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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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군인, 전 정무직공무원. 37대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과 40대 국방부장관을 지냈다. 새누리당에서 비례대표로 제18대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그 후 중화인민공화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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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2일 '남북정상회담' 당시 평양에 방문한 김장수 당시 국방부 장관은 다른 각료들과 다르게 김정일에게 목례 혹은 허리를 굽히지 않고 '꼿꼿한 자세'로 악수해서 '''꼿꼿장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참고로 김장수 장관의 키는 177cm 정도 된다.[1]
종교는 개신교. 해당 기사
2. 생애
1948년 2월 26일 광주광역시(당시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태어났다. 광주제일고등학교(42회)를 나온 뒤에 1967년에 육군사관학교 27기로 입학했고 1971년에 임관했다.[2]
그는 중령이었던 1987년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 출신의 견제를 받아 대령 진급에서 한 차례 밀려 2차로 진급하기도 했다. 조선일보 기사[3]
수도방위사령부 작전처장, 육군사관학교 생도대장, 제1야전군사령부 작전처장, 제6보병사단 사단장, 합동참모본부 작전부장, 제7군단 군단장[4] , 합참 작전본부장,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을 지냈고 2005년에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에 올랐다. 2006년에는 전역하여 윤광웅 제독의 후임으로 참여정부 국방장관이 되었고[5] 2007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날 때 꼿꼿한 자세로 악수를 하여 꼿꼿장수란 별명을 얻었으나, 처음 목례하고 차렷자세로 악수를 하는 군인식 인사법을 오해한 것으로 당시 사진 기자에 의해 밝혀졌다. #
2008년 한나라당의 공천으로 18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국방위에서 활동했다. 다만, 이때 통합민주당의 비례대표 상위순번 제의를 먼저 받아 수락까지 했다가 정치할 뜻이 없다고 다시 사양하고, 그 직후 한나라당의 비례대표 제의를 수락한 것이 드러나 비판을 받기도 했다.[6] 2013년부터 박근혜 정부 청와대 초대 국가안보실장에 임명되었다. 박근혜정부의 출범 이후 북한의 전쟁위협 발언과 개성공단 차단,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확대에 따른 이어도 포함 문제 등을 비롯한 일련의 안보현안들을 잘 대응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2014년에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국가안보실은 재난 대응과 무관하다"고 발언한 것이 책임 회피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1년 3개월여 만에 국가안보실장 직을 김관진 국방장관에게 넘겨주고 물러났다.[7][8] 이후 2015년 2월 권영세[9] 의 뒤를 이어 주중 대사로 내정되었다. 국방장관 출신으로는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처음이며, 4강에 해당하는 주요국가 파견 대사로도 과거 대만 대사였던 김정렬 전 국방장관 이후 50여 년만의 일이다. 그리고 사드배치 때문에 왕이한테 맨날 불려가 협박당하는 고역을 치루고 있다....
2018년 3월 28일 세월호 사고 보고조작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다. 재판 과정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재판/김기춘·김장수·김관진·윤전추 문서를 참고하시길 바란다.
아들인 김용우[10] 도 육군사관학교 62기로 임관하여 2대째 육군 장교의 길을 걷고 있다. 아버지가 아들의 육사 35기수 선배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 사람은 그냥 육사 출신도 아니고 프랑스 육군사관학교에서 위탁교육까지 받고 온 사람이다. 이렇게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외국 사관학교에서 교육받고 귀국해서 임관한 사람들은 진급이 빠르다는 육사 출신 중에서도 더 진급이 수월하다. 김태영, 김관진도 그런 유형.
3. 평가
김장수는 같은 육사 출신 장교인 김근태와 더불어 덕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현역들과 예비역들에게 칭송을 받는 참군인이다. 김장수 밑에서 군 복무를 했던 사람들의 의견을 듣자면 전반적으로 '''매우 훌륭하신 참군인'''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군 생활 면에서는 매우 우수했다. 병영부조리를 없애는 데 온 힘을 쏟았고, 간부 복지에만 힘쓰지 아니하고 병사 복지에도 온 힘을 쏟았다. 비록 훈련은 매우 빡세게 했을지 몰라도 생활여건을 철저히 보장해주며 내무부조리 개선에 온 힘을 쏟은 공로를 가졌다.[11] 구타 가혹행위 등 내무부조리가 발생했을 경우, 김장수 본인이 직접 이 사건을 반면교사삼아 절대로 국군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온 힘을 쏟는 한편, 피해자들에게 직접 찾아가 위로를 해 주며 보상을 아끼지 않았으며, 가해자들을 엄정히 처벌하여 군법의 엄정함을 제대로 보여주기까지 했다. 이 경우는 최악의 인간쓰레기인 한민구처럼 "방산비리는 생계형 비리다!", "그따위 작은 일 가지고!"[12] 등의 망언을 쏟아부으며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게다가 김장수는 군인을 은퇴한 뒤 국방부 장관을 역임하게 되었는데, 이 기간 동안 서로 사이가 3명의 대통령인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모두에게 인정받고 중용될 정도의 능력자였다. 역대 대통령들에게 진정으로 인정받고 중용될 정도라면 '''그만큼 능력 하나는 기막히게 뛰어나다는 뜻'''이다.
