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정치인)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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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의원 (경기 수원시 무)'''
''선거구 신설''
정미경[14]
박광온[15]

'''제20~21대
김진표'''

''현직''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기 수원시 영통구)'''
''신설''

'''제17~18대
김진표'''

''개편''
'''김진표'''[B]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기 수원시 정)'''
''개편''
'''김진표'''[B]

'''제19대
김진표'''

제19~21대
박광온

'''대한민국 국회의원 윤리특별위원장'''
제20대 후반기
박명재

'''제21대 전반기
김진표'''

''현임''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
'''국민의 정부'''
6대
한덕수

7대
'''김진표'''

8대
최종찬
'''대한민국''' '''재정경제부''' '''차관'''
'''국민의 정부'''
7대
이정재

''' 8대
김진표 '''

9대
윤진식

'''대한민국 제17 ~ 21대 국회의원
김진표
金振杓 | Kim Jin-pyo
'''
<colbgcolor=#004ea2><colcolor=#ffffff> '''출생'''
1947년 5월 4일 (76세)
경기도 연백군 연안읍 (現 황해도 연백군) [1]
'''거주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동 개포4차우성아파트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망포동 그대가프리미어
'''본관'''
김녕 김씨
'''현직'''
제21대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국가경제자문회의 의장
'''재임기간'''
제8대 재정경제부 차관
2001년 4월 1일 ~ 2002년 1월 29일
제6대 국무조정실장
2002년 7월 11일 ~ 2003년 2월 26일
제11대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2003년 2월 27일 ~ 2004년 2월 10일
제48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2005년 1월 28일 ~ 2006년 7월 21일
'''외부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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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4ea2><colcolor=#ffffff> '''배우자'''
신중희
'''자녀'''
슬하 1남 1녀
'''학력'''
서호국민학교 (졸업)
수원중학교 (졸업)
경복고등학교 (졸업 / 41회)
서울대학교 (법학 / 학사)
위스콘신 대학교 (공공정책학 / 석사)
'''병역'''
[image] 공군 일병 소집해제(방위병)
'''종교'''
개신교 (침례회)[16]
'''신체'''
170cm, A형
'''소속 정당'''

'''지역구'''
경기 수원시 무
'''의원 선수'''
'''5'''
'''의원 대수'''
'''17''', '''18''', '''19''', '''20''', '''21'''
'''소속 위원회'''
윤리특별위원회 '''(위원장)'''
국방위원회
'''경력'''
제13회 행정고시 합격
대전지방국세청 소비세 과장
재무부 사무관
영월세무서장 (4급)
재무부 세제국소비세, 재산세제, 조세정책 과장
재무부 세제 총괄심의관
재정경제원 국세심판소 상임심판관
대외경제국 심의관
금융정책실 은행보험 심의관
세제실 재산소비세, 세제총괄 심의관
ASEM 준비기획단 사업추진본부장 (1급)
재정경제부 세제실장
재정경제부 차관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열린우리당 직능광역위원장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
대통합민주신당 정책위의장
대통합민주신당 정부조직 개편 특별위원장
국회 신성장산업 포럼 회장
민주당 최고위원
민주당 참좋은지방정부위원회 위원장
민주당 원내대표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제19대 국회 지방재정특별위원회장
아주대학교 초빙교수
국정기획자문위원장
제20대 국회 코로나19대책특별위원장

1. 개요
2. 생애
2.1. 관료 시절
2.2. 정치 활동
3. 업적
4. 논란
5. 여담
6. 소속 정당
7. 선거 이력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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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경제관료 출신 정치인.
관료 시절 능력을 인정 받아 국민의 정부참여정부에서 중용되어 부총리, 장관, 차관 등을 5번이나 역임했다. 정계 입문 이후 지역구 수원에서 내리 5선에 성공했다. 2000년대 이후 민주당계 정당에서 오랜기간 경제정책을 주도해온 인물로 2003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으며, 2017년 문재인 정부에서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역할을 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 모두에게 중용되었고 실제 후술되어있듯 성과도 있었지만, 안티 특히 진보 진영측 안티들에겐 IMF 이후 민주당 정부를 이헌재, 이광재 등과 함께 경제적으로 우클릭시킨 주범이라는 비판도 받는 인물이다. 실제로 참여정부 경제부총리 시절 법인세 인하, 노동유연성 강화 등을 추진해 진보 진영내 분란의 씨앗을 뿌리기도 했다.[2] 독실한 개신교 신자라 그런지 동성애, 낙태에 부정적인 사회보수주의적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다만 김진표 입장에선 좀 억울할 수도 있는게, 그는 한번도 민주당계를 떠난 적이 없는 '''진성 민주당원'''이며, 2014년 지방선거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했을 때 한 후보 성향 조사에서도 진보5~보수5 척도 중 '''진보1'''로 평가받았다.[3]

