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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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3선(제17, 19, 20대) 국회의원이다.
20대 국회에서는 정무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 생애
2.1. 유년 시절
1958년 6월 10일 강원도 횡성군에서 3남 3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천주교 신자셨던 어머니를 따라 3형제의 세례명은 3대 천사에서 따 온 미카엘, 라파엘, 가브리엘로, 그는 라파엘로 세례를 받았다.
1964년 서부역 뒤편에 터를 정해 서울로 이사를 왔다. 봉래초등학교ᆞ대동중학교ᆞ경기고 시절 책읽기와 온갖 놀이, 축구/농구/배구등에 묻혀 살았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1년에 50권~100권 정도의 책을 읽었으며 중학교때 헤겔ᆞ칸트의 책을 읽고 독재정권을 비판했으며,고등학교때는 윤동주ᆞ박인환ᆞ라이너 마리아 릴케 등에 빠지고 강한 민족주의적 성향을 보였다.
중고시절 약현성당의 독서모임과 경기고시절 신문반 활동이 일생의 토대가 되었다. '주간 경기'는 2주일에 한번 타블로이드 4-8면으로 발행되는 신문이었다. 신문 만드는 재미에 푹 빠진 그는 당연히 저항을 키웠고, 성당에서의 독서토론도 세상을 깊고 넓게 보게 하는 시야를 키웠다.
성균관대학교에 들어간 이후 두 차례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전국조직을 결성하여 민주화 운동의 선두에 서서 헤쳐 나가다 치안본부 대공분실ᆞ안전기획부 등에 끌려가서 고초를 겪고 두번 투옥되면서 4년 가까이 복역했다. 병역은 바로 이 수형 전과로 인해 면제받게 되었다. 1년 6개월 이상의 실형을 살게 되면 제2국민역으로 편입되기 때문이다. 윤상원 열사가 중앙위원으로 있던 전민노련ᆞ전민학련(학림사건)은 5.18 이후 최초로 일련의 시위를 통해 정권을 폭로하고 규탄했으며 그 후 노동운동에 투신해 피아노 공장ᆞ변압기 공장 등에서 노동조합 조직활동을 했다. 민주화 공로를 인정받아 훗날에 5.18민주화 유공자로 인정받았다. 학림사건은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으며 사법부가 과거의 잘못된 판결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2.2. 기자 생활
경기고등학교 재학 시절 ‘주간경기’라는 타블로이드 신문을 만들면서 글쓰기에 재미를 붙였으며, 이는 향후 기자생활의 원동력이 되었다. 성균관대학교 무역학과 졸업 후 월간 잡지사에서 발굴기사 등을 다루는 것으로 기자생활의 첫 발을 내딛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만화대중지인 '만화광장' 창간멤버이다.(그래서 만화계 출신 최초의 국회의원으로도 불린다) 이 후 일간지 ‘문화일보’에서 정치부ᆞ과학부ᆞ국제부에서 기자로서 취재활동을 했고 워싱턴 특파원, 정치부장, 야당반장, 국회반장을 역임하였다.
우리나라 최초로 시민들이 국회의원 의정활동을 모니터하는 기획을 시도했다. '국정감사를 감사한다'는 기획은 당시 국회의원들의 거부감으로 방청 자체를 불허하는 사건이 발생했으나, 이를 계기로 상임위원회가 시민들에게 개방되었고 오늘날 시민단체들의 일상적인 모니터가 가능하게되었다.
1996년 인터넷이 막 도입되던 시절에는 세상의 변화에 앞서가겠다며 과학부기자를 자원했고, 미디어융합을 공부하겠다며 미국 시라큐스 대학교 뉴하우스(언론대학원)에 연수를 다녀왔으며 이 때 배운 사진실력은 프로급이다.
1999년 재보궐선거에서는 후보들에 대한 시민단체의 감시활동 강화(24시간 시민단체의 후보 캠프 감시 허용, 회계장부의 공개)를 요구하여 후보들에게 동의를 얻어냈으며, 이는 훗날 선거법을 개정하고 선거문화를 개선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기자만큼 매일 매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직업은 없다. 기자가 깨어 있어야만 세상이 변화하고 발전한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활동하면서 ‘국정원 정치개입 문건 확인’, ‘국회 노동위 돈봉투 사건’ 같은 수많은 특종을 잡아 터뜨리며 다수의 기자상을 수상했다.
