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양주병원

 



'''국군양주병원
國軍楊州病院
Armed Force Yangju Hospital'''
[image]
''''''
'''창설일'''
1954년 5월 15일(국군덕정병원)
2005년 5월 1일('''국군양주병원''')
'''약칭'''
'''양주병원'''
'''소속'''
[image] 대한민국 국군
'''상급부대'''
국군의무사령부
'''종류'''
국군병원
'''역할'''
제6군단 의무지원
'''병원장'''
육군 대령 김인영(군의 29기)
'''위치'''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용암리 461

'''진료시간'''
'''09:00~18:30'''
'''전화번호'''
'''1688-9163'''
'''웹사이트'''

1. 개요
2. 상세
3. 출신 인물
3.1. 병원장
3.2. 장교/부사관
3.3. 병
4. 기타
4.1. 근무환경
4.2. 병원가
5. 진료부터 퇴원까지
5.1. 가는길
5.2. 접수/진료
5.2.1. 진료 과목
6. 사건사고
7. 관련 문서

[image]
'''국군양주병원 전경1'''
[image]
'''국군양주병원 전경2'''

1. 개요


[image]
대한민국 국군 국군의무사령부 예하 '''국군양주병원'''. 1954년 5월 15일에 창설하였으며,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에 위치하고 있다.

2. 상세


[image]
1954년 5월 15일 '''국군덕정병원'''[1]으로 창설 후, 1984년 9월 1일 국군의무사령부에서 제6군단으로 배속되었으며, 2005년 5월 1일 부대명칭을 '''국군양주병원'''으로 변경하였다.
제6군단 지원병원으로서 5사단, 28사단 등 6군단 예하부대 및 지상작전사령부 직할부대 의무지원을 하고 있다.
전방 군병원 현대화 프로젝트를 통해 병동을 신축[2], 2004년 5월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으며 비슷한 시기에 후송병원이었던 국군창동병원 폐원 후 병력 및 자산을 인수하였다.[3] 이후 2005년 5월 명칭을 국군양주병원[4]으로 변경, 현재에 이르고 있다. 병상수는 약 500에 달한다. 경기 북부 지역의 군 장병들의 의료지원을 맡으며, 주로 담당하는 군 부대는 제6군단 소속의 부대이고 병원 자체도 6군단 배속이므로 오른팔에 6군단 군단마크를 부착했었다.
현재는 타부대와 동일하게 태극기를 오른팔에 부착하고 부대마크는 왼쪽에 부착한다.
다른 군부대와 마찬가지로 군부대에 대한 의료지원은 물론 민간에 대한 의료지원도 실시하며, 의료설비가 낙후된 경기도 전방 민간 의료지원을 위해 이동식 치과진료차 등도 보유하고 있다. 군인 및 장교, 부사관, 군무원 가족의 진료는 무료이며 원칙적으로 민간인이 내원해 진료받을 수는 없지만 응급환자 처치는 가능하다.[5] 306보충대대가 해체되기 이전에는 제306보충대대로 입대한 장정들이 정밀검사를 받는 병원이기도 했다. 306의 해체 이후 3군 지역 사단 신병교육대에 입대한 장정 중에서 정밀검사를 받는 경우는 어느 병원에서 검사하는지 알 수 없다.[6]

3. 출신 인물



3.1. 병원장


'''역대 국군양주병원장'''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초대





00대
박동언
예) 육군 소장
군의 22기
국군의무사령관

00대
안종성
예) 육군 준장
육사 47기
국군의무사령관

00대
이재혁
육군 대령
군의 00기
前 병원장

00대
서지원
육군 대령
군의 00기
前 병원장

00대
김인영
육군 대령
군의 00기
現 병원장


3.2. 장교/부사관


세월호 7시간의 의혹을 받고 있는 간호장교 조여옥 대위가 청와대로 가기 직전 여기서 근무한 바 있다.

3.3. 병



4. 기타



4.1. 근무환경


군 병원들이 다들 마찬가지지만 기간병 구성은 본부근무대[7]와 의무후송중대[8], 여기에 파견대로 의무보급정비대[9], 군견진료소[10]군단 헌병대[11] 등이 있다.
근무자 전원은 육군 장병이지만, 의무사 직할 국직부대인데다 전투근무지원부대로 분류되므로 육군 병들에게도 근무복과 단화가 지급된다. 2000년대 초반 하계 전투복이 보급되지 않던 시절에는 얇은 하근무복과 두꺼운 동근무복에 단화 조합은 사시사철 두께가 애매한 전투복을 입어야 하는 상황보다는 확실히 쾌적했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혹서기 복장으로 반팔티 착용이 가능해지면서 회색의 반팔티를 착용했다. 장병사이에선 소위 '양주티'라 불리는 티였는데 부대명의 영문 이니설이 가슴쪽에 새겨있다. 그리고 근무복에 일반적인 위치와는 반대로 부착된 부대마크 덕분에 외박시 점프를 뛰어도 헌병에게 검문받을 확률이 확실히 낮았다. [12]
국군양주병원으로 외진을 가는 장병들의 경우, 기간병들이 꿀을 빤다고 생각해 예의없게 대하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러지 말도록 하자. 실제로 싸움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그럴수록 친절도 하락 등 대접은 박해질 것이다.

