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곡 제4번(쇼스타코비치)

 


정식 명칭: 교향곡 제4번 C단조 작품 43
(Sinfonie Nr.4 c-moll op.43/Symphony no.4 in C minor, op.43)
1. 개요
2. 악기 편성
3. 곡의 형태
4. 초연과 출판


1. 개요


쇼스타코비치의 네 번째 교향곡. 간소한 고전풍의 1번과 상당히 실험적인 성격의 2번, 3번에 이은 작품으로 3번 교향곡을 작곡한지 6년 뒤에 완성되었다. 하지만 작곡 시기를 영 좋지않게 맞춘 탓에 제때 초연하지 못하고 완성 후 20년도 넘은 뒤에야 첫 공연을 할 수 있었던 기구한 사연을 가진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전반적인 인지도는 후속작인 5번에 밀리는 편이지만 창작 기법이나 완성도 측면에서 결코 가볍게 여기면 안되는 중요한 작품이며 일부 클래식 전문가나 매니아들은 이 작품을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가운데 최고의 명작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만약 소련 당국의 압력이 없는 환경이었다면 쇼스타코비치가 어떤 스타일로 음악을 썼을지 짐작하게 해주는 독창적인 수법들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클래식 매니아들에게는 여러 모로 흥미로운 작품이다.
작곡 시기는 1935년 9월부터 1936년 5월까지였는데, 한참 이 곡을 작곡하고 있던 1936년 1월에 그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이 강철의 대원수님 신경을 크게 거스르는 사건이 벌어졌다. 즉각 소련 최고의 권위를 가진 신문 프라우다에서는 연일 '음악이 아니라 혼돈' 등의 제목으로 이 오페라와 작곡가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 기사가 올라왔으며 쇼스타코비치는 졸지에 타락한 음악이나 만드는 반동분자로 낙인찍혔다. 이 때문에 쇼스타코비치는 한동안 음악활동을 (사실상) 금지당했으며 나름 똘끼가 넘치는 이 4번 교향곡도 당연히 발표되지 못했다.
그나마 쇼스타코비치는 1937년에 발표한 교향곡 5번이 스탈린과 소련당국의 극찬을 받으면서 복권이 되었지만 이 4번 교향곡은 여전히 발표할 기회를 얻지 못했으며 결국 스탈린이 사망한 후에도 한참 더 지나서야 초연이 이루어졌다.
이 4번 교향곡은 방대한 악기편성을 가지고 있는데다 연주 난이도도 매우 높기 때문에 쇼스타코비치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는 지휘자들에게도 상당한 도전을 요구하는 곡이며, 그래서인지 작품의 가치에 비해 연주 빈도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한국에서도 2013년에서야 초연이 되었을 정도

2. 악기 편성


관현악 편성은 이 때까지 작곡된 모든 쇼스타코비치의 관현악 작품들 중 가장 큰 스펙인데, 물론 7번도 만만찮지만 이 곡도 정규 관현악단 인원만으로 연주하는데 다소 무리가 따를 정도다.
피콜로 2/플루트 4/오보에 4(4번 주자는 코랑글레를 겸함)/E♭클라리넷/클라리넷 4/베이스클라리넷/바순 3/콘트라바순/호른 8/트럼펫 4/트롬본 3/튜바 2/팀파니 2[1]/베이스드럼/스네어드럼/심벌즈(서스펜디드 심벌도 별도 필요)/탐탐/트라이앵글/캐스터네츠/우드블록/실로폰/글로켄슈필/첼레스타/하프 2/현 5부(제1바이올린-제2바이올린-비올라-첼로-콘트라베이스)
플루트족과 클라리넷족을 여섯 대씩 쓰는 변칙 4관편성인데, 현악 파트의 경우 인원 지정도 되어 있다. 최소 16-14-12-12-10, 최대 20-18-16-16-14인데, 최소 편성을 채워도 관악기들이 원체 비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터라 균형을 맞추기 쉽지 않은 편이다. 그렇다고 최대 편성으로 잡자니 역시 예산이...OTL

