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 살인사건
The A.B.C. Murders
1. 개요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로 주인공은 에르퀼 푸아로와 아서 헤이스팅스.
어느 날 사건을 골라먹겠다고[1] 농담을 던지는 푸아로 앞에 살인예고장이 도착한다. 내용인즉슨 A로 시작하는 동네인 앤도버(Andover)에서 사건이 발생한다는 것.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로 앤도버에서 성과 이름이 A로 시작하는 노파 앨리스 애셔('''A'''lice '''A'''scher)가 살해당한다. 그리고 그 옆에는 ABC 열차 여행안내서[2] 가 놓여 있었다.
이후 B로 시작하는 벡스힐에서 성과 이름이 B로 시작하는 엘리자베스 바너드(Eliza'''b'''eth '''B'''arnard)[3] 가, C로 시작하는 처스턴에서 성과 이름이 C로 시작하는 카마이클 클라크('''C'''armichael '''C'''larke)가 살해당한다. 그리고 거기엔 어김없이 ABC 열차 여행안내서가 있었다! 때문에 연쇄살인은 "ABC 살인사건"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고, 영국 전역은 이 사건으로 시끌벅적해진다.
한편, 사람들의 눈에 전혀 띄이지 않는 남자 알렉산더 보나파르트 커스트('''A'''lexander '''B'''onaparte '''C'''ust)가 있다. 커스트는 두통에 시달리는데다 종종 기억을 잃었고, 무엇보다 살인이 일어난 앤도버, 벡스힐, 처스턴 등 모든 장소에 있었다. 결정적으로 커스트의 이름의 이니셜은 ABC였다! 과연 커스트가 바로 연쇄살인마 ABC인가?
2. 등장인물
2.1. 주조연
- 제임스 재프 경감
- 크롬 경위
본 사건을 직접 담당한 경찰관. 수사 능력은 뛰어나지만 속이 좁은 인물.
- 톰슨 박사
심리학 박사로 경찰청에서 담당 경찰들, 푸아로 일행과 함께 범인의 정체에 대해 의논한다.
2.2. 피해자
- 앨리스 애셔(Alice Ascher)
앤도버(Andover)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던 노인. 첫번째 피해자.
- 엘리자베스 "베티" 바너드(Elizabeth "Betty" Barnard)
벡스힐의 찻집에서 일하던 젊은 여성. 두번째 피해자.
- 카마이클 클라크 경(Sir Carmichael Clarke)
처스턴에 거주하는 은퇴한 이비인후과 전문의이자 중국 도자기 수집가. 세번째 피해자.
- 조지 얼스필드(George Earlsfield)
보면 알겠지만 D가 아니라 E이다. 이름은 아예 D나 E로 시작하지도 않는다. 직업은 이발사로 동캐스터의 극장에서 살해당했다. 그런데 바로 옆에 있던 다운스라는 사람의 성이 바로 D라서 경찰은 다운스를 죽이려다가 극장이 어두워서 잘못 본 것으로 파악했다. 얼굴과 덩치가 비슷했고 둘 다 등이 굽은 편이었기에 이 사실을 들은 다운스는 반 기절상태가 된다.
2.3. 용의자
- 알렉산더 보나파르트 커스트(Alexander Bonaparte Cust)
퇴역 군인이자 스타킹 방문판매원. 전쟁터에서 머리에 부상을 입은 후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증세가 있다.
- 프랜츠 애셔
앨리스 에셔의 남편. 알코올 중독자이자 불한당으로 아내와 별거해 살고 있었다. 사건 초창기에 잠시 범인으로 의심받았다.
- 메건 바너드
베티 바너드의 언니.
- 밀리 히글리
베티 바너드와 같은 가게에서 일하던 여성.
- 샬럿 클라크(통칭 레이디 클라크)
카마이클 클라크 경의 아내로 중환자이다. 도라 그레이를 혐오한다.
- 프랭클린 클라크
카마이클 클라크 경의 동생.