워싱턴 특파원시절에는 교육문제에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한국계 미국인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한 고교졸업자들의 교육일기를 '완벽한 학생들'이라는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정치부장, 야당반장, 국회반장시절에는 특종뿐만 아니라 의제설정 등으로 이슈를 주도하여 진보ᆞ중도ᆞ보수 언론을 가리지 않고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2.3. 정치인으로서의 활동
이러한 전략적 능력을 인정받아 2004년 열린우리당 창당시 영입되었고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총선기획단 단장으로 활약하면서 총선을 성공적으로 이끈 후 제17대 국회에 초선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등원하면서 정치인으로서의 첫 발을 내디뎠다. 17대 국회에서 본회의 100프로 출석등 성실한 의정활동과 함께 아시아문화중심도시지원법 문화예술교육지원법 평생교육법 제정을 통해 국민의 문화향유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등의 입법활동을 활발히 하였다.
초선의원으로는 보기 드물게 전략기획본부장, 홍보기획본부장, 열린정책연구원 수석부원장,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 등 당내 핵심 요직을 거치며 정책통, 전략가, 논객이라는 별칭을 얻었고 지금도 이 수식어를 달고 다닌다.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당시 야권의 불모지였던 동대문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나 당시 현역인 홍준표 의원에게 지면서 낙선했고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때 당시 여당 대표에서 물러난 직후의 '''홍준표 후보와의 리턴매치에서 승리'''해 최대 이변을 낳았다. 당시 여당 후보였던 홍준표 후보는 낙선이 확실시 된 후 자신의 트위터에 “30년 공직생활을 마감합니다”라는 글을 남기며 '''정계은퇴 선언'''을 할 정도였다.[3] 소선거구제가 부활한 1988년 이후 동대문을에서 최초의 민주당계열 국회의원으로 원내에 진출하면서 여러 족적을 남겼다. 2012년 대선 직후에는 경제민주화ᆞ복지확대등 대선 당시 양당의 약속 중 공통 사항을 이행하자고 제안해 경제민주화의 입법적 물꼬를 텄다.
일감몰아주기 금지법, 편의점 및 프랜차이즈 불공정 해소법 등 경제민주화를 제도개선에 앞장섰으며, 상가권리금을 최초로 법제화한 바 있다. 차명거래를 금지하는 금융실명제법 개정안을 21년만에 통과시켰다. 2014년에는 을을 위한 정당이라는 전략지도를 제시했고 이를위한 특별위원회 명칭으로 을지로위원회를 제안해 오늘날 민주당의 대표 브랜드가 되게하는데 일조했다. 민주정책연구원 원장으로 국내 최초로 정책엑스포를 주도하였으며, 유능한 경제정당ᆞ든든한 안보정당이라는 진로를 제시했다. 또 이 때 펴낸 '새로운 진보정치' '수권정당의 길'을 통해 정체성에 기반한 확장주의와 집권 로드맵을 담아 당이 어려운 사정임에도 향후 당이 나아가야할 길을 제시했다는 호평을 받는다.
2016년 총선에서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선정한 경제민주화, 양극화해소 디딤돌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제 20대 총선에서도 빼어난 의정활동과 지역활동을 바탕으로 상대후보를 큰 차로 압승하여 야당출신으로 동대문을에서 최초로 3선 국회의원 고지에 올랐다. 국회 정무위에서 계속 활동하며 보훈업무지원ᆞ국민권익신장ᆞ공정거래ᆞ금융정의를 위한 노력을 하고있다.
정치노선은 정체성에 기반한 확장주의, 사회경제노선은 진보적이되 대중의 신뢰를 중시하는 정치스타일이며,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양심을 강조하며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저격수를 자처하고 있다. 아무래도 홍 대표와 수 차례 대결해 그를 잘 알고 있으니 공격수로는 최적임자인 셈이다.
