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합민주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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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합민주신당
한문명
大統合民主新黨
영문명
United New Democratic Party
등록 약칭
민주신당
창당일
2007년 8월 5일
통합한 정당
(2007년 8월 20일에 합당)
해산일
2008년 2월 17일 (통합민주당으로 신설합당)
주소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66길 23 (여의도동)
대표
손학규 / 3선 (14~16대)
원내대표
김효석 / 재선 (16~17대)
의석 수
142석 / 299석
당 색
주황색 (#FF7F00)
초록색 (#38A303)
이념
자유주의[1]

내부계파:
사회자유주의[2]
참여민주주의
제3의 길
보수자유주의
자유보수주의
중도개혁주의
진보주의[3]
사회민주주의
정책 연구소
한반도전략연구원
홈페이지

2008년 2월 17일 기준
1. 개요
2. 역사
2.1. 탈당쇼
2.2. 짧디짧은 역사
3. 역대 지도부
3.1. 대표
3.2. 원내대표
4. 역대 선거결과
4.1. 대통령 선거
4.2. 재보궐선거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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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7년 8월 5일 창당하여 새천년민주당에서 탈당해 만들어진 열린우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또 탈당해 다시 만든 정당.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정동영 후보가 낙선한 후인 2008년 2월 17일에 민주당과 합당하며 소멸했다.
초기 가칭 당명은 미래창조대통합민주신당(未來創造大統合民主新黨)이라는 매우 긴 이름이었다. 앞부분의 '미래창조' 부분은 한나라당을 탈당해 이적한 손학규 측의 요구로 들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손학규가 거물이긴 했어도 당명이 너무 길었고, 결국 주류인 기존 민주당계 정당 소속 정치인들에 의해 당명에서 '미래창조'가 빠지는 대신 당 로고에 '미래를 창조하는'이라는 문구를 덧붙이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
약칭은 대통합신당. 사실 대통합신당도 약칭으로는 길어서 언론에서는 더 줄여서 민주신당, 통합신당, 신당 등으로 불렀다. 그나마도 '민주신당'은 중도통합민주당 측에서[4] 민주신당 약칭 사용금지 가처분을 냈고, 결국 이것이 받아들여져 쓰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많이 쓰인 약칭은 통합신당이 됐다.
당시 홈페이지 도메인은 'www.undp.kr'이었다.

2. 역사




2.1. 탈당쇼


이 정당이 창당되기 전까지의 과정을 보면 이럴거면 왜 탈당했냐는 소리가 안 나올 수가 없다.
먼저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였던 김한길파(23명)가 2007년 2월 탈당, 이후 중도개혁통합신당추진모임(원내 교섭단체)을 구성했다가, 4월 국민중심당 일파였던 신국환 의원과 중도개혁통합신당을 창당한다. 그러나 이때 김한길파 23명 중 6명이 창당에 반대하여 중도이탈, 신국환 의원에 막바지에 합류한 유필우 의원 등을 더하여 간신히 원내교섭단체 20석을 형성한다. 이후 이인제를 받아들인 민주당(구 새천년민주당)과 함께 6월 말 합당하여 중도통합민주당을 만들었으나, 7월 말 김홍업 등이 탈당하고, 다시 8월 초에는 김한길파가 도로 탈당하면서 중도통합민주당은 도로 민주당으로 돌아갔다.
바로 탈당 이틀 후인 8월 5일 열린우리당과 중도통합민주당의 탈당파, 손학규 세력 등이 결합하여 창당한 것이 바로 대통합민주신당이다. 보름 후인 8월 20일 자신들이 탈당했던 열린우리당과 도로 합당하며 그야말로 진정한 막장과 콩가루의 진수를 보여준다. 결론은 열린우리당 그대로에 더해서 새천년민주당 출신 의원 5명.
다만 이들도 돌고돌아 결국 다시 모이게 될 걸 알고 이런 거다. 가만히 있는다고 뭐가 바뀔 상황이 아니었기에... 최대한 열린우리당 간판을 버리고 통합할 수 있는 세력을 최대한 늘린다고 모아본 건데 결국 사실상 동족인 민주당 일부 세력에 외부세력은 손학규가 전부. 당원의 구성이나 형태가 열린우리당의 후신, 통합민주당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위치였다.


