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하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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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코미디언이자 배우. 1952년 충청북도 단양군 출신이며, 특이하게도 이북 출신도 아닌데 실향민이다. 어린 시절 살던 마을이 충주댐 공사로 수몰되었기 때문.
2. 활동 내역
고등학교 때부터 오락부장을 맡는 등 사람들을 웃기는데 소질을 보였다고 한다.[4] 열차를 타고 가는데 어린 아기가 너무 울고 하길래 그 앞에서 재롱을 떨자 아기가 울음을 멈추고 계속 웃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웃기는 재능을 가지고 있던 임하룡은 입대를 했을 무렵 친척들에게 보증 및 사기 크리로 가세가 기울자 결국 대학을 포기하고 생업에 뛰어들었다. 아르바이트로 정신병원에서 사이코드라마를 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밤무대에서 사회를 보다가 KBS 특채로 코미디언이 되었다. 이때, 밤무대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이 바로 전유성과 김학래. 그가 트롯 전국체전에서 탈락한 13세의 어린 참가자 이송연을 격려하며 한 말에 따르면, 자신도 코메디언이 되기 전, 탤런트 등 수많은 오디션을 봤다가 수없이 떨어져 봤다고 한다.
개그맨 생활 초창기에는 라디오 방송에서 애드립으로 북한 군관 흉내를 냈는데 ''' 적화통일하면 순자 동무래..'''운운하는 바람에 1980년대 무기 출연정지를 당한 적이 있다. 전유성도 비슷한 케이스로 출연정지를 먹은 적이 있는데,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
KBS 하룡서당을 통해 이름을 얻고 출연하는 코너마다 대박을 쳐서, 요즘말로 국민오빠 반열에 올랐다. 이 무렵 '''KBS 코미디의 4대천왕'''이라면 단연 심형래, 최양락, 김형곤, 임하룡이었다. 다만, 오늘날에는 다른 세 사람에 비해 인지도나 파괴력이 2% 부족한 면이 있는데, 이는 임하룡이 독자적인 개인기나 애드립 등으로 튀는 스타일이 아니라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동료 희극인들의 개그를 음으로 양으로 받쳐주는''' 타입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임하룡이 개그계를 떠난지 거의 이십여 년이 흘렀음에도 찰진 츳코미를 거는 것으로 유명세를 떨친 개그맨은 임하룡 이외엔 거의 없다. 또한, 임하룡은 4대천왕의 큰형답게[5] 그들 모두와 코너를 해서 히트친 적이 있을 정도로 어떤 스타일 개그든 상대와 궁합을 맞추는 능력이 탁월했다. 즉, 실제로는 진정한 1인자. 참고로 심형래, 최양락, 김형곤은 개그 스타일이 서로 달라, 함께 코너를 한 적이 거의 없다.[6]
조폭 보스 '쉰옥수수'로 철없는 2인자 '밥풀떼기' 김정식과 똘마니들을 거느리고 소동을 벌이는 '도시의 천사들'이나, '장군'으로 심형래를 비롯한 얼빠진 병졸들과 투닥거리는 '변방의 북소리'에서 이런 강점이 잘 나타난다. 특히, 자신보다 서열(상하관계)이 낮은 '주인공(중심)' 역할을 맡은 개그맨에게 '''딴죽'''를 거는 역할은 그가 제일이었다. 여담인데 임하룡이 심형래를 혼내주는 스승이나 상관으로 하도 많이 나와서 심형래 어머니가 임하룡을 무척 싫어했다고 한다. 심형래와의 조합은 변방의 북소리말고도 X특공대라는 코미디 코너에서 임하룡이 특공대장으로 나오고, 얼간이 부하인 심형래가 나온다든지 임걱정이란 코미디 코너에서 임꺽정을 패러디한 임걱정으로 나오는 임하룡을 골탕먹이는 부하로 역시 심형래가 나왔으며, 내일은 챔피언의 복싱관장과 연습생 등 정말 많은 코미디 코너에서 단짝으로 나왔다. 반대로 철없는 가족에서는 임하룡이 아내(...)인 심형래에게 잡혀 사는 가장으로 나온다.
