소문이 안시성 전투 직전에 세운 천리장성을 거론했다) 그리고 그 '''초강력 쇠뇌'''는 8년 뒤에 아들들이 잘 써먹었다.[46] 사실, 김유신이 병사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서 고위층의 아들들을 자살돌격시킨 것이다.[47]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관창보다 앞서 백제군에게 자살공격을 간 화랑이다. 김유신의 동생 김흠순의 아들로, 김유신의 조카이자 사위(따라서 작중에 거시기가 이를 가리켜 '개족보'라 놀리는 장면이 있다.)이다.[48] 배우 김선아카메오로 출연했다.[49] 사실 이 대사는 고증 오류. 후량 시기의 용장 왕언장에게서 유래한 말이니 약 300년 뒤의 일이다. 몇 백년 후에나 나오는 그레고리력 기준으로 연도를 세거나 '쿠데타' 같은 용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작품에 이 정도는 별 의미도 없지만.. [50] 평소에 역사책에서는 계백의 처와 아이들이 계백의 뜻에 따라 순수히 죽어준 것으로 미화(?)되어서 나오는데 이 장면은 그런 거 없고 가장 현실에 가깝게 묘사했다. 이때 정말 슬프다.[51] 그리고 이 전까지의 탐색전등에서 나오던 음악들과 달리 이때부터 배경음악부터 굉장히 슬프고 어둡게 변하면서 영화분위기가 크게 변하기 시작한다.[52] 계백을 포함해도 단 넷 뿐이다.[53] 그래도 무인은 무인이라는 건지 일반 농민 출신의 징집병들 여럿을 베는 모습이 나오긴 한다.[54] 같은 맥락에서 드라마 정도전은 말할 것도 없지만, 대장금에 대한 평가도 상당히 좋다. 어떤 의미에서는 정도전보다 몇 줄 없는 기록을 근거로 미시사적 측면에서 상상력을 발휘한 대장금 쪽이 현대 역사학의 흐름에 더 맞다. 역사학자들 몇명 모아서 자문을 붙여놓으면 정도전은 돈이 따라주면 만들 수 있지만, 대장금같은 작품은 쉽게 못 만든다.[55] 삼국사기에도 나온 실제 기록이다.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왕자 41명'은, 원문을 따르자면 '서자 41명'은 실제 의자왕의 친자식들이라기 보다는 종친이나 왕실의 친위세력들을 중용한 것으로 해석하는 편인데, 의자왕이 "우리는 모두 가족이다"는 인식을 심어줬을 것으로 추정한다.[56] 조갑제닷컴의 글은 조갑제의 황산벌 비판론을 담았고 대자보 글은 조갑제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다.[57] 그나마 황산벌의 성공으로 이 때 진 빚을 겨우(제작한 흥행작 달마야 놀자 흥행도 이 빚을 갚는 데 썼다고 한다.) 갚았고, 왕의 남자의 흥행으로 비로소 돈을 벌게 되었다고 한다.[58] 계백의 자식들이 옥수수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59] 옥수수가 유럽에 전래된 건 콜럼버스의 교환이 이루어진 시기이고, 한반도에서는 조선 시대에 (정확히는 16세기쯤에) 명나라에서 전래되었다고 알려졌다.[60] 오늘날의 옥수수의 모습은 12세기쯤에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61] 보성군 벌교읍은 원래 낙안군 소속이었다.[62] "계백이 갸~ 작전? 그른게 어뎃노? 계백이 금마 작전은 그냥 열씨미 싸우는거데이. 맨날 행님 니 혼자 잔머리쓰다가 깨진 거 아이가?" 대사가 나온다.[63] 실제 김인문은 신라의 왕을 시켜준다는 것도 거부하는 등 신라인으로서의 자세는 지켰다고 한다.[64] 순정만화 리젠드에서도 비슷한 수법을 쓰기는 했지만 묻혀버렸다.[65] TK - 민주정의당, 부울경 - 통일민주당, 호남 - 평화민주당, 충청 - 신민주공화당[66] 차라리 전근대 시기부터 꾸준히 이어져 오는 지역갈등은 서울(경기권)-평양(서북권) 간 관계이다. 이쪽은 고려 때 개경파와 서경파로 나뉘어 권력 투쟁을 벌였던 것에서부터 근원을 찾을 수 있고, 조선 후기에는 조정의 서북민에 대한 차별로 홍경래의 난이 벌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한말에는 서북지역을 중심으로 개신교가 널리 전파되고 상업이 발달하면서 기존의 조선 관료 사회를 장악했던 서울-경기권과 경쟁하였고, 일제 시대에도 경성부-평양 간 갈등은 독립운동 뿐만 아니라 일반 민중들에게도 적용되었다. 심지어, 이는 현대에 들어서서 이념갈등군사적 충돌대립까지 합쳐지면서 오늘날 남북관계로까지 이어지고 있다.[67] 물론, 관객들은 영화 초반에 계백이 부하들에게 명령하는걸 봤으니 알고 있다.