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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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스페인어: Pandemia de gripe de 1918 (Gripe española)
- 영어: Spanish flu
2. 명칭과 유래
제1차 세계 대전 최후반부터 종전 직후까지인 1918년 ~ 1919년 사이에 인플루엔자 A형 바이러스의 변형인 H1N1 바이러스에 의해 유행한 독감이다. 스페인 독감이라는 명칭만 보면 스페인에서 시작한 독감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사실과는 다르다. 전쟁에 말려든 각국들이 보도 검열로 이를 다루지 않는 가운데 검열로부터 자유로운 스페인 언론만 이를 집중 보도하였다. 이로 인해 다른 나라 국민들은 스페인 언론을 통해 질병에 대한 정보를 얻어야했고 본의아니게 '''스페인 독감'''이라고 명명된 것이다. 스페인 국왕이었던 알폰소 13세까지 감염될 정도로 스페인 내에서도 많이 퍼지긴 했지만,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과 영국 총리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독일 황제였던 빌헬름 2세도 걸렸으니 스페인에서만 더 크게 유행한 것도 아니고 단지 언론 통제를 덜 하는 만큼 소식이 더 빠르게 전달되었을 뿐이다. 결국 스페인은 독감의 발원지도 아닐 뿐더러 오히려 해당 질병에 대한 정보를 세계 각국에 빠르게 전달하는 데 큰 공이 있는 국가인데 오히려 질병 이름 자체가 스페인 독감이라 불리게 된 것은 스페인으로서는 상당히 억울한 일이다. 참고로 스페인에서는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 대신 '''1918년 독감 범유행'''(Pandemia de gripe de 1918)이나 미국 독감, 시카고 독감이라고 부른다.
이 병의 증상으로는 일반적인 독감이나 폐렴 증상과 동일하나 탈산소로 인해 피부가 푸르게 괴사하는 증세를 동반한다.
3. 발병과 대유행
기원에 있어서는 이견이 많으나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병사들이 귀향하기 위해 모여있던 캠프에서 발병하였을 것으로 여겨지며, "3일 열병"이란 이름처럼 짧은 증상기간 이후 단순한 감기 증상을 가지고 귀향한 병사들이 각지에 전파함에 따라 유례없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되었다.
기록에 의한 보고는 1918년 3월, 미국 시카고가 최초. 3월 8일 캔자스 퍽스톤 기지와 3월 11일 미군 각 부대에서도 발병자가 발생했으니 출처를 따지면 스페인이 아니라 미국 독감이나 다름없는 셈. 비록 미국에서 최초로 보고되었으나 미국이 아닌 유럽 발원설, 중국 발원설도 있다.# 고병원성으로 발전한 것은 같은 해 8월, 영국령 시에라리온의 프리타운에서 발견된 것을 최초로 여긴다.
킬 군항의 반란으로 독일 제국이 무너지는 시점에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스페인 독감에 걸렸으나 빠르게 완치되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 프랑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 미국 사업가 프레더릭 트럼프[2] 는 스페인 독감으로 아예 세상을 떠났다.#
이 질병이 특히 무서운 것은 고대의 유행병이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에는 질병이 냄새로 전파된다거나 피의 균형을 맞추면 병이 낫는다는 등 현대로 보면 괴상한 생각을 하였고 방역이나 위생 개선에 대한 의식은 고전적인 단계에 불과했다.[3] 그러나 20세기 초에는 이미 세균학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있었고 공중보건[4] 에 대한 체제가 어느 정도 되어 있던 근대화 인류였다. 그런데도 피해 규모가 가히 어마어마했다.