최근(2019.1.19) TV조선 강적들 프로그램에 출연해 '나 정치하기 싫다'라는 언급을 해 논란이 되고 있다. 3선 의원으로서 초선때 보였던 긴장과 패기가 사라졌다는 평가다. 또한 '현실 정치에 대해선 제가 관심이 좀 떨어졌다'는 언급으로 지역구 주민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결국 21대 총선을 앞두고 2020년 3월 5일에 컷오프당했다. 후술한 성추행 논란이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이며, 컷오프를 당하자 이해할 수 없다며 재심을 청구하였다. 그러나 결국 3월 9일에 재심이 기각되어 동대문 을은 청년전략지역으로 지정되어 김현지 현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코로나19대책추진단 부단장과 장경태 현 전국청년위원장이 경선을 치르게 되었다. 이에 민병두는 일주일 동안 지지자들과 지역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3월 15일 일요일에 무소속 출마를 할 것인지, 불출마할 것인지 최종 입장을 표명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였다. 자신이 출마하지 않을 경우 미래통합당에게 지역구 의석을 넘겨주게 될 것이며, 만약 선거운동 결과 자신이 낙선될 것이라고 판단할 경우 후보직을 사퇴할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블로그[4] 그런데, 첫 여론조사에서 장경태, 이혜훈에게 밀리는 것으로 나와서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 특히나 장경태와 이혜훈이 접전으로 나와서 여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민병두가 이번에 양보하라는 의견이 많이 나오고 있다[5] .
하지만 앞서 약속했던 자신의 낙선 예상 시 후보직 사퇴를 사실상 번복하는 듯 했으나, 4월 9일 결국 약속을 지키겠다며 장경태 후보 지지를 선언 후 사퇴했다.#[6] 결국 장경태 후보가 승리해서 지역구를 지켰으니 끝은 좋았다. 본인은 일단 당장 복당[7] 은 면목이 없어서 안 한다고 했으나, 정부 공기업 또는 공공기관에서 적절한 자리를 맡게 될지도 모른다[8] .
2020년 12월 낙하산으로 (사)보험연수원장[9] 으로 취임하였다.
3. 논란
3.1. 성추행 논란
안희정, 정봉주 등 정치인의 미투 폭로가 나오던 2018년 3월 10일, 탐사보도언론 뉴스타파에서 미투 폭로 기사가 나왔다. #
해당 보도가 나가고 약 1시간 30분 후, 의원직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하였다.#. 민 의원은 성추행은 사실이 아니지만 “정치를 하면서 한 인간으로서 제 자신에게 항상 엄격했다. 제가 모르는 자그마한 잘못이라도 있다면 항상 의원직을 내려놓을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퇴 선언 이후, 민병두의 아내 목혜정 역시 의원직 사퇴에 동의한다고 밝히면서 남편들 두둔했다. #
이후 민 의원은 3월 12일부로 국회의장실에 사퇴서를 제출하였다. 임시 회기이기 때문에 국회의장이 교섭단체 간의 합의후에 사퇴여부를 본회의에 넘기게 된다. 정세균 국회의장 측에서 "비회기 중에도 의장이 독단으로 사퇴서를 수리하지는 않는다"며 "회기 중에도 의원직 사퇴는 해당 교섭단체 및 나머지 교섭단체와 협의하는 게 관례"라고 밝힌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다. 안규백 최고위원은 지역구 의원으로서 무책임한 행동이라며 민 의원에게 의원직 사퇴 철회를 요청하였다.#
당시에도 민병두 의원의 사퇴가 수리될 지에 대해선 가능성이 없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국회법상 회기중인 경우에는 본회의 표결로 처리해야 한다. 그리고 회기가 아닐 때는 의장 혼자 사표를 수리할 수 있다. 하지만 국회의장이 국회의원의 사표를 수리하거나 본회의에 넘기는 경우는 보통 배덕광처럼 부패범죄에 연루되어 중형을 살 확률이 높거나, 이석기처럼 내란 모의라는 국가에 위해가 되는 경우, 김경수, 안철수, 이용섭처럼 지방선거 출마, 정치적인 이유, 그리고 특정 사항에 항의하기 위해 의원직을 내려놓는 경우를 제외하고는[10] 거의 없다.
2018년 대한민국이서 성범죄는 사실로 판명나면 살인 다음으로 악질로 취급 받는 범죄이다. 하지만, 이번 건은 당내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여론면에서도 '안희정처럼 명확하게 범죄혐의가 드러난 것도 아니고, 그 사항을 가지고 사퇴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라는 여론도 있어서 정세균 국회의장이 민병두의 사표를 수리하여 본회의에 넘길지는 미지수다. 더군다나 자칫하면 민병두 의원의 사퇴가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될 수도 있어서 더욱 미지수이다.
