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인플루엔자 범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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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2009 Swine flu Pandemic''
2009년 3월 하순 미국에서 시작되어서 유행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나중에 전세계적으로 번지게 되었다. 아형은 스페인 독감과 같은 H1N1이었다. 참고로 홍콩 독감, 코로나19와 같이 세계보건기구에서 범유행전염병으로 선언한 질병 세 가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
2. 상세
2009년 5월 3일 기준으로 멕시코에서는 사망자가 150명을 돌파하여 반쯤 공황상태에 이르렀다. 이 당시 유럽에서도 산발적으로 발병자가 발견되었으며 이스라엘 같은 중동국가에도 감염자가 발생된 것으로 밝혀졌다.
인플루엔자가 퍼지기 시작하자 말 그대로 '''온 나라가 문을 닫았다'''. 농담이 아니다. '''식당, 술집, 교통수단, 학교, 박물관, 유적지, 심지어 성당 미사까지 중단되었다.'''[2] 멕시코 경제에서 관광업이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건 대단한 것이다. 멕시코시티는 10일 동안 야간에 운영하는 모든 사업을 중단하도록 했으며, 마트에만 가도 기침만 하면 주변의 사람들이 흠칫거렸고 거리에는 마스크를 나눠 주는 군인들만 지나다닐 정도로 말 그대로 영화 감기 실사판을 찍었다. 그러나 다행히 이런 극단적인 조치에 힘입어 증가하는 감염자 수는 줄어들어 실제 감염자 수는 수평을 유지하게 되었다.
팬데믹 선언은 2009년 6월 11일 이뤄졌다.
WHO는 2009년 6월 16일을 기준으로 전세계 76개국에서 3만 5928명이 발병하였으며 163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집계했다. 단 이 수치는 멕시코 쪽의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축소되어 있어 여론을 진정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란 의혹이 일었다. 11월 수치로는 미국의 사망자가 3433명으로 1위를 기록했고 그 뒤로 브라질, 멕시코가 이었다.
전체 감염자 수를 세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지적이 나와 WHO에서는 전체 감염자 수를 세지 않기 시작했으며 이후 2010년 4월에 WHO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소 사망자 17,583명이다.
3. 국가별 대응
3.1. 멕시코
멕시코에서 사망자가 많은 것은 빈부격차가 심하여 교육되지 않은 국민들이 많기 때문에 자신들이 새로운 전염병이 걸린 줄 몰랐던 경우가 많다. 멕시코는 IMSS(모든 노동자가 가입되어 있는 의료보험)와 ISSTE(모든 공무원이 가입되어 있는 의료보험)라는 공립건강보험이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긴급을 요하는 환자들에 한해 나름 훌륭한 시스템을 갖추었다는 평. (IMSS의 경우 빨간색부터 파란색까지 5단계로 나누어 빨간색과 주황색 카테고리는 즉시 응대, 노란색은 30분 내 응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현재 이들이 지닌 문제는 시설 부족이라 할 수 있겠는데, 죽을 병은 아닌데 긴급을 요하는 환자들의 경우 응급실 벤치에 앉아서 링거를 맞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3.2. 한국
2009년 5월 초, 국내에 감염 의심 환자 16명에 확진된 환자 3명이 있지만 모두들 가벼운 증상만 보인 뒤 완쾌 후 퇴원했다. 지상파, 신문을 가리지 않고 모든 언론에선 감기보다 약한 질병이라 크게 위험한 전염병이 아닌것으로 판정되었다고 했을 정도다.2009년 5월 초 감기보다 약했다 뉴스 조사 결과
반면 여론과 달리, 당시 한국 정부는 매우 발빠르고 모범적인 초기대응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3] 공항의 입국검역을 강화하여 신종플루 감염 추정 또는 확진된 환자에 대해 국가 지정 격리병상에 입원하도록 하는 동시, 항바이러스를 투여하였다.(항바이러스제 투여는 증상이 없는 접촉자에 대해서도 투여되었다.) 5월 말까지 국내에서는 2차 감염자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결과를 이끌었다. 또한 이런 긴밀한 대응 덕분에 '''신종플루가 5월 초에 처음 발생했음에도 8월 중순까지 국내 사망자는 없었고, 국내 기준으로 8월 말까지 사망률은 0.01%에 불과했다.'''[4]
그러나 신종인플루엔자 백신의 준비, 의료인 및 의료기관에 대한 교육과 준비에 대해서는 효과적인 대응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당시 백신 접종 예산 등에 대해서는 추가 예산 확보와 접종 대상자 선정을 진행하지 못하였기 때문. 이 예산 확보는 7월 중에 이르러 확보되었다.[5]
폐쇄된 공간에서 생활하는 군인과 전의경들 사이에서 전염이 일어났으며 순찰이나 휴가 등으로 인해 감염된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지역사회로 외출/외박을 하여 광범위한 전염을 일으켰다는 평이 나왔다.
