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이나 헤키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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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름'''
'''시이나 헤키루'''
椎名へきる[1](しいな へきる)
'''성별'''
여성
'''직업'''
가수, 성우
'''생년월일'''
1974년 3월 12일 (50세)
'''출신지'''
일본 도쿄 도 히가시쿠루메 시
'''혈액형'''
A형
'''소속'''
아트비전
보이스킷
'''성우 활동 시기'''
1991년 ~ 현재
'''가수 활동 시기'''
1994년 ~ 현재
'''레이블'''
소니 레코드(1994~2009)→
란티스(2009~2014)→
워너 뮤직 재팬(2014~)
'''소개링크'''
공식 홈페이지
1. 소개
2. 출연작
2.1. 애니메이션
2.2. 게임
2.3. 외화
3.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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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일본의 성우이자, 가수.
하야시바라 메구미, 코우다 마리코와 함께 '''90년대 일본 성우 아티스트를 대표하는 성우''' 중 한 명이지만, 국내 및 최근 일본 성우팬들에게는 여러모로 생소한 인물. '''일본 성우 사상 처음으로 무도관에서 라이브를 했으며 최초로 뮤직스테이션에 출연'''한 인물이다.
1990년 16살의 나이로 아트비전의 일본 나레이션 연기연구소 특대생으로 선발되어 1년만에 데뷔, 4년차에 마법기사 레이어스로 스타덤에 올라 성우계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마법기사 레이어스의 인기와 제3차 성우붐의 흐름으로 가수활동을 시작하여 수많은 성우팬에게 사랑을 받았으나, 인기를 얻은 뒤 성우 본업을 방치하고 가수 및 아티스트 활동만을 중심으로 하는 바람에[2] 성우팬들로부터 심하게 외면을 받은 흑역사를 갖고 있다.
2006년부터 다시 본업을 늘리기 시작했는데, 하루카[3]셀레스티아 루덴베르크 등으로 메인 캐릭터급으로 복귀를 하나 싶었더니 역시나 예전만큼의 활동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히라노 아야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성우계 굴지의 안티를 소유한 성우이기도 했다.[4] 재밌는 것은 그 히라노 아야 역시 성우업보다는 일반 버라이어티 방송출연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려 한다는 건데... 역사는 돌고 도는가 보다. 음악 같은 경우 원래 소니 뮤직에서 활동했다가 2009년 가을에 이노우에 슌지가 사장인 란티스로 옮겼다. 그녀의 이적은 거의 뜬금없이 이루어진 수준으로 그 해 열린 란티스 마츠리에 참가해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라디오에서의 발언을 보면 "경력만 놓고 보면 긴데 맡은 작품이 경력 대비하여 매우 적은 편이라 작품을 맡을 때마다 신인의 자세로 임하고 있다."라고 한다. 오가타 메구미의 라디오에 게스트 출연했을때는 오가타가 대놓고 "한창 잘 나가다가, 갑자기 같이 연기 못했던 때가 있어서 요즘 10대들은 잘 모르겠지."라든가 "아이돌처럼 청순했던 애가 갑자기 가죽바지 입고 헤비한 음악을 해서 놀랬다." 등등... 대놓고 관련 소재를 꺼내기도 했다. 다만, 후배들과의 라디오에서는 역시 잘 건드리지 못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시이나 헤키루는 대놓고 후배들이 건드릴 수 있는 짬밥이 아니라서...
사실은 출연작이 적어서 그렇지, 시이나 헤키루는 성우 경력으로만 따지면 바로 위에서 농담을 날린 대선배급인 오가타 메구미보다도 1년 선배다. 요즘에 주로 나오는 여성 성우들과는 짬밥부터가 다른 셈이다. 하지만, 드림 클럽 라디오에서는 (대본이 있는 방송 컨셉이겠지만) 한 때 무도관까지 갔던 아티스트 가수가 캬바쿠라에서 노래부르는 게임에 출연한다고 대놓고 놀림을 당했다... 안습
목소리 톤에 개성이 있어서 비교적 알아듣기 쉬운 편이다. 기본적으로는 보이시한 편이다. 하지만 좀 심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발음이 정확하지 않으며 시쳇말로 발음이 많이 샌다.
사실, 시이나 헤키루가 가수로서는 꽤 성공한 축에 속한다. 지금까지 16집의 앨범과 4집의 베스트 앨범을 발표했고, 그녀는 성우 아티스트들 중에서는 최초로 무도관에 입성한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 이후에도 2002년 부터 2004년까지 1월 1일에만 3년 연속 무도관 단독 콘서트를 했고, 국립 요요기 경기장에서도 단독콘서트를 한 적 있으며, 300회 이상의 라이브 공연횟수를 기록했다. 비록 대단한 인기가수였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성공적으로 일본 가수계에 정착한 편이였다.
때문에 일본내에서 성우, 애니메이션 팬이 아닌 사람들의 인지도는 가수로서 훨씬 더 높다. 엄밀히 말하자면 히라노 아야보다 연예인으로서는 격이 다르다. 게다가 한창 가수로 인기가 있었던 90년대 말~2000년대 초반에도 성우를 그만둔 적도 없었다. 가수로서의 활동을 주로 해서 출연작이 적었고, 본인이 '''성우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한 것''' 때문에 타격이 컸을 뿐이다.
2014년 11월 8일, 일반인과 결혼했으며 2015년 1월경에 이탈리아에 신혼여행을 갔다.
2010년대에 들어서 성덕이 된 사람들에게 시이나 헤키루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오가타 메구미가 말한 농딤이 반쯤 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다만 2010년대부터는 성우 활동의 비중을 늘리고 팬과의 소통도 늘리면서 이제야나 제대로된 프로 성우 겸 가수 같다는 평을 듣고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다. 현재는 옛날엔 그랬지 정도로만 언급되며 크게 까이진 않는다. 여담으로 성우와 연예계 짬, 나이에서 오는 연륜빨이 있어서 그런지 라디오 등에 나오면 토크력이 상당한 것도 인기 요인 중 하나. 현재는 혼자서 2시간 방송을 토크만 가지고 버틸 정도의 말빨을 가지고 있다.
여담이지만, 성우 마지마 준지는 그녀의 팬으로서 팬클럽에 가입해서 활동한 적도 있으며 이런 것은 시이나 본인도 알고 있다고 한다. 근데 이러한 사실은 마지마 준지 본인이 직접 밝힌 것이 아니라 시이나의 팬인 어떤 리스너가 과거 시이나 팬클럽 회원들 사진들을 보다가 우연히 마지마가 있다는 것을 보고 혹시나 싶어서 마지마와 시이나가 당시 같이 진행하던 라디오에 투고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2. 출연작