심형래의 레전드 꽁트 중 하나인 변방의 북소리에서 바보병사 역할의 심형래에게 당해주는 장군 역할을 했던 사람이 바로 임하룡이다.[7] 물론 주로 심형래가 웃기는 역할이었지만 임하룡의 적절한 받쳐주기 능력이 없었다면 최고 히트 코너가 될 수 없었다는 것은 심형래조차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이다. 맹구와 오서방으로 유명한 KBS의 슈퍼 레전드라 칭해지는 코너 '''봉숭아 학당의 선생님도 임하룡'''[8] 이었다. 임하룡은 당시 학생으로 출연한 이창훈이나 오재미 같은 주역의 베테랑 연기자 후배들 뿐만 아니라 단역 학생들이었던 김용만, 유재석, 남희석 등 떠오르는 20대 신예들의 개그도 적절하게 받쳐주어 코너를 최고의 히트로 이끄는데 큰 역할을 했다. 알다시피 봉숭아 학당의 선생님 역할은 개그계에서 급이 높던 거성들만 했던 역할이다. 당해주기만 해도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러 개성강한 개그 캐릭터들이 순서에 맞게 웃음포인트를 살릴 수 있도록 조화로운 진행을 해야 하기에 생각보다 매우 어려운 역할이다. 개그콘서트에서 코너가 부활했을 때에도 선생님 역할은 김미화, 박미선, 이병진, 박준형 등 베테랑 코미디언들만 했던 역할이다.[9]
이후 개그콘서트에도 참여, 봉숭아 학당이 부활했을 때 선생님 역할을 맡아 2000년 말까지 출연했다. 당시 김미화처럼 스태프들로부터 하차 권유를 받았고[10] , 개콘 하차 후 배우로 전향해 웰컴 투 동막골 등의 영화에 출연하였다.
그렇다고 주역급으로 활동하지 못한 것도 아니고, '추억의 책가방'이나 '내 청춘을 돌려다오', '귀곡산장' 같은 코너에서 양아치 학생이나 젊은 오빠(…) 같은 확실한 컨셉을 잡은 캐릭터를 그럴싸하게 연기해냈다. 특히 귀곡산장에서는 산장주인 부부 중 할머니 귀신 역할을 한 이홍렬의 남편인 할아버지 귀신으로 나와 좋은 궁합으로 히트를 이뤄냈다. 주로 웃겼던 스타일 기믹은 '나이 먹을 수록 젊어지는 오빠'로 아직도 임하룡 별명이 '''젊은 오빠'''로 통하고, 개인기는 '''다이아몬드 스텝'''으로 기억하는 것도 이때 활약상 덕분이다. 그리고 그 다이아몬드 스텝을 신승훈에게 전수했다 카더라. 실제로 40대 이후 방송에 젊었을때 사진을 가지고 나와 더 젊어진 듯한 모습을 확인시켜 보이며 단순한 기믹이 아니라 진짜임을 보이기도 했다. 더불어 짱구는 못말려를 상당 부분 베꼈다가 금세 사라진 <두통이는 못 말려>라는 MBC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도 주인공으로 나온 적도 있으나 이건 알려지지 않았다.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지만, 유재석, 신동엽, 강호동, 김종민과 함께 단 5명뿐인 '''KBS 연예대상 2회 수상자'''다. 그와 동시대에 활동한 전설의 라이벌들도 이룩하지 못했던 업적이었고 연예대상을 2회 수상한 이들의 위상을 생각해볼 때, 그의 전성기 시절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인품 좋은 선배로도 연예계에서 신망이 두터운 듯. 1980~1990년대 군기 잡기가 일상이었던[11] 코미디 계에서 동료들이 후배 상대로 똥군기를 잡고 있으면 말렸고, 오히려 후배들을 다독여 주었다고 한다.[12]
이혼 경력이 있던 이경애의 인터뷰에서, 당시 루머에 시달렸던 자신을 변호해 줬던 유일한 인물로 임하룡을 꼽았고 박수홍도 감자골 4인방 영구제명 사건 때 자신들을 변호해 줬던 유일한 선배였다고 말했다. 감자골 4인방을 몰아세우며 공격하던 희극인들에게 '이 친구들이 어린애도 아니고 군대도 다녀온 친구들인데 왜 이렇게 혼내고 몰아세우느냐'고 했다고 한다. 물론 당시 임하룡은 이미 40대 베테랑이라 그 희극인들 대다수보다 선배이긴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개그맨이나 코메디언들의 똥군기를 생각해 볼 때 모든 희극인들이 등을 돌리는 상황에서 전설적인 대선배가 편을 들어준다는 것은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었으며 단체 행동을 중시하는 그 시대에 꽤나 파격적인 행동이었다. 그래서 감자골 4인방은 임하룡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야말로 모두에게 존경받는 코미디언계의 '어른'으로 런닝맨에 출연했을 당시 유재석과 지석진 역시 깍듯이 대접하는 모습을 보였다.[13][14]
또한 연예계에서 경조사 잘 챙기기로 유명하다. 별로 안 친한 사람이더라도 경조사가 있으면 꼬박꼬박 참여한다고 한다. 본인은 무슨 대가를 바라지 않고 인간으로서 해야할 마땅할 도리라고 생각하는듯. 그렇게 경조사를 잘 챙기다 보니 2008년 2월 임하룡 아들 결혼식 때 하객들이 2,000여명 정도 와서 줄을 섰고 홀이 1,500석인 탓에 뒤쪽에 서서 봐도 공간이 부족해 같은 층의 다른 홀에서 스크린을 통해 결혼식을 지켜본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또한 800여명 정도는 자리가 없어 식사도 못했다고. #1 #2 #3 [15] 임하룡의 인망이 얼만큼 두터운지 알 수 있는 좋은 예.
