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순

 



'''대한민국 제25대 제3야전군사령관
권혁순
權赫舜 | Kwon Hyuk Soon
'''
'''출생'''
1954년 5월 3일
경상북도 포항시
'''복무'''
대한민국 육군
1978년 ~ 2014년
'''재임기간'''
제25대 제3야전군사령관
2012년 10월 11일 ~ 2014년 8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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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이현주
'''자녀'''
슬하 2녀
'''학력'''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졸업)
'''임관'''
육군사관학교 (34기)
'''최종계급'''
대장
'''주요보직'''
합동참모본부 군사지원본부장
수도방위사령관
합동참모본부 작전참모부장
제5보병사단
제32보병사단 연대장

1. 개요
2. 생애
3. 주요경력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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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육군의 前 군인. 예비역 대장. 제25대 제3야전군사령관을 역임했다.
본관은 안동(安東).[1]

2. 생애


1954년 5월 3일,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삼정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구룡포중학교,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4년 육군사관학교 34기로 입교해 1978년에 임관했다.
권혁순 장군이 군인을 한 이유는 박정희 대통령 때문이다. 포철공고 1회 졸업 후에 대학을 가지 않고 바로 취직하려다가, 박정희 대통령을 보고 자신도 군인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육사 면접을 보러 갔는데, 그때 면접관이 "야, 너 왜 군인을 하려 하냐"라고 물어보았는데 그때 답변이 "박정희 대통령처럼 군인으로 출세하고 싶습니다" 결과는 탈락이었다고 한다. 눈물을 흘리면서 다시 1년을 노력한 후에 육사에 합격했고, 졸업 후 소위로 임관했다.
첫 근무지는 전방 제21보병사단GP였고, GP장 수행 후 1979년 10월 말에 철수 예정이였는데, 마침 10.26 사건이 일어났고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되어서, 철수가 연기되었다. 당시 아무도 전방에 관심을 주지 않고 보급마저 간당간당한 상태로 유지되었다. 그러다가 이제 철수 날짜를 겨우 받아서 12월 초에 철수 계획이 잡혔는데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나 철수가 또 다시 연기되어, 결국 봄에 간신히 철수했다고 한다.
제28보병사단 폭행사망 사건이 일어나면서 임기가 남았음에도 책임을 물어 당시 제6군단장, 제28보병사단장과 함께 전격 경질되었다.[2][3]

3. 주요경력


- 육군 제25대 제3야전군사령관(대장)
- 합참 군사지원본부장(중장)
- 육군 제28대 수도방위사령관(중장)
- 합참 작전본부 작전부장(소장)
- 육군 제5보병사단장(소장)
- 육군 제2작전사령부 작전처장(준장)
- 육군제32보병사단 연대장(대령)
- 육군제1보병사단 대대장(중령)

4. 여담


  • 준장 1차 때 떨어졌지만 2차 때 탑승했다.
  • 권 장군의 경우 김상기 대장[4]과 함께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동향 출신인 점도 말이 많았다.

[1] 36세손 '''혁(赫)◯''' 기(奇)◯ 경(景)◯ 영(英)◯ 항렬[2] 사건이 일어난 28사단은 6군단 소속이고, 6군단은 3군사령부 소속이다. 즉 3군사령관은 6군단장과 28사단장의 직속상관.[3] 다만 이범수 6군단장은 후속 중장 인사때까지 유임되었으나 사건이 워낙 대형사고인지라 결국 진급과는 거리가 완전히 멀어졌으며, 자의반 타의반 예편했다.[4] 포항 동지상고 출신으로 동향에 동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