사직서를 제출하였기 때문에, 국회의장단이 해외순방 이후 복귀하고 나서 본회의를 소집하여 사퇴 여부를 표결로 결정해야 한다.(사직원은 본회의 개의 시 최우선 표결). 하지만 위의 문단대로 이게 실제 표결로 넘겨지기 위해서는 교섭단체 간의 합의가 필수이다.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으로 민병두 의원의 사퇴안건을 본회의에 상정할 수 있지만, 직권상정도 엄격한 요건이 있기 때문에[11] 민병두 의원의 사직서 본회의 상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2018년 4월 임시국회가 열렸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국회 본회의가 열리지 못하게 되면서 민병두 의원의 사직서는 아직 처리되지 않은 상태이다. 또한 소속당인 더불어민주당 측에서는 지방선거가 끝나기 전까지 민병두 의원의 사퇴 처리를 진행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상기되었듯이 교섭단체의 동의가 있어야 사직원이 상정이 가능한데, 상정 자체를 막아버리겠다는 것이다.
그것과는 관계 없이 현재 민병두 의원은 국회 사무실 보좌관들이나, 지역구인 동대문구 의원실에서 근무하던 보좌관들을 모두 내보냈으며, 현재 지역구인 동대문에 위치한 한 성당에서 자숙 중이라는 근황이 전해져 왔다. 정말로 정계은퇴까지 염두에 두는 것인지, 미투 운동이 잠잠해 질 때까지 자숙하다가 나중에 다시 자신이 필요해질 때를 노리는 것인지는 본인만이 알 듯.
결국 2018년 5월 4일 민 의원은 의원직 사직서를 철회했다.#.
3.2. 북미관계 잠자리에 비유 발언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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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7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로미오와 줄리엣에 각각 비유한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김정은은 손부터 잡고(핵실험중지-군사훈련중단), 키스로 가고(종전선언-연락사무소 개설·인도적 지원 재개), 그러다가 서로 잠자리(비핵화-북미수교·제재해제)를 함께 하자는 것이다"라고 북미간 쟁점 사안을 연애와 결혼에 빗대 설명하였으나, 문제는 '정절', '키스', '잠자리' 등의 낱말을 동원한 비유는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삽시간에 쏟아져 나왔는데 특히 민병두 의원은 성추행 논란으로 사퇴번복까지 나온지 1년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또다시 부적절한 논란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민병두 의원은 이날 문제의 글을 삭제한 뒤 "남북·북미관계를 쉽게 설명해달라고 해 (이런 비유를 썼더니) 이해가 쉽게 된다고 해서 (글을 올렸다)"며 "젠더 감수성에 비춰 조금 그렇다고(문제가 있다고) 해서 글은 지웠다"고 해명했다.
4. 학력
5. 경력
- 1991년 문화일보 기자
- 1999년 문화일보 워싱턴특파원
- 2003년 문화일보 정치부장
- 2005년 독립기념관 이사
- 2007년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이사
- 2007년 희망나눔책운동본부 대표
- 2008년 대구가톨릭대학교 명사초빙교수
- 5·18 민주화 운동 유공자
6. 의정활동
- 2004년 제17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열린우리당), 열린우리당 17대총선 기획단장, 국회 문화관광위원
- 2004년 열린우리당 전략기획본부장
- 2006년 대한민국 국회 교육위원, 국회 예산결산특위위원
- 2007년 열린우리당 홍보기획본부장
- 2007년 열린우리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 겸 열린정책연구원 수석부원장
-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동대문을 후보(통합민주당)
-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민주통합당, 서울 동대문구을)
- 2012년 국회 정무위원
- 2013년 민주당(2013년) 전략홍보본부장,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
- 2014년 국회 정무위원, 국회 예산결산특위위원
- 2014년 더불어민주당 민주정책연구원 원장
-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서울 동대문구을)
- 2016년 국회 정무위원
7. 입법 활동
'''17대 주요 입법활동'''
17대 주요 입법 성과는 다음과 같다.
