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호(1935)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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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6대 전반기 국회부의장
김종호
金宗鎬 | Kim Chong-hoh
'''
<colbgcolor=#580009><colcolor=#CFA547> '''출생'''
1935년 11월 30일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사망'''
2018년 3월 3일 (향년 82세)
'''본관'''
경주 김씨[1]
'''호'''
동헌(東軒)
'''재임기간'''
제19대 충청북도지사
1980년 1월 19일 ~ 1980년 9월 8일
제33대 내무부 차관
1980년 9월 9일 ~ 1981년 3월 6일
제44대 내무부 장관
1986년 8월 26일 ~ 1987년 1월 21일
제15대 정무제1장관
1992년 7월 22일 ~ 1992년 10월 9일
제16대 전반기 국회부의장
2000년 6월 5일 ~ 2002년 5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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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580009><colcolor=#CFA547> '''배우자'''
한혜원
'''자녀'''
아들 김연욱, 김연식, 김연진
딸 김정현, 김정수
''' 학력 '''
청주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 학사)
'''종교'''
가톨릭 (세례명: 베드로)
''' 의원 선수 '''
'''6'''
''' 의원 대수 '''
'''11''', '''12''', '''13''', '''14''', '''15''', '''16'''
''' 경력 '''
제19대 충청북도지사
제33대 내무부 차관
제44대 내무부 장관
제15대 정무제1장관
제13~16대 국회의원
제16대 전반기 국회부의장

1. 개요
2. 생애
3. 선거이력
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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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제44대 내무부 장관, 제16대 전반기 국회부의장.

2. 생애


1935년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에서 태어났다. 청주고등학교(28회),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이후 주로 내무부(현 행정자치부)에서 관료로 근무하였다. 1980년 1월부터 9월까지 충청북도지사를 역임하였다. 같은 해 9월부터 1981년 3월까지 내무부 차관을 역임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83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내무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충청북도 진천군-음성군-괴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한국국민당 김완태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같은 해 대한민국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86년 내무부장관에 임명되었으나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따른 민심 수습책으로 경질되었다.
내무부 장관으로 민주화운동세력, 학생운동권에 대한 강경대응을 지시해서 박종철 사건을 촉발시켰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경찰관계자들의 증언으론 김종호 장관이 '‘대통령 임기가 1년밖에 안 남았다. 정치일정이 있으니까 3월 개학 때까지 모든 사건을 끝내라’'는 지시를 내렸고, 일선 경찰들은 장관이 제시한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 즉 개학전까지 그럴싸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무차별적인 연행과 무리한 강압수사(=고문)을 했다는 것이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충청북도 괴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1년 민주자유당 원내총무, 대한민국 국회 운영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93년까지 정무제1장관[2]을 역임하였다. 1993년부터 1994년까지 민주자유당 정책위의장을 역임하였다. 1995년부터 1996년까지 다시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정책위의장을 역임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98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정보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98년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다. 2000년 자유민주연합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02년까지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때는 '''탄핵 사유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탄핵소추안에 반대하였고[3] 같은 해 치러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불출마 선언을 하였으며 자민련을 탈당하면서 국회의원직도 내려놓았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친박연대 후보로 충청북도 진천군-음성군-괴산군-증평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통합민주당 김종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18년 3월 3일 오후 별세했다. 향년 83세.

3.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81
제11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국회의원)

'''5,776,624표(35.6%)'''
'''당선(12번)'''
'''초선'''
1985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충청북도 진천군-음성군-괴산군)
'''95,781표(67.0%)'''
'''당선(2위)'''
'''재선'''[4]
1988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충청북도 괴산군)
'''37,830표(68.43%)'''
'''당선(1위)'''
'''3선'''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충청북도 괴산군)

'''29,897표(63.85%)'''
'''4선'''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충청북도 괴산군)

'''22,584표(53.58%)'''
'''5선'''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국회의원)

'''1,859,331표(9.8%)'''
'''당선(3번)'''
'''6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충청북도 진천군-음성군-괴산군-증평군)

21,015표(25.25%)
낙선(3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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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본래 김용채 의원이 임명되었으나 대법원에서 재검표를 실시하면서 선거결과가 번복되는 희대의 사건이 터졌다. 국회 및 여당과 청와대의 관계를 조율하는 업무를 맡는 정무1장관 특성상 김용채 장관은 의원직 상실과 더불어 장관직까지 50일만에 사퇴해야 했다.[3] 이낙연과 함께 탄핵안에 반대한 2명 중 1명이다. 이낙연은 노무현과 매우 가까운 사이라 당연히 탄핵에 반대할 만했지만 김종호는 매우 의외인데 이는 단순히 자민련 의원이라서 그런게 아니라 출신 자체가 민주화 운동을 탄압한 민정당 계열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찬성을 하면 했지 도저히 반대할 성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4] 한국국민당 김완태 후보와 동반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