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석

 


''' 서인석의 주요 수상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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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김인문
(1985)

'''서인석
(1986)'''

유인촌
(1987)

<colbgcolor=#87003a><colcolor=#ffffff> '''서인석
徐仁錫 | SEO IN SEOK'''
'''출생'''
1949년 2월 22일 (75세)
[image] 서울특별시
'''국적'''
[image] 대한민국
'''본관'''
달성 서씨
'''자녀'''
아들 서장원[1]
'''학력'''
서라벌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 / 학사)
'''종교'''
개신교
'''취미'''
수영
'''데뷔'''
1975년 KBS 특채 (드라마〈산비둘기〉)
1. 개요
2. 활동
3. 명대사
4. 출연작
4.1. 방송
4.2. 영화
4.3. 광고
5. 수상
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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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배우로 1949년 2월 22일생, 서울특별시 출신이다.

2. 활동


연기의 폭이 상당히 넓어서 태조 왕건견훤이나 무인시대이의방 등과 같은 배역에서는 호방하고 거친 성격의 호걸 연기를 능숙하게 해내는 반면 현대극에서는 비교적 부드러운 가장의 모습을 연기하는 경우도 있다.
의외로 젊을 때(?)에는 무관이 아닌 얌전한 배역도 연기했었다고 한다. 1979년의 '토지'에서 길상 역이라든가 1991년 '동의보감'의 허준 역이 그 예. 다만 이 버전의 허준은 이후의 전광렬 버전에 비하면 히스테리컬한 성격이었다. 물론 의술이 깊어지고 나이들면서 성격이 죽긴 한다. 의서 지고가다 왜군 만나 위기에 처했을때 전광렬 버전은 일행의 희생으로 빠져나오고 서인석 허준은 직접 조총들고 쏴죽여버리는 정도의 차이다.[2] 요즘 세대들은 잘 모르겠지만 애초에 서인석이 지상파에서 포텐이 터진 것은 1987년 TV 손자병법에서 '유비'역을 맡으면서였다. 1998년에는 이영자, 홍진경, 윤다훈 등과 함께 시트콤 '행복을 만들어 드립니다'에 출연해 코믹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사극에서도 자주 눈에 띄며 삼국기의 김유신과 한명회의 세조 역을 맡았다. 태조 왕건에서는 견훤 역을 맡았는데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연기력절륜했으나, 견훤 자체가 버프를 못받은 캐릭터라 대사조차 안습[3] 어록[4]을 남겼다. 이 견훤으로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어 2001년 KBS 연기대상 남자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이후 무인시대이의방연개소문(드라마)당태종역을 맡기도 했다.
제5공화국에서의 노태우 역에서는 노태우 특유의 미묘한 물#s-7스러운 느낌을 잘 표현하며 호평을 받았다. 극 중 절대로 자신의 의견을 단정적으로 이야기 하지 않는다.[5] 우선 일반적인 여론을 겸손하거나 비굴하게 얘기한 후 상대방의 반응을 보아서 주변 환경과 전두환의 의견을 계산한 뒤 그에 맞추어서 권력이 흐르는 곳에 힘을 실어준다. 초반에 전두환에게 충성을 다한 것, 대권을 향해가면서 주변 친구들에게 힘을 실어준 것, 1988 서울 올림픽 개최식에 국민들과 국제 여론을 눈치보며 전두환이 나오지 못하게 한 것 모두 그의 그런 처신에서 나온 행동이다. 쓰리허 중 허화평, 허삼수가 몰락할 때는 그 둘을 몰아붙였고 그의 상급자가 절대권력을 쥐고 있을 때는 그의 말을 적당한 수준에서 맹신해주는 충성스러운 모습을 잘 연출했다. 마지막 41화의 첫 장면[6]과 마지막 장면[7]도 백미다.
2006년엔 연개소문에서 당태종으로 출연했는데, 애초에 드라마 제목을 '양제소문' 혹은 '주말시트콤 수나라 사람들'로 바꾸라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고구려의 비중이 없었다. 수나라만큼은 아니지만 당나라 얘기도 고구려보다 재밌어서 분량은 많이 확보했고, 연기력도 보여줬다. 그러나 드라마가 거의 퓨전 드라마여서...
근초고왕대왕의 꿈에선 왕족으로 나와 자식을 걱정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
젊은 층에게는 정도전최영 역으로도 유명하다. 방영 전과 초반부 견훤의 재림(...)을 우려하는 반응이 있었으나 드라마가 진행되며 견훤과는 다른, 강직하면서도 독단적인 최영의 모습을 잘 소화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도전 이후 한동한 활동이 뜸하다가 4년 만인 2018년에 드라마 비밀과 거짓말에 출연했다.
사극에서는 유동근과 3번 적수로 만나, 1승 2패를 기록했다.
또한, 이덕화와 만나면 쿠데타 콤비(...)가 된다.
  • KBS 한명회: 세조 - 서인석, 한명회 - 이덕화(계유정난)
  • KBS 무인시대: 이의방 - 서인석, 이의민 - 이덕화(무신정변)
  • MBC 제5공화국: 노태우 - 서인석, 전두환 - 이덕화(12.12 군사반란, 5.17 내란)[8]