- 정보통신기반보호법 개정 (사이버 테러 강력 대처, 중요 국가정보시설 보호)
- 문화예술교육지원법 입법 (주입식 교육이 아닌 상상력과 창의력 향상을 위해 문화예술 교육 예산 마련)
- 평생교육법 개정 (의무교육 과정을 무료로 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 마련)
- 도로교통법 개정 (통학버스 안전장치 의무화, 통학버스 운전자 교육 의무화)
- 방송법 개정 (패스트푸드 광고 무차별 방송 금지)
- 학교급식법 개정 (학교 급식시설 위생, 안전관리 기준 마련)
'''19대 주요 입법활동'''
제19대 주요 입법 성과는 다음과 같다.
- 상가권리금 법제화 (상가권리금 법제화를 통해 권리금 회수기회 보장)
- 가맹사업본부의 횡포방지법 마련 (인테리어 강요, 과도한 해지위약금, 24시 심야영업 강요 등 갑질금지)
- 자동차수리비 거품ㆍ폭리근절 입법화
- 탈세방지를 위한 금융실명제법 개정
- 중소기업을 위한 해외직판지원법 제정
- 대부이자의 최고금리를 27.9%로 인하, 불공정한 채권추심을 막기 위한 개정법 발의
- 대리점에 대한 밀어내기 금지법 추진
- 일감몰아주기 방지법
- 하도급 단가후려치기 방지법 주도
- 중소상인의 카드수수료 경감
- 불효자식 방지법 추진
- 식품위생 건강 4대 입법 (식품위해사범 단속강화, 범죄수익 몰수, 고지방ㆍ고염도 식품에 대한 규제 강화)
- 어린이 안전 4대 입법 (어린이 식생활 우수판매업소 육성, 학원폭력 방지를 위한 인성교육 강화, 어린이 교통안전 선진화, 청소년 수년시설 인증 의무화 법안 발의)
'''20대 주요 입법활동'''
중소 서민경제를 살리기 위한 5대 주요법안.
장기 소액채권 또는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으로 고통 받는 금융채무불이행자의 신용회복 지원을 도보하기 위해 ‘대부업법 개정안’을 발의하였고, 정부와 거래하는 영세자영업자 등 가맹점주들의 카드수수료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해 정부구매카드를 기존의 신용카드 외에 직불카드도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국고금 관리법 개정안’을 발의 하였다. 자동차 대체부품 활성화를 통해 부품산업을 발전시키고, 수리비 인하로 보험료 부담을 경감하기 위한 ‘디자인 보호법 개정안’ 중소기업의 해외직판을 지원하기 위한 ‘중소기업의 해외 직접판매 지원을 위한 법률안’, 원금의 100%를 초과하는 이자는 무효로 하는 이자총액제한법(‘이자제한법 개정안’)을 발의하였다.
권력의 사유화를 통해서 자신의 부를 취득하는 경우나 정경유착을 통해 불법과 부정으로 재산을 축재 하였거나, 국가권력을 사유화하여 불법과 부정으로 축재한 재산과 그로부터 발생한 이자수익 등으로 형성된 재산에 대해서는 국가에 귀속하여야 한다는 ‘국헌문란 등 행위로 인한 부정수익의 국가귀속 및 피해자 권리구제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하였다.
