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식 경장갑차 테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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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원
- 전장 : 3.70m
- 전폭 : 1.90m
- 전고 : 1.77m
- 중량 : 4.7t
- 속도 : 42km/h (견인시 30km/h)
- 항속거리 : 250km
- 주무장
- 94식 37mm 대전차포 1문 or 97식 7.7mm 경기관총 1정
- 장갑 : 8~16mm
- 엔진 : Ikega식 공랭직렬 4기통 디젤 (65마력)
- 출력비 : 10hp/t
- 승무원 : 2명 (전차장, 조종수)
2. 개요
'''九七式輕裝甲車 テケ'''
1937년(황기 2597년)에 채용된 일본군의 장갑차. 정식 명칭은 '97식 경장갑차 테케'이며, 주로 일본 육군에서 운용했다. 중일전쟁 당시 손쉽게 사용하며 일본 육군의 기계화에 도움을 준 94식 경장갑차가 여러가지 결점을 나타내자, 이를 개선할 목적으로 히노 자동차 공업에서 1936년부터 개발이 시작되었다. 제식 채용될 당시에는 일본 육군의 주력 중(中)전차인 97식 전차도 함께 채택되었다.
3. 상세
상술했듯이 97식 경장갑차는 94식 경장갑차를 개량한 것이며, 그 변경점은 아래와 같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서 94식과는 달리 본격적인 경전차에 가깝게 변화했다.
- 무장 강화: 경기관총 1정의 빈약한 무장을 94식 37mm 전차포로 교체했다. 단 전차포 물량의 부족으로 많은 차량은 94식 경장갑차처럼 그냥 경기관총 1정으로 무장해 실질적으로는 화력 강화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그 외에 유사시 근접한 보병에게 대응사격이 가능하도록 피스톨 구멍을 만들었다.
- 출력 강화: 엔진도 연비소비가 큰 가솔린 엔진 대신 디젤 엔진으로 변경했으며 출력도 65마력이 돼서 94식 경장갑차의 출력보다 15마력 이상 증가했다. 다만 전황이 악화되면서 불량 부품이 사용된 후기형은 출력이 48마력으로 저하되기도 했다.
- 내부환경 개선: 엔진을 전차후부에 설치해 조종수의 탑승환경을 개선했으며 무전기를 탑재해 작전연락도 가능하게 되었다. 또 방탄유리를 채용하여 적군의 총격이나 포탄의 폭발로 인한 파편이 난무할 때 개방된 직시창에 총탄이나 파편이 날아와서 조종수가 눈에 부상을 입는 경우를 막았다.
- 주행능력 강화: 엔진을 교환해서 항속거리가 늘었으며, 무한궤도도 센터가이드 방식으로 변경해서 장기간 주행시나 고속주행, 급격한 선회시에 무한궤도가 제자리에서 이탈해서 장갑차가 전복되거나 그 자리에 멈추는 것을 방지했다.
- 적절한 중량유지: 94식 경장갑차보다 중량이 늘었으나, 일본군이 운용하던 표준화물선 크레인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인 5톤보다 약간 낮은 4.25톤이라 특별한 기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상륙전 등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었다. 나중에 장갑강화 및 내부기기 증설 등의 이유로 4.7톤으로 중량이 증가했지만 여전히 5톤 이하라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4. 실전
97식 경장갑차는 주로 보병사단의 수색연대에 배치되었으며, 무전기를 탑재하고 속도가 빠르다는 이유로 인해 전선에 직접 투입되는 것보다는 주로 전차연대 등의 부대에서 연락용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독일군에서 편제한 정찰부대를 모방한 것이었다. 다만, 독일군의 장갑차는 초기형이라도 기본적으로 20mm 기관포를 탑재한 것을 감안한다면 연사력 등의 측면에서 처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94식 경장갑차보다는 나았고 한방화력은 오히려 더 강했다.
