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식(농구)

 

'''김상식의 감독 경력 및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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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
'''KOREA NATIONAL BASKETBALL TEAM'''
'''김상식
金商植'''
<colbgcolor=#ffffff> ''' 출생 '''
1968년 3월 14일 (56세)
[image] 서울특별시
''' 국적 '''
[image] 대한민국
''' 신체 '''
182cm|체중 78kg
''' 직업 '''
농구선수(슈팅 가드 / 은퇴)
농구감독
''' 학력 '''
윤중초등학교 (졸업)
배재중학교 (졸업)
양정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법학 / 학사)
''' 실업입단 '''
1990년 기업은행 농구단
''' 소속 '''
<colbgcolor=#ffffff> ''' 선수 '''
[image] 기업은행 농구단 (1990~1997)
[image] 광주 나산 플라망스 (1997~1998)
[image] 안양 SBS 스타즈 (1998~2003)
'''감독'''
[image] 안양 KT&G 카이츠 (2006~2007 / 대행)
[image] 대구 오리온스 (2008 / 대행)
[image] 대구 오리온스 (2008~2009)
[image] 서울 삼성 썬더스 (2014 / 대행)
[image]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2018 / 대행)
[image]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2018~2021)[1]
'''코치'''
[image] 안양 SBS-KT&G (2004~2007)
[image] 대구 오리온스 (2007 / 수석코치)
[image] 서울 삼성 썬더스 (2012~2014 / 수석코치)
[image]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2015~2018)
''' 가족 '''
아버지 김영기
1. 개요
2. 선수 생활
3. 지도자 생활
3.1. SBS 스타즈 코치 및 KT&G 카이츠 코치-감독대행
3.2. 오리온스 수석코치-감독대행-감독
3.3. 삼성 썬더스 수석코치-감독대행
3.4.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감독대행-감독
4. 여담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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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농구 선수이자 지도자. 농구인 2세로 기업은행의 간판 슈터였고, 프로 출범 후, 나산, SBS에서 활약했으며 이동 미사일이란 닉네임으로 유명했다. 은퇴 이후, 안양 KGC인삼공사 감독 대행과 대구 오리온스의 감독, 서울 삼성 썬더스의 코치 및 감독대행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대한민국 남자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

2. 선수 생활


부친은 1950년대와 60년대 한국 농구를 책임졌던 명 선수이자, 한국프로농구의 출범에 크게 기여하고, KBL 2대 총재를 역임한 김영기. 아버지의 뒤를 따라 농구 선수가 되었고, 고려대 시절에 외곽슛을 주무기로 비록 한 시대를 풍미한 아버지의 명성만큼은 아니더라도 제법 실력 있는 선수였다. 청소년 대표를 거쳐 고려대의 주포로서 활약했다.
졸업과 함께 일찌감치 기업은행으로 진로를 정하고 입단하는데, 이유는 부친인 김영기가 기업은행 선수와 지도자로 활동했기 때문. 그래서 기업은행의 주포로서 농구대잔치 무대에서 꾸준한 득점력을 선보였다. 군복무 시절인 1993-94 농구대잔치에서는 정재근, 오성식과 함께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지만, 당시 엄청난 돌풍을 일으킨 연세대학교에게 패하면서 농구대잔치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리고 기업은행이 금융팀인지라 다른 팀과의 스카우트 경쟁에서 밀리면서 실업농구 시절의 김상식은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약팀에서 고군분투하는 고독한 에이스로 각인되었다. 상무 시절이던 1993년,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1993 자카르타 ABC에 참가하였다.
프로 출범 후에는 기업은행을 인수해서 출발한 광주 나산 플라망스 소속으로 원년에 평균 20득점을 넘기면서 용병 에릭 이버츠, 이민형과 함께 팀을 6강 PO로 이끌었다. 이듬 해인 1997-98 시즌에도 괜찮은 모습을 보이면서 팀의 주포로서 활약했지만 당시 나라를 뒤흔든 1997년 외환 위기의 여파 속에 모기업이던 나산그룹이 부도가 났고, 재정빈곤 등으로 농구단 운영에 차질을 빚으면서 결국 팀의 간판이던 김상식은 현금 2억원에 팔리며 안양 SBS 스타즈로 이적하게 되었다.
안양에서의 성과는 다소 미흡했다. 이적 당시 김상식은 이미 30줄에 접어들었고, 과거와 같은 폭발적인 득점력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적은 출장시간에도 불구하고 장기인 3점슛과 외곽슛을 무기로 가드진을 이끌며 알토란 같은 활약을 했고 결과적으로 이 때의 활약을 통해 SBS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받는 스타가 될 수 있었다. 2003년을 끝으로 은퇴한 후, SBS가 코치 연수를 보내준 것이 대표적인 근거라고 할 수 있겠다.

