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80 슈팅스타

 



'''Lockheed P-80/F-80/L-141[1] Shooting Star'''
1. 개요
2. 제원
2.1. 2차 대전 시
2.2. 한국 전쟁 시
3. 운용
4. 기타
5. 미디어 등장
6. 둘러보기
7. 참고 링크


1. 개요



미국 공군이 최초로 채택한 실용 제트 전투기로 항공기 업계의 괴수 록히드 사(現 록히드 마틴)가 제작했다. 1943년에 최초 제안을 제출하여 미군의 승인을 받고 1944년 1월에 최초비행이 이루어졌으며 1945년 봄부터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갔다. F-80 이전에 벨사에서 1942년에 P-59 에어라코멧이라는 제트 전투기를 개발하여 비행에 성공시킨 사례가 있는데, 구린 스펙으로 인해 발주를 받지 못하고 소량만 생산되어 훈련용 등으로 사용되었기에 "최초 채택"이란 영예의 타이틀은 P-80 슈팅스타에게 넘어갔다. 미 해군에서는 T2V 시스타라는 이름의 함재 훈련기로 개조해서 운용하기도 하였다. 그 이후 한국전쟁에도 참여하지만 공중전보다는 지상 공격 임무에 주력했다. 총 1,715기가 생산되었다.

2. 제원



2.1. 2차 대전 시


F-80A
승무원: 1인
전장: 10.51m
너비: 11.83m
전고: 3.45m
익면: 22.07m²
종횡비: 6.37
공시중량: 3,593kg
작전중량: 5,307kg
만재중량: 6,350kg
동력: 앨리슨 J33-A-23/35 원심압축 터보젯 엔진 1기(24.0kN)
최고속력: 해수면에서 898km/h,마하 0.733
고도 1,828m에서 928km/h,마하 0.757
고도 12,192m에서 792km/h,마하 0.646
순항속력: 660km/h,마하 0.538
항속거리: 1,225km
상승한도: 13,716m
상승률: 23.3 m/s
익면하중: 260 kg/m²
출력 대 중량비: 0.43
양하비: 17.7
무장: 12.7mm M3 브라우닝 기관총 6정 [2]
127mm 무유도 로켓 8기
454kg 폭탄 2기

2.2. 한국 전쟁 시


F-80C
승무원: 1인
전장: 10.49m
너비: 11.81m
전고: 3.43m
익면: 22.07m²
종횡비: 6.37
공시중량: 3,819kg
작전중량: 5,738kg
만재중량: 7,646kg
동력: 앨리슨 J33-A-23/35 원심압축 터보젯 엔진 1기(24.0kN)
최고속력: 965km/h,마하 0.787
순항속력: 660km/h,마하 0.538
항속거리: 1,930km
상승한도: 14,000m
상승률: 23.3 m/s
익면하중: 260 kg/m²
출력 대 중량비: 0.43
양하비: 17.7
무장: 12.7mm M3 브라우닝 기관총 6정
127mm 무유도 로켓 8기
454kg 폭탄 2기

3. 운용


1945년이면 독일 본토 항공전으로 독일 공군은 거의 붕괴하기 직전이었으나 간간이 날아드는 Ar 234는 연합군의 어지간한 전투기들보다 빠른 속력을 가지고 있어서 마땅히 요격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선행제작된 12대 중 2대가 유럽 전선에 요격을 위해 배치하려고 하였으나 배치가 지연되는 동안 소련군에 의해서 베를린이 함락되고 독일이 일찌감치 항복하면서 유럽전선에서 전투를 치른 기록은 없다.[3] 이렇게 제트기 간의 공중전은 물건너가고 이후 1945년 6월, 태평양 전선에 투입될 예정이었으나 필리핀에서 일본까지 날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보조연료 탱크가 없었다. 결국 본국에서 보조연료 탱크를 생산하여 공급받은 후에 화려하게 데뷔할 예정이었으나 연료 탱크를 가져오는 사이에 일본이 핵폭탄 2발을 맞은 뒤 항복해버려 참전하지 못했다. '''결국 2차대전 주요 작전에는 명함도 못 내밀었다.'''
이후 P-51 머스탱을 밀어내면서 미 공군의 주력기로 자리를 잡았고, 육군항공대에서 공군으로 탈바꿈하면서 제식 명칭도 F-80 슈팅스타로 바뀌었다.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F-86 세이버가 투입되기 전까지 미 공군의 주력전투기로 일선에서 활약하였다. 한국전쟁 시점에서는 소련의 제트전투기인 MiG-15에게 밀리는 성능이지만[4] 허접한 공군력을 갖추었던 북한을 상대로는 F-80으로 충분히 상대하고도 남았다. 그러나 소련이 개입하고 중공군이 한국전에 참전하면서 MiG-15가 전투기로 등장하자 명백한 성능 열세가 드러났다. 물론 중공군 조종사의 기량 미숙 덕분에 베테랑 미군 조종사들은 F-80으로도 MiG-15를 격추한 바 있다. 그러나 소련군 조종사들이[5] 상대하는 MiG-15는 전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고 MiG-15를 잡기 위해 F-86이 항공전에 투입되면서 F-80은 전폭기로 전환되었다. 이후 지상작전을 지원하고, 주요 목표물에 대한 지상공격임무에 투입되었다. 이 때문에 전투기보다는 전폭기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4. 기타


