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야전군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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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3야전군사령부의 지휘관으로 대장이 보임됐던 보직이다. 2019년 1월 1일부로 제1, 3야전군 사령부가 지상작전사령부로 통폐합 됨에 따라 역사 속으로 사라진 보직이다.
2. 상세
수도권 지역과 중서부 전선을 방위하는 제3야전군사령부의 지휘관. 통상 대장 1차 보직[1] 으로 육군 대장 진급자가 보임된다. 제3야전군 창설 이래 제4대 사령관 이건영[2] 중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대장 계급으로 사령관 보직을 역임했다.
제3야전군은 육군 전력의 절반 이상이 포진되어 있고, 수도권 지역의 총지휘관으로서 쿠데타 등 유사시 정권 안보에 큰 영향을 끼치는 만큼 사령관은 정권의 신뢰를 받는 육사 출신[3] 선두주자 장교들이 주로 보임되는 핵심 보직이다. 때문에 하나회 정권 시절에는 제1야전군사령관은 비하나회 장성도 기용된 반면에, 제3야전군사령관은 무조건 전원 하나회 선두주자들이 독점하며 역임[4] 했었다.
애초에 육사 출신 각 기수 선두주자 중 정권이 신뢰하는 장성들이 보임되기 때문에, 사령관 이후에도 자연히 승승장구하게 되며 경력이 화려하게 된다. 2차 보직 경쟁자들인 다른 야전군사령관들에 비해 육군참모총장이나 합동참모의장으로 영전할 확률이 훨씬 높다. 다만, 정권 교체기에는 오히려 옷을 벗게 될 확률이 높다. '정권이 신뢰하는 장성'이 보임된다는 점에서 새 정부에서는 전임 정부 라인에 속하는 장성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역대 정권의 마지막 제3야전군사령관(이건영, 고명승, 구창회, 유재열, 서종표, 백군기, 권혁순[5] , 엄기학)들은 전원 예외 없이 새 정권에서 2차 보직으로 영전하지 못하고 전역해야 했다. 전임 정권과 노선이 반대인 정권이 들어서는 경우에는 정권 초기에 물갈이돼서 쫓겨나는 경우가 많다. 통계를 내보면 영전하지 못한 제3야전군사령관이 제법 되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위키백과 역대 제3야전군사령관 항목 참조.
3. 역대 제3야전군사령관
4. 관련문서
[1] 1군사령관, 2군사령관, 3군사령관이 대장 1차 보직이고, 통상 이 보직을 거쳐 대장 2차 보직인 육군참모총장, 합동참모의장으로 영전한다. 물론, 매우 드물게 야전군사령관을 거치지 않고 중장 보직에서 참모총장으로 바로 영전하는 케이스도 있다.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은 유동적인데, 1차 보직인 경우도 있고, 야전군사령관 역임자가 2차 보직으로 맡는 경우도 있다.[2] 현재에는 대장 진급 후 야전군사령관으로 부임하지만 70년대에는 야전군사령관으로 부임한 후 일정 시간이 지나고 대장으로 진급하곤 했다. 이건영 장군도 당연히 대장으로 진급할 예정이었지만, 12.12 군사반란 당시 반란군에 반대한 일로 하나회가 정권을 탈취한 직후 강제 예편당했다.[3] 비육사 전용 보직이나 마찬가지인 제2작전사령관, 매우 가끔 비육사가 임명되었던 1군사령관과는 달리 3군사령관은 단 한명을 제외하고 모두 육사출신이다. 유일한 비육사는 5대 사령관 유학성으로 12.12 주역중 한명이다.[4] 황영시, 정호용, 박희도, 최세창, 고명승, 신말업, 구창회.[5] 단, 권혁순 대장은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의 책임을 물어 경질된 경우였기 때문에, 새 정권이 아니었더라도 강제로 전역해야할 운명이었다.[6] 12.12 군사반란 당시 제9보병사단 참모장(대령)으로, 위의 4대 이건영 사령관의 병력동원 중지명령에 거짓말까지 자행하면서 씹고(...) 직속상관 노태우의 명령대로 병력을 동원해 쿠데타를 성공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