8. 상훈
- 2006년 국회도서관 이용 우수의원상
- 2007년 한국적 제3의 길 - 국회 우수연구단체상
- 2012년 대한민국을 빛낸 21세기 한국인상 수상
- 2013년 국회 입법정책개발 우수 국회의원 수상
- 2013년 국정감사 우수 국회의원 (경실련)
- 2013년 국회도서관 이용 최우수 의원상
- 2013년 최우수 국회의원연구단체 선정 (국회 ‘민주주의와 복지국가 연구회’)
- 2014년 대한민국 우수 국회의원 특별대상 수상
- 2014년 동료 국회의원들이 선정한 입법우수 국회의원
- 2014년 피감기관 선정 국정감사 우수의원
- 2014년 금융소비자 보호 국회의원 대상
- 2014년 최우수 국회의원연구단체 선정 (국회 ‘민주주의와 복지국가 연구회’)
- 2015년 국회도서관 이용 최우수 의원상
- 2015년 의정대상 수상 (시사경제매거진)
- 2015년 대한민국유권자 대상 수상
- 2015년 국정감사 우수의원 대상 (금융소비자원)
- 2015년 국정감사 우수의원 대상 (새정치민주연합)
- 2015년 대한민국 국정감사 우수 국회의원 대상 (시사경제매거진)
- 2016년 대한민국 유권자 대상 수상 (유권자시민행동)
- 2016년 대한민국 최우수 법률상 (머니투데이 the300)
- 2016년 성대 경영대학동문회 제6회 자랑스러운 경영대학 동문상
- 2016년 대한민국모범 국회의원 특별대상 (한국언론기자협회)
- 2016년 대한민국 우수 국회의원 대상 (한국언론사협회)
- 2017년 코리아 베스트 의정대상(대한뉴스)
- 한국자동차부품협회 감사패
- 전국편의점가맹점사업자협의회 감사패
- 남양유업대리점협의회 감사패
9. 저서 및 보고서
- 2002년 완벽한 학생들(저)
- 2005년 개헌연구서-87년 체제를 넘어(저)
- 2008년 조선을 그린 이두호(공저)
- 2011년 병두생각(복지국가는 시대정신)(저)
- 2015년 새로운 진보정치(막다른 골목에 선 진보정치에 대한 제언)(공저)
- 2016년 수권정당의 길(2017 정권교체를 위한 제언)(공저)
- 문화산업은 미래 국가경쟁력이다(보고서)
- 청년실업, 신문화산업전략으로 돌파하자(보고서)
- 한류, 이대로 관리하면 5년 못간다(보고서)
10. 소속 정당
11. 선거 이력
12. 참고자료
13. 둘러보기
[1] 30세손으로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이 그의 손자뻘이다.[2] 상의정공파 27대손[3] 이후 경남지사 재보궐선거에 당선되면서 부활한다.[4] 성추행 논란으로 2년전 본인이 직접 사직서까지 제출했던 사람이 공천을 받고 출마를 한다면, 상대편 공격으로 본인뿐만 아니라 당전체가 흔들릴 수 있음에도 무소속 출마를 강행한다는건 욕심처럼 보인다. [5] 그런데 해당 지역구에서 이혜훈은 단 한번도 여론조사 1위를 하지 못했다. 다만 민주당에서 탈당 후 무소속 출마 한 많은 후보들이 선거비 전액 보전도 안 되는 지지율이 나온 반면에 민병두는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 15%는 최소한 넘기는 것으로 나왔으니, 지지자들은 당연히 불안해 했다.[6] 해당 성명문 내용을 대충 요약해보면, '''"주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확인해서 기쁘니, 이제 내가 한 말 지키겠다"'''로 요약될 수 있다(...).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 후보는 물론이고 윤호중 사무총장, 김영주 전 노동부장관, 우원식 전 원내대표, 노웅래 의원까지 '''도합 12선''' 의원들이 함께 자리를 했다. 미래통합당 이혜훈 후보는 "여당이 겁박했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결과를 예측할 수 없어서 한석 한석이 소중했던 당시 민주당으로서는 당연히 이 결정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민병두를 위로해줘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전혀 이상한 그림이 아니다.[7] 이해찬 대표는 '''탈당 후 무소속 출마자 복당 불허''' 원칙을 천명했으나, 민병두는 비록 탈당 후 무소속 출마했지만, 완주했는데도 민주당 후보의 당선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 다른 후보들과는 달리, 중도에 포기하면서 지역구의 당 후보를 지지해서 지역구를 지키게 했으니 예외가 될 가능성이 높다.[8] 이 경우 어짜피 탈당해야 하니까 굳이 복당할 필요가 없다.[9] 기본연봉은 2억 5천만원정도에 잡다한 수당까지 합치면 약 3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10] 항의를 위한 사퇴서는 반려되는 경우가 매우 잦다. 대표적으로 천정배 민주평화당 의원이 18대 국회 시절인 2009년과 2011년에 각각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에 반발하여서, 서울특별시장 출마를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자 하였으나 모두 반려되었다.[11] 자연재해나 천재지변 그리고 전쟁과 같은 긴급한 상황이나 여야 교섭단체 원내대표가 국회의장에게 요청하는 경우에만 직권상정을 할 수 있다.[12] 대통합민주신당에 흡수 합당[13] 민주당과 신설 합당[14] 시민통합당과 신설 합당[15]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16] 공천 불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