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흠경각

 


1. 개요
2. 역사
3. 옥루
4. 특징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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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경각

1. 개요


景福宮 欽敬閣
경복궁전각으로, 자동 천문시계해시계를 비롯한 각종 기상 관측 기구들을 모아 두고 연구하던 일종의 천문관이다.
교태전의 서쪽, 함원전의 남쪽에 있다.
‘흠경(欽敬)’은 《서경》 - 〈요전〉에 나온 ‘흠약호천(欽若昊天)’, ‘경수인시(敬授人時)’의 앞 글자를 딴 것이다. ‘큰 하늘(昊天) 앞에 받들어 좇아(欽若) 공손한 자세로(敬) 백성들(人)에게 필요한 시간(時)을 알려 준다(授)’는 뜻이다.
현판의 글씨는 서예가 동강 조수호(趙守鎬, 1924 ~ 2016) 선생이 쓰고 각자장 철제 오옥진 선생(吳玉鎭, 1935 ~ 2014)이 새겼다.

2. 역사


세종 재위 시절인 1437년(세종 19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이듬해인 1438년(세종 20년)에 완공되었다. 이 때 당시 우승지였던 김돈이 기문을 지었다. 기문에 따르면 당시의 흠경각은 천추전 서쪽에 있는 1칸의 작은 전각이었다고 한다. 세종은 흠경각을 장영실을 비롯한 여러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공간으로 만들었으며 해시계앙부일구, 물시계인 옥루 등을 설치하는 곳으로 활용하였다.#
1553년(명종 8년)에 경복궁 주요부에 화재가 일어나 소실되었고 다음해에 복구하였다. 이후 1592년(선조 25년)에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져 약 270년 간 재건되지 못했다. 흠경각은 이후 창덕궁으로 옮겨 세워졌다.
1868년(고종 5년) 경복궁 중건 때 다시 지어졌다. 이 때 현재의 자리로 위치가 바뀐다. 1876년(고종 13년) 경복궁 내전 영역이 불탔을 때 같이 소실되었다가 1888년(고종 25년)에 복구되었다.
그러다 일제강점기인 1917년 화재로 사라진 창덕궁 내전 영역을 복구할 때 자재로 쓰이면서 사라졌다. 현재의 건물은 1995년에 복원된 것이다.
2019년 9월에 흠경각 옥루가 복원되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과학문화융합콘텐츠연구개발사업' 일환으로 국립중앙과학관이 주축이 되어 진행된 사업이었다.# 현재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있는 국립중앙과학관 과학기술관 전통과학분야에 전시 중이다. 관심있는 위키러들은 찾아가보자.

3. 옥루



흠경각 옥루를 다룬 YTN 뉴스

흠경각 옥루의 작동 원리
위에 짧게 언급한, 세종 시기에 흠경각에 두었던 '옥루(玉漏)'가 유명하다. 옥루는 전통 중국의 시계에서 보이는 물레바퀴를 기어장치로 한 동력에다 중세 아라비아 물시계들의 유행이었던 인형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장치를 가미하여 조선식으로 현지화 한 물시계이다. 거기에 금으로 만든 태양의 모형을 덧붙여 천상시계로 만들었다.
흠경각 안에 약 3m 높이의 종이로 산을 만들고 그 안에 설치하였으며 장영실이 무려 6년에 걸쳐 제작했다고 한다. 전술했던 김돈이 쓴 기문에 그 구조가 자세히 나와있다.

흠경각 안에 호지(糊紙)로 높이 7척 가량 산을 만들고 금(金)으로 태양의 모형을 만들어 오운(五雲)이 태양을 에워싸고 산허리 위로 가며, 낮에는 산 위에 뜨고 밤에는 산중에 지면서 일주(一周)하는데, 절기에 따라 고도(高度)와 원근(遠近)이 태양과 일치한다.


4. 특징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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