- 대구 쪽의 감염 루트 중 유력한 것이 전경대 소속 전의경들의 지역사회 순찰을 통한 것이라고 한다.
- 개강 시즌을 맞추어 해외 자원봉사 활동을 나간 사람들의 간접 감염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러자 개학을 앞둔 8월에 여러 학교가 개학한 지 얼마 안 되어 며칠 동안 휴교하거나 개학일을 미루는 등 신종플루의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들이 취해지기도 했다. 추가로, 초·중·고교 학생 중 여름방학 동안 외국 여행을 다녀와 개학식에 맞춰 귀국한 학생은 학교에서 1~2일 정도 후에 등교하도록 조치를 취하여 인플루엔자의 확산을 막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개학한 후 학생 및 교사들 중에서 감염자가 나온 걸 알면 바로 휴학하는 식으로 휴학하는 학교들이 계속 늘어나자, 나중엔 정부가 감염자 1, 2명 나왔다고 무조건 휴교하지 말고 감염자에게 완치될 동안 학교에 오지 못하게 하는 식의 격리조치를 취하고 감염자 수가 일정 명수를 넘은 후에야 휴교가 가능하도록 하는 등의 방침이 내리기까지 했다. 결국 해당 방침은 후대에 끝끝내 온갖 욕을 다 먹었다. "전국 휴교령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라고 학자들은 말하는데, 교육부가 쓸데없는 정책으로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육군훈련소에서는 9월 초순(9월 7일) 입대자까지는 입영 행사는 했으나, 9월 중순(9월 14일) 입대자부터 입영 행사를 중지하여 부모들이 입영 행사에 참여하지 못하고 훈련소 입소대대 정문 앞에서 아들과 헤어져야 했다. 입영 행사는 2010년 2월에 재개되었다.
10월 16일에는 당시 초등학교 1학년(2002년생)이었던 학생이 사망했고, 이후 사망자수가 점점 급속도로 퍼져 휴교하는 학교가 늘어나고 국내에서도 얼마 후 신종플루 대유행 사태가 일어날 거란 예측이 나오기까지 하자 10월 26일, 교과부가 전국 휴교령을 고려하고 있다고 발표했는데 2010년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고 출석 일수 등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실현될 가능성은 낮으며 최종 수단으로 전국 휴교령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더 가까웠다.
철없는 학생들 사이에서 신종플루에 걸리면 등교정지 조치를 취한다는 것을 악용하여 일부러 신종플루에 걸리려는 시도가 있었다.[7] 이거 때문에 이 당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자신이나 가까운 친구가 신종플루에 걸린 경우가 많았다.
11월 3일 신종플루의 전염병 단계가 '심각'으로 상향조정되었다. 정부는 학생 대상 신종플루 백신 접종 시기를 예정보다 앞당기기로 했고, 군대에선 예비군 훈련과 장병들의 2차 휴가를 무기한 중단하기로 하는 등 대유행 사태에 대비. 또한 감염자들이 폐렴 합병증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보도되자 당시 존재치 않던 신종플루 백신 대신 폐렴 백신이라도 맞고 보자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기도 했다.
11월 8일, 배우 이광기의 장남이 이 질병에 걸려 결국 사망했다.
11월 25일, 과거 신종플루에 감염된 뒤 재감염된 사례가 보도되었다.
12월 1일, 치료제에 대한 내성을 가진 변종 병원균에 감염된 사람이 국내에서 발견되었다.
12월 중순에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접종을 마친 뒤 접종 지원자가 줄어들면서 단계가 '경계'로 하향 조정되었다. 하지만 백신 접종 후 항체 형성이 되지 않는 접종 후 약 2주일 정도 기간에 안심한 학생들이 무심하게 돌아다니는 통에 되려 감염자가 느는 지역도 드물지만 있었다.
2010년 들어 인플루엔자는 거의 약해졌다.
2009년~2010년 기준 759,678명이 감염되어서 270명이 사망했다. 인구 대비 감염자 수로 전 세계 8위를 차지했으며, 치사률은 0.035%로 세계치사율보다 훨씬 낮은 치사율을 기록하였다.