그러다가 1939년에 할힌골 전투가 벌어졌을 때 전차 제3연대에 배치되어 첫 실전을 겪었다. 그러나 전투에서는 소련군의 T-26같은 '''전차들'''이 45mm 전차포를 탑재한 것에 비해 대다수의 차량이 경기관총을 탑재해버려 제대로 싸우지도 못했으며, 특히 BT 전차는 험지돌파력과 속도에서도 압도적이라 정면승부가 불가능했다. 경기관총 1정만 장착한 차량들은 대전차전 능력이 0에 수렴했다.
이처럼 전선에서 활동하는 장갑차량으로는 적합하지 않았음이 입증되었는가 했지만 일본군의 장비부족으로 인해 태평양 전쟁 시기에도 대량으로 투입되었다. '''근데 전쟁 초반에 낸 성과는 대단했다.''' 개전 초기에 벌어진 싱가포르 전투의 시초인 말레이 반도에서 영국군의 방어선을 돌파할 때 사에키 돌격대가 97식 경장갑차를 운용했는데 전차라는 것을 처음 본 식민지군은 물론 영국군까지 도망치기 급급했으며 '''전투 최후반에나 받은 영국군의 비커스 전차는 이 경장갑차보다 못한 수준이었다.'''
필리핀 공략전에는 수색 제16연대의 제3, 4중대가 본 장갑차로 미군과 조우했다. 여기서 97식 경장갑차는 다른 일본군 전차와 마찬가지로 진격 자체는 수월했다. M3 스튜어트와 대결했다면 스튜어트가 압승할 수도 있었겠지만 미군이 전차를 버리고 도주하는 등 이 경장갑차와 마주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렇게 각종 전투에서 분에 넘치는 활약을 하던 도중, 전황이 악화되자 수색연대들이 차례로 해체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일본군의 장비부족으로 인해 97식 경장갑차는 다른 부대에 소속되어 여러 곳에서 방어전에 참가했다. 방어전에 배치되었기에 기동력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었으므로 원래라면 진작에 운용을 그만두었어야 했지만, 일본군의 궁핍한 상황은 다른 어느나라가 그렇듯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 장갑차를 퇴역시키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1] 근데 마침 이 때는 미군이 대량으로 M4 셔먼 중형전차를 투입하기 시작한 시기였고 97식 경장갑차는 상대 자체가 될 수 없어 미군과 교전하는 족족 박살났으며, 만주 작전 때는 밀려오는 소련군의 T-34/85나 IS-2를 상대해야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안 봐도 비디오.
5. 전후
태평양 전쟁이 끝난 후, 일본에 남아 있던 97식 경장갑차의 대부분은 해체되었지만 일부는 무장을 철거한 후 불도저로 개조되어 전후 복구에 활용되기도 했다. 그리고 일본군의 항복으로 중국에 남겨진 97식 경장갑차는 1945년에서 1949년 사이에 벌어진 국공내전 당시 국민당의 군대인 국부군과 공산당의 군대인 홍군 양측에서 사용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인해 97식 경장갑차의 실물은 본국인 일본에는 남아 있지 않으며, 현재 러시아의 쿠빈카 전차박물관과 호주의 육군전차박물관에 각각 1대씩 전시되어 있다.
6. 평가
전체적인 성능은 95식 전차인 하고의 다운그레이드판으로 봐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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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 초기 마주친 연합군의 Mk.6 경전차.
애초에 태생 자체가 견인용 다용도 장갑차인데도 불과하고 전쟁초 나름 활약했다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중일전선에서는 물론이거니와 태평양전쟁 초기에도 싱가포르 전투 등에서 제대로된 전차가 없고 대전차수단이 빈약한 연합군을 상대로 나름 활약했다.
