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유
1. 절재 김종서의 셋째아들
金承琉
사서에는 그 행적에 관한 기록이 전해지지 않으나 순천 김씨의 족보에는 승정원 주서를 지냈으며 여흥 민씨와 혼인하여 아들 김효달(金孝達)을 두었다고 전해진다.
김종서의 다른 아들들에 관해서는 사서에 계유정난 이후에 처벌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지지만 김승유에 관해서는 전혀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따라서 김승유는 계유정난 이전에 이미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2. 대한민국의 금융인
대한민국의 금융인. 학력에서 보면 알겠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학 같은 과 동기다. 심지어 제17대 대통령 선거 당시에는 고려대학교 교우회에서도 경영대 교우회 회장을 맡아서 이명박을 확실히 밀어준 인물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명박 정부 당시 승승장구하며 금융권 4대 천왕으로 불리던 인물[1] 중 한 명이다.
고려대 졸업 후 한일은행에 입행하면서 금융인 생활을 시작했고 1971년 하나은행의 전신인 단자회사 한국투자금융의 원년 멤버로 합류하게 된다. 이후 한국투자금융에서 증권부장, 영업부장, 상무, 전무, 부사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고 1991년 한국투자금융을 은행으로 출범시키는 주역 중 1명이[2] 된다. 1997년 하나은행의 제2대 은행장이 됐는데 그가 은행장이었던 시절 충청은행, 보람은행, 서울은행을 잇달아 집어삼키면서 초대형 은행으로 성장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2005년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라 하나금융지주가 출범하면서 초대 회장이 됐고 2010년 외환은행까지 인수하면서 하나금융그룹을 국내 4대 금융그룹으로 성장시키는 성과를 냈다.[3]
2012년 김정태 하나은행장에게 하나금융지주 회장직을 물려주고 하나고등학교의 재단인 학교법인 하나학원의 이사장을 맡는 등 2선으로 후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