2. 생애


1947년 5월 4일, 황해도 연백군에서 태어났다. 4살때인 1950년 6.25 전쟁 중 아버지의 손을 잡고 피난하여 수원시에 정착했다. 이 때 곧 따라오겠다던 어머니는 영영 따라오지 못해 이산가족이 되었다.
수원에서 성장기를 보내며 서호초등학교, 수원중학교(13회)를 졸업하였고, 이후 서울로 유학하여 경복고등학교(41회)[4],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2.1. 관료 시절


1974년 행정고시 합격 후 재무관련 부처에서 오랫동안 재경직 공무원으로 공직생활을 하였다.
  • 참여정부 초기인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경제부총리)을 역임하였다. 이 시절 신용카드 대란을 수습했다.

2.2. 정치 활동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2005년부터 2006년까지 교육인적자원부 (현 대한민국 교육부) 장관 (교육부총리)을 역임하였으며, 2007년 열린우리당의 마지막 정책위원회 의장을 역임하였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10년까지 민주당 최고위원을 역임하였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되었으나 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와의 야권단일화 경선에서 패배하여 출마하지 못했다. 경선 과정에서 패배한 것이기에 의원직은 유지하였다. 이때 유시민은 김문수에게 패해 낙선하긴 했지만, 김진표가 물심양면으로 자신의 선거운동을 도와준 것에 대해 훗날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관련 글.
2011년 5월 정세균 등의 지원을 받아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했고, 당선되어 같은 해 12월까지 민주당 원내대표를 역임하였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경기도 수원시 정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2014년 6회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정치민주연합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되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였다. 여론조사는 오차범위 밖으로 크게 지는 결과가 대부분이었다가 출구조사에서 앞서 역전의 가능성이 보였으나, 개표 결과는 새누리당남경필 후보에게 단 1% 차이로 밀려 낙선했다.
2014년 7월 열린 재보궐선거에서 자신의 지역구에 출마한 박광온 의원을 지원하여 당선되도록 도왔다.# 그리고 2015년 3월 문재인 당대표 밑에서 새정치민주연합 국정자문위원장을 맡았다.
이 때 대한민국 정당사상 최초로 열린 정책엑스포 조직위원장을 맡아 새정치민주연합이 유능한 경제정당, 정책정당이 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새롭게 신설된 경기도 수원시 무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원래의 지역구는 박광온이 자신이 사퇴했을 때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가져갔기 때문에, 자신이 선거구를 옮겼다.
2017년 19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캠프의 선거 공동대책위원장과 일자리위원장을 맡았으며, 문재인의 당선 이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위원장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위촉되었다. 국정기획자문위원장으로서 문재인정부의 100대 국정과제를 설계, 발표하였고, 특히 강점인 경제 분야에서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성장의 구체적인 밑그림을 그렸다.
2018년 7회 지방선거에서 현직인 남경필 지사와의 경기도지사 리매치가 점쳐졌으나, 불출마 선언을 하고 전해철 후보 지지를 선언하였다. 아무래도 경선까지 포함해서 두 번이나 패배한 만큼 또 출마하기에는 부담이 컸던 듯. 또한 70대의 많은 나이도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5]