3. 지도자 생활



3.1. SBS 스타즈 코치 및 KT&G 카이츠 코치-감독대행


은퇴 이후 은퇴팀이었던 SBS에서 연수지원을 받은 이후 다시 팀에 돌아오게 된다.
2004-2005 시즌 김동광 감독이 부임하면서 기존의 SBS 성골인 이상범 코치와 함께 SBS의 수석코치로 부임해서 팀이 KT&G로 넘어간 후에도 계속 그 자리를 지켰다.
2004-2005 시즌 단테 존스 신드롬을 함께하면서 코치로 성적을 내게 된다.
하지만, 2005-2006 시즌 6강 탈락과 함께 시련을 겪더니 2006-2007 시즌 1라운드를 마치고 김동광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자진 사퇴하자 감독 대행을 맡게 된다. 잠시 팀을 잘 이끌기도 했다. 하지만, 2006-2007 시즌 후반기에 신임 감독으로 유도훈 감독이 임명되면서 다시 KT&G 수석코치직으로 돌아가 남은 시즌을 치른 후, 결국 팀을 떠났다.[2]

3.2. 오리온스 수석코치-감독대행-감독


KT&G 카이츠 수석코치에서 사퇴 이후 얼마되지 않은 시점에서 새 도전에 나서게 된다.
대구 오리온스로 떠나게 된다. 같은 대학 대선배이자 김진 감독이 11년만에 떠나게 되면서 후임으로 역시나 같은 대학 대선배이자 슛도사이자 신사수로 불렸던 이충희 감독이 부임하면서 수석코치직으로 KT&G 카이츠 사퇴 이후 5개월만에 복귀하게 된다. 김진 감독은 김지홍 수석코치를 같이 데리고 가면서 서울 SK 나이츠로 이적했다.
하지만, 극심한 성적부진으로 인해 또 다시 원치 않은 자리를 맡게 된다.
2007-2008 시즌 대구 오리온스에서 이충희 감독이 4승 22패로 부진한 성적을 내고 자진 사퇴하자 그 자리를 물려받아 감독대행으로 남은 시즌을 치렀으나 그 시즌 오리온스는 98-99 시즌 32연패에 버금가는 '''12승 42패'''라는 굴욕이자 처참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image]
이후 대구 오리온스의 5대 감독으로 정식으로 승진해서 2008-2009 시즌을 맞이하게 되었다. 한국 농구 역사상 처음으로 농구인 2세 감독이 탄생한 것.
수석코치는 대학동문인 정한신 전 TG 삼보 코치가 맡게 되었으며 오리온스 창단 멤버였던 정재훈 코치와 함께 맡게 된다.
외국인 또한 김승현김병철 그리고 오용준을 살릴 수 있는 가넷 톰슨과 크리스 다니엘스를 영입하며 최소 봄농구를 노릴 수 있는 전력을 만들었다.
하지만, 가넷 톰슨의 부상과 부진 그리고 계속되는 김승현의 부상으로 인한 골골 모드에 김병철의 극심한 노쇠화로 인해 또 성적부진의 아픔을 겪게 된다.
참고로, KBL 대표명장인 김진 감독이 떠난 이후의 당시 오리온스는 그야말로 역대급 굴욕이었다. 심용섭 단장의 프런트가 개판을 치고, 김승현김병철 그리고 오용준 이외의 나머지 선수는 없는 한 마디로 막장 중의 막장. 여기에 혼혈 드래프트에서 1순위냐, 꽝이냐를 뽑는 확률 1/2의 상황에서 꽝을 뽑으면서 혼혈 드래프트 1순위도 놓치는 불운까지 겹쳤다. 이 때 김상식 감독이 1순위를 놓치고, 1순위를 가져간 사람은 끝 번호라서 뽑기 자체를 안 한 전주 KCC 이지스허재 감독이다. 이 때 박장대소하는 허재와 머리를 감싸쥐고 좌절하는 김상식이 찍힌 사진이 꽤 유명하다(...). 허재 감독 문서에도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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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거...'''
2008-2009 시즌 초반까지는 그래도 나쁘지 않은 성적을 내면서 플레이오프 진출도 어렵지 않은 듯 했다.
하지만, 선발한 크리스 다니엘스 대신 레지 오코사를 동부 프로미로 이적시키면서 경기력이 떨어지게 되었다.
후반기부터 갑자기 김승현의 부상과 외국인 문제로 인해 DTD를 시전하더니 결국 김상식 감독도 갑작스런 성적 부진에 팬들에게 '''"몰상식"'''으로 불리며 시즌 도중 오래 버티지 못하고 자진 사퇴하면서 감독 생활을 허무하게 마감했다. 그리고 시즌 잔여 경기는 오리온스의 창단 멤버였던 2군 코치인 정재훈 코치가 감독대행으로 지휘를 하게 되었으며 9위라는 부진한 성적으로 마감하게 된다.
핵심은 이충희 감독 시절부터 이어진 김승현의 부상이 결정적이었고 김병철 또한 노쇠화로 예전의 폭발력이 아니었으며 오용준과 이동준은 기복을 드러낸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 후, 한동안 야인으로 지내게 되며 대학 대선배이자 KBL 대표명장으로 서울 SK 나이츠에서 자진사퇴 뒤 견문을 넓히고 있는 대구 동양 오리온스의 신화와도 같았던 명장인 김진 감독에 이어 NBA LA 레이커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게 된다.