- 로저 이매뉴얼 다운스(Roger Immanuel Downs)
4번째 희생자가 될 뻔했던 걸로 추정한 사람. 옆좌석에 있던 얼스필드가 살해당해서 겨우 살았는데 성 때문에 살인마의 표적이 된 걸로 여겨졌다. 반대로 얼스필드 살해사건 당시 옆좌석 사람으로서 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기에 용의자로도 올랐으나 이전 살인사건 당시 알리바이도 완벽하게 있어서 용의자에서 제외된다. 얼스필드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에 반기절 상태가 되어 경찰이 준 물을 마시고 깨어나 경악한다.
- 메리 드로어
앨리스 애셔의 조카.
- 도널드 프레이저
베티 바너드의 남자친구.
- 도라 그레이[4]
카마이클 클라크 경의 여비서.
- 마이클 하티건
릴리의 남자친구.
- 릴리 마버리
커스트가 하숙하고 있는 하숙집 여주인의 딸.
3. 진상
후반부에서 각 사건에 스타킹이 관련되었다는 점[5] 이 밝혀지면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스타킹 방문판매원인 커스트가 용의자로 몰리게 된다. 커스트 본인은 자신의 가방에서 피묻은 칼을 발견하고 공황 상태에 빠지며, 하숙집 부인을 속인 뒤 도망쳐 나온다. 하지만 결국 떠돌다가 지쳐서 경찰서에 자수하고, 자신의 과거(전쟁으로 머리에 상처를 입어서 발작을 일으키거나 기억을 잃음)를 이야기한다. 그렇게 사건이 끝나는 듯 싶었지만...
커스트는 '''가짜 범인'''이었다.
진범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커스트를 이용하여 자신이 살인을 저지른 뒤, 커스트를 마인드 컨트롤하여 커스트가 스스로 '내가 죽인 게 아닌가...'라는 의심을 하게 만들어 자수시킨 것. 커스트의 방에서 발견된 모든 증거물(타자기, 편지, 스타킹, 다수의 ABC 안내서)은 모두 진범이 커스트에게 보내거나 커스트의 이름을 이용하여 주문한 것으로, 커스트가 모든 범죄를 계획하고 저지른 뒤 기억을 잃은 것처럼 유도했다.
하지만 두 번째 살인사건(벡스힐 살인사건)에서 커스트의 알리바이가 증명된데다 "어떤 사실"이 드러나고, 뒤이어 직접 커스트를 심문한 푸아로는 커스트는 범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에 푸아로는 진범을 잡기 위해 간단한 진실 게임을 제안하고, 커스트를 이용하여 진범을 확정지은 뒤 추리 선언에서 범인의 정체를 밝힌다.
범인은 바로 세 번째 피해자의 동생인 '''프랭클린 클라크.'''
ABC의 의미는 자신이 유산상속을 위해 진짜 죽이고 싶었던 대상(범인의 형이자 3번째 희생자인 카마이클 클라크 경)의 이름이 C로 시작된다는 것, 연쇄살인의 경우 한 건의 살인이라도 알리바이가 입증되면 자동적으로 용의자에서 빠진다는 것을 이용하여 ABCD로 이름이 시작되는 사람 네 명을 골라 죽인 것이다.