당시 세계 인구가 약 17억 명이었는데, 감염자는 약 5억 명에 사망자는 최소 1,700만에서 최대 5,000만(총 감염자의 3~9%, 전체 인구의 1~3%)에 달한다고 추정된다. 사망자 수가 이렇게 들쭉날쭉한 이유는 진단할 겨를도 없이 야전에서 사망한 군인들과 합병증 사망자[5] 를 포함하지 않거나 행정력 미비, 정치적 혼란 등의 이유로 당시 제대로 된 통계가 없어 사망자를 추정할 수도 없는 인도, 중국, 러시아 같은 나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잡더라도 1차대전 사망자 수인 900만 명의 '''2배~5배에 다다르는 사망자 수'''다.[6] 심지어 일부 연구자는 스페인 독감의 유행이 1차대전의 종결을 앞당겼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 사모아는 인구의 90%가 감염되어 30%가 사망했고, 이누이트 마을 몇 개도 몰살의 운명을 겪었으며, 산마리노는 이 질병 하나 때문에 국가 멸망의 위기까지 갔었다.
일제강점기의 한반도에서는 "무오년 독감"이라고 불렸으며, 1918년 가을부터 겨울에 이르기까지 대유행했다.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에 의하면 당시 조선인 1,678만3,510명 중 절반에 가까운 742만2,113명(44%)이 감염되어 13만9,128명(전체 감염자의 1.87%, 전체인구의 0.83%)이 희생된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인은 일본 제국군으로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할 수 없었기 때문에[7] , 일제강점기 조선에 플루가 퍼진 이유는 1차대전 참전한 일본군이 조선에 다시 배치받으면서, 일본군으로 인해 조선에서도 플루가 대 유행한 것으로 추정된다.[8][9] 1918년 9월 들어 본격적으로 환자가 나오기 시작했으며, 10월에 유행이 절정에 이르렀고 각 학교가 휴학했으며 단체와 관청이 업무를 보지 못했다. 11월 개성시에서는 사망률이 평소의 7배에 이르렀고, 충청남도에서 특히 기승을 부려 예산군과 홍성군에서는 수천명이 사망해 사망자를 처리할 사람이 없을 지경이었고 추수를 못한 논이 절반 이상이었다. 또 서산시에서는 12월 기준으로 인구의 대부분인 8만명이 독감에 걸렸다. 매일신보 11월 12일자에 따르면 경성부에서는 268명이 죽었고, 그중 조선인은 119명이었으니 과연 조선인의 사망률이 낮긴 낮았던 듯. 이 자료는 당시 조선총독부 자료로 실제론 더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10] 같은 달 평양에서도 인구의 절반이 감염됐고 집배원들이 감염되어 업무가 마비된 우체국이 속출했다. 신동아: 스페인독감, 식민지 조선을 휩쓸다
미국 시애틀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승객의 대중교통 탑승을 거부했다.# 또한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미착용시 경우에 따라서는 유치장에 며칠 가두기도 했다.
일본 도쿄에서는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고 시민들은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1#2[11]
아메리칸 사모아는 스페인 독감에서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는데, 이는 당시 총독 존 마틴 포이어(John Martin Poyer)가 라디오를 통해 듣고 내린 해외 여행객 입국금지 조치로 인해서다. 세인트헬레나 같은 일부 고립된 지역에서도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런 끔찍한 수의 사망자가 나왔음에도, 치사율이 '''1.87%'''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매우 높은 감염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12] 만약 감염된 환자가 주변에 감염을 시키기도 전에 단시간내 바로 죽는다면 치사율은 높지만 도리어 감염 전파력이 떨어지게 된다는 감염의 메커니즘을 생각해보자. 더구나 이러한 독감이 충분히 퍼진 이후 독성이 더 심해진 돌연변이로 대체된다면 인류에게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전 세계를 휩쓸며 맹위를 떨쳤던 스페인독감도 총 3번의 대유행과 몇 차례의 소규모 유행 이후 최초 발병 이듬해인 1919년 4월 즈음해서는 어느 순간 눈 녹듯이 사라졌다. 어떻게 해서 종식된 것인지는 아직까지도 명확하게 밝혀진 바 없으나 집단면역[13] 형성, 유전자 변이, 검역격리와 방역의 효과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4. 대유행 이후
