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무로 쿄스케

 

''' 히무로 쿄스케 '''
''' 氷室 京介[1] | Himuro Kyosuke '''
''' 본명 '''
'''테라니시 오사무(寺西治虫(てらにし おさむ, Teranishi Osamu)'''
''' 출생 '''
1960년 10월 7일 (만 64세)|일본 군마현 타카사키시
''' 국적 '''
일본 [image]
''' 신체 '''
174cm, 53kg
''' 직업 '''
가수, 작곡가, 편곡가, 프로듀서
''' 데뷔 '''
1982년 BOØWY 1집 앨범 "MORAL"
1988년 싱글 "ANGEL" (솔로 데뷔)
''' 장르 '''
, 비트 록, 하드 록, 얼터너티브 록, AOR
''' 활동 기간 '''
1981년 ~ 1988년 (BOØWY)
1988년 ~ (솔로)
1. 개요
2. 디스코그래피
2.1. 정규앨범
2.2. 베스트 앨범
2.3. 싱글
2.4. 콜라보레이션 싱글


1. 개요


일본가수. 군마현 타카사키시 출생.
'''일본의 전설적인 록 보컬리스트.'''
'''8,90년대 일본 최고의 인기 솔로가수 중 하나'''
일본의 前 록 보컬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 BOØWY로 활동하기 이전에 '데스 페널티' 나 '스피니치 파워' 라는 밴드에서 활동한 전적이 있다.[2] BOØWY 시절에는 그 유명한 꺾기 창법을 기반으로 폭발적인 가창력을 선보였으며, 2000년도 전후를 기점으로 발라드 친화적으로 창법을 바꾼 이후에도 특유의 미성으로 일본 내에서 인기가 매우 대단한 보컬리스트였다.
1988년 4월 4일, 5일 이틀간 도쿄 돔에서 개최되었던 보위의 마지막 공연 LAST GIGS 이후 3개월만에 싱글 ANGEL로 솔로 데뷔를 하여 보위 활동을 통해 얻은 인기가 식을 틈없이 활동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해 내놓은 첫 정규앨범 FLOWERS for ALGERNON으로 1988년 일본레코드 앨범대상 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음악적 성향[3]은 딱히 유행이나 대중성 등 시류를 따라가는 편이 아니었음에도 충성도 높은 팬을 다수 보유하여 투어를 개최하면 늘 만석을 채울만큼 상당한 관중 동원력을 자랑했는데 수차례 도쿄 돔을 전석 매진시킬 정도였다. 그러다가 2016년도 은퇴기념 투어인 LAST GIGS 이후로[4] 더 이상의 공식적인 활동은 없는 상태다.[5]
희대의 보컬리스트로 유명하지만 작사작곡에도 능한데 BOØWY 시절에는 대부분의 곡을 본인이 작사하였다. 비록 이 당시 BOØWY의 곡은 대부분 호테이가 작곡하긴 했으나 히무로 또한 Cloudy heart, ハイウェイに乗る前に, わがまま ジュリエット, B・E・L・I・E・V・E 등 호테이 못지않게 보위를 대표하는 곡을 여럿 작곡하였으며 호테이의 곡에 비하면 강렬함은 덜하지만 상대적으로 듣기 편한 곡들이 많았다. 보위가 해체되고 솔로로 데뷔한 이후에는 반대로 자신이 대부분의 곡을 직접 작곡하되 작사는 되도록 다른 작사가에게 맡기는 편이었다.[6] 솔로 초기에는 '마츠이 고로[7]'가 히무로의 곡 대부분을 작사하였으며[8] 이후에는 '모리 유키노죠'와도 많은 협업을 하였다. 유키노죠는 시적이고 아름다운 표현에 능하여 히무로의 발라드 곡 다수를 작사하였는데[9] 대표적인 히무로의 발라드 곡 중 하나인 '다이아몬드 더스트[10]'의 가사가 바로 유키노죠의 작품이다. 2006년에 GLAY와의 콜라보레이션 곡인 ANSWER 를 발매하고[11] 그 해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함께 조인트 콘서트를 개최한 이후에는 GLAY와도 꾸준히 교류를 하여 리더인 TAKURO 에게서 가사를 제공받기도 하였는데, 히무로의 12번째 정규 앨범인 "B"ORDERLESS 에서는 13개[12]의 수록곡 중 무려 4개의 곡이 TAKURO의 작사이기도 했다.