3. 명대사


대부분 다 사극 혹은 시대극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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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닥치지 못할까!!! 어디다가 불을 질러?! 네놈이 제 정신이었느냐!!!'''[9]

'''어쩌다가 상황이 이 지경으로 된것이야...어쩌다가!!!'''

'''아니!!! 뭐야?! 죽었어!? 수달이가 죽었어! 수달이가!!!'''

'''이보게, 파진찬!'''

'''방장군이 죽었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이게 무슨 소리야?! 또 졌어어어!!! 이젠 아예 전멸을 했다고?! 으이구!!!'''

'''2000년 태조 왕건 / 2002년 제국의 아침[10] - 견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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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폐위되셨소이다!'''

'''정균!!! 네이노오옴!!! 거 사내라면 나와 당당히 맞서서 내 목을 가져가보거라!!! 그만한 배포도 없는 놈이 황실과 사직을 지키겠다고 하였느냐...?!'''

'''나는...황제를 옹립한...벽상공신 흥위위섭대장군 지병부사 전중감 겸 위위경 이의방이다!!! 내 위태로운 사직을 바로세우고...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고자 거병을 하였으니...누구도 대고려의 벽상공신의 목을...가져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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즌장군, 마 그라모, 우예 하면 좋겠십니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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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문이![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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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근초고왕 - 흑강공 사훌
사실 여기선 따로 명대사는 나오지 않았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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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캐릭터에서 따온 명대사 말고 오리지널은 없다(...)
2012년 대왕의 꿈 - 숙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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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도당의 중신이란 작자들은 무엇을 했단 말인가!

마마께서 고려의 임금이시라구요? 허면 어디, 소장에게 명을 내려보세요. 추상같이 호령을 해보세요! 이 부월을 당장에 내려놓으라고! 어서요!

세력 따위 관심도 필요도 없소이다. 나는 내 길을 갈 뿐이오.[13]

내 이번에 겪은 치욕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오. 내가 정치에 서툰 것을 다행으로 여기시오. '''조정이 아니라 전쟁터였다면 대감은 내 손에 목이 떨어졌을 것이외다!'''[14]

내 평생에 단 하나의 실수가 있다면 믿은 것이다! 역적을 알아보지 못한 내 눈알을 뽑아내고 싶은 심정이니라...!

이성계, 넌 만고의 역적이다!!

'''나 최영, 이 자리에서 다짐을 하겠소이다. 내 평생 단 한 순간이라도 사사로운 욕심을 품었다면은, 내 무덤에서 풀이 자랄 것이로되,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도 없었다면은, 풀이 나지 않을 것이외다. 다들 똑똑히 들어두시오...! 대고려국... 만세...'''