'''경장갑차 주제에''' 장비한 37mm 전차포의 성능은 미,독등 열강 중에서 최악의 성능을 가졌음에도 최대 40mm가 넘는 관통력을 가지고 있어 38mm의 수직 전면장갑을 가진 스튜어트 전차를 상대로 근거리에서 어느정도는 상대가 가능했으며[2] 셔먼의 38.1mm의 측면 수직 장갑 또한 관통가능하여 미군전차에 대한 제한적인 대전차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포의 수량이 부족해서 많은 차량이 경기관총 1정의 무장을 유지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지만 견인용 경장갑차로서는 충분한 무장이었다. 문제는 37mm들 달면 보통 있어야 할 동축기관총이 없어서 대보병 제압과 거리측정이 힘들었다.
최대 16mm의 장갑의 경우는 개발 당시의 경장갑차로는 충분한 수치였다. 당시 독일의 1호전차가 전면장갑이 13mm였으며 소련의 B T전차 역시 최대 20mm에 불과했다. 이를 보면 16mm의 장갑은 당시의 경장갑차로서는 과분한 수준이었다.
당연히 이 '''경장갑차'''의 장갑은 중기관총의 철갑탄이나 대전차 무기에 대해서 방호력을 제공할 수 없었으나 통상적인 소총탄이나 소규모 구경의 포탄 파편 등에 관해서는 충분한 방호력을 제공했다.
하지만 94식 경장갑차를 약간 개수하는 정도의 개량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이 종전할 때까지 써먹으려던 것이 무리였다. 후반부에는 견인용 차량으로만 사용되었다면 딱 어울렸을 물건을, 물자부족으로 인해 약간의 개수만 거쳐서 제대로 된 중전차와 대전차 무기가 날뛰는 전장에 집어넣었으니 당연히 제대로 싸울 수 없었다.
7. 파생형
7.1. 98식 장갑운반차 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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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에서 노획된 소다.
7.1.1. 제원
7.1.2. 개요
일본군이 사용한 궤도 운반차량. 탄약도 나르고 견인포도 견인하고 병력도 수송하고 다양한 방면으로 활용되었다. 94식 경장갑차를 대체할 97식 경장갑차 테케가 개발되자 테케는 본연의 임무 중 하나였던 수송보다는 전투에 더 사용되게 되고 비무장한 수송차량이 하나 필요했던 일본군이 개발을 시작했다. 테케의 차체를 개조해서 만들었다. 1톤 정도의 물자나 10명을 수송할 수 있었다. 중일전쟁에서 처음 사용되고 제2차 세계 대전 때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총 100대 정도 생산되었다고 한다.
7.2. 100식 관측차 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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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병관측 차량이다. 소다와 거의 비슷하지만 장갑이 더 얇고 미묘하게 다르다. 극소수만 생산되었다.
7.3. 자주대공포 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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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케의 차체를 활용한 프로토타입 자주 대공포. 아마 소다의 차체를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철갑탄, 예광탄, 고폭탄을 모두 사용 가능한 98식 20mm 대공포를 얹었다. 이 포는 최대 5500미터의 사거리와 830m/s 정도의 포구속도로 1분에 120~300발 정도를 사격할 수 있었다. 완성은 했지만 대공포가 제대로 보호가 안되고 공간이 너무 좁아서 프로젝트가 취소되었다.
7.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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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와 포방패를 제거하고 도저 블레이드를 장착해서 개조한 형태.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다.
8. 매체에서의 등장
월드 오브 탱크에서 일본의 2단계 프리미엄 경전차로 등장한다.
걸즈 앤 판처의 스핀오프 만화인 리본의 무사에서 37mm 대전차포 탑재형이 등장. 원래 주인공인 츠루기 시즈카의 집안에서 소유하던 개인 소장품이었지만 강습전차 경기 참여를 위해 꺼내온 것으로 나온다. 본편 애니의 경우 자국 전차에 대한 디스가 상당한 편인데 이 작품에선 주인공 탑승기인데다 소속전차가 이거 한대뿐이고, 캐릭터 위주의 스토리 진행 위주라 전차의 성능은 그닥 따지지 않는 관계로 대활약을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