코이즈미 쿄코[13], KAT-TUN[14], 소리마치 타카시[15], BREAKERZ의 DAIGO[16] 등 여러 유명인들에게 곡을 제공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제공한 곡을 재편곡하거나 가사를 바꾼 후 작곡자인 본인이 직접 불러 리메이크하는 일도 자주 있었다. 3001年のスターシップ 은 대대적인 편곡을 가하고 가사와 제목까지 싹 바꿔 LOVE & GAME[17]이라는 곡으로 발표하였고 KEEP THE FAITH 는 가사를 수정하고 편곡을 가해[18] 본인의 20주년 베스트 앨범에 수록하였다. ONE 은 약간의 편곡을 하고서 beat haze odyssey[19]라는 앨범에 수록하였다. MARIA 도 제목을 CLAUDIA 로 바꾼 후 FOLLOW THE WIND 라는 앨범에 수록하였다.
전문직 종사자의 프로정신을 강조하는 일본의 정서를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독보적인 프로정신의 소유자였다. 대표적인 일화로서 2014년에 자신의 솔로 활동 25주년 기념 투어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2014년 7월 20일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리허설 때 비에 젖은 무대에서 미끄러지는 사고로 인하여 50대의 몸으로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음에도 그 고통을 견디며 2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총 23곡의 곡을 부르며 공연을 완주해 낸 일화가 있다.
당시의 공연은 그의 공식 팬클럽인 KING SWING 한정으로 DVD 및 블루레이로 발매되었으며 당시의 영상을 보면 처음에는 비교적 무탈한 모습으로 노래를 부르다가 공연의 중반쯤부터 고통으로 인해 몸을 격렬하게 비틀어가며 노래를 부르는데 그런 와중에도 가사나 박자를 놓치는 일이 없었다. 다만 공연의 마지막 곡인 ANGEL[20]을 부를 때는 활동기간을 통틀어 가사를 저는 일이 거의 없었던 그답지않게 가사를 잠시 놓치는 장면이 있었지만 이미 거기까지만 해도 초인적인 정신력이라고 말하기 충분한 수준이었으며, 그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팬들의 모습이 수차례 카메라에 잡혔다.[21] 실제로 그의 팬들은 그의 음악성이나 가창력, 퍼포먼스 뿐만이 아닌 이러한 카리스마에 매료된 사람들이 많다.
음악인에게 있어서는 치명적인, 돌발성 난청으로 인한 청력의 손실이 심해져[22] 당시에 이미 은퇴[23]에 대한 뜻을 내비친 바 있던 그였지만, 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된 무대를 선보이지 못했다는 미련이 강하게 남았는지 공연을 마치기 전 팬들을 향해 '''"오늘의 리벤지를 어딘가에서 반드시 하겠습니다. 그 때가 되면, 다시 한번 이 한심한 인간을 지지해 주셨으면 합니다."'''[24] 라는 말과 함께 팬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하고서 공연을 마친다.
그 이후, 자신이 선언한대로 2016년에 BOOWY로서 개최했던 마지막 공연의 이름을 딴 4대 돔 투어 "LAST GIGS"[25]를 개최하였고 해당 투어를 마지막으로 라이브 활동을 공식 은퇴하였다.[26]
야자와 에이키치, B'z, 사잔, 미스치루 등 본인의 인지도를 훨씬 뛰어넘는 거물급 아티스트가 차고 넘치는 일본에서 절대적으로 독보적인 위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개성적인 스타일을 통해 상당한 위상을 갖고 있던[27] 그의 은퇴를 두고 한 일본인 네티즌은 "일본히무로(氷室), 코무로(小室)[28], 아무로(安室). 3대 '무로(室)'를 잃었다." 는 안타까움 섞인 말을 남기기도 했다.[29]