즉 진범 프랭클린은 자기가 벌인 진짜 살인을 감추기위해 훈제 청어처럼 '''두 개의 살인을 먼저 일으킨뒤, 진짜 살인을 거기에 엮어서 연쇄살인처럼 보이게 한 것.'''[6]
그의 살인동기는 앞에서 밝힌 대로 유산상속. 정확하게는 형수가 병으로 죽고 자식없이 홀로 남은 형이 죽어서 그 재산을 자기가 독차지하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렸는데 형이 새로 채용한 여비서와 가까워진 것을 눈치챘고, 형이 비서와 재혼해서 아이를 낳게 되면 형의 유산을 독차지하려는 야망이 물거품이 될 것이라는[7] 생각이 불러일으킨 초조감에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놈의 물욕이 문제.[8]
마지막 살인사건의 피해자의 이름은 D가 아닌 E로 시작해서 법칙에 어긋나는데 이미 범인이 목적을 달성한지라 아무나 골라잡아 죽여도 경찰은 '근처의 다른 D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죽이려다가 실수로 다른 사람을 죽였다고 생각할 것이라 여겨 많은 사람이 모이는 극장에서 무작위로 살해한 것이다. 범인의 예상대로 경찰은 주변에 있던 D로 시작하는 다른 사람이 표적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푸아로는 하필 D에서 법칙이 깨졌다는데 의구심을 품게 된다.[9]
그 밖에도 대담하고도 냉정하게 범행을 저지르는 범인의 모습과,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커스트의 인물상이 너무나도 달라, 이 점에 의문을 품은 푸아로에게 꼬리가 밟혔다. 용의자였던 커스트는 말 그대로 안여돼 같은 외모로 독신이고 연애도 해보질 못했으며 학창시절부터 따돌림을 당해 오는 등, 성격도 소심한 인물인터라 이런 커스트가 사건의 범인이라는 게 뭔가 수상했다. 게다가 커스트도 '''살인은 인정하면서 범행예고 편지는 부인'''하는데다[10] 두 번째 살인사건에서 "남자들을 좋아하는 피해자가 추남인 커스트에게 관심을 보일리가 없다"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용의자는 여자들이 관심을 보일만한 인물(미남에 호감형)로 좁혀지고, 푸아로는 각각의 사건에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을 추려낸 끝에 프랭클린 클라크를 범인으로 확정짓는다. 결국, 그날 2번째 피해 여성 주변 친구들도 미남형 사내가 먼저 다가왔다고 기억해서 푸아로가 프랭클린 사진을 보여주자 맞다고 확인하면서 증거가 되어버렸다.
아울러 사건이 일어난 도시들이 전부 철도역을 끼고 있는 도시였으며 사건현장에 증거물이 될 수 있는 ABC 철도 안내서[11] 를 남겨놓는 대담함을 보였는데 푸아로는 프랭클린의 소지품에서 프랭클린이 철덕이었음을 간파하고 프랭클린이 범인임을 확정짓는 근거로 사용한다.
게다가 범인이 실수를 저지른 게 있으니 '''다른 앞선 A, B 사건에서는 살인 예고장을 며칠 전에 보낸 것과는 달리 C는 일부러 주소를 조금 틀리게 적어 사건 당일에나 늦게 도착하게끔 보냈다.''' 푸아로는 이것이야말로 C사건이 범인에게 중요한 사건이라 또 모를까봐 일부러 사건 당일에 도착하게 보낸 것이라고 파악하며[12] 1순위 프랭클린 클라크를 생각한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피해자들의 살해 용의자들을 알아보니 다들 별로 가능성이 없었다.
먼저 경찰은 A사건의 피해자의 남편을 용의자로 의심했었다. 경찰 조사 결과 그는 술주정뱅이에 종종 살해당한 아내를 죽이겠다고 협박한 적이 있다고 밝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경찰들에게 겁먹은 채로 말로만 죽이겠다고 해온 것이었다고 울며불며 해명했고, 피해자의 조카도 이모부가 죽인다 죽인다 할 때마다 이모는 가볍게 대했으며 이모부는 말로만 그런 거 같았고 도저히 이모를 죽일 거 같지 않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술주정뱅이에 몸도 쇠약한 노인이 이런 치밀한 계획을 꾸미는 게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판단, 결국 용의자에서 빼버렸다.
두번째인 B사건의 피해자에게 남자친구가 있는데 남자관계가 복잡한 피해자에게 애증을 가진 점으로 인해 그도 잠깐 용의자로 생각해봤으나, 여자친구를 파멸시키기만 하면 모를까 다른 사람까지 마구 죽이고 연쇄살인으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 즉 이걸 동기로 살인을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런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건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결정적으로, 당사자는 이 사건 당시 휴가를 떠났기에 세 번째 사건의 범행을 저지를 수는 없다고 결론지었다. 결국 C사건의 피해자 카마이클 클라크를 조사하여 카마이클의 막대한 재산에 주목해 프랭클린을 수상하게 여겼던 것이었다.