3. 곡의 형태


고전적인 4악장 형식을 취한 1번과 달리 여기서는 3악장 형식을 택했는데, 각각 연주 시간이 20분을 넘기는 대규모 구성인 1악장과 3악장은 여러 섹션으로 나눌 수 있을 정도다. 중간에 끼인 2악장은 러시아 전통음악의 어법을 반영하면서도 대선배인 말러의 강한 영향력을 처음으로 반영하고 있어서 주목할 만한 대목.
1악장은 첫머리부터 피콜로와 플루트, 실로폰, 서스펜디드 심벌 등의 고음 악기들이 날카롭게 부르짖으면서 강렬하게 시작하는데, 곧 팀파니와 베이스드럼이 꽝 때리면서 매우 거친 행진곡 무드로 바뀐다. 트럼펫 주도로 나오는 첫 번째 주제 선율은 모든 음표에 악센트 기호(>)가 붙어있을 정도로 하이텐션을 유지하는데, 일단 크게 부풀고 나면 서서히 음량이 잦아들면서 현악기에 의해 비교적 우아한 곡선을 유지하는 두 번째 주제가 나온다.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고전적인가 싶지만, 두 주제를 섞는 발전부는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다. 짧기는 해도, 자극적인 불협화음이나 피콜로클라리넷 등 고음 목관악기들의 신랄한 갑툭튀, 갑작스럽게 울리는 시끄러운 관현악 전합주 등이 굉장히 강한 대비 효과를 주고 있다.
일단 두 주제를 내놓고 주무르는 첫 섹션이 마무리되면 다시 새로운 형태의 주제가 관악기 주제로 나오는데, 모든 음에 악센트가 붙어있는 것은 첫 주제와 비슷하지만 훨씬 가볍고 경쾌한 분위기다. 물론 이 역시 그냥 넘어가지 않고 또 한 차례 거친 클라이맥스를 만들고 잦아드는데, 이후 목관악기 위주로 첫 번째 주제를 다소 냉소적으로 비틀어 연주하는 이행부가 나오며 계속 새로운 분위기로 이어진다.
관악기의 신랄한 연주가 끝나면 미칠듯하게 빠른 스피드로 푸가토(작은 푸가)가 시작되는데, 한참 동안 현악기들만의 속주로 진행되기 때문에 거의 히스테릭한 느낌까지 받게 된다. 간간이 심벌즈가 강세를 더하고, 후반부에는 금관악기와 타악기, 목관악기까지 차례대로 더해지면서 이 교향곡에서 가장 과격한 클라이맥스를 연출한다. 푸가토를 혼란스럽게 연출하며 강한 에너지를 축적하는 기법은 2번과 3번에서도 쓴 바 있지만, 여기서 만큼의 강렬한 인상을 주지는 못했기 때문에 음악적으로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이 진짜 클라이맥스가 끝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가볍고 신랄한 이행부가 나오고, 불협화음이 점차 자극적이고 강하게 몇 번을 반복한 뒤 악장 맨 첫머리 부분이 재현된다. 하지만 기존 소나타 형식의 충실한 재현부와는 한참 거리가 있는데, 오히려 이전까지 나온 주요 주제들이 파편화되거나 애매모호하게 늘어져 나오는 등 형식 파괴를 꾀하고 있다.
중간에 끼어 있는 2악장은 양대 악장과 달리 무척 간소한 구성이지만, 1악장에 나왔던 단편적인 선율을 가지고 첫 번째 주제를 구성하는 등 나름대로 긴밀한 논리를 보여주고 있다. 말러의 스케르초 악장과 상당히 비슷한 느낌을 주는데, 갑작스레 타악기에 중단되는 가짜 클라이맥스를 비롯해 짤막한 대목임에도 굴곡이 꽤 심한 편. 후반부에 깔짝대는 소리를 연출하기 위해 캐스터네츠와 우드블록, 스네어드럼을 매칭한 것도 꽤 개성적인 조합으로 여겨진다.
마지막 3악장은 느린 서주가 붙은 빠른 악장 식으로 구성되는데, 첫 부분은 다소 우중충한 장송 행진곡풍 대목이다. 바순이 말러 스타일을 약간 비튼 듯한 우울하면서도 리드미컬한 첫 주제를 연주하며 시작하는데, 다른 악기로 옮겨가며 자유롭게 변주시킨 뒤 관현악 전체가 연주하면서 크게 곡선을 그리는 식으로 마무리한다.
행진곡풍 대목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갑자기 템포가 빨라지면서 박자도 3/4박자로 바뀐다. 하지만 이 박자가 그대로 고정되지는 않고, 곳곳에서 여러 형태로 변박이 되거나 당김음 등으로 밀고 당기면서 굉장히 변덕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거의 발레 풍의 느낌까지 줄 정도인데, 한참 동안을 이렇게 진행하고 사그라드는 듯 하다가 팀파니 두 대가 주고받거니 하면서 점점 크게 치는 가운데 금관 주도로 갑자기 장대한 코랄[2]이 연주된다.
이 부분 부터를 대략 대단원으로 보는데, 코랄이라고는 해도 바흐 스타일의 코랄은 절대 아니고 불협화음이 섞여 꽤 아이러니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이 부분이 선행 주제들과 섞여 몇 차례 강렬하게 반복되고 나면 다시 음량이 잦아들고, 첼레스타와 약음기 끼운 트럼펫 등이 띄엄띄엄 불길한 느낌의 단편적인 악상을 연주하면서 끝맺는다.