이미 전성기가 다 지나가던 그 후의 시절, 예능에서 슬슬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하던 시점에서도 간간히 모습을 보였다. 특히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요리대결 프로그램인 '요리천하'에선 '코미디언은 웃기는거 밖에 못한다'란 인식을 바꾸는 데 일조했다. 그 프로에서 임하룡은 매주 당대의 소문난 요리사들과 요리 대결을 했는데, 비록 승리를 한 적은 한두 번 남짓이었지만, 관중과 세 명의 심사위원들을 매료시켜 3포인트(맛, 음식의 모양, 창의력) 중 한 포인트라도 따내면서 자신의 열정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해 보였다.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냉장고를 부탁해의 김풍과 같은 기믹이다. 여담으로 이 프로그램의 오프닝 가수는 하모하모였고 심사위원 중 한명은 야구계 은퇴 후 잠시 예능계에 몸담았던 롯데의 수호신 최동원이었다.
아울러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서세원 이홍렬 이경규 등이 그랬던 것처럼 MC로도 활동했다. 특히 SBS에서 자신이 메인 MC로 활동한 작품이자 '코미디'란 단어가 들어간 프로그램('코미디 펀치펀치'(1부 메인 MC) '코미디 살리기')은 1년을 넘기지 못했는데 이들 중 '코미디 펀치펀치'는 96년 2월 11일 첫 회부터 일요일 오후 7시에 방영되어 왔으나 KBS 2TV 슈퍼선데이와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겨냥하기 위하여 1996년 9월 1일부터 와이드 편성됐고 이 과정에서 임하룡, 엄정화, 이다도시가 1부, 홍록기와 여성그룹 비비가 2부 공동 진행을 맡았지만 개편한 지 얼마 안 돼 가을개편으로 프로그램이 폐지되었으며 엄정화는 '코미디 펀치펀치' 가 본인의 유일한 정통 예능-오락 프로그램 MC 활동작이었다.
간간히 영화 쪽에도 얼굴을 내밀었고, 어린이 영화 뿐 아니라 조재현이 나온 <얼굴> 등 나름대로 정통파 연기를 좀 했기에 SBS 개국 이후에 기존의 코미디 쇼의 전체적인 패러다임의 변화와 후배 코미디언들의 득세로 코미디 쇼에서의 자리를 잃은 후[16] 코미디언 최초로 프리랜서 선언을 해서 MBC를 평정했고 이후 사실상 배우로 전향(?)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17] 하지만 각종 인터뷰를 통해 코미디언에 대한 열정은 여전하다는 걸 과시했다.
어떤 의미로 심형래와 비슷한 길을 가고 있지만, 임하룡은 감독이 아닌 배우의 위치를 고수했고 연기력도 좋아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현재 둘에 대한 대중적인 선호도나 선망은 천지차이...[18] 웰컴 투 동막골로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까지 수상하는 등, 코미디언 출신으로 영화계에 진출한 인물 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 중 하나로 뽑히기도 한다. 당장 영화 촬영때 까다롭고 예민하기로 유명한 류승완이 아라한 장풍 대작전을 찍으면서 임하룡의 연기에 감사를 표할 정도였다고 한다. 게다가 드라마에도 자주 얼굴을 비치는데, 최강칠우에서는 주인공 칠우의 양아버지 역을 하기도 했다.