범인인게 폭로되자 프랭클린은 해볼 만한 도박이었다며 자살을 기도하지만[13] 푸아로가 소매치기를 하인으로 고용하여 총알을 빼돌린 덕분에 결국 죽지 못하고 체포된다.[14] 어차피, 사람을 4명이나 죽인 프랭클린은 사형을 피할 수 없겠지만. 그냥 알아서 죽는 거와 달리 재판을 받고 몰락하는 걸 다 겪으며 천천히 있다가 죽이는 경우이니 프랭클린에게도 달갑지 않은 생명연장일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커스트가 기쁜듯이 "이번 사건을 인터뷰해주면 큰 돈을[15] 준다고 하는 신문이 있어요!" 라며 푸아로를 찾아오자 웃으면서 "저라면 더 부를 겁니다. 그 정도는 너무 헐값인데요? 아니면 다른 신문과도 협의를 해서 더 돈을 올리세요.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신문들이 당신을 얼마나 죽일 놈으로 만들어 없는 말 있는 말 만들었나요? 이건 당신에게 정당한 보상입니다."라고 바람을 넣어준다.
그 말에 커스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군요! 맞아요!" 라고 더더욱 좋아라하며 언론들에게 제대로 내가 당한 불명예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실제로 경찰에서 용의자로서 커스트가 범인같다라고 하자 영국 언론들은 그의 과거 학창시절 때부터 사생활을 미치도록 취재하며 미친 놈, 죽일 놈으로 왜곡시켜 보도해 푸아로가 껄끄러워 했다. 그야말로 오늘날이라면 언론들은 소송감으로 부족함이 없었다.[16]
더불어 푸아로는 이번 사건에 도움이 된 이들을 커플로 만들어주며 마지막으로 커스트에게 도수가 맞지 않는 안경 때문에 두통이 심한 것일 수도 있으니 돈을 벌면 새 안경을 사라는 충고도 해 준다. 커스트도 매우 기뻐하면서 푸아로에게도 고마워하며 돈을 받으면 신세를 진 둘[17] 의 결혼식에 선물이라도 보내주겠다면서 축하해준다.
4. 기타
1992년 방영된 ITV판 드라마 아가사 크리스티의 푸아로에서 시즌 4의 1번째 에피소드로 방영되었다. 헤이스팅스가 남미에서 잡아온 악어 박제에 관한 무용담 타령이 유머 포인트. 푸아로는 악어 박제에서 나는 악취에 기겁을 하고 헤이스팅스가 악어사냥 무용담을 얘기할라치면 푸아로와 잽 경감 모두 말을 짤라먹는다. 크롬 경위 캐릭터가 삭제됐고, 원작에서 30대 정도로 묘사되던 프랭클린 클라크가 꽤 나이 든 노년의 모습으로 나오고, 범인으로 밝혀졌을 때 총으로 자살하려는 비장한 모습 같은건 온데간데 없고 푸아로에게 욕지거리를 내뱉고 도망치다가 우스운 꼴로 잡힌다. 그리고 마지막에 주요 등장인물들이 기피하던 헤이스팅스의 악어 사냥 무용담은 푸아로에게 감사를 표현하러 온 커스트가 들어주는데, 커스트를 헤이스팅스에게 떠밀고 슬쩍 자리를 피하는 푸아로와 재프 경감의 모습이 꽤나 터진다.
NHK 애니메이션 애거서 크리스티의 명탐정 포와로와 마플에서도 3~6화에서 첫 번째 장편으로 4부작으로 방영되었다. 남녀관계에 대한 내용 등 몇몇 디테일이 생략되거나 오리지널 주인공인 포와로의 조수 메이벨이 몇몇 단서를 발견하는 등의 차이는 있지만 사건의 개요는 원작의 내용을 그대로 재현했다.
