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관료
Technocrat
기술관료('''Techno'''logy + bureau'''crat'''). 과학적·전문적 지식이나 능력을 가지고 현대의 조직이나 사회의 의사 결정과 관리·운영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 '기술적'이라는 말은 '과학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냥 그 관료의 업무에 관련된 학문의 기술이면 된다(예:행정학). 오늘날 현대 행정에서는 지나치게 기계화된 상황판단과 의사결정으로 혹은 매뉴얼化 된 행정관습에 의해 무력화되어버린 공무원을 칭하는 단어로도 쓰이는데, 이런 관료는 기술관료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
기술관료를 중시하는 사상은 꽤나 오래전부터 있어왔는데, 마크 마조워의 「암흑의 대륙」에 따르면 나치 독일 역시 우두머리들은 파시즘의 격정과 투쟁에 젖어 있었으나 의외로 실무자들은 무미건조하고 기계적이며 탈가치적일 뿐만 아니라 보수적이기까지 한 기술관료들에 가까웠다고 한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지적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런 관점 하에서는 이데올로기, 이념, 좌우논쟁 등은 무의미하고 비효율적인 것에 불과하며, 하나의 주어진 미래상 혹은 국가의 목표 하에 가장 효율적인 수단을 선택하는 것만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는 합목적적 도구주의가 더욱 강조되었다. 한국과 같이 정치성이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곳에서는 더 강조된다.
이러한 주장들은 탈이념을 주장하지만, 사회의 발전방향이 하나의 목표로 정해질 수 있으며 서로 상충하는 사회적 갈등이나 계급의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는 점에서 이념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발전 방향을 방향성의 문제가 아니라 시험 성적 잘 받듯이 효율성의 문제로만 보는 것에 치우쳤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는 것이다. 기술관료 및 전문가주의는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이념 즉 과학성이 약하고 인문학적 토대가 필요한 부분을 경시한다는 점에서 과학만능주의와 통하는 바가 있다. 또한 결과적으로 기술관료주의가 제시하는 하나의 목표는 경제와 과학기술의 발전 등의 성장주의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기술만능주의와도 통하는 바가 있다. 다만 과학주의, 기술만능주의 등과 일치하는 개념은 물론 아니다.
기술관료는 20세기 소련에서 제1차 5개년계획과 스탈린주의, 미국에서는 테네시 개발공사와 뉴딜, 독일에서는 아우토반과 나치즘의 형태로 구현되었고, 일본에도 영향을 끼쳐 광기의 군국주의로 치달았다는 평도 나온다. 일본의 테크노-파시즘: 광기는 어떻게 합리적으로 만들어지는가. 알다시피 이 중 그래도 오늘날 긍정적으로 평가받는건 미국 사례 정도 뿐이고, 관련해서인지 노무현 대통령은 자서전에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은 역사의식을 가진 유능한 테크노크라트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냥 단순히 능력만 있어서는 안되고 헌정질서에 대한 역사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 기술관료(테크노크라트)라고 하면 경제관료들이 떠오르기도 해서인지[1] 각 정권의 경제부총리나 경제수석 등은 테크노크라트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다. 사실 테크노크라트라는 말이 있어보여서인지 정치인 출신 아니면 죄다 테크노크라트라고 갖다붙이는 경향도 있는데, 예를 들어 군부정권 시기 김정렴, 오원철, 김재익 등이 이후 테크노크라트라고 불렸으며, 김대중 정부 때도 이런 테크노크라트들을 기용해 IMF 위기를 극복했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다.[2] 참여정부 때 테크노크라트로는 박남춘, 김진표 등이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통관료는 아니지만 기업가로 현장을 다닌 기술자였고[3] , 박근혜 정부 제1기 내각도 고위직 절반 이상이 관료 출신이라 테크노크라트 내각이라는 말이 붙기도 했다.
서구권 국가 중에서는 이탈리아가 테크노크라트 내각이 자주 들어서는 편인데, 대개 단명한다(...). 이탈리아는 베를루스코니 내각의 붕괴 이후 테크노크라트가 중심이 된 마리오 몬티 내각으로 경제위기를 돌파하려 하기도 했다. 그리스의 루카스 파파디모스 내각도 비슷한 케이스이다. 물론 이들을 중용한다고 무조건 잘되는 것도 아니라, 장단점이 있어 까딱 잘못하면 기술관료는 과한 관치경제를 조장해서 시장질서를 교란시킬 수도 있기에 애초에 기술관료는 '''보조'''적인 역할에 머무르고 결국 핵심은 기업가와 장인, 기술노동자 등 시장이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반도체 산업만 해도 기술관료보단 기업에서 먼저 나선 케이스였다. 사족으로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테크노크라트는 경제나 과학 분야만 일컫는 것은 아니다.
[1] 물론 상기했듯 각 관료의 업무에 관련된 지식만 가지고 있으면 테크노크라트로 불릴 수 있다. 윤영찬 전 소통수석도 본인을 테크노크라트라고 소개했다.# 이쪽은 IT 기업인 출신이긴 하다만.[2] 다만 이런 기계적인 기술관료들 덕분에 당시 IMF의 칼바람이 더 매서웠다고 까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 테크노크라트들은 영혼없는 집단이라고 불리며 관료 특성상 책임감과는 거리가 있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3] 중국의 장쩌민, 후진타오 전 주석도 이공계를 나온 일종의 테크노크라트 지도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