2013년 3월 3일, KBS 창사 40주년 특집 개그콘서트에서 김학래, 최양락, 장두석, 이봉원, 이경래 등 올드 개그맨들과 함께 오랜만에 개그 무대에 올랐고, 레전드 '다이아몬드 스텝'을 알린 '추억의 책가방' 에서 열연을 보여주며 죽지않은 개그감을 선보였다. 이 때 임하룡을 패면서 혼내는 선생님 역을 맡았던 까마득한 후배 박영진은 비록 연기였지만 때리면서도 심장이 벌렁벌렁 했을듯... 그리고 깨알같은 임하룡의 대사 '''"선생님! 몇 년생이세요?"''', "선생님! 아버님 연세는 어떻게 되세요?", "왠지 저는 알고 싶어요~"
SNL 코리아 시즌2의 4화 '크루 스페셜'에서는 스페셜 게스트로 등장, 김슬기와 부부기믹을 보였다. 이 때도 나이를 이용한 드립과 코믹연기가 일품.
2017년 11월 26일 복면가왕에서 벌써 일년 우리아기 돌잔치라는 이름으로 나와 한정수량 명품보컬 홈쇼핑맨과 같이 신중현의 '미인'을 부른 뒤 박진영의 'honey'를 부르면서 정체를 밝혔다. 그 뒤 70차 경연에서 판정단으로 참여했다.
2018년에는 토크몬, 인생술집 2019년에는 해피투게더, 2020년에는 라디오스타와 유 퀴즈 온 더 블록 등등, 코미디 무대 외에도 꾸준히 매년 마다 예능에 얼굴을 비추고 있다.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성우 송도순, 작가 송지나와 함께 2020년 대중문화예술상에서 3등급 문화훈장인 보관문화훈장 수훈자로 선정되었다.
아들인 임영식도 배우로 활동 중이다.
3. 주요 출연작
3.1. 예능
- 1981년~1984년 KBS2 코미디출동
- 1983년~1985년 KBS1 유머극장
- 1983년~1992년 KBS2 유머 1번지
- 1984년 KBS1 유쾌한 소극장
- 1986년 KBS2 명랑 소극장
- 1987년 KBS1 웃음꽃방
- 1987년~1991년 KBS2 쇼 비디오 쟈키
- 1990년~1991년 KBS1 쇼 토요특급 MC
- 1991년~1993년 KBS2 한바탕 웃음으로
- 1992년 KBS2 토요대행진
- 1992년~1998년 MBC 오늘은 좋은 날
- 1993년 KBS2 코미디 세상만사
- 1993년~1994년 KBS2 폭소대작전
- 1995년~1996년 SBS 기쁜 우리 토요일
- 1996년 SBS 폭소 하이스쿨
- 2011년 TV조선 시사코미디 10PM
- 2013년 SBS 오! 마이 베이비(파일럿)
- 2016년 KBS2 기적의 시간 로스타임
- 2016년 MBN 코미디 청백전 사이다
- 2018년 MBC 가자! 낭만 고향
- 2019년~2020년 MBN 모던패밀리
- 2020년~2021년 KBS2 트롯 전국체전
3.2. 뮤지컬
- 브로드웨이 42번가
3.3. 영화
- 공초도사와 슈퍼 홍길동 2
- 굿모닝 프레지던트
- 그녀를 믿지 마세요
- 나는 아빠다
- 내 사랑 내 곁에
- 맨발의 기봉이
- 범죄의 재구성
- 브라보 마이 라이프
- 아는 여자 - 이때는 단역으로 나왔으며 영화계 입문 초기였기 때문이다.