그 이후 인플루엔자 A/H1N1는 사실상 계절독감 수준으로 내려갔고, 연례행사가 되었다.[8]
3.3. 북한
한편 북한에서도 감염자가 나왔다. 북한은 이례적으로 국제 사회에 이 사실을 공개했으며[9] , 이전에 선진국에서 받은 타미플루로 치료하고 있다고 한다. 전염병 아포칼립스/행동지침을 보면 알겠지만 폐쇄적인 국가일수록 자국의 감염자의 숫자를 축소하거나 없다고 할 가능성이 큰 만큼 공개 당시 이미 북한 내에서 많은 감염자가 있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10] 특히나 남한의 지원 의사를 받아들인 것 자체가 그 강한 증거. 북한은 남한과 체제경쟁에 있으므로 웬만해서는 지고있는 꼴을 못 볼 테니 지원을 웬만하면 안 받으려고 하겠지만 받아들인 건 북한 사정이 일단 이걸 해결하고 봐야 하는 수준이라고 봄이 옳다. 이에 대해 남한에서 지원 의사를 보이자 북한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리하여 2009년 12월에 첫 지원분이 출발하였다.
4. 당시 전 세계 사망자
5. 치료
치료제는 주로 타미플루가 처방되어서 사용되었다.
6.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와의 비교
약 11년 후[11] , 2020년에 또다시 나타난 범유행전염병인 코로나19와 자연스레 비교가 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염성이나 치명률 모두 상대적으로 코로나19가 신종플루보다 높다.'''
감염자 및 사망자 수만 보더라도 코로나19가 신종플루보다 각각 15배, 116배로 훨씬 높은 수치를 자랑하고 있으며, 조지워싱턴대학의 추정 사망자 수인 20만 3천 명으로 추산하더라도 코로나 쪽이 10배 이상 높다. 게다가 신종플루는 이미 유행이 끝난 질병이지만[12] , 코로나19는 여전히 현재진행중이며, 도대체 언제 잡힐지 감조차 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훨씬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적으로 끼친 영향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신종플루의 경우, 코로나19와 달리 공공시설 및 사업체에 대한 대대적인 폐쇄조치가 시행되지도 않았으며, 스포츠 경기가 중단되거나 교육기관이 폐쇄된 적 역시 없다.[13] 반면 코로나19의 경우, 마치 전시를 방불케 할 정도로 전염 우려가 있는 각종 시설이 폐쇄 및 운영중단되었으며, 수많은 실업자를 양산하였다.[14] 심지어 전시가 아니면 절대 중단하지 않았던 학교 등의 의무교육기관조차 코로나19로 인해 장기간 중단되었다. 신종플루 때는 공항이용 제한이 일시적이었고 해외여행이 평소대로 이루어졌으나[15] 코로나19때는 아예 국경과 공항이 폐쇄되고 특별한 목적으로만 입국이 허용되었으며 해외여행이 사실상 금지되었다.[16]
신종플루의 경우 일상의 변화도 적었지만 코로나는 일상이 크게 뒤바뀌었다.[17] 신종플루 때도 마스크를 썼지만 강제사항은 아니었고 안쓰고 다니는 경우도 많았다. 반면, 코로나19때는 아예 마스크 착용이 무조건 강제되었고 황사, 미세먼지를 막기위해 쓰던 마스크가 일상화되었으며 마스크 미착용 시 벌금을 내는 규정도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는 코로나19가 신종플루보다 훨씬 전염성이나 치명률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지만,[18] 한편으로 신종플루가 초기부터 타미플루라는 치료제가 존재했던 반면,[19] 코로나19의 경우 그렇지 않아 통제가 매우 어렵다는 점 또한 원인이 되었다. 코로나19의 경우, 각국에서 백신 및 치료제를 개발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코로나바이러스의 특성상 완전한 치료제 개발은 불가능에 가깝고, 개발하더라도 상용화가 매우 어렵다는데서 사태를 진압하는 것은 매우 먼 시일이 지나서야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게다가 신종플루의 경우, 치료제가 조기에 존재했음에도 사태 완화에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음을 감안하면, 코로나 역시 설령 백신이 개발된다 하더라도 유행이 끝나려면 매우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보건복지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실시하는 국가공단건강검진의 경우 신종플루 당시 홀수년생이 받는 2009년 국가건강검진이 한시적으로 연장된적은 없었으나 2020년도에 코로나바이러스 여파로 짝수년생이 받는 2020년 국가건강검진이 2021년 6월 30일까지 한시적으로 연장되었다.[20] 행정자치부 경찰청 도로교통공단에서 담당하는 운전면허 적성검사 역시 2021년 6월 30일까지 연장되었다.[21]
7. 여담
- PLOS ONE의 보고서에 의하면 당시 전세계 인구의 11%~21%[22] 가 감염되었다는 추정치가 있다. # 그리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공중보건센터에선 최소 123,000명에서 최대 203,000명 사망했다고 추정했다. 이 기록을 깨트린 코로나 19는 2020년 10월, WHO의 추정으로 전세계 인구 8억 명 가까이 감염되었다고 발표했다. 다만 추정치이고 공식 확진자 수는 2021년 1월 22일 기준으로 9,800만 명이다.