2018년 7월 26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당대표 예비경선 컷오프를 통과하여 이해찬, 송영길과 민주당 당대표직을 놓고 겨루게 되었으나, 3위로 낙선했다.
2018년 9월, 이해찬 당대표에 의해 더불어민주당의 경제자문기구인 국가경제자문회의 의장으로 선임되었다.
2019년 11월부터 문재인 정부의 차기 국무총리 후보자로 검토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본 문서 하단에 나와있는 논란거리들 때문에 진보 진영에선 국무총리 지명을 크게 반기진 않는 모습이다.# 반대로 소상공인연합회, 외식업중앙회, 한국SWㆍICT총연합회 등 경제단체들은 김 의원이 총리가 돼야 한다는 내용의 지지성명을 발표했으며#, 김무성 등 일부 보수 정치인들이 김진표 총리 임명을 찬성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여론조사에서도 민주당 정권의 총리 후보자에 대해 진보층과 보수층 찬성 여론이 엇비슷한 드문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허나 김진표 내정설이 돌자 일부 시민단체에서 반발하고 나섰고, 민주당 권리당원 카페에서도 당원간 대립각이 세워졌다. 이렇게 여권 내에서도 기류가 심상치 않자 김진표가 직접 대통령을 만나 고사의 의사를 전했다고 한다. 이후 거론되는 인물은 정세균 전 국회의장. 결국 정 전 의장이 문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국무총리가 되었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단수공천을 받아 5선에 도전하여 무난히 당선되어 21대 총선 최고령 당선자가 되었다. 동갑인 통합당 홍문표보다 생일이 약 5개월 빠르다.
선수나 나이가 있다보니, 총선 직후 21대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로 언급되었다. 실제 5월 25일 최다선 박병석 VS 최연장자 김진표의 양자대결로 경선을 치르게 되었다.# 그러나 5월 20일 국회의장 불출마를 선언함에 따라 21대 전반기 국회의장직은 박병석 의원의 몫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다만 제1차 본회의 의장 선거에서 의장 내정자 본인을 제외한 최다선이 임시의장을 맡는 관례에 따라, 임시의장을 맡았다. 다만 21대 국회 후반기 의장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있다.
본인 의원실에 월1회 주4일 근무제를 시범적으로 실시하고, 연차를 모두 소모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였다. 김 의원은 "국회는 법을 만드는 곳이고 근무환경 개선의 내용을 담은 법이 중요하게 다뤄지는 곳임에도 정작 보좌진들은 주5일제나 주52시간 근무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21대 국회에서는 보좌진들의 근무조건을 현실에 맞게 적용하고 근무시간은 단축하되 업무능률은 올릴 생각"이라고 말했다. #
2020년 이낙연 대표 체제 하에서 당대표 직속 국가경제자문회의를 신설하면서 국가경제자문회의 초대 의장에 임명되었다.
이후 부동산 정책에 대해 "부동산시장 안정책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시장에 공급 물량을 늘려야 한다"며 수요공급의 원리로 풀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그동안 부동산 대책을 두고 민주당 내에서 투기세력을 잡아야 한다는 규제파와 시장친화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공급확대파가 대립하고 있었는데, 이해찬 체제에서는 규제파가 앞섰지만 이낙연 체제에서는 김진표 등 공급확대파도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인다. #
나이가 나이인 만큼 이번 국회의원 임기가 마지막으로 보인다. 민주당 내에서도 원혜영 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통해 정계에서 은퇴했고, 이해찬, 진영(정치인) 또한 지역구 불출마 선언을 통해 정계에서 물러났다. 다만 진영 전 의원은 현직 행정안전부 장관을 맡고 있음으로 임기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물러날 것으로 보인다.