80년대 중후반, KBS-2에서 오후에 하던 어린이 드라마[18] <명탐정 이지돌>에서 한국화하여 방영한 바 있는데 당연히 가나다 살인사건으로 나왔는데 여럿 각색이 되다보니 극장에서 칼에 맞아죽는 피해자는 다른 가게에서 심야에 홀로 살해당한 노년 가게 주인으로 나오게 되었다.
나중에 이 트릭은 명탐정 코난에서 나오는 불길 속의 붉은 말 사건에 그대로 사용된다. 작중에서 대놓고 이 작품의 이름을 언급할 정도.[19][20]
명탐정 코난에서 이후 애니 오리지널 스토리 <베이커거리 연쇄 미스테리>에서 또 다시 사용되었는데 적마 사건과 마찬가지로 직접적으로 언급되었다.
고전부 시리즈의 쿠드랴프카의 차례 사건에서 모티브가 되는 것도 이 작품. 코난의 사례와 같이 작품명과 트릭이 직접적으로 언급된다. 이 외에도 오마주 되기로는 가장 많이 오마주된 추리소설 중 하나일 것이다. 연속된 순서(가짜 데이터)안에 진짜를 끼워넣는 플롯까지 오마주로 생각하면 수는 더 늘어난다. 이는 ABC 살인사건이 간결하면서도 매력적인 구조이기 때문이다.
4.1. 2018년 BBC 드라마판
존 말코비치가 푸아로로 분한 3부작 드라마가 BBC One을 통해 2018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방영됐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론 위즐리역으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루퍼트 그린트가 크롬 경위 역, 울보 머틀로 잘 알려진 셜리 헨더슨이 하숙집 주인 마버리 부인 역, 넷플릭스 더 위쳐의 예니퍼를 연기한 안야 차로트라가 릴리 마버리 역을 맡았다. 이전에 영상화된 푸아로 시리즈와 다르게 상당히 암울한 전개로 진행되어 애거서 크리스티 시리즈, 특히 푸아로 시리즈의 연극적이고 유머러스한 표현은 거의 없고[21] 우중충하고 시궁창스럽지만 한편으론 자극적인 영상미가 돋보인다. 예를 들면 커스트가 두통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하숙집 주인의 딸 릴리에게 뾰족한 구두로 등을 찔러달라고 하는데 아무리봐도 SM 플레이가 연상되고, 애매한 관계였던 프랭클린과 도라 그레이가 대놓고 함께 잠자리에 들거나, 그 외에 피투성이가 된 시체가 그대로 나온다던지, 각혈하는 피를 그대로 보여준다던지 하는 등 상당히 직접적이고 자극적으로 연출됐다.
푸아로는 무슨 일 때문인지 은둔 생활을 하며 초라하게 늙어가고 있고, 재프 경감은 푸아로에게도 알리지 않고 은퇴한 상태에서 푸아로와 재회한 후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크롬 경위는 자존심 때문이 아니라 파시즘의 득세로 바뀐 사회분위기 때문에 외국인이 사건을 해결하는 바람에 공권력이 무시당했다며 푸아로를 꺼려하고 푸아로에게 온 협박장 역시 무시한다. 거기에 알고보니 벨기에 경찰 출신이 아닌데 경찰 출신이라고 불쌍한 제프 경감을 속여왔다며 개인적으로도 싫어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던 중 2번째 살인인 베티의 살인사건이 터지자 그 협박장을 봐야겠다며 푸아로의 집을 압수수색 하면서 엄청난 각을 세운다. 그리고 3번째로 카마이클 경 살인사건이 터지고 푸아로를 찾아와 하소연을 하다 재프 경감이 유언으로 크롬을 좋게 봤다고 하는 얘기를 듣고 결국 푸아로에게 협조하게 된다. 알렉산더 커스트의 설정도 바뀌어서 중년이 아니라 릴리 또래의 젊은이로 등장한다. 원작에서 릴리의 남자친구이자 준 약혼자였던 톰 하티건은 삭제되었다.