하지만, 하술할 논란으로 그 이미지를 모두 깎아먹으면서, 꼰대, 적폐 소리를 열심히 들으며 욕 먹고 있다. 세월호 참사 허위 보고도 그러하고, 제7기동군단장 시절에 터진 염순덕 상사 피살사건을 수사 그만했으면 좋겠단 식으로 개소리를 했던 것과 김영수 예비역 해군 소령의 군납비리 폭로에 관해서 김영수의 인격을 비하하며, 문민통제를 비난하는 등 꼰대, 똥별 이미지 소리까지 겹치며 온갖 욕을 다 먹고 있다
4. 논란
4.1. 청문회 증언 논란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3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했다. 이때 김장수는 박근혜와 최순실을 무조건적으로 쉴드치면서 국회의원들에게 줄곧 모르쇠와 책임회피의 증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청문회에서 질의하던 당시 새누리당 소속 하태경 의원은 답변을 듣다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대놓고 짓기도 했다.해당 영상
박근혜 탄핵 인용 헌법재판소 결정문에서, 사고 당일 오전에 세월호 승객-학생 전원 구조 보고를 박근혜에게 한 사람을 김장수로 적시했다.
4.2. 김영수(군인) 전 해군 소령에 대한 인격 비하
참여정부 국방장관 재직 시절 김영수 당시 소령이 고발한 군납비리가 사실로 드러나자 사건을 보고 받고 책임져야할 위치에 있던 위치였던 김장수는 도리어 국정감사에서 포상을 권유해도 모자랄 판에 김 소령이 인사불이익을 받았단 이야기를 듣고 "진급이 누락됐다고 하는데 중령·대령 다 시킬 거냐?"고 비아냥거리며, "군은 기강이 살아야 한다. 그 문제(진급 문제)는 군내 시스템이 존재하는 한 시스템을 존중해야 하고 심사숙고해서 처리해주기 바란다."라며 국군의 발전을 위해 진심으로 내부고발을 했던 김 소령을 비난하는 발언을 했다. 아니 문민통제를 부정했다. 국회에서 준 돈을 멋대로 돌린 것을 반성도 안 하는 것을 공개석상에서 자랑한 것이다. 여야 국회의원들 그 누구도 국회가 모독되는 것에 그냥 입다문 꼬락서니에 기가 찰 노릇이다.
이 한 마디로 구시대적 마인드를 가진 꼰대 인증을 했다. 옛날 육사식, 즉 1992년, 그러니까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기 이전인 52기 이전에 입교한 생도가 이에 해당되는데 그 당시의 대통령이 박정희, 전두환 등 군사반란을 일으킨 독재자이거나 노태우 같이 군사 반란의 공범이었고 특히 그들이 가장 강력하게 사상 주입을 시킨 학교가 사관학교, 그중 으뜸은 단연 육군사관학교였다. 김장수 본인의 인격 자체를 떠나서 군사독재정권시절에 주입된 사상 교육이 너무 심하게 틀에 박혀서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고 뒤쳐지는 부분이 있다. 그가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한 년도가 1967년도인데 이때는 한창 박정희의 유신정권이 있는대로 물이 오르던 시절이었다.
따라서 군납비리에 대한 인식이 저질 수준이라, 이는 진짜 심각한 부분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장성을 거친 이들이 이러한 마인드이면, 정말 답이 없는 수준. 군납비리는 최악의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그 걸 쉴드친다고 한다는 소리가 문민통제 부정도 모자라서, 김영수 소령을 되리어 비난한 것은 우리의 주적은 간부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한 것이다.
4.3. 염순덕 상사 피살사건 조기 종결 언급 논란
제7기동군단장 시절, "사건이 조기 해결되기를 원하며 부대 관련 수사가 장기화 되는 것은 사기저하 및 부작용이 우려됨으로 정상적인 부대 운영이 될 수 있도록 당부드린다."라는 의견을 제시해 비판을 받았다.
사건이 제대로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단지 장기화로 인한 부작용을 핑계로 조기 종결을 강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는 사실상 수사 그만하라는 것이다. 7군단장이 조기 종결 의견을 공식적으로 올렸는데 이것을 보고도 수사를 제대로 지속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질 수 있는 헌병 간부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당시 김장수는 진급이 문턱에 있어서 이 따위 발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 만일 용의자가 같은 군인이라면, 자신의 진급에 불이익이 생길 게 뻔하기 때문이며, 군의 보신주의가 비판받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2018년 3월 31일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이 사건을 다루었다.