3. 업적



3.1.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대통령비서실장도 모르게 비밀리에 금융실명제를 도입할 때, 홍재형 등과 함께 관료로서 비밀리에 실무를 담당해 금융실명제의 성공적인 안착에 기여하였다.

3.2. 국민의정부 시절


재정경제부 세제실장으로서 부동산 실명제 도입의 실무를 총괄했다. 금융실명제에 이어 실명제 도입에 더블을 달성한 흔치 않은 이력을 지닌 셈. 또한 2001년에는 정책기획수석으로서 국민의정부에서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정책을 수립하는데 공헌을 했고, 2002년에는 재정경제부 차관으로 한일월드컵 성공 개최와 경제성장률 10.1%를 달성하는데 기여했다.

3.3. 참여정부 시절


참여정부 시절 김진표의 활동에 대해선 가타부타 말이 많지만, 일단 경제부총리로서는 국민의정부에서 경기부양 목적으로 과대발급한 신용카드로 인해 카드 대란이 벌어졌을 때, 이것을 1년만에 수습했다. 교육부총리 재임시에도 죽음의 트라이앵글 등 상당한 비판점이 있지만, NEIS 도입을 추진했고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만드는 등 업적도 존재한다. 주 5일 근무제 역시 김진표가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4. 논란




5. 여담


  • 팬들에게는 진표살이라고 불린다. 보살에 비유될 정도로 의외로(?) 온화한 성품으로 동료 의원들과도 사이가 좋다고 한다. 고소, 고발을 잘 하지 않는 것으로도 나름 유명하다.
  • 정세균 의원과 매우 친밀한 사이로, 2019년 정세균 의원이 김진표 의원을 총리로 추천했으나 여차저차해 김진표 의원이 총리직을 고사하자, 김진표 의원은 다시 정세균 의원을 자신을 대신할 총리 후보로 추천했고, 이를 문재인 대통령이 받아들이며 정세균 의원을 총리로 임명했다.#
  •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안티도 있지만,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에게는 신뢰받고 있는 편이다. 위의 정세균, 홍영표, 노영민과 민주당계 정당과 유사한 이념을 지닌 유시민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성향이 꽤나 반대일 것처럼 보이는 추미애도 당대표직을 수행하면서 김진표를 당 정책위원회의 의장으로 임명했다. 김진표와 당대표직을 놓고 경쟁했던 이해찬 역시 김진표를 국가경제자문회의[6] 의장으로 임명했다. 2012년 선대인, 우석훈,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 등이 김진표를 X맨이라고 격렬하게 비판하자 당시 친노 좌장격이던 이해찬이 김진표 의원은 우리와 개혁을 함께 갈 수 있는 사람이라며 엄호한 적도 있었다.#[7]

6.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2004 - 2007
정계 입문

2007 - 2008
합당[8][9]

2008
합당[10]

2008 - 2011
당명 변경

2011 - 2013
합당[11]

2013 - 2014
당명 변경

2014 - 2015
합당[12]

2015 -
당명 변경
  • 특이사항으로는 정계 입문 후 단 한 번도 탈당한 이력이 없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소속 당에 대한 의리가 있는 듯 하다.

7.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수원 영통

'''49,155 (48.34%)'''
'''당선 (1위)'''
'''초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40,781 (49.83%)'''
'''재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수원 정

'''68,274 (61.02%)'''
'''3선'''[13]
2014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2,478,667 (49.56%)
낙선 (2위)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수원 무

'''62,408 (51.48%)'''
'''당선 (1위)'''
'''4선'''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82,002 (55.21%)'''
'''5선'''
경기도지사 선거 빼고는 5전 5승인 나름 선거의 능력자이다, 게다가 유일하게 패했던 경기도지사도 단 1%차이다.
'''역대 선거 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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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둘러보기










[1] 1.4후퇴 당시 월남하여 수원시에서 성장했다.[2] 국무총리실에서 일하던 우석훈은 2003년 김진표가 인수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되자, 노무현 정부는 미래가 없다면서 사표를 던질 정도였다. 그뒤에 출판한게 바로 88만원 세대. 실제로 우석훈은 그때부터 십수년간 줄기차게 김진표가 경제 정책의 키를 쥐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신자유주의 비슷한 정책을 밀어붙이는 바람에 참여정부가 망가졌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3] 이때 상대방으로 나온 새누리당 소장파 출신 남경필 후보도 성향이 진보1로 나오는 훈훈한(?) 광경을 보여주었다.[4] 경기고등학교에 입학가능한 성적이었으나 중학교 시절 은사가 경복고 출신이라 경복고를 택했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경복중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경복고 내에서 차별을 겪었다고 한다.[5] 20대 국회에서 김진표는 문희상, 심재권 다음으로 민주당 내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의원이었다. 그 뒤를 변재일 의원, 이수혁 의원, 오제세 의원, 최운열 의원, 윤일규 의원, 진영 의원, 정세균 前 의장이 따른다.[6] 당의 자문기구로 경제정책 전반을 자문하고 총괄하는 자리다.[7] 다만 강성진보층에서는 이해찬도 김진표와 비슷한 삼성 인맥으로 보기도 한다. 이해찬의 형인 이해진이 삼성전기 사장을 지내는 등 삼성그룹의 최고위층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해찬은 재벌개혁, 경제민주화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편이다.[8] 대통합민주신당에 흡수 합당.[9] 열린우리당 마지막 지도부 체제의 구성원이었다. (당시 직책은 정책위의장이었다.)#[10] 민주당과 신설 합당.[11] 시민통합당과 신설 합당.[12]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13]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되어 2014년 5월 15일 의원직 사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