파시즘이 득세한 제2차 세계 대전 직전의 모습을 배경으로, 푸아로는 외국인이란 이유로 적대적인 분위기에서 살고 있다. 전체적으로 최근 화두가 되고있는 유럽 난민문제를 투영한 듯 푸아로가 벨기에에서 탈출한 전쟁 난민이라는 사실이 강조된다. 영국 파시스트 연합의 뱃지를 달고 다니는 검표원이 푸아로의 표를 일부러 바닥에 떨어뜨린 다던지, 외국인은 꺼지라는 파시스트 연합의 포스터가 사방에 붙어있고, 어떤 젊은 청년은 푸아로가 경찰에 협력하지 않는다며 우리 아버지가 벨기에에서 죽었는데 은혜도 모른다며 욕설을 퍼붓는다. 푸아로 역시 전쟁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계속 악몽을 꾸는 등 상태가 좋지 않다.
죽은 3명 중 A, B, C에 해당되는 인물은 푸아로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인물이였다. C에 해당되는 카마이클 경은 부인인 샬롯 카마이클의 생일파티에 푸아로 참석해 '(가짜)살인 게임'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고, B에 해당하는 베티 바너드의 경우 베티가 일하던 까페 '진저 캣'에 푸아로가 방문해 크림티를 마시고 사인을 해줬고, A에 해당하는 앨리스 애셔는 푸아로가 난민 시절 타고 있던 난민수송 열차가 앤도버에 잠시 정차했을 당시 어떤 여인이 산통을 하기 시작해 푸아로가 산파를 했고, 앨리스 애셔는 아기 용품을 기부했던 적이 있었다. 다만 4번째 D에 해당하는 인물은 무대에 오르는 코미디언 베니 그루로 바뀌었는데 이 사람은 푸아와로 접점이 없는 사람이였고, 후에 프랭클린은 이 살인이 즉흥적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프랭클린은 'E'에 해당하는 사람을 한명 더 죽였는데, 살인을 하면서 흥분을 느끼며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아 쾌락 살인마가 됐음을 고백했다. 푸아로는 차분히 당신은 형님의 직위와 재산을 노린거라고 말하지만, 프랭클린은 자신을 충동질한건 푸아로라며 적수로서 당신이 숨기고 있는 또 다른 일면을 보여달라고 말하지만 푸아로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교도소를 떠난다. 아무래도 유산을 노린 지저분한 살인사건보다 푸아로와 ABC의 대결에 더 방점을 둔 듯.
주변인물들도 전체적으로 암울한데 원래부터 정신이 불안했던 커스트는 말할 것도 없고, 프랭클린은 전 문단에 언급됐듯이 완전한 사이코 살인마로 변했다. 베티 버나드는 까탈스럽고 철없는 안좋은 성격이 됐고, 원작에서 카마이클 경과 애매한 관계였던 도라 그레이는 팜므파탈스런 성격으로 변해서, 대놓고 카마이클 경을 유혹하다 카마이클 경에게 직접 쫓겨났고 후에 프랭클린에게 빌붙었다가 프랭클린이 체포되면서 한 겨울에 코트 하나 못건진채 거리에 나앉는 비참한 신세로 추락한다. 그나마 어머니에게 지속적인 가스라이팅을 당해오던 하숙집 딸 릴리가 어머니를 벗어나 커스트와 이어진다는 암시가 있고 베티에 열등감이 있던 메건 바너드가 아들을 원하는 부모에 의해 도널드 프레이저와 원치 않은 결혼을 추진하자 집에서 탈출하는 등 약간의 희망적인 후일담도 있는 편이다.
참고로 이 작품에선 푸아로가 벨기에 경찰이 아닌 가톨릭 신부였다는 해석이 붙었다. 전쟁 중 독일군을 피해 성당에 주민들이 대피해 있는 상황에서 푸아로가 성당 밖으로 나와 독일군을 막아서는데 선두에 있던 어린 독일군 병사가 차마 푸아로를 쏘지 못하자 상관에게 즉결처분 당하고 자신이 기절한 사이에 성당 안에 있던 주민들이 독일군에게 전부 살해당한 일이 있었다. 결국 푸아로는 혼자 살아남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살고 있었던 것. 그래서 입국 심사 당시 신부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경찰이라고 했었던 것이였다. 후에 영국에 있는 성당에서 미사를 참례하다 영성체를 받는 과정을 생략하고 떠나는 푸아로를 보고 신부가 괴로운 일은 고해성사로 해소하고 영성체를 받으라고 권하지만 자신은 그럴 수 없다고 말하며 성당을 떠난다. 다만, 이런 트라우마와는 별도로 푸아로가 은둔 생활을 하는건 다른 일로 인한 것이라는 느낌이 있는데, BBC가 계속해서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을 영상화 하겠다는 계획이 있어 떡밥으로 남겨둔 듯.