4. 초연과 출판


개요 란에 쓴 것처럼, 프라우다의 공개적인 비판으로 쇼스타코비치의 입지가 대단히 불안정해졌기 때문에 이 곡의 초연과 출판 계획에도 큰 차질이 빚어졌다. 사실 초연은 프리츠 슈티드리 지휘의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로 1936년 4월에 하기로 계획이 잡혀 있었고, 리허설까지 진행된 상태였다. 하지만 쇼스타코비치도 확실히 위기감을 느꼈는지, 결국 초연을 포기해야 했다.
물론 후속 교향곡에 아예 4번을 대신 매기고 파기할 정도로 내버리지는 않았는데, 주변인들이 왜 4번을 발표하지 않냐고 물어보면 '마음에 안들어 뜯어고치고 있다' 는 식으로 둘러대야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근소한 수정 외에 커다란 개정 작업은 없었고, 스탈린 사후인 1961년 12월 30일에 모스크바에서 마침내 잡힌 초연 기회 때도 마찬가지였다.
연주는 키릴 콘드라신 지휘의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맡았고, 청중들은 오랫동안 잊혀졌던 쇼스타코비치 초기의 재기넘치는 곡을 20년도 더 넘어서야 처음 들을 수 있었다. 출판은 이듬해인 1962년에 소련 작곡가 출판소에서 행해졌고, 세계 최초 녹음도 같은 해에 초연자들에 의해 소련 국영 음반사였던 멜로디야에서 취입되었다.
3번에서 보여주었던 여러 상반된 악상의 나열이라는 독특한 구성과 그로 인해 얻어지는 강렬한 대비와 기복, 추상성이 거의 극단까지 다다른 문제작으로 볼 수 있는데, 만약 예정대로 1936년에 초연됐다면 쇼스타코비치는 아마 끔살당했을 확률이 대단히 높았을 것으로 보인다. 전곡에 낙관성이고 승리감이고 찾아보기 힘든 수수께끼같은 느낌을 소련의 높으신 분들께서 결코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을 리도 만무했고.
워낙 큰 편성을 요하는 곡이고 연주 난이도도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하는 곡인 탓에, 러시아에서건 해외에서건 연주 빈도가 그리 높지는 않은 편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1986년에 아마추어 관현악단인 신교향악단이 작곡가로 유명한 아쿠타가와 야스시[3]의 지휘로 초연해 충공깽을 선사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2013년 10월 24일 서울시향핀란드 지휘자 유카-페카 사라스테 [4] 의 지휘로 초연했으며, 한국인 지휘자의 연주로는 정명훈미국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도이체 그라모폰에 음반을 취입한 것만이 확인될 뿐이다. 그나마 본사반은 폐반된지 오래고, 일본 로컬반이나 30여 장 짜리 정명훈 에디션으로만 구할 수 있는 상태가 한동안 지속되어 클래식 매니아들의 속을 태웠으나, 2012년 11월 중순 현재 한 인터넷 서점에서 단독으로 국내 500조 한정 제작음반을 발매하였다. 해당 인터넷 서점 홈페이지에서는 11월 2주 종합 판매량 1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하며 성황리에 판매중이다.

[1] 6대의 팀파니를 두 명의 주자가 치게 되어 있다.[2]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오이디푸스 왕' 중 '글로리아'와 비슷하게 들린다는 의견이 있다.[3] 유명한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셋째 아들이다.[4] 원래 겐나디 로제스트벤스키가 지휘하기로 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사라스테로 교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