4. 출연작



4.1. 방송


  • 1976년 산비둘기
  • 1977년 후회합니다 - 김기태 역
  • 1979년 전설의 고향 이어도편.
  • 1984년 독립문 - 이승만[15]
  • 1985년 빛과 그림자 - 성구 역
  • 1986년 그대의 초상
  • 1986년 TV 손자병법 - 유비
  • 1988년 순심이
  • 1989년 달빛가족 - 첫째 조카[16] 김준호 역
  • 1991년 내 마음은 호수
  • 1991년 동의보감 - 허준
  • 1992년 삼국기 - 김유신[17]
  • 1992년 해빙기의 아침 - 채동훈 역
  • 1994년 한명회 - 세조
  • 1995년 서궁 - 이이첨
  • 1996년 은하수 - 김만득 역
  • 1997년 정 때문에 - 홍우표 역
  • 1997년 꿈의 궁전 - 한동수 역[18]
  • 1998년 전설의 고향 [살생부편]- 황대감 역[19]
  • 1998년 단단한 놈 - 강동수 역
  • 1998년 행복을 만들어 드립니다 - 서인석 역[20]
  • 1999년 사랑해 당신을
  • 1999년 전설의 고향 호몽편 - 이진사 역[21]
  • 2000년 태조 왕건 - 견훤
  • 2001년 자꾸만 보고싶네 - 장세윤 역
  • 2002년 그 여자 사람잡네 - 백수산 역
  • 2003년 찔레꽃 - 최명욱 역
  • 2003년 무인시대 - 이의방
  • 2004년 매직 - 선모 부 이대해 역
  • 2005년 제5공화국 - 노태우
  • 2005년 걱정하지마 - 최경준 역
  • 2006년 연개소문 - 당태종 이세민 역
  • 2007년 깍두기 - 이승용 역
  • 2008년 가문의 영광 - 하석호 역 # 이때조차도 조선 복장!
  • 2010년 제중원 - 백태현 역[22]
  • 2010년 근초고왕 - 흑강공 사훌 역[23]
  • 2012년 부탁해요 캡틴 - 차명진 사장 역
  • 2012년 대왕의 꿈 - 숙흘종 역
  • 2014년 정도전 - 최영
  • 2018년 비밀과 거짓말 - 오상필 역

4.2. 영화


  • 1980년 땅울림
  • 1984년 저 하늘에도 슬픔이

4.3. 광고


  • 1982년 태평양화학 탁틴[24]


5. 수상


'''수상 연도'''
'''시상식'''
'''부문'''
'''작품'''
1977년
제13회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신인상

1978년
동아연극상
대상
아일랜드
1986년
제22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최우수 연기상
빛과 그림자
1990년
KBS 연기대상
남자 최우수 연기상
TV 손자병법
제27회 저축의날
대통령표창상

1997년
KBS 연기대상
남자 최우수 연기상
정 때문에
2001년
제38회 저축의 날
국민포장

KBS 연기대상
남자 최우수 연기상
태조 왕건

6. 여담


"난 왕을 했던 사람이야! 무진주완산주를 다스리고 논산에서 죽었어!" (참고로 그 논산이 지역구인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바로 상기한 이 사람...)