3.3. 삼성 썬더스 수석코치-감독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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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기업은행 시절 스승이던 김동광 감독이 서울 삼성 썬더스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2012년부터 서울 삼성 썬더스의 수석코치에 임명되었다.
12-13 시즌 60대의 김동광 감독을 직접 잘 보좌하면서 슈터가 없는 팀의 현주소에도 불구하고 무난하게 봄농구를 올리면서 잠시나마 잃어버렸던 지도력을 회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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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김동광 감독이 2014년 1월 27일 부로 성적부진의 이유로 자진 사퇴하자 감독 대행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시즌 이후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수석 출신도 아니었고 더 밑의 코치였던 이상민이 감독을 맡게 되면서 감독대행직을 내려놓게 되었다.

3.4.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감독대행-감독


2015년 창사 아시아선수권 남자 국가대표 농구팀에서 김동광 감독을 다시한번 직접 보좌하여 수석코치로 활동하였다.
이후 허재 감독을 보좌하면서 국가대표팀 코치로 활동하다가, 허재가 감독직에서 물러남에 따라 감독직을 대행하게 되었다.
자신을 보좌할 코치로는 스타 출신 슈터였던 조상현 전 오리온스 코치를 불러들이면서 코든 스테이트를 꿈꾸게 했다.
당장 인맥농구 논란 등으로 대표팀 분위기가 어수선해진 상태인데다가 농구 월드컵 예선이 코앞인 상황이었는데, 난적 요르단과의 원정경기에서 86-75로 쾌승, 그 이후 당장 3일 후에 있는 시리아와의 홈경기에서 홈 이점따위 누릴 수 없는 상황에서 103-66 대승을 거두면서 팀 분위기를 잘 수습했다는 평. 경기력이나 작전능력도 준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저 공로를 인정받은 까닭인지 2018년 10월 2일 공식적으로 감독대행을 떼고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그 이후에도 난적 레바논과 요르단의 홈 경기에서 2연승을 거두며 2019년 농구월드컵 출전을 조기에 확정짓는 데 성공했다. 이후에도 새 얼굴 테스트 겸으로 간 마지막 시리아와 레바논 원정 2연전도 승리로 마치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특히 주전들 체력안배를 통한 후반 반격이 경기 때마다 주효했다는 평.
이후 임기만료로 잠시 물러나있다가 새로운 감독 공모에 단독 지원해서 다시 선임되었다. 이후 2019 FIBA 농구 월드컵 본선 조별 예선 B조 3경기에서 모두 패배하였는데 러시아전에서는 선수들의 분전으로 박수 받았지만, 나이지리아전은 무기력한 경기력으로 일관하며 42점차 대패를 당해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결국 전패로 순위결정전으로 밀려났고 순위결정전에서는 홈팀 중국을 상대로 접전 끝에 아쉽게 패했지만, 코트디부아르에게는 9점차로 승리하며 25년만에 농구 월드컵 본선대회 승리를 이끌었다. 자세한 내용은 김상식호/2019년 참조.
하지만, 2021년 01월에는 2월에 열리는 FIBA 아시아컵 대표팀 관련 차출문제로 인해 대표팀 감독직에서 제한된 조건에서 차출이라는 선수선발 문제로 인해 KBL 10개 구단과 신뢰를 잃게 되더니 자진사퇴를 밝혔다. 본인은 신뢰문제가 깨지면서 사퇴로 책임을 진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모교 선배로 오리온 사령탑인 강을준 감독이 이승현 선수 관련 차출로 인해 디스를 당하고 말았다. 또 하나의 피해자는 오리온의 전 감독이었던 추일승 경기력향상위원장이었다.
심지어 오리온 출신 감독들간의 집안싸움이라는 오명의 피해자 중 하나가 되었다.
농구팬들은 강을준 감독이 무조건 잘못했음에 비판과 분통을 터트렸고 오히려 추일승 경기력향상위원장과 김상식 감독을 위로했다.
이후 강을준 감독은 김상식 대표팀 감독에게 미안함을 고백했으나 버스간뒤에 손든 꼴이었다.

4. 여담


부친 김영기 전 KBL 총재가 이민형의 부친 이경우 선수와 국가대표 시절부터 친구였다. 이경우 선수가 37세의 젊은 나이에 뇌졸중으로 사망하면서, 김영기가 이민형의 후견인이 되어 진학 등을 책임졌고, 3살 차이인 이민형과 김상식은 형제나 다름 없는 사이가 되었다. 이후 이민형과 김상식은 나란히 고려대-기업은행에 입단하면서 1998년 김상식이 안양 SBS로 현금 트레이드될 때까지 선수생활을 함께 했다. 대학 동문이자 동기인 서동철 감독과는 친구로도 알려졌다.

5. 관련 문서


[1] 2월 개최되는 FIBA 아시아컵 예선 윈도우 3를 끝으로 물러날 예정이다. 사실 계약 기간이 3월 21일까지기 때문에 계약 연장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물러날 가능성이 크다.[2] 이후가 바로 오리온스의 레전드인 김병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