2. 디스코그래피



2.1. 정규앨범


발매일
제목
오리콘 최고순위
비고
1988.09.01
FLOWERS for ALGERNON
'''1위'''

1989.09.27
NEO FASCIO
'''1위'''

1991.04.06
Higher Self
'''1위'''

1993.01.07
Memories of Blue
'''1위'''

1994.09.26
SHAKE THE FAKE
'''1위'''

1996.09.30
MISSING PIECE
'''1위'''

1997.12.10
I・DÉ・A
'''1위'''

2000.02.23
MELLOW
5위

2000.10.18
beat haze odyssey
3위

2003.08.20
FOLLOW THE WIND
2위

2006.12.20
IN THE MOOD
3위

2010.09.08
"B"ORDERLESS
3위


2.2. 베스트 앨범


발매일
제목
오리콘 최고순위
비고
1995.07.19
SINGLES
'''1위'''

1998.06.24
Collective SOULS ~THE BEST OF BEST~
4위

2001.09.27
Ballad~La Pluie
-

2003.03.19
Case of HIMURO
7위

2008.06.11
20th Anniversary ALL SINGLES COMPLETE BEST
JUST MOVIN' ON ~ALL THE-S-HIT~
'''1위'''

2013.08.21
KYOSUKE HIMURO 25th Anniversary BEST ALBUM
GREATEST ANTHOLOGY
'''1위'''

2016.04.13
L'EPILOGUE
'''1위'''


2.3. 싱글


발매일
제목
오리콘 최고순위
수록앨범
1988.07.21
ANGEL
'''1위'''
FLOWERS for ALGERNON
1988.10.07
DEAR ALGERNON
2위
1989.07.26
SUMMER GAME
'''1위'''
NEO FASCIO
1989.09.06
MISTY ~微妙に~
2위
1990.05.16
JEALOUSYを眠らせて
'''1위'''
Higher Self
1991.02.27
CRIME OF LOVE
2위
1992.02.26
Urban Dance
2위
Memories of Blue
1992.11.07
Good Luck My Love
5위
1992.12.07
KISS ME
'''1위'''
1994.08.29
VIRGIN BEAT
'''1위'''
SHAKE THE FAKE
1995.10.25
魂を抱いてくれ[30]
2위
MISSING PIECE
1996.06.24
STAY
'''1위'''
1996.08.15
SQUALL
'''1위'''
1997.01.15
WALTZ
4위
1997.06.04
NATIVE STRANGER
2위
I・DE・A
1997.10.29
HEAT
5위
1999.08.18
SLEEPLESS NIGHT ~眠れない夜のために~
6위
MELLOW
1999.10.27
ダイヤモンド・ダスト [31]
3위
2000.01.15
永遠 ~Eternity~
13위
2000.06.28
炎の化石
81위
Collective SOULS ~THE BEST OF BEST~
2001.01.01
Girls Be Glamorous
10위
beat haze odyssey
2003.07.21
Claudia
10위
FOLLOW THE WIND
2004.09.08
Wild Romance
6위
IN THE MOOD
2006.02.08
EASY LOVE / BITCH AS WITCH
6위
2006.10.04
SWEET REVOLUTION /
IN THE NUDE ~Even not in the mood~
3위
2010.07.14
BANG THE BEAT / Safe And Sound
3위
"B"ORDERLESS
2011.12.14
IF YOU WANT
4위
KYOSUKE HIMURO
25th Anniversary BEST ALBUM
GREATEST ANTHOLOGY
2012.09.26
WARRIORS
5위
2013.05.01
NORTH OF EDEN
6위
2014.07.16
ONE LIFE
6위
L'EPILOGUE

2.4. 콜라보레이션 싱글


발매일
제목
오리콘 최고순위
비고
2006.08.02
ANSWER
2위
GLAY와의 합작 싱글로 작사/작곡은 GLAY의 타쿠로.
2009.04.29
Safe And Sound
-
아이튠즈 스토어에서 공개된 싱글로 마이 케미컬 로맨스의 보컬 제라드 웨이가 피처링함.
2010년에 BANG THE BEAT와 더블 싱글로 CD화되어 발매됨.

