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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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민주당계 정당에서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존속한 계파. 비노성향의 계파로 볼 수 있다.
2. 상세
김한길과 행보를 같이 한 민주당계 정당 내의 보수성향 인사들을 일컫는 표현으로 본래는 친노계의 파생계파였다. 당시 당 내에서는 '바른정치모임'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하지만 참여정부가 레임덕에 접어들고 당시 당 원내대표였던 김한길이 비노로 전향하면서 당 내에서 열린우리당 내에서 보수성향이었던 인물들이 김한길을 구심점으로 뭉치면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2007년 2월 열린우리당을 집단으로 탈당하여 중도개혁통합신당추진모임(24석)이란 교섭단체를 만들었다. 김한길계는 원래 23석이었으나 당시 국민중심당 소속인 신국환 의원이 이 흐름에 동참하여 24석이 되었다.
이들은 무소속이었지만 중도개혁통합신당추진모임이라는 원내 교섭단체를 만들었으며 중도개혁통합신당으로 발전하였다. 이후 새천년민주당의 잔당인 민주당과 통합하여 중도통합민주당을 차렸으나 다시 김한길계 + 호남계 의원들이 대통합민주신당으로 가면서 분리되었다.
이후 정동영을 17대 대선 시기에 지지했으며 강력한 비노계로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17대 대선이 폭망하고 김한길의 정계은퇴로 인해 계파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지고 만다. 게다가 18대 총선을 거치며 대부분이 낙선하면서 잊혀진다.
이후 19대 총선을 앞두고 김한길이 정계복귀를 하면서 부활했으며 18대 대선에서 문재인이 패배하자 비노계 세력을 결집하여 대표적인 비노계로 부활하게 된다.[2]
하지만 연이은 재보궐선거 패배로 인해 영항력은 약해졌고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안철수 계파를 끌여들여 새정치민주연합을 차렸다. 그러나 지방선거는 무승부였고 재보궐선거를 패배하면서 망했어요.
이후 문재인이 새 당대표로 선출되고 친노계가 주류가 되자 항거하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국민의당 분당에 동참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일부는 더불어민주당에 잔류했다. 그리고 김한길은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게 된다.
이후 김한길의 암투병과 국민의당 분열, 바른미래당 분열로 인해 사실상 지리멸렬해지고 만다. 게다가 민주당 잔류파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로 예전처럼 비문계로서 나서기 보다는 당 지도부나 정부의 이념에 고분고분 따르며 심지어 박영선은 장관으로 입각까지 했다. 이렇게 김한길계가 해체되고 뿔뿔이 흩어짐과 동시에 일부 김한길계는 주승용을 중심으로 뭉쳐 주승용계로 개편, 실실적으로 김한길계를 계승했다. 그러나 이 역시 본진 민생당이 전멸함과 동시에 원외정당으로 추락하며 해체되게 되면서 김한길계는 그 후신까지 깔끔하게 사라지게 되었다.
3. 인물
- 김한길
- 주승용
- 김관영
- 장경수
- 유필우
- 조배숙
- 이종걸
- 박영선
- 강봉균
- 김낙순
- 노현송
- 박상돈
- 변재일
- 서재관
- 양형일
- 우제창
- 우제항
- 이근식
- 조일현
- 최용규
- 민병두
- 노웅래
- 박혜자
- 이상민
- 최규성 - 민평련과 김한길계의 가교역할을 하던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