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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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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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향'''
강원도 강릉시
'''시조'''
김주원(金周元)
'''중시조'''
김종기(金宗基), 김헌창(金憲昌), 김신(金身)
'''집성촌'''
강원도 삼척시, 강릉시, 철원군
경기도 양주시, 김포시, 용인시
충청남도 당진시, 천안시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전라북도 익산시
황해도 장단군, 안악군
함경북도 부령군
평안북도 철산군
'''인구'''
179,593명(2015년)
1. 개요
2. 항렬표
3. 인물
3.1. 전근대
3.2. 36세
3.3. 37세
3.4. 38세
3.5. 39세
3.6. 40세
3.7. 항렬 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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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강원도 강릉시를 본관으로 하는 경주 김씨를 비롯한 신라계 김씨 중 하나인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는 김주원으로 족보를 보면 백제를 멸망시킨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5세손, 따라서 김알지계에 해당하는 연원이 오래된 신라계 김씨다. 내물왕계에 해당하며 현대 신라계 김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순왕을 근간으로 한 경주 김씨 및 그 분파의 여타 현대 신라계 김씨와는 달리 신라 중대에 왕통을 이었던 '''무열왕 직계'''에 해당한다.[1] 다만 족보상으로 김주원은 무열왕의 삼남인 김문왕의 후손으로 되어 있고 더 신빙성 있는 사료상으로는 김인문의 후손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강릉 김씨는 문무왕의 후손은 아니다.
김주원은 777년에 시중이 됐고, 785년 선덕왕이 사망한 뒤 아들이 없어 여러 진골 귀족들에 의해 김주원이 왕으로 추대됐으나 정작 본인은 큰 비 때문에 수도 금성 북쪽의 알천이 범람해 건너지 못하여 화백회의에 참석하지 못하였고, 그 사이 왕위는 내물왕계인 상대등 김경신에게 돌아가게 되는데 그가 바로 원성왕이다. 그 후 원성왕은 김주원을 달래기 위해 명주(현 강릉시) 일대를 봉토로 주었고 후손들이 강릉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김주원의 윗대 세계 및 그가 받았다는 명주군왕의 작위는 사료와 교차 검증이 안돼 불분명한데 이에 대해 자세한 건 김주원 항목 참조.
김주원이 명주로 물러났음에도 그의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 아들들은 금성의 정계에 계속 남았다. 김주원의 아들로는 김종기(金宗基), 김헌창(金憲昌), 김신(金身)이 있었다.
첫째 김종기는 시중을 지내는 등 고위직을 역임했고, 김종기의 아들인 김정여(金貞茹) 또한 명원공(溟原公)으로 책봉되는 등 예우를 받았다. 또 다른 아들인 김장여(金璋如)는 시중을 역임하였다. 김정여의 아들인 김양(金陽) 또한 시중을 역임했으며 신무왕 옹립에 공을 세우고 문성왕 대에 권력을 떨치는 등 권신으로 유명했다. 김장여의 아들이자 김양의 사촌인 김흔(金昕)은 민애왕 대 대장군을 역임했으나 신무왕 옹립 때 사촌 김양과 대립하다 패배하고 정계에서 은퇴하여 소백산으로 들어가 승려들과 함께 지냈다고 한다. 이후 김종기 계통은 후손이 끊긴다.
둘째 김헌창은 김헌창의 난을 일으켰으나 진압당했고 그 아들 김범문(金梵文)의 난이 연이어 일어났지만 실패하면서 멸족당했고 무열왕계는 6두품으로 강등되었다(족강일등).
셋째 김신의 아들은 김자사(金紫絲)였고 그 아들은 김동정(金東靖)이었으며 또 그 아들로 김영진(金英珍), 김영길(金英吉), 김영견(金英堅), 김영환(金英喚)의 4형제가 있었는데 이중 김영환을 제외한 3명의 후손이 강릉 김씨를 이어가게 되었다.
거의 강릉시, 동해시, 삼척시강원도 영동 지방, 충청남도 천안시, 당진시에 많이 분포한다. 북한에도 집성촌이 많다. 서울에도 집성촌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경복궁 옆에 있는 팔판동이다. 강릉 김씨 집안에서 판서가 8명이 나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려에 이어 조선에서도 중앙권력과 가까웠다는 것을 알 수있다.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에 강릉 김씨였던 김시습이 반기를 들자, 멸족을 면하기 위해 한성(서울)에서 동래(부산)로 피신한 김시습의 후손들 또한 부산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 훗날 김시습이 생육신으로 추앙받으면서 복권이 이루어졌지만, 한성으로 돌아가지 않고 동래에 계속 머물렀던 것. 그 후손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되고, 현재 동래구에 있는 충렬사에 배향되어 있다. 본관인 강릉이나 강원도가 아닌 서울과 부산에 강릉김씨가 많은 이유다.
지리적인 이유로 강원도, 경기도, 경북까지는 제법 많은 수가 있지만 경남에서는 희성에 속한다. 강릉시에서 김씨라고 하면 약 80%의 확률로 강릉 김씨이다. 그러니까 80%의 확률로 무열왕의 자손이다.
후삼국시대 명주(현 강원도 강릉시)의 호족 왕순식이 명주를 근거지로 삼았던 정황상 김주원의 후손이었을 것이며 따라서 강릉 김씨였을 것이란 추측이 거의 정설처럼 퍼져 있는데 삼국사기고려사를 비롯한 정식 사서에서는 이에 대한 언급이나 기록이 전혀 없다. 원래는 그냥 이름인 순식으로만 등장하며 후에 왕건에게 신뢰의 증표로 개성 왕씨를 하사받아(사성정책) 왕순식이 되었다고만 되어 있다. 그의 가족인 아버지 허명, 아들 장명의 경우도 김씨로 등장한 기록이 없다. 따라서 왕순식과 김주원의 관계는 엄밀히는 불명.

2. 항렬표


홀수 세손은 항렬자를 이름의 앞에 쓰고, 짝수 세손은 항렬자를 이름의 뒤에 쓴다.
'''대수'''
'''항렬자'''
'''지지'''

'''대수'''
'''항렬자'''
'''십간'''

'''대수'''
'''항렬자'''
'''오행'''
33세
학(學)

45세
만(萬)

55세
종(鍾)

34세
병(秉)

46세
구(九)

56세
수(洙)

35세
연(演)

47세
명(命)

57세
상(相)

36세
경(卿)

48세
녕(寧)

58세
용(容)

37세
진(振)

49세
무(茂)

59세
재(在)

38세
기(起)

50세
기(紀)

60세
호(鎬)

39세
남(南)

51세
유(庾)

61세
순(淳)

40세
래(來)

52세
재(宰)

62세
식(植)

41세
동(東)

53세
성(聖)

63세
환(煥)

42세
유(猷)

54세
규(揆)

64세
희(喜)

43세
성(成)

44세
현(玄)


3. 인물



3.1. 전근대



3.2. 36세


  • 김경문 - 야구선수, 감독
  • 이상 - 본명 김해경, 소설가, 시인

3.3. 37세



3.4. 38세



3.5. 39세



3.6. 40세



3.7. 항렬 불명



[1] 경주 김씨 및 그 분파는 모두 경순왕계인데다 강릉 김씨는 그보다 훨씬 이전에 분가했으므로 기원이 같은 별개의 성씨라 할 수 있다. 프랑스 왕국카페 왕조-발루아 왕조-부르봉 왕조의 경우도 모두 기원은 같지만 먼 친척 관계인 별개의 가문으로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