이렇게 원작과 많은 부분에서 설정이 변경되었지만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의 제작 허락[22] 을 받은 영상물인데다, 로튼 토마토 등의 리뷰 사이트에서도 신선한 재해석이라는 평가가 많아 평점은 좋은 편이다. 다만, 푸아로의 종교적인 면을 강조했던 것과 작품 특유의 유머스런 면이 완전히 제거된 점에 대해 아쉬움을 표현하는 평가도 있다.
[1] 푸아로가 "사건을 식사처럼 주문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나?"라고 운을 떼자 헤이스팅스가 "강도 등은 채식주의자나 고르는 겁니다. '''역시 살인이죠!'''"라고 말한다. [2] 1853년 처음으로 출시된 알파벳순 철도 안내서. 현재는 다른 회사에 인수되어 이름도 OAG 여행안내서로 바뀌었다. -황금가지판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의 각주.[3] 풀네임으로 하면 E로 시작하지만 애칭인 베티('''B'''etty)를 쓰면 B로 시작하는 이름이 된다.[4]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패러디로 추정.[5] 첫 번째 사건에서는 현장 근처에 스타킹이, 두 번째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가족이 스타킹을 구입했다.[6] 여기서 언급되는 훈제 청어란 음식이 아니라 논리학 용어로 서술 방법 중 서술을 읽는 사람의 생각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단서를 말한다. ABC 살인사건의 프랭클린의 경우 서술 방법이 아니라 범죄용으로 이 훈제 청어 기법을 썼는데 훈제 청어 냄새 역할을 해줄 미끼 사건 두 개(A, B의 스펠링에 해당하는 선발 희생자들)를 먼저 일으켜서 차후 자신이 벌인 진짜 목표물(C의 스펠링에 해당되는 자기 형)을 살인한 건수를 갖다가 미끼 살인 두 개 + 진짜 살인 하나가 아닌 그냥 이름 스펠링 철자 순대로 일어나는 의문스런 연쇄살인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7] 아마 장자에게만 제한적으로 유산을 상속한 부모 때문에 본인은 땡전 한 푼 못 받게 되었는데 거기에 형이 아이까지 가져버리면 자기에게 돌아갈 돈은 영영 한 푼도 없을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부모가 유산을 좀 더 나눠줬다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듯. [8] 다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실에서도 유산상속 같은 돈 문제로 심심찮게 가족간 법정 공방이나 유혈사태가 일어나는 경우가 제법 많음을 고려해보면 별 이상한 이유도 아니다.[9] 즉 프랭클린은 경찰을 교란시키기 위해 스스로 D의 이름을 가진 자를 희생시켜야 하는 시점에서 알파벳 순으로 피해자를 만드는 규칙을 깼지만, 오히려 그게 푸아로에게 덜미를 잡히는 계기가 됐다.[10] 제아무리 마인드 컨트롤을 당했다고 쳐도 그건 정말로 한 적이 없으므로 부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프랭클린이 커스트에게 시전했던 기억 왜곡이 결국 완전히 성공하지 못한 걸 보여주는 부분.[11] 프랭클린은 커스트에게 '결정적인 증거'인 이 철도 안내서를 소지하도록 하여 자신에게 돌아올 혐의를 벗기를 기도했다.[12] 사실 헤이스팅스가 '범인이 일부러 편지를 늦게 보낸 게 아닐까요?'