이후 2005년 미군 병리학 연구소의 타우펜버그 박사의 연구를 통해서 스페인 독감의 정체는 조류독감인 것으로 추측되었다.[14] 병사들이 머물던 캠프에서 기르던 식용 조류에서 발병했으며, 역시 식용 돼지[15] 를 통해 돌연변이가 발생하여,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진 병사들에게 쉽게 감염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하지만 마이클 워러비 미 아리조나대 교수팀은 1880년부터 1900년 사이 태어난 이들이 어린 시절 H1 바이러스에 별로 노출되지 않아 면역력이 없는 상태에서 스페인독감의 H1N1형 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에 감염되면서 최악의 사망자를 냈다는 연구 결과를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2014년 4월 28일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첨단 분자시계 방법론을 이용, 스페인독감의 원인균인 H1N1형 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와 일반적인 H1N1 돼지독감, 1918년부터 1957년 사이의 계절성 H1N1 바이러스의 유래를 분석했다. 그 결과 스페인독감 원인 바이러스가 조류에서 직접 유래했거나, 사람과 돼지독감 바이러스간 유전자 재조합으로 만들어졌다는 기존 가설이 틀렸다는 결론을 얻었다. 대신 발병 10여년 전 사람에 감염된 H1 바이러스가 조류독감 바이러스 유전자와 섞이면서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발전했다는 결론을 내놨다.
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는 대개 유아와 노년층 사망률이 높은 데 반해 스페인독감은 20∼40대 사망률이 크게 높았다.[16] 대부분은 폐렴균에 의한 2차 세균감염이 원인이었다. 이는 당시 나이별 인구 분포에 기인한 바가 큰데, 실제로 100년 후인 2018년 인구분포 곡선을 대입하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나이대 별 사망률 분포와 유사하다. 즉, 스페인 독감이라고 나이든 사람에게 덜 감염되었던 건 아니고 60대 이상 인구 자체가 별로 없었기에 사망자 수로는 부각되지 않았던 것 뿐이다. 만일 노년화가 진행된 현대라면 그 당시보다 노인의 사망자 수가 많았을 것이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의학기술 발전 등 100년이라는 시간 간격을 고려하지 않은 단순 비교라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연구팀은 1880년부터 1900년 사이에 태어난 상당수가 어린 시절 H3N8 바이러스에 노출되었고, 그 결과 H1N1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이 별로 없다 보니 사망률이 높았다고 분석했다. H3 바이러스 항체를 가진 당시 20대 후반 젊은이들이 H1 항원에 노출돼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것. 물론 H3N8 바이러스마저 겪어보지 않은 섬지역 등에선 스페인독감 치사율이 몇배나 높았다. H5N1(조류독감의 일종)은 젊은층, H7N9(조류독감의 일종)는 노년층 사망이 많은 것도 어린 시절 다른 HA 항원에 노출됐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워러비 교수는 "1918년 독감 대유행 이후 바이러스가 어디에서 유래했고 치사율이 왜 그렇게 높았는지, 그리고 왜 청년층 사망률이 높았는지가 미스터리로 남아있었다"며 "이 연구 결과는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찾아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현대의 H1N1가 이 스페인 독감의 변종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는데 스페인 독감에 비해서 독성은 약해진데다, 현대인들의 영양상태가 그 당시보다는 나았기에 치사율은 낮았다. 그 대신에 전염성은 강해져서 일반 감기와 같이 연례행사가 되었다.
