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크 루트비히 폰 트랍

 

1. 개요
2. 학력 사항
3. 경력 사항
4. 군 생활
5. 전쟁 이후
6. 서훈내역


1. 개요


'''게오르크 요하네스 리터 폰 트라프'''[1](de. Georg Johannes Ritter von Trapp, 1880년 4월 4일 - 1947년 5월 30일)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트랩 대령'의 실존 인물로서, 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 장교로 복무하였으며, 전후 오스트리아미국에서 음악가로 활동한 사람이다. 영화에서는 '대령'으로 잘못 번역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소령으로 예편하였다. 미국과 유럽 대륙의 해군에서는 소령부터 대령까지 영관 장교는 그냥 함장으로 퉁쳐놓고 표현하기 때문이다(ex. Captain Chul-soo Kim). 별명은 '''잠수함의 에이스'''였는데, 제1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수 많은 협상국 측의 군함과 상선(군용이건 민간이건 가리지 않았다), 잠수함을 격침시켜서 얻은 별명이라고 한다.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는 남작이라고 나오는데, 성명에 있는 칭호 '리터(Ritter)'는 세습기사 칭호로 남작(Freiherr)보다 한 단계 위계가 낮다. 영국식으로 하면 준남작 비슷할 것이다. 세습기사 칭호는 게오르크의 부친 대에 얻은 것.

2. 학력 사항



3. 경력 사항


  • 제국 해군장교 (잠수함)
  • 음악가

4. 군 생활


1880년 4월 4일 현재 크로아티아의 영토이자 달마티아 왕국의 수도인 자다르(당시 명칭은 '차라')에서 태어났으며, 해군 중령이었던 부친을 따라 현재 크로아티아 영토인 리예카(당시 명칭은 '피우메')의 해군사관학교에서 사관생도로서 군 생활을 시작했다. 1900년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 소속으로 의화단 반란 진압에 참가했다. 당시 사관후보생으로서 해군 육전대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후 잠수함에 관심을 갖고 그 분야로 진출하였으며, 1910년 영국인 여자인 애거사 화이트헤드(Agathe Whitehead)와 결혼하였다. 그는 세계 최초의 근대적 어뢰인 화이트헤드 어뢰를 개발한 로버트 화이트헤드(Robert Whitehead)의 손녀로 많은 재산을 물려받은 상속녀였다.[2] 로버트 화이트헤드는 영국인이었지만 그의 어뢰 디자인은 원래 오스트리아-헝가리 해군의 어뢰 디자인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헝가리와도 커넥션이 있었다. 그녀는 1922년 성홍열로 세상을 떠났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이었던 1915년(당시 계급은 대위)에는 제국 해군 소속 SM U-5 잠수함의 지휘관으로 있으면서 프랑스 해군 소속의 순양함레옹 강베타를 격침시키고 잠수함 퀴리(마리 퀴리피에르 퀴리 부부의 이름에서 유래)를 나포하였다. 퀴리는 제국 해군 소속으로 변경되었고 SM U-14호로 개명되었다. 그리고 트랍 본인이 SM U-14의 지휘관이 된다.
전쟁 중에 트랍은 프랑스 해군의 장갑순양함 리옹 감베타(Leon Gambetta)를 포함, 수 많은 협상국 측의 상선과 잠수함을 격침하여 에이스 함장들 중 한 명이 되었고, 1918년 5월에는 소령으로 진급하였으며, 제국 최고의 훈장인 마리아 테레지아 무공훈장까지 받았다.
전쟁이 끝나자 소령(제국 해군 기준 Korvettenkapitän(Corvette captain)으로 예편하였으며, 더 이상 해군에 복무하지 못하게 되었다. 제대한 이유가 본인은 해군인데 자기 나라가 내륙국이 되어서 더 이상 해군을 운영할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다만 아돌프 히틀러로부터 크릭스마리네에서 복무하라는 권유를 받지만 자신의 조국은 오스트리아밖에 없다면서 거절한 진정한 애국자이다. 이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마리아'의 실존 인물이 되는 마리아 아우구스타 쿠체라(Maria Augusta Kutschera, 1905~1987)와 재혼하였다.

5. 전쟁 이후


1938년 오스트리아 연방국나치 독일강제 합병되었고, 이후 트랍 일가는 나치를 피해 오스트리아를 떠나 미국 버몬트스토로 이주하였고 트랍 본인은 제2차 세계 대전이 추축국의 패망으로 끝난 지 2년 뒤인 1947년 5월 30일 미국에서 지병인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6. 서훈내역



[1] 외래어 표기법상으로는 '리터 폰트라프'가 된다. 영어를 제외한 로망스어게르만어권 인명의 전치사나 관사는, 발음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채 뒤 요소와 붙여 적는다.[2] 참고로 그녀의 사촌언니는 비스마르크의 장남 헤르베르트와 결혼했고 사촌오빠인 호요스 백작은 외교관으로 이름을 떨쳤다. 한마디로 최상류층이라고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