8. 참고
[1] 당시만 해도 유일한 심각 단계에 있던 바이러스였다. 하지만 11년 뒤에 심각 단계가 한번 더 발생하였다.[2] 그러나 이로부터 약 10년 후에 발생한 코로나19로 대한민국의 여러 궁과 능 등의 유적지와 박물관을 한동안 닫기도 하였고 지금도 오락실, 카페 등 공공기관이 많이 닫혀있는 상태이다.[3] 최원석 et al.,<2009년 발생한 신종인플루엔자 대유행에 대한 정책적 대응 평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내과학교실 감염내과, Journal of Preventive Medicine and Public Health March 2010, Vol. 43, No. 2, 105-108[4] #[5] ibid., 106[6] 다만 어린이는 애초에 인플루엔자 고위험군이 맞다. 후자의 경우는 사이토카인 폭풍을 의심해볼 수 있다.[7]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 때는 이런 일이 없었다. 더불어서 그 당시에는 스마트폰, 태블릿이 보편화된 시기가 아니어서 온라인 개학 이런 게 없었다.[8] 이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유력한 종식 시나리오 중 하나다. 바이러스가 박멸되지 못하고 독성이 약화된 채 연례적인 감기 수준의 질병으로 변질되는 것이다.[9] 2020년 현재 코로나19 사태 중에도 자가격리자 존재 여부까지만 밝히고 확진자 통계를 밝히지 않는 북한조차도 공개했다는 건 2009년 인플루엔자 범유행이 엄청난 사건이었음을 증명한 것이다.[10] 실제로 11년 뒤 코로나19 확진자/사망자에 대해 중국 정부의 확진자/사망자 축소 의혹이 있었고, 북한은 아직까지도 확진자는 0명이라고 발표하고 제대로 된 통계를 내놓지 않고 있다.[11] 정확히 중국에서 최초 보고된 지 10년 후다.[12] 오해하면 안될 것은 심각할 정도의 판데믹 단계가 끝난 것으로 전 세계적으로 박멸에는 실패했기에 엔데믹이 되어 남아있지만 심각하지 않은 질병인 상태이다.[13] 다만, 이 당시에는 온라인 수업 등을 시행할 인프라도 없었고 국내에 스마트폰이 거의 없던 시기여서 대안이 없기도 했다. 만일 2010년대 중후반~2020년대와 같은 기술이 있었다면 이 당시에도 온라인 교육이 시행될 수 있었다.[14] 스포츠 경기가 중단되거나 무관중으로 진행되는 것은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최초가 되었다.[15] 2009년에는 전년도보다 인천국제공항 이용객 수가 8% 감소했으나 이때는 신종플루 외에도 세계금융위기의 영향이 컸다.[16] 2020년 1월에 하루 20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인천국제공항 이용객 수는 1월 말 코로나 사태가 터진 후 2월에 반토막, 3월에 10분의 1을 기록한 후, 4월부터는 하루 5천명도 안되는 수준이 되었다.[17] 당장 대유행 피크이던 시절에 '인천 세계도시축전'이라는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행사가 취소되지 않았으니 코로나19에 비하면 얼마나 경미했는지 알 수 있다.[18] 실제로 2009년 독감 범유행 때는 건강한 사람은 약 안 써도 나으니 과도하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홍보하기까지 했다... 실제로도 그랬고.[19] 그리고 기존에 독감 백신이 있었기에 항원을 추가하면 되어서 6개월만에 접종이 이루어졌다.[20] 2015년 메르스 유행 당시 홀수년생이 받는 2015년 국가건강검진이 3월까지 한시적으로 연장된 바 있다. 그 당시에는 만 40세가 건강검진 대상자였다가 2019년부터 만 20세로 완전 확대된 것임을 감안해야 한다.[21] 신종플루, 메르스 당시에는 적성검사 연장이 없었다.[22] 7억 ~ 14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