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코미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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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방송인이자 개그맨이며 MBC 표준FM의 싱글벙글쇼 진행자로 활약했다. 본명은 '''전영근'''이며, 과거 개그계의 성인군자로 불렸다고 한다.
2. 경력
1978년 개그 공채를 통해 개그맨으로 데뷔, '일요일밤의 대행진', 청춘행진곡 등에 출연했다. 이 당시 개그맨들은 자기 이름을 갖고 장난치는 개그를 주로 활용했는데, 대표적으로 김정렬(좌우로 정렬), 이하원(이 하하하하~ 원), 김보화(보화덩어리 김보화), 강석(강가의 돌멩이) 등이 자신의 이름을 이용한 개그를 했다. 1984년 1월 16일부터 2020년 5월 10일까지 같은 개그맨 출신인 김혜영과 함께[1] 싱글벙글쇼의 MC를 맡아, 일요일, 공휴일 따위는 죄다 무시한 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진행했다. 33년 4개월 만에 하차한 두 사람의 후임으로 배기성과 함께 정영진이 내정되었으나, 정영진이 논란에 휩싸이며 허일후 아나운서가 임시 DJ를 맡게 되었다.
똥군기와 아주 거리가 먼 인물로, 그 중에서도 후배 개그맨 이경규와 인연이 많다. 이경규는 한때 동대문구 전농동에, 강석은 이때 노원구 월계동[2] 에 각각 살았었다. 그래서 퇴근길 방향이 같았기에 방송국에서 퇴근할 때 강석은 이경규를 청량리역까지 태워 줬다. 그래서 이경규는 강석의 차로 청량리역까지 간 뒤, 그곳에서 전농동까지 걸어서 귀가했다.#[3]
지금도 그렇지만, 개그맨들의 똥군기가 살인적인 수준이었던 시대에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격이 부드럽고 침착했기 때문에 후배 개그맨들이 무척 존경했다고 한다.[4] 특히 이경규를 자가용에 태워서 집에 데려다 준 행동은 지금 상황으로 생각해 봐도 정말 파격적인 행동이었다. 그 외에도 김정렬, 황기순, 배영만 등 당시 주머니가 변변치 않던 후배들을 데리고 밥이며 술이며 많이 샀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그도 한 후배에게 엄청 화내서 딱 한번 손찌검을 했는데 그게 바로 최양락 뿐이다. 관련 항목에 나오듯이 엄청 까불어서 선배들에게 매를 벌었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KBS에 임하룡이 있다면 MBC는 강석이 있다고 할 정도로 개그계의 양대 성인군자로 일컬어지고 있다.
스포츠와 낚시를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SBS 개국 초기에는 SBS 스포츠뉴스 대신 '스포츠가 좋아요'라는 뉴스쇼를 진행하기도.. 현재도 연예인 야구단 등에 간간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편이다.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가 있다면 1980년대에 그가 주로 했던 개그 레퍼토리 중 하나가 '''야구 해설자 흉내'''(라고 하지만 캐스터 흉내도 냈다)였다. 상대는 둘이었는데 최병서와 콤비를 맞출 때는 캐스터, 김병조와 콤비를 이룰 땐 해설자 이런 식으로 개그를 자주했다. 놀라운 건 실제로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말로 라디오 야구 해설자를 맡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대모사도 잘하는 편이다. 그리하여 한때 라디오 드라마에도 특별출연하기도 했다.[5]
김흥국이랑 친분이 있는지 김흥국의 음반에 본인이 부른 노래가 실려 있다.[6] 그리고 김혜영과 같이 부른 듀엣곡도 수록되어 있다. 또한 강석이 은인이라고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1980년대 후반 호랑나비로 한창 인기가 있을 때 강석이 ‘아무리 바쁘고 TV보다 출연료가 적더라도 라디오 하나는 꼭 끼고 있어라. 그래야 연예인으로서 장수한다’라고 조언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다고 한다.기사
손석희를 능가하는 동안일지도 모른다. 2019년 1월경에 손석희가 여러 사건으로 인한 마음 고생으로 다소 노화가 진행된 것을 감안하면 강석은 그럴 일이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잘 늙지 않는다.
3. 논란
- 학력위조에 휘말린 사실이 있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고, 안양영화예술학교를 다니다 학교가 없어지게 돼 군대에 갔다고 밝히며 방송에서 사과하였다.
-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최순득과 친분이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하지만 강석 본인이 직접 친분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미 얼굴을 못본 지 오래됐다고 해명했고, 딱히 친분이 있다고 문제될 만한 사항도 아니었기에 별탈없이 넘어갔다.
4. 출연
4.1. 영화
[1] 김혜영은 1987년 1월 16일부터 함께 진행했다.[2] 월계동은 당시 도봉구에 속해 있었으며 현재의 영역이 된 것은 1988년의 일이다.[3] 사실 청량리역은 청량리동이 아닌 전농동에 있기도 하고...[4] 알다시피 개그계는 선후배 관계가 군대 뺨칠 수준으로 '''매우 엄격하다.'''[5] 격동 50년에서 김동길 역할로 출연하고, 배한성의 고전열전 삼국지에서 도사로 나왔다.[6] 김흥국은 서라벌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로, 강석이 자신이 진행하던 라디오에서 당시 무명곡이던 호랑나비를 계속 틀어 주곤 했다. 김흥국이 직접 방송에 소회하기를 특히, 호랑나비가 당시에 어이없는 이유(아싸~ 라는 추임새가 너무 많다...)로 심의에 통과되지를 않아서 마지막으로 도움을 받자는 심정으로 강석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강석은 윗분들이 출연하지를 않는 일요일 라디오 방송에 몰래 호랑나비를 틀었고, 이 노래를 들은 시청자들에 의해 호랑나비를 부른 가수 김흥국이라는 사람이 한 순간에 스타가 될 수 있었다. 결국 김흥국이 기나긴 무명생활 이후에 한방에 스타가 된 것은 강석의 공로가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