아직 전투기에 후퇴익 설계가 도입되지 않았던 시절에 개발된 비행기라서 직선익으로 설계된 전투기이다. 당연히 후퇴익이 적용된 F-86이나 MiG-15보다는 한 세대 전의 구식 전투기이다. 그리고 보조연료 탱크를 날개 끝단에 장착하는 약간 독특한 구조였다. 유별난 것은 아니고, F-5A/B도 날개 끝단에 사이드와인더가 아니라 날씬한 콜라병 모양 보조연료 탱크를 달기도 했다.
[image]
참고로 F-80을 촬영한 사진 대부분이 날개 끝단에 보조연료 탱크를 달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원래 그렇게 생긴 비행기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보조연료탱크를 떼낸 사진을 보여주면 못 알아보는 경우도 있을 정도라고. 이 정도면 아예 트레이드 마크. 모양은 저렇게 2차대전식 물방울처럼 생긴 것도 있고, 이 항목의 첫 번째 사진처럼 늘씬하고 꼬리가 붙은 폭탄처럼 생긴 것도 있다.
미국의 에이스인 리처드 봉이 P-80의 테스트 파일럿 중 한명이었으나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여담으로 Me262를 몰아본 척 예거가 F-80도 몰아본 후에 "최고속도, 상승력, 가속력이 똑같다"란 이야기를 하자, 자존심이 상한 록히드사의 개발진은 원래 F-80에 장착할 예정이던 신형 제트엔진을 수령하여 갈아끼우고 지적받은 항공기의 문제점 등을 수정해서 성능향상을 이끌어냈다.
P-80을 이용해서 2인승 훈련기로 만든 것이 T-33이다. T-33은 훈련기로써 명성을 떨치며 냉전시대 대부분 서방국들의 주력 고등훈련기+공격기로 활용되었고 한국은 1956년 도입해서 1992년에 퇴역시키는 고된 노동의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이를 대체한 훈련기가 T-59 호크. 기종은 물론 임무도 비슷했다(고등훈련기+유사시 공격기). 실물이 보고싶다면 울산대학교 산학협력 리더스홀 건물 앞 잔디밭에 1대가 전시되어 있고, 여기서 적출한 J33 엔진은 건설환경공학관(23호관) 1층 복도에 먼지쌓인채 방치되어 있다. 광주과학기술원 본관 정원과 충남대학교 공학 3호관 앞에도 각각 1대씩 있다.

5. 미디어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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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0A-5'''
'''F-80C-10'''
  • 워 썬더에서 2대가 등장한다. 날개 연료탱크는 장착되지 않았다. 이중 P-80A는 고증과는 다르게 무장으로 M2 중기관총이 달려 있다.
  • 월드 오브 워플레인에서 P-80A가 미국 8티어 프리미엄 전투기로 등장한다. 이 역시 연료탱크는 장착하지 않는다.

6. 둘러보기









7. 참고 링크



[1] 록히드의 내부 모델명[2] 2차대전 생산분의 경우 M3가 아닌 M2 브라우닝 중기관총.[3] 다만 테스트를 위해서 4대가 보내졌으며 그중 1대를 사고로 손실했다는 이야기는 있다.[4] 애초에 MiG-15는 P-80의 후계기인 F-86 초기형과 비교해도 몇몇 부분은 우세한 전투기이다. 밀리는게 당연하다면 당연하다.[5] 소련은 북한이 하도 살려달라고 징징거리자 마지못해서 조종사를 투입했다. 물론 자칫 세계대전으로 번질까봐 철저하게 비밀로 하기는 했는데 중국인도 아니고 왠 유럽인이 나오는데 모를리가 있나... 하지만 소련과 같은 이유로 미국도 알면서도 모른체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