이 독감을 겪고 코로나 19를 또 겪었는데도 생존한 할머니가 있으며, 미국에서도 같은 사례가 나왔다.#1#22번 사례의 할머니는 심지어 재확진되었는데도 완치했다. 1918년 당시 살아있던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이 독감에 감염되었기 때문에 이 같은 사례가 나올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18년 독감과 관련된 서적이나 다큐멘터리를 보면 흥미로운 내용들이 나오는데 당시 사람들도 2020년 코로나 19를 겪는 사람들과 인식과 대응의 차이가 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페인 독감이 유행하던 그 당시에도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 무증상 감염과 사전 격리 조치를 취한 사례가 빈번히 나오며 이에 따른 사회적 반발과 물류 마비, 자영업의 고난 등 코로나 19와 비슷한 사회적 현상 및 대중들의 인식들이 나온다. 다만 당시에는 미국과 유럽이 마스크 착용에 적극적이었다는 등 차이점도 발견할 수 있다.[17]
2019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유행으로 스페인 독감의 재림과도 같은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인포그래픽 통계 사이트 '''Visual Capitalist'''의 통계에 따르면 2020년 3월 14일 기준으로 코로나가 판데믹 중 9위며 현재진행형으로 순위가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5. 관련 문서
[1] 스페인 독감이 퍼진지 100년쯤 뒤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와 함께 근대 이후 최악의 팬데믹으로 불린다.[2] 도널드 트럼프의 조부이다.[3] 위생에 대한 의학적이고 체계적인 인식은 19세기에 와서야 시작되었다. 산욕열 항목 참조.[4] 상수도, 하수도, 위생 등[5] 사실 이 독감 자체보다는 허약해진 몸에 합병증으로 세균성 폐렴이 발병해 폐에 물이 차 숨을 못 쉬어 침대에 누운 채로 익사한 사람이 대다수다.[6] 다만 제2차 세계대전 사망자 수에 비하면 적다.[7] 일본 제국군에 조선인의 입대가 허용된 것은 문화 통치 후반인 1926년까지 가야 한다.[8] 당시 한반도에 살던 일본인의 경우 인구 34만 6,619명 중 15만 9,916명이 감염되었고 1,297명이 사망하였다. 일본은 5,500만 중 2,500만(45%)이 감염되어 48만명(감염자의 1.92%, 전체 인구의 0.87%)이 사망했다고 한다.[9] 한편으로는 최초 발병 보고 지역이 강계여서,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통해 극동으로 전파된 뒤 다시 만주를 거쳐 유입되었다는 시각도 있다.[10] 당시 중국에 있던 김구도 이에 감염되어 20일간 앓았다고 백범일지에까지 기록해 두었다.[11] 소설가 시가 나오야는 1919년 스페인 독감을 소재로 한 <유행감모(流行感冒)>라는 단편 소설을 발표했다.[12] 물론 지역별 차이는 있어서, 고립되거나 의료체계가 낙후된 지역은 이보다 치사율이 더 높았고 사모아 등 일부 고립된 지역에서는 최대 20%에 달하는 치명률이 나오기도 했다.[13] 다만 집단면역은 백신으로 인위적으로 이루어진다는게 중론인만큼 집단면역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심지어 당시에는 타미플루 같은 치료제도 없었다.[14] 스페인 독감으로 죽은 사람의 시신이 알래스카에 묻혀 있었는데 동토가 냉동고 역할을 해서 바이러스가 보존되어 있었다. 1951년 첫 바이러스 추출 시도는 실패했지만 1998년 다시 발굴, 그걸 연구했다고 한다.[15] 신체적 특성이 인간과 매우 유사하다.[16] 다만 이 나이대에서 사망률이 가장 높았던 것은 아니고, 사망률 자체는 유아와 노년층이 제일 높았다. 정확히 말하면 연령별 사망률 곡선이 U자를 그리는 일반 인플루엔자와 달리 W자 모양으로 나타났다.[17] 당시에도 주마다 다르긴 했으나, 미국인들도 마스크를 써야 살아남는다는 인식이 매우 강했으며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벌금을 물리거나 감옥에 집어넣기도 했다.#[18] 다만 스페인 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라서 코로나19와 많이 관련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코로나 19가 2021년에도 자연 종식(급격한 독성 약화나 자연 사멸) 되지 않는다면 스페인 독감을 뛰어넘는 안좋은 의미로 역대급의 바이러스라고 정의할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