  • 디시인사이드 정도전 갤러리에 인증을 올렸다. # 박영규도 올렸다.
  • 최영 역이 인기를 끌면서 하차와 동시에 언론 인터뷰도 나왔다. 그의 인생관과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기사.
  • 거친 성격의 캐릭터를 맡았을 때 사달을 자주 일으킨 흑역사가 있는데, 태조 왕건 촬영 도중 추허조 역의 강재일과 마찰이 있었고,[25] 덕분에 추허조는 이 드라마에서 12년이나 빠른 대야성 공략전에서 전사처리 되었다. 일반적으로 밥값을 내는건 호의 표시기 때문에 계산한다는데 건방지다고 하는건 이상한 행동이다. 다만, 그 시대 사람들, 특히 남자들 사이에선 계산을 하는 것이 체면치레로 여겨졌고, 이 때문에 일단 자기가 내겠다고 하는 것이 기본적인 예의였다. 서로 계산하겠다며 계산대에서 진지하게 입씨름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고, 그 나이대 어르신들 사이에선 아직도 그런 경우가 잦다. 강재일과 서인석도 이런 식으로 서로 계산하겠다고 다투다가 이를 "체면을 구긴 것"으로 여긴 서인석이 화를 냈을 가능성이 높다.
  • 근초고왕에 출연 중이던 2011년 1월 10일엔 같이 출연한 동료배우 안재모의 결혼식에 참여한 뒤 자택으로 돌아가던 중 대리기사가 잘 모시겠다고 인사를 하자[26] '잘 모시겠다' 라는 말을 했다는 건 공통적이지만 확실히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많이 기분이 다를 수 있는 상황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폭행사실을 옹호할 수 없지만. 두 경우 모두 명백한 잘못이지만 사실 상식적으로 따지고 보면 이게 더 말이 된다. 결국 폭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었다.[27] 그 전에도 부여화 역할을 맡은 김지수가 뺑소니를 친 것에 이어 근초고왕 출연진에 또 한 번의 악재가 되었다.
  • 저 경우 진짜 듣는 입장에선 (꼰대스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건방지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잘 모시겠다"고 인사를 했는데 갑자기 건방지다고 뺨을 때리는 건 인간쓰레기 내지 정신에 좀 이상이 있는 사람이나 할 법한 행동이기 때문. 서인석이 성격이 괄괄하고 거친 면이 있어도 이 정도로 막장이었다면 연예인 생활, 아니 사회생활이 어려웠을 것이다. 이러한 불상사들 때문에 중견배우로서 본인의 명성에도 흠이 갔다.
  • 고교 시절[28]에는 주변 학교까지 이름을 날릴 만큼 한주먹 하는 거친 시절을 보냈다 한다. 주먹이 세기로는 그 세대 연예인 중에서 최상급이었다고.