2.1. 애니메이션



2.2. 게임



2.3. 외화


  • 슈팅 라이크 베컴 - 제스

3. 관련 문서



[1] 이름인 헤키루는 고교생 때 생각한 碧流 에서 유래.[2] 가장 심할 때는 직업을 성우가 아니라 아티스트로 표기해달라고 했을 정도라고 한다. 대한민국으로 치면 만능 엔터테이너와 비슷한 호칭으로, 그 때문에 2ch나 니코동 등에서는 요즘도 '아티스트(웃음)' 등으로 자주 비꼬기도 한다.[3] 간만에 맡은 네임드 배역이여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실 그전부터 주조역 캐스팅은 있었지만 셀레스티아를 제외하면 다들 마이너한 작품이라...[4] 다만 세월이 흐르면서 요즘은 안티라고 해도, 안티 전성기 때처럼 활발한 비방을 하는 수준은 아니라 그냥 싫어하는 수준이다. 게다가 안티로 비견되는 다른 성우들도 더 많이 늘어난지라...[5] 743화(EXTRA) : 우연은 두 번 겹친다/후드남 (모자남) 피해자/25세[6] 카즈라키 요코 (양희정) 살해범[7] 카구야 마도카의 어머니[8] 오리지널에서는 카와스미 아야코.[9] 2편 롤을 구해라에서 잠시 나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