- 아라한 장풍 대작전
- 엑스트라#s-3 - 영화감독 역으로 마지막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 원탁의 천사
- 웰컴 투 동막골
- 이웃사람
- 인사동 스캔들
3.4. 드라마
- 최강칠우
- 오버 더 레인보우
- 인사동 스캔들
- 두 여자의 방
- 청담동 스캔들
- 일리있는 사랑
- 욱씨남정기
- 해운대 연인들
- 시간이 멈추는 그때
- 구해줘 2 - 이장 역
- 365: 운명을 거스르는 1년 - 최경만 역
- 편의점 샛별이 - 달식 부 역
3.5. 기타
[1] 최근 예능, 1호가 될 순 없어에 등장해서 살이 많이 쪘다고 언급하였다.[2] 배우. 고고70에서 조승우 일행인 밴드 데블스에게 반해 숙소를 제공해주고 추후에 트럼펫 충원 멤버로 들어가는 역할을 연기했다. 영화 상영 당시 출연했던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윤도현에게 임하룡과 닮았다라는 말을 들었고, 그 곳에서 임하룡의 아들임을 스스로 밝혔다.[3]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중퇴. 1997년 명예학사를 받았다[4] 이 때 경험을 살려서 만든 코너가 바로 유머 1번지의 '''추억의 책가방'''이다.[5] 최양락보다 10살이 많고, 김형곤, 심형래보다도 6살 이상 많았다.[6] 심형래는 몸개그, 최양락은 만담, 김형곤은 시사개그로 서로 다르다.[7]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서 추억의 코미디를 재현할 때는 장군 역할로 임하룡 대신 이봉원이나 양원경 등 대역이 등장했다.[8] 물론 1대 선생님은 김형곤이고, 2대 선생님이 임하룡이었지만 임하룡이 더 오래 맡았으며 그때가 봉숭아 학당의 전성기였고, 바로 그 시기에 맹구 이창훈이 코미디 대상을 탔었다.[9] 최국은 개인 방송을 통해 받쳐주는 개그맨에 대해 예찬을 하면서 그 전설은 바로 임하룡 선생이라고 말했다.[10] 당시 PD가 젊은 후배들끼리 하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11] 군부 독재가 길어지면서 사회 전반에 이런 경향이 있었다.[12] MBC에서는 강석이 임하룡과 같은 인자한 선배로 유명했다. 그도 임하룡 처럼 후배들에 대한 똥군기와는 담을 쌓은 인물이었다.[13] 반대로 라스트 갓파더 홍보차 런닝맨에 출연해서 룰을 무시하고 멋대로 행동하던 심형래는... 당시 방영분을 보면 유재석은 둘째치고 지석진의 표정이 상당히 안 좋음을 알 수 있다. 지석진 문서에도 있지만 심형래는 과거 지석진이 맘에 안 들어서 유재석과 김수용에게 군기를 잡으라고 시켰는데 유재석과 김수용이 큰 소리를 내며 갈구는 척만 하다 들켜 셋 모두 심형래에게 입원할 정도의 구타를 당했다. 이러니 지석진은 아무리 선배라지만 심형래에게 좋은 감정을 가질래야 가질 수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14] 다만 지석진은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서 이 일화가 심형래의 몰카였고, 본인을 괴롭힌 것은 아니라고 얘기했다. 물론 지석진의 성품상 선배를 쉴드쳐줬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지만 확실한 것은 임하룡 출연 당시 반가워하고 같이 즐거워했던 것과 달리 심형래 출연 때는 반응이 아예 달랐다는 것이다. 지석진이 옷을 입은 스타일을 보고 유재석이 "하룡이 형인 줄 알고 90도 인사할 뻔했다"고 할때 자막으로 "제일 존경하는 선배 하룡이 형!"이라고 하거나 "비주얼은 비슷하나 인품은 다소 다름"이라고 나오기도 했다. 한마디로 인품 좋은 어르신으로 누구나 다 아는 사람[15] 물론 과장이 좀 보태어 졌겠지만, 여의도 일대가 마비 됐었다고 한다.[16] 이 때 코미디 쇼에서 자리를 잃고 낙향한 코미디언들은 김창준, 박세민, 신경숙, 이하원 등이 있다. 김성은#s-8(미달이 아님)은 그나마 다행인 축에 속하는데 코메디언으로 얻은 인기를 이용하여 TV유치원 하나둘셋(現 TV유치원 파니파니)에서 깔깔마녀로 캐스팅돼서 현재까지 20년이 다 되어가도록 활동 중이다. 물론 이경규와 박미선은 아직까지 살아남아 대성하긴 했다.[17] 임하룡은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성인 - 어린이 등 장르를 막론하여 여러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엄용수, 최양락, 서원섭 등이 임하룡 부류에 속했다.[18] 두 사람의 인품 차이도 크지만, 애초에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와 택도 없는 분야에 역량도 없으면서 뛰어드는 경우니 다를 수 밖에 없다. 당시 코미디계는 현재처럼 버라이어티 위주가 아닌 꽁트 위주, 즉 연기력이 필요했고 실제로 90년대까지 데뷔한 개그맨들은 기본 연기력이 어느 정도는 받혀주는 경우가 많다. 김국진의 경우도 의외로 연기력이 나쁘지 않고, 이경규도 이미지랑 매치가 안되서 그렇지 형편없는 연기력은 아니다. 그런데 임화룡은 이경규처럼 지나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지 않고 본인 이미지에 맞는 푸근한 역할 위주로, 조연 위주로 배역을 하면서 탄탄히 배우 커리어를 쌓아갔기 때문에 배우로서도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반면 심형래는 자신과 큰 인연이 없던 연출 분야에 도전을 하면서 역량이 쌓이기도 전에 지나치게 큰 규모의 영화를 찍었으니 실패가 예정된 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