5. 경력
- 1971. 4. 12사단 51연대 7중대 소대장
- 1972. 5. 12사단 51연대 작전 및 교육장교
- 1973. 6. 12사단 51연대 1대대 작전장교
- 1974. 1. 보병학교 고등군사반
- 1974. 7. 30사단 92연대 2중대장
- 1976. 2. 30사단 작전처 항공장교
- 1976. 11. 221보안대 행정과장
- 1978. 8. 100보안부대 7공수보안반장
- 1979. 7. 335보안부대 6반장
- 1980. 3. 육군대학 정규과정
- 1981. 2. 9사단 28연대 작전주임
- 1982. 8. 9사단 28연대 4대대장
- 1984. 9. 합참작전기획국 지상작전장교
- 1985. 12. 합참작전기획국 지상작전주무장교
- 1988. 2. 국방대학원 안보과정
- 1988. 12. 11사단 참모장
- 1989. 10. 7사단 5연대장
- 1991. 7. 1군사령부 작전처 연습과장
- 1991. 12. 1군사령부 작전처 계획편성과장
- 1993. 5. 수도방위사령부 작전처장
- 1994. 4. 육군사관학교 생도대장
- 1996. 4. 1군사령부 작전처장
- 1997. 10. 6사단장
- 1999. 11. 합동참모본부 작전기획부장
- 2000. 5. 합동참모본부 작전부장
- 2001. 4. 7군단장
- 2003. 4.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 2004. 6. 연합사령부 부사령관
- 2005. 4. 육군참모총장
- 2006. 11. 국방부장관
- 2013. 3. 국가안보실장
6. 상훈
- 1996. 10. 보국훈장 천수장
- 1996. 12. 국무총리표창
- 2002. 10. 보국훈장 국선장
- 2005. 10. 미공로훈장 LOM(Legion Of Merit)(Degree of Officer)
- 2006. 1. 미공로훈장 LOM(Degree of Commander)
7.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1] 사실, 원래 군인은 허리를 세우고 악수하는 것이 원칙이고, 이는 기초군사훈련을 받을 때 군대예절 과목에서 다 가르친다. 장교 임관식에서도 대통령 앞에서 허리 숙이고 악수하는 소위는 없고, 병사들도 높은 사람들 앞에서 허리 숙이고 악수하는 법은 없다. 더 나아가 직속 상관 관계일 경우 관등성명을 대고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붙인다. 다만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 앞에선 허리를 90도 꺾으면서 고개를 숙였다.[2]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을 지낸 육군대장 박선우 장군(일고 50회, 육사 35기)과 김용우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일고 54회, 육사 39기)도 광주일고 출신으로 그의 후배다.[3] 참고로 역대 육참 총장들 중 최다 진급 누락자는 그의 전임인 남재준 전 국정원장. 남 전 원장도 마찬가지로 하나회의 훼방 때문에 옷을 벗을 뻔하다가 김영삼 정부로 바뀌면서 하나회 청산에 따라 권영해 국방 장관이 전격적으로 수방사 참모장으로 임명했으며, 얼마 안 가 소장 진급을 가장 먼저 했다.[4] 이 당시 염순덕 상사 피살사건 수사를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개소리를 해서 욕을 먹었다.[5] 현역으로는 국방부장관으로 진출하는 데 거의 필수 보직화 된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을 거치지 않고,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에서 바로 국방부장관으로 임명된 첫 케이스이다. 두번째는 2020년 문재인 정부 3번째 국방부장관으로 임명된 서욱 장군.[6] 다만 이명박 새정부때 유일한 유임대상자로 거론되었긴 했다.[7] 김장수가 국방장관이던 시절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으로 재직했던 김관진의 후임 국방장관에는 육군대장 한민구 장군이 임명되었는데, 김관진 실장이 2010년 연평도 포격전으로 국방장관에 임명될 당시 합참의장이었다. [8] 김장수가 육군참모총장을 하던 시절에 김관진은 육군본부 예하의 제3야전군사령관, 김근태는 제3야전군 예하의 제7기동군단장, 박정이는 제7기동군단 예하의 제20기계화보병사단장을 해서 넷이 서로 직속관계였다. 그리고 저 네 사람 다 대장 진급에 성공했다.[9] 20대 총선 출마를 위해 물러났다.[10] 동명이인이 김장수의 광주일고-육사 직속 후배인 육군참모총장이다.[11] 침대형 신막사를 가장 적극적으로 시행한 장군이 김장수이기도 하다.[12] 윤 일병 사건 때 한민구가 피해자 윤 일병을 대놓고 무시하며 가해자 이 병장의 편을 들어주며 윤 일병 유족들에게 조롱하듯 내뱉은 망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