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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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長涉
1909년 8월 7일 ~ 1993년 12월 21일 (향년 85세)
대한민국의 전 법조인, 관료, 정치인이다.
김장섭은 1909년 8월 7일 경상북도 흥해군 동부면(현 포항시 북구 흥해읍 중성리)[1] 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일본에 유학하여 메이지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인 1940년 조선총독부의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여 판사를 역임하였다.
8.15 광복 이후 미군정기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검사로 근무하였다. 대검찰청 검사를 거쳐 변호사를 개업했다.
1958년부터 1959년까지 내무부 차관을, 1959년 농림부 차관을 역임하였다. 1960년 1월 김익노의 당선 무효로 치러진 제4대 국회의원 선거 재보궐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상북도 영일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4.19 혁명 이후 치러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참의원(경상북도)에 출마하였다. 그러나 1961년 초 3.15 부정선거를 이유로 반민주주의자로 결정되었다. 이에 공민권 제한 대상자가 되어 국회의원직이 상실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경상북도 포항시-영일군-울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69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사법 부문에 선정되었다.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金長涉
1909년 8월 7일 ~ 1993년 12월 21일 (향년 85세)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법조인, 관료, 정치인이다.
2. 생애
김장섭은 1909년 8월 7일 경상북도 흥해군 동부면(현 포항시 북구 흥해읍 중성리)[1] 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일본에 유학하여 메이지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인 1940년 조선총독부의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여 판사를 역임하였다.
8.15 광복 이후 미군정기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검사로 근무하였다. 대검찰청 검사를 거쳐 변호사를 개업했다.
1958년부터 1959년까지 내무부 차관을, 1959년 농림부 차관을 역임하였다. 1960년 1월 김익노의 당선 무효로 치러진 제4대 국회의원 선거 재보궐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상북도 영일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4.19 혁명 이후 치러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참의원(경상북도)에 출마하였다. 그러나 1961년 초 3.15 부정선거를 이유로 반민주주의자로 결정되었다. 이에 공민권 제한 대상자가 되어 국회의원직이 상실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경상북도 포항시-영일군-울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69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사법 부문에 선정되었다.
3.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1] 포항시사 제 3권 제 9편 인물 제2장 인물 5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