라고 했다. 그래서 푸아로는 범인을 밝히는 자리에서 헤이스팅스에게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단서를 알려 줬다'면서 감사해한다.[13] 그런데 해문출판사에서 낸 책에서는 자살이 아니라 푸아로를 쏴죽이려고 했다. 당연히 총알이 없으니 경악하는 프랭클린에게 비웃듯이 털어놓고 대기한 경찰이 들이닥친다. 아무래도 황금가지 정식발매판에서 자살하려고 하는 것으로 나온 게 맞다.[14] 푸아로는 보통 범인이 자살하려는 것을 눈치채도 그걸 방조하는데 자살을 막은 것은 극히 예외적인 일이다. 이 시절 살인범은 거의 무조건 사형이였기에 어차피 죽음을 피 할 수 없었지만, 형의 재산을 차지하고자 혈육을 죽이는 폐륜을 저지르고 그 범죄를 묻기 위해 아무 연관도 없는 무고한 사람을 세명이나 죽이고 죄까지 뒤집어 씌운 악마같은 살인범인 프랭클린이 편하게 죽지 못하도록 막은 것이다. 오히려 푸아로가 자살을 방조하거나 모른 척한 범인들 쪽이 푸아로가 동정한 편이 많다.[15] 해문출판사 삽화판이나 문고판에서는 1000파운드로 나왔는데 황금가지판에서는 100파운드라고 나왔다. 황금가지판에서 푸아로가 너무 적다고 5배는 더 받아내라고 한다.[16] 참고로 이 소설에서 푸아로가 기자들에게 치를 떠는 듯한 장면이 나온다. 살인이 크게 보도되자 기자들은 벌떼같이 푸아로에게 찾아오지만 푸아로는 무시하는데 그러자 몇몇 기자는 헤이스팅스 이름으로 푸아로 씨가 이렇게 말하더라는 기사를 엉터리로 만들어 보도한다. 이 신문을 본 헤이스팅스가 "난 이런 인터뷰 한 적 없습니다."라며 당황해하자 푸아로는 그런 거 잘 안다면서 '기자라는 게 없는 말도 진실이라며 신문으로 보도하는 자들'이라고 비아냥거린다.[17] 자기가 사는 하숙집 주인 딸과 그 연인인 청년.[18] 어린이 드라마이기는 한데 엘러리 퀸이나 윌리엄 아이리시같은 작가들 추리소설을 한국화하여 만들다보니 살인사건에 피투성이 시체가 나오기도 한다. 그 중에는 목을 여럿 베는 살인이 나오는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까지 나온다! 물론 토막 살인 부분은 각색하긴 했다. 지금이라면 절대로 어린이 드라마 소리를 못듣겠지만 그 시절에는 흔한 모습이었다. 반공이란 이름으로 어린이와 노약자를 피투성이로 죽이는 모습이 휴일 오전에 버젓이 방영하던 시절이었으니...[19] 얼핏보면 스포일러 같지만 마지막 사건인 4번지 방화사건의 용의자가 세 명이기 때문에, 트릭을 따왔다는 점을 알았다고 해서 범인을 알 수는 없다.[20] 범인이 잡힌 뒤에 코난 일행이 범인에게 말하기를 ''' “아무래도 ABC 살인사건을 읽고 범행 계획을 세운 것 같은데, 왜 최후에는 회색 뇌세포의 명탐정이 이겼다는 사실은 몰랐죠?” ''' 사실 ABC 살인사건이 명작인 만큼 이를 읽은 형사들이 몇 명 있을텐데, 이 범행 계획은 누군가가 의심하는 순간 바로 박살난다. 코난의 이 에피소드를 소설을 읽고 다시 읽으면 정말로 범인이 멍청하다고 느껴진다.[21] 피해자 유족들이 모여서 드림팀을 이룬다거나, 사건이 해결된 후 커스트에게 안경을 바꾸고 기레기들에게 돈을 더 받아내라고 권유하는 등. 결정적으로 분위기를 전환했던 헤이스팅스가 나오지 않고 그 푸아로 특유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하는 추리쇼가 없다.[22] 크레딧에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의 로고가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