2.2. 짧디짧은 역사


역대 대선 최대 격차, 민주당계 후보 최소 득표 등의 기록을 세우며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참패했다. 양김이 따로 나온 13대 대선에서 김영삼, 김대중이 거둔 득표율보다도 낮았다. 13대 대선의 김영삼이 28.0%, 김대중이 27.0%, 17대 대선의 정동영은 26.1%. 당시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등의 득표를 합쳐 봤자 이명박이 단독으로 얻은 48.7%에는 턱없이 못 미쳤다.
출구조사 발표가 나오는 순간 더 지켜볼 필요도 없이 게임이 끝난 것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더 가관인 것은 호남의 투표함이 먼저 열려 몇분동안 정동영 후보가 앞섰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대선처럼 처음 앞선 후보결국 떨어진다역사는 반복되었다. 득표차가 이명박과 두 배 차이였으니... 그 와중에 민주당으로 독자출마한 이인제 후보 역시 득표율 1%도 기록하지 못하며 그야말로 굴욕을 당했다. 참고로 허경영하고 0.3%(...)밖에 차이가 안났다.
그 짧은 기간 동안도 낮은 지지율 등으로 몸살을 앓았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짧게 존속한 여당이다.[5]
그 와중에도 역사적 사건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10월 2일~10월 4일에 있었던 2차 남북정상회담. 당연하겠지만 노무현 대통령 개인의 지지율에만 조금 기여하였다.
대통합이라는 이름대로 각종 계파들이 한 당으로 모여들었다. 정동영계(구당권파) + 김근태계(재야파) + 김한길계 + 천정배계 + 기타 당내 세력 + 민주당 탈당 세력 +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학규계 + 시민단체 세력(미래창조연대) 등의 다양한 세력들이 한 당으로 모여서 통합한 것이다. 워낙에 계파들이 다양했기 때문에 지지층을 결속시키기 어려웠고 17대 대선에서 이명박에게 531만표차의 패배를 당한 것이다.[6]

3. 역대 지도부



3.1. 대표



  • 초대 대표: 오충일(2007년 8월 5일~2008년 1월 10일)
  • 2대 대표: 손학규(2008년 1월 11일~2008년 2월 15일)

3.2. 원내대표



  • 김효석(2007년 8월 5일~2008년 2월 15일)

4. 역대 선거결과



4.1. 대통령 선거


연도
선거명
후보
득표수 (득표율)
결과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정동영
6,174,681 (26.1%)
2위

4.2. 재보궐선거


연도
국회의원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2007년 12월

3 / 13
4 / 12
2 / 25

5. 둘러보기


열린우리당

대통합민주신당

통합민주당
중도통합민주당
(개별 합류)
한나라당
(개별 합류)
참주인연합

[1] 열린우리당처럼 자유주의 좌파와 자유주의 우파를 망라한 순수한 자유주의 정당에 더욱 가까웠다. 다만 일부 민주계와 한나라당 출신의 손학규가 들어오면서 더 복잡해졌다.[2] 친노[3] 김근태, 신기남으로 대표되는 당내 진보세력.[4] 가처분 신청 당시엔 당명이 중도통합민주당이었고, 신청하고 얼마 안 있다가 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꾸었다.[5] 노무현 대통령은 공식적으로는 2007년 2월 28일 열린우리당 탈당 이후 입당 한 적이 없으나 당원 명부가 그대로 이동하면서 당적이 있는 것처럼 되어버렸다.[6] 2007 대선 개표결과 이명박후보 당선(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