4.2. 병원가



5. 진료부터 퇴원까지



5.1. 가는길


수도권 전철 1호선(경원선) 덕정역 근처에 있다. 역에서 내려서 2-1번, 2-2번, 2-3번, 25-1번, 28번, 91번 버스를 타고 국군양주병원에서 내리면 된다.

5.2. 접수/진료



5.2.1. 진료 과목


  • 내과
  • 신경과
  • 정신건강의학과
  • 외과
  • 정형외과
  • 신경외과
  • 흉부외과
  • 마취통증의학과
  • 산부인과
  • 안과
  • 이비인후과
  • 성형외과
  • 피부과
  • 비뇨기과
  • 영상의학과
  • 진단검사의학과
  • 응급의학과
  • 구강악안면외과
  • 치과보철과
  • 치주과
  • 치과보존과
  • 구강내과
  • 건강진료과(신검장)[13]

6. 사건사고


의무병계의 GOP.[14]
[image]
위 사진 속 4성 장군은 김장수국방부 장관[15]이자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16]
530GP 사건 당시에 당연히 해당 부대 지원병원이었으므로 부상자 및 영현이 최초로 후송된 곳이기도 하며, 사안의 심각성 때문에 사건 당일 당시 대한민국 국방부장관이던 윤광웅 제독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김장수 장군도 방문하였다.
당시 기간병들은 좁은 헬기장 시설[17] 때문에 국방부 장관을 태운 VIP용 UH-60[18]이 착륙할때까지 장성을 태운 육군의 UH-60[19]이 하늘에 몇대씩 떠서 호버링으로 대기타는 희귀한 광경을 보았으며, 국방장관 및 육군참모총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거칠게 항의하는 유족들의 본관 진입을 막기 위해 비무장 단독군장으로 본관 진입로를 봉쇄[20]하다가 유가족에게 일부 멱살이 잡히거나 하는 몸싸움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후 군과 유가족 대표의 협의에 따라 국군수도병원에 합동분향소를 차리고 각 국군병원에 분산 안치된 영현들도 수도병원으로 이송 안치되었다. 그리고 해당 사건의 부상자들 및 생존자들도 병원에서 치료 후 의무조사 심의를 거쳐 의병제대 처리되었는데 이 과정에서도 생존자 가족들과의 마찰이 있었다.[21]
2014년 8월 11일 제28보병사단 폭행치사 사건 이후 전군을 대상으로 실시된 인권교육에서, 양주병원장 이재혁 육군 군의대령이 해당 사건을 두고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한 세력이 이슈몰이를 하려고 마녀사냥한 사건'이라 묘사하여 물의를 일으켰다. 관련기사 1 관련기사 2 심지어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의 학살을 정당화하는 발언도 하였는데,[22] 인권의식 자체도 희박한 수준이지만 기본적인 내용도 틀려서 국군 해병대가 하지도 않은 일을 정당화하여, 지딴엔 두둔한다는 게 오히려 명예훼손을 하는 수준이다.# 결국 보직해임되었다.#
2015년 8월 4일, 제28보병사단 폭행치사 사건 관련 JTBC 단독보도에서 병원장 이재혁 대령 및 병원 군의관 김모, 이모 대위가 조직적으로 '''민간병원 진료차트에도 없는''' '기도와 인두에 구토와 음식물 많았다고 함'이라는 언급을 해 육군에서 대놓고 사건을 은폐 및 축소했음을 알 수 있는 근거가 나왔다.
2016년 9월 6일 MBC PD수첩 - '군병원 믿어도 됩니까'편에서 밝혀진 내용으로 병원 내에 '골프연습장'이 있는것으로 알려졌다.[23]
2017년 11월 9일 호흡곤란이 일어난 훈련병을 이 부대 후송중대원이 의정부성모병원으로 후송하다 양주시 회암교차로에서 전복사고가 일어나 훈련병이 요절하는 일이 일어났다.
디스패치가 지드래곤이 발목불안정증 때문에 병가를 내고 일반실도 아닌 대령실에 입원했다고 보도해 거센 논란이 되었다가 국방부와 YG(+ 군인권센터)가 반박 보도를 낸 바 있다.