[68] 그리고 이 병사(이문식 분)가 어머니와 상봉하는 장면으로 끝나는데, 어머니역이 전원주. 영화가 개봉하던 무렵의 통신사의 CF를 패러디했다. 영화 개봉당시 유행하던 것을 패러디한 부분이 여기저기 들어가 있어서 시간이 흐른 지금 보면 과장되거나 쓸데없는 부분처럼 보이기도 한다.[69] 신현준은 이전에 박중훈이 주연을 맡은 '불후의 명작'에도 카메오로 출연한다. 답례로 손목시계를 받았는데, 황산벌에서는 추어탕 한그릇을 얻어먹었다.[70] 이제는 전쟁도 끝났고 우리 신라가 이겼으니 편히 저승으로 가달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마침 황산벌 전투는 한여름인 음력 7월이었고 한여름에 벌어진 전투였다.[71] 최양락의 약력을 참고할 때. SBS의 코미디 펀치펀치의 한 코너가 아닌가 추측된다.[72] 손자병법을 잘못, 혹은 일부러 틀리게 인용했다. 손자병법 모공편에서는, 10배가 되면 포위하고, 5배가 되면 그냥 공격하고, 2배이면 적을 나눠서 공격하고, 비슷하면 전력을 다해서 싸우고, 전력이 적으면 지켜보고, 그래도 안되면 피하라고 했다. 즉, 손자병법에서는 적과 병력차가 너무 크면 지키려고 하다가 적에게 포위섬멸당하기 때문에 피하라고 하고 있다. 계백이 몰랐거나, 혹은 알면서도 사기 진작을 위해서 일부러 틀리게 인용한 것이다.[73] 위에 언급한 보성 벌교 출신 병사들이 한창 욕질을 할 때. 순간 백제군에서도 정적이 흐르다가 거시기에게 다른 병사가 "이 X벌놈아!"하며 꾸짖는다. 보성 출신이 다소 뜬금없이 전주 특성을 얘기해서 그런 듯. 그전에 신라군이 하나씩 욕설을 해댈때 말빨 딸리는 병사가 "야~ 이~ 빙시야~"라고 어설프게 욕설을 하자 동료 병사가 "뭐꼬 이 빙시야?"하면서 뒤로 밀쳤는데 양국이 한 병사씩 어설픈 짓을 하는걸로 대비시키기 위한 대사로 볼 수 있다. 앞의 두 병사가 끔살 수준의 욕설을 했는데 뜬금없이 엉뚱한 반찬 이야기가 나오니 리듬이 끊길만도 하다. 근데 어떻게 보면 적에게 사기 저하를 시키는 욕이기도 하다. 남들이 반찬 한 두개로 먹고 있을 때 자기들은 반찬이 푸짐한 식량을 먹고 있다고 생각하면. [74] 한편 이 대사는 배우 이문식이 신라군을 도발할 수 있는 대사를 밤새 연구한 끝에 전라도 지방이 상대적으로 평야가 많다는 점에 착안하여 만들어낸 대사라고 한다. 이준익 감독은 백제 병사들의 분량은 '니들이 알아서 해'라며 대부분 배우에게 일임했다고 한다.출처[75] 보성 벌교 출신 병사들의 욕 세례에 멘붕해 실려나가며 한 말[76] 바로 계백에게 "너는 정치를 잘 아는 장군인게, 쌀 배달 다니는구만."이라고 반박당하지만, 결국 김유신의 말대로 됐다. 그리고 제대로 반박도 못한다.[77] 인간 장기와 반굴의 죽음으로 반전이 시작되던 영화는 관창이 계백을 이 말로 도발하고 죽음으로써 본격적으로 반전되기 시작한다.[78] 이 장면 이후, 명령을 내리는 김유신의 위엄이 서게 되면서 장군들이나 병사들이 바짝 군기가 들어있는 모습이 나온다.[79] "거시기"가 별 뜻 없음을 알게 된 후에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80] 약소국도 자존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울분어린 대사. 이때 김유신의 눈을 보면 눈물이 살짝 맺혀있다.[81] 실제 역사에서는 김유신이 친히 도끼를 메고 가서 그걸로 소정방을 위협하지만, 영화에서는 그냥 검을 뽑아 탁자에 내려찍는 것으로 나온다. 결국,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 진짜로 나당전쟁이 터졌으니 말이 씨가 된 셈이다.[82] 계백의 농성에 당나라와 약속한 날까지 못 갈 것 같자 초조해하는 병사들 사이로 총공격론vs적의 본의를 알 때까지는 기다리자라는 파와 싸우다보니 김유신이 이렇게 하여 병사들도 사기 저하인데 총공격은 안된다고 몸개그 한 것이다. 물론, 병사들은 갑자기 "총사령관이 미친 건가?"라는 반응이고 김유신이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총공격 명령을 하자 병사들은 수군거리기만 할 뿐, 김유신은 숨을 헐떡거리며 "어엉~? 총공격 안하네~!"라고 말하는 게 개그다.[83] 그렇다고 마냥 개그 장면인 것도 아닌 것이 무작정 총공격을 밀어붙인다고 한들 병사들이 제대로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메세지와 적에 대해 알지도 못한다면 이렇듯 제대로 군을 움직일 수 없다는 은유적인 행동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