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운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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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제62대 내무부 장관.
2. 생애
1948년 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으로 광주동중학교, 함평학다리고등학교[1] ,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관료로 근무하였고 김영삼 정부 때 관선 광주직할시장/광주광역시장, 농림부(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특히 광주광역시장으로 있으면서 광주 비엔날레를 유치해 성공을 거두면서 2010년 광주시장에 재선의 바탕이 될 정치자산을 쌓기도 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광주광역시 남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새천년민주당 임복진 후보를 꺾고 당선되어 초선이 되는 동시에 바로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하여 2002년 후보 단일화 협의회에 참여하였다.
2003년 열린우리당 분당 사태 당시에는 새천년민주당에 잔류하였고, 2004년 당 사무총장을 맡아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하였다. 결국 탄핵역풍 속에서 열린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열린우리당 지병문 후보에게 간발의 차로 밀려 낙선했다. 득표율도 광주 민주당 후보 중 가장 높았고 지병문 당선자와 표차도 무려 701표차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2007년에, 뜬금없이 노무현 정부를 계승한다며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는 일명 '''역주행''' 행보를 보였는데 본인의 인터넷 사이트에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사과하는가 하면 노무현 정부를 부정하는 세력을 비판하고 노무현 정부가 가장 많은 일을 했다며 칭찬하기도 했다.
이후 대통합민주신당을 거쳐 통합민주당 후보로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광주 남구에 출마하려 했으나 같은 당 지병문 의원에게 밀려 낙천되자, 이에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된 후 바로 복당하였다. 이로써 반노에서 친노로 바뀌었지만 안타깝게도 1년 후 노무현이 사망하면서 두 사람이 직접 만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일은 없었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친노로 변신했다기보다 망해가던 열린우리당에 역으로 입당해 정치적 지위를 올리려는 시도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그리고 이어 의원직을 사퇴하고 치른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광주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관료 출신으로 시장직을 비교적 잘 수행한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2013년 광주 세계수영선수권 유치제안서 서명위조 사건으로 물의를 빚었고, 이로 인하여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 공천을 받지 못했다. 이에 또다시 탈당하고, 마찬가지로 당 공천에 불복해 탈당하고 출마준비를 하고 있었던 고등학교, 행정고시 후배인 이용섭과 후보단일화를 해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끝내 당 공천을 받은 새정치민주연합 윤장현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2016년 3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사조직을 이용해서 사전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선처를 호소했으나 오히려 구속기간이 연장되었다. 광주광역시 동구·남구 갑 선거구에 무소속 기호 7번으로 '''옥중출마'''했으나 3위로 낙선하였다. 이후 2016년 10월에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감형되면서 풀려났다.
이후 2년이 지난 2018년에 사전선거운동 혐의에 대해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의 형이 확정되었다. 이 판결이 유죄로 확정되면서 정치인 생활은 사실상 할 수 없게 되었다.
3. 소속 정당
4. 선거이력
5. 둘러보기
[1] 졸업하지는 않았으며, 중퇴하고 대입검정고시에 합격하여 서울대학교에 진학하였다. 향후 명예 졸업장을 수여받았다. 전국검정고시총동문회(검우회)회장직을 역임했다.[2] 2000. 5. 22 새천년민주당 입당[3] 2009. 7. 6 민주당 복당, 2010. 5. 7 광주광역시장 출마를 위해 의원직 사퇴[4] 2014. 5. 3 공천 불복으로 민주당의 후신인 새정치민주연합 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