7. 관련 문서



[1] 현재 덕계공원과 회천2동주민센터, 양주출입국관리사무소가 위치한 부지가 구 덕정병원 자리이다.[2] 이때 MRI 도입 등 병원 설비 전반이 최신화 되었다.[3] 그리고 부대 통합에 따라 중령이 보임되던 병원장이 대령 보임으로 바뀌었다. 한편 국군창동병원 자리에는 2010년 서울북부지방법원서울북부지방검찰청이 공릉동에서 이전해왔다.[4] 국방부 열린게시판에 부대가 덕정동에 있지 않음에도 덕정병원 명칭을 쓰는 게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한다.[5] 군간부, 군인 및 군무원 가족도 진료는 무료일지 몰라도 특수 진료, 치료 및 처방 등으로는 비용이 부과될 수 있다. 그래서 환자 본인이 무료인 줄 알았다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마찰이 자주 일어나기도 한다. 물론 현역병은 모두 무료. 이 부분에 대해선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 소집기간 중 들르는 예비군도 진료가 무료로 가능하다.[6] 과거 보충대 의무 관련 인력들이 추가 정밀 신검자를 인솔하여 절차를 밟는 식이었다면 현재는 각급 부대 신교대 분대장을 비롯한 인력들이 인솔한다. 그래서 신검 대상자의 군기가 바짝든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과거 보충대 시절 간혹 입소 장정의 탈영? 사고가 있었던거에 비하면 달라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관련 업무가 나누어지는 바람에 복잡해지고 추가적인 시간 소요가 발생하여 불펀함을 겪었다. 건강관리과 지못미...[7] 주로 의무병 및 행정병 등[8] 병원과는 별도 편제다. 다만 운전병은 편의상 병원 소속 운전병도 후송중대에서 관리한다. 반대로 후중 의무병은 본근대로 편입한다.[9] 줄여서 보정대. 병원에 대한 의약품 및 의료장비 수리지원은 물론 병원 지원부대들에 대한 의약품 보급과 방역까지도 담당한다.[10] 군견병과 수의장교가 파견[11] 상시 주둔하지 않고 사건 발생 시 상급부대에서 파견[12] 헷갈리기보단 본인들도 잘 모르는 규정이다보니 트집을 잡곤 했다. 신형전투복의 경우 부대마크 부착위치가 반대에 벨크로가 없어 오바로크를 치곤 했고, 신병들에겐 신병위로외박 시 부대마크를 반대에 쳐야된다고 신신당부 했다.[13] 건강진료과(신검장)이라고 써 있는데는 양주병원 본관 안으로 쭉 들어가면 있다. 육군모집에서 선발하는 부사관 지원자나 모집병 등 여러 선발시험을 거치고 합격하기 위해서는 각 국군병원을 들려 신체 검사를 받아야 하는 곳인데, 바로 건강진료과가 바로 이곳이다.[14] 카더라 통신에 따르면 풍수지리학적으로 부대 위치가 조금만 틀어졌으면 더 심한 사건사고가 끊임 없었을 것이라 한다. 그만큼 사건사고가 많기로 유명하다. 실제 CPR 상황부터 아래 서술할 별세한 환자의 유가족을 상대하는 일까지 심각한 일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전방병원 중 유일하게 현대화 사업이 완전 적용된 병원이라 수술일정이 빡빡하고, 부대 위치가 애매해 야간에도 응급환자가 끊임 없다. 모 부대에선 지휘관 명령과 야전 의료의 한계로 인해 사단의무대도 거치지 않고 응급실로 감기 환자를 보내는 바람에 인트라넷 군의게에선 키배가 벌어졌을 정도. 수도, 대전에 이어 세 번째로 환자가 많으나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복무하는 기간병 대비 환자 수는 압도적이다. 물론 야전에서의 군생활에 비하면 천국은 맞다.[15] 노무현 정부 시절[16] 박근혜 정부 시절[17] 한번에 한대씩만 착륙 가능하다.[18] 검은색으로 도장[19] 위장무늬 도장[20] 영현실 위치가 본관 아래쪽에 별도로 떨어져 있어서 가능했다. 좌우는 철조망과 옹벽으로 막혀 있으니 진입로만 막으면 봉쇄 OK.[21] 병원측에서는 생존자들에 대해 PTSD 판정으로 의무조사 심의를 진행하였으나 생존자 가족들이 정신적 문제로 인한 의병제대(물론 정신병에 의한 현역복무부적합과는 다른 얘기다.)에 거부감을 가진 것. 그리고 또 기간병들이 출동해야 했다.[22] 이 발언은 자신이 일본 극우들과 다를 바 없는 정신상태를 가졌다고 광고하는 꼴일 뿐이다. 일본 극우들도 침략전쟁당시의 학살을 미화하는 발언을 밥먹듯이 하니까.[23] 대단한 골프연습장은 아니고 본관 지하에 위치한 실내 골프연습장이다. 스크린 따위의 설비도 없으며 단지 인조잔디와 그물망 그리고 누르면 골프공이 나오는 장비가 전부이다. 사회 인식이 그렇다보니 위키러 본인이 복무할 때도 상황에 따라 사용을 금지하는 경우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