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방위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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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수도방위사령부의 지휘관으로 중장이 보임된다.
2. 상세
원래 수방사 사령관은 하나같이 군에서 인정받은 사람이 차지한 직책이다. 장태완처럼 자기 소신을 지키다 밀려버렸다거나[1] , 본인 내지 부하가 사고를 쳤다든지(박남수 등), 운이 없었던(김용현 등) 케이스를 빼면 거의 대장이 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전통의 진급 보증수표 5군단장은 기본에, 1군단장에도 확실히 밀렸고, 심지어 예전 같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3군단장 출신이나 8군단장 출신에도 슬슬 밀리기 시작했다.
거의 10년 동안 대장 진급자가 나오지 않다가 2020년 9월 인사에서 김정수(육사42) 장군이 진급에 성공했다.
3. 역대 수도방위사령관
4. 관련문서
[1] 장태완 소장은 알다시피 12.12 군사반란을 거부한 괘씸죄, 신원식 중장은 알자회 멤버가 아니어서 밀렸다는 것이 정설이다.[2] 1973년 윤필용 사건으로 강제예편 당하였다.[3] 준장 시절에는 이 부대의 참모장을 거쳤으며, 12.12 군사반란으로 인하여 강제예편 당하였다. 사령관에 부임한지 4주도 못되어 물러났다.[4] 전두환 前 대통령이 맡던 보안사령관 자리를 그대로 이어받고 대장까지 진급했다.[5] 하나회 회원으로 박희도, 박준병과 함께 '쓰리 박'으로 통하였다.[6] 이때부터 부대 명칭이 수도방위사령부로 바뀌었다.[7] 대장까지 진급하여 육군참모총장을 역임 중 그 유명한 병영생활 행동강령을 제정하였다.[8] 대장까지 진급하여 1야전군사령관과 합참의장을 마치고 예편, 국방부장관까지 올랐다. 참고로 역대 수방사령관 중 그리 많지는 않은 서울 출신이다.[9] 대장까지 진급하여 육군참모총장과 합참의장을 거친 뒤에 군을 떠났다. 2014년 6월 1일자로 국방장관에 지명되었다.[10] 합참 전력발전본부장(중장) 시절 천안함 민·군 합동조사단 공동단장을 맡아 사건 규명 과정에서 북한의 어뢰 추진기를 수거한 공로 등이 인정되어 대장으로 진급했다. 前 제1야전군사령관(자유선진당 이진삼 의원의 '군번줄 발언'에서 군번줄이 있다고 손을 든 몇 안되는 장성으로도 유명)[11] 이후 합참 군사지원본부장(舊 전력발전본부장)을 거쳐 2012년 10월 대장으로 진급, 제3야전군사령관에 보임되었다.[12] 육사교장 역임. 육사 성폭행사건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고 전역까지 했다.[13] 1년도 채우지 않고 합참으로 자리를 옮겼다. 알자회가 아니어서(...) 대장 진급 실패.[14] 빠른 중장 진급과 일찍 이임한 신원식 전 사령관 덕에 2년 역임했다. 이임 이후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전역. 3기수 연속 대장 진급에 실패한 수방사령관.[15] 여담으로 대장진급한 동기가 무려 두명이다.[16] 육사 43기, 경북 영주 출신.[17] 육군특수전사령관 김정수[16] 와는 동명이인[18] 사단장 경력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