[1] 1983년생 배우로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하정우의 친구이자 후임 이승영 역을 맡았다.[2] 다만, 서인석 버전은 허준과 의녀 한명. 단 2명이 의서를 지고오기에 훨씬 빡셌다.[3] 연기 자체는 훌륭했고 견훤을 매력적으로 그려냈지만 '''어마어마한 임팩트의 적'''과 주인공 에게 밀려 방영 당시에는 그렇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종영 된 지 꽤 시간이 지난 후에야 인터넷을 중심으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4] 수달이가 죽었어! & 또 졌어! 또 졌어! 신검이가 또 졌어! 등[5] 작중에서는 박정희 밑에서 총리만 오랜 기간을 맡아온 김종필로부터 2인자의 처세술에 대해 조언을 듣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6] 그야말로 꿈인가 생시인가 아직 실감을 못한 2인자의 표정으로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대통령 자리에 앉는 장면.[7] 니키타 흐루쇼프이오시프 스탈린의 편지 야사[8] 앞의 두 작품에선 서인석이 상급자, 이덕화가 부하로 나왔지만, 제5공화국에선 상하관계가 역전되었다.[9] 추허조최승우를 강제로 끌고 오기위해 절에 불을 지르려고 했다는 말을 듣자 추허조를 질책하며[10] 제국의 아침 2회에서 죽기 직전 왕건의 회상에서 나왔는데 태조 왕건과 후속으로 방영된 제국의 아침 둘다 이환경 작가가 작업한것이라서 가능한것이다.[11] 연개소문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대부분의 당나라 장수들이 연개소문을 보면 꼭 한번씩은 하는 대사다. 일종의 클리셰라고 봐야할듯[12] 다만 머리를 쿵쿵 찧으며 부여구(근초고왕)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열연이 있는데, 명대사는 오히려 계왕(한진희 분)에서 나온다..[13] 그러나 후에 이인임의 팩폭에 묵살(...).[14] 이에 이인임 왈, '''"이 사람이 전쟁에 서툰 것을 다행으로 여기세요! 내 휘하에 대감 같은 장수가 한 사람만 있었다면 대감께서도 사대부들과 똑같은 신세가 되셨을 것입니다! 고려의 국방을 위해 대감을 치지 않은 것입니다. 허니 더는 이 사람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세요."'''[15] 근거자료[16] 아들이 아니고 조카다. 아래 동생들로 길용우, 김주승, 안승훈, 김승진이 출연했다.[17] 이 작품에서는 신라 삼국 통일의 주역의 배역을 맡았는데 공교롭게도 태조 왕건에서는 후삼국 분열의 주역이자 신라 경애왕을 죽이는 배역을 맡는다. 그리고 김유신과 견훤 모두 아들과의 관계가 좋지 못했다는 점이 공통점이다.[18] 당시 개그우먼 김미화와 함께 예능에 출연해 인기있던 아역 병국이의 홀아버지로 등장하는데 딸을 홀로 키우던 레스토랑 사장 이응경과 로맨스를 진행하게된다. 등장초반 캐릭터는 코믹하고 순박한 충청도 남자로 묘사되는데 극전개 과정에서 알고보니 엄청난 무술고수임이 밝혀지고 추후에 남자주인공인 이훈의 무술 사부가된다. [19] 극중 삼신할미역할로 출연했던 금보라는 2년후 태조왕건에서 서인석이 연기한 견훤의 왕후인 박씨부인으로 등장하게된다.[20] 시트콤으로 서인석은 이영자를 아내로 두고 네 명의 딸을 가진 택시기사 역할을 맡았다. 이 때 막내 역할이 홍진경이었는데, 서인석이 잘못을 저지른 홍진경을 훈계하며 으이그, 인석아(이 녀석아의 준말)이라고 하자 인석이는 아버지 이름이잖아요! 라면서 맞받아치는 장면이 있다.(...)[21] 사냥한 새끼 여우의 고기를 부인에게 먹이고 나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에피소드이다. 어미 여우의 술책으로 인해 결국 이진사가 애첩을 오해해 죽이고 만다. 이 에피소드에서 어미 여우이자 이진사 댁의 여종으로 나왔던 것이 90년대 전설의 고향에서 여우 역을 단골로 맡던 노현희.[22] 형조판서. 민영익처럼 개화파에게 칼에 베여 중상을 입어 주인공이 수술한다.[23] 설정상 비류왕의 아버지로, 소위 대원군 역. 굳이 명대사를 찾자면 자신이 핍박했던 계왕(한진희 분)에게 여구(근초고왕)를 살려달라고 머리를 피가 나도록 쿵쿵 찍는 모습과 왕위 계승식에서 상징인 칼을 내어주는 장면이 나온다.[24] 무한도전 남자다잉 특집에서 무도 활력남들이 스킨바르기를 할 때, 그 시절 CF 영상이 지나가며 한창 젊은 시절의 서인석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25] 정식으로 확인된 바는 아니나 후배인 강씨가 오늘은 제가 한턱 쏘겠다고 하니 대뜸 건방지다며(?) 화를 내서 사건이 시작되었다는 얘기가 있다.[26] 다만 어떤 자료에서는 대리기사에게 길을 알려주자 "제가 잘 모시겠다. 알아서 운전하고 있는데, 왜 자꾸 그러느냐."라고 대리기사가 쏘아붙였다는 말도 있다.[27] 본인은 술에 취해 기억이 안 난다고 변명했다.[28] 나온 학교가 정릉, 미아리, 석관동 사이에 있었는데 사창가, 빈민가, 우범 지대와 가까왔기 때문에 "X라벌" 라고 불릴 만큼 거친 학생들이 많았다. 반면 서라발 예대와 함께 연극, 예술로도 날리던 학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