[1] 활동 초기에는 氷室介로 표기했으나 84년 12월, 교토에 갔을 때 그 곳의 점술가로부터 그런 이름을 쓰는 것은 좋지 않다는 얘기를 듣고 狂을 京으로 바꿨다고 한다. 狂을 쓰든 京을 쓰든 둘 다 발음은 '쿄스케' 로 동일하다.[2] 단, 이 시절은 히무로 본인에게 있어서 흑역사 취급인지 딱히 언급도 없고 관련 자료를 찾기도 힘들다.[3] 솔로 데뷔 초기에는 팝 성향이 강해 평론가들로부터 '전설적인 록밴드 보위의 보컬 출신이 맞냐?'는 비판도 들었고 2000년도에는 록커의 이미지와 다르게 수록곡 대부분을 발라드로 채운 음반을 발매하기도 할만큼 발라드로도 유명했다. 다만, 90년대 후반 가족과 함께 미국 LA로 거주지를 옮긴 이후로는 미국색을 듬뿍 묻힌 속도감과 하드함이 강조된 록 음악을 다수 발매했다.[4] 이전부터 이어진 청력 손실이 크게 악화되는 바람에 은퇴를 결정했다고 한다.[5] 단, 라이브 활동을 은퇴한 것이지 음악 자체를 그만둔 것은 아니며 근래에 마츠모토 타카히로의 솔로 음반에 작사와 보컬로서 참여하여 정말 오랫만에 공식적인 활동을 하였다.[6] 이렇게 된 계기가 상당히 골때리는데, 보위 시절에 그가 작사작곡한 SCHOOL OUT 이라는 곡을 듣고는 한 팬이 학교를 자퇴하고서 히무로에게 '당신이 말한대로 학교를 자퇴하였습니다.' 라는 팬레터를 보냈다고 한다. 이 일화로 인해 히무로는 본인의 가사가 가진 영향력에 부담을 느끼게 되어 전문 작사가에게 작사를 맡기게 되었다고 한다. 비슷한 일화로 오자키 유타카 또한 본인의 곡 卒業(졸업)의 가사인 '한 밤의 학교 창문을 부수며 돌아다녔어'를 어린 학생들이 곧이곧대로 듣고는 진짜로 학교의 창문을 부수며 돌아다녔던 사건이 여럿 발생하여 당혹스러웠다고 하며 그 탓에 많은 항의를 받고 사과까지 한 적이 있다.[7] 80년대초부터 활동한 작사가로 안전지대의 전성기 히트곡 대부분을 작사한 바 있는 거물 작사가이다.[8] 보위의 대표곡인 Dreamin` 을 호테이와 공동 작사한 바 있다.[9] 물론 발라드 뿐만이 아닌 록 넘버 또한 여럿 작사한 바 있다.[10] 드라마 얼음의 세계의 주제가이자 게임 용과 같이 5의 엔딩 테마[11] 언리미티드 레코드와의 분쟁으로 글레이가 밴드 내외적으로 힘들어하던 시절 히무로의 도움으로 레이블을 EMI로 잠시 이적한 적이 있었다.[12] 초회한정판 기준이며 일반판은 11곡이다.[13] 3001年のスターシップ 이라는 곡을 제공했다.[14] KEEP THE FAITH 라는 곡을 제공했다.[15] ONE 이라는 곡을 제공했다. 정확히는 히무로가 작곡하고 소리마치가 작사를 담당한 공동 작업물이라고 보는 것이 알맞다.[16] MARIA 라는 곡을 제공했다.[17] 히무로의 첫 솔로앨범인 FLOWERS for ALGERNON 의 수록곡으로 그의 공연에서 분위기를 띄우는 용도로 거의 필수요소급으로 자주 불러졌던 곡이다. 현지에서는 '너무 자주 불러서 질릴 정도다.' 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고...[18] GLAY의 히사시가 편곡을 담당했다.[19] 이 앨범은 히무로의 역대 정규 앨범 중에서도 영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 앨범인데, 곡의 퀄리티가 문제라기보다 수록곡이 고작 7개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 한몫했다.[20] 1988년에 발매된 히무로의 솔로 데뷔곡으로서 그의 솔로 커리어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곡이다.[21] 그런 프로정신에 비례하여 그는 업계에서 완벽주의적 기질이 강한 것으로 유명했다.[22] 정황상 2000년대 초부터 청력의 악화가 시작된 것으로 보이며 청력의 손실을 극복하기 위해 한쪽 귀에 보조 장치를 끼우고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쪽 손으로는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하며 다른 쪽 손으로는 장치를 끼운 귀에 손가락을 짚고서 공연을 해 왔는데 어느새 이것이 그를 상징하는 시그니처 포즈가 되어 그의 팬들 중에는 노래할 때 이 포즈를 따라하는 경우가 많다.[23] 은퇴는 꽤나 오래 전부터 생각한 것으로 보이는데 앨범 "B"ORDERLESS 가 발매된 2010년도에 했던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아내에게 이따금씩 '내게는 재능이 없다.', '은퇴하고 싶다.' 등 속마음을 털어놓았다고 한다.[24] 원문은 今日は本当に申し訳ない。プロとして、怪我をしていてこれ以上出来ないけど、このリベンジをどっかで必ず。その時は、もし本当に、こんな情けない人間をもう一回支えてくれる連中が集まってくれたら、いいなと、思います。(오늘은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프로로서... 부상을 입어 이 이상은 힘들지만 이 리벤지를 어딘가에서 반드시 하겠습니다. 그 때는, 혹여라도 정말... 이런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인간을 한 번만 더 지지해 주시는 분들이 와 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25] 쿄세라 돔에서 2일간, 나고야 돔에서 1일간, 야후오쿠 돔에서 1일간, 도쿄 돔에서 3일간으로 총 7회의 공연을 했다.[26]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데, 라이브 활동에 대해 은퇴를 선언한 것이지 음악 활동 자체를 그만두겠다고 한 것이 아니다.[27] 2015년도 자료를 기준으로 일본 내에서 35위로서 상위권은 아니지만 누적 음반 판매량 1625만 장으로 상당히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였다. 애초에 히무로가 TV에도 거의 출연하지 않으며 유행이나 대중성에 얽매이지 않고 본인이 하고싶은 음악을 해 온 것을 감안하면, 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며 그만큼 매니아층이 확고했다는 의미이다.[28] 우연의 일치로 히무로와 코무로 둘 다 돌발성 난청을 앓았다.[29] 물론 코무로 테츠야는 현재 복귀했지만.[30] 한국에서 TRAX가 "영혼을 감싸안아"라는 곡으로 2006년에 커버함[31] 한국에서 포지션이 "애심"이라는 곡으로 2003년에 커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