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문재인 정부'''
제9대
김홍걸

'''제10대
이종걸'''

''현직''
'''역임한 직위'''
[ 펼치기 · 접기 ]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기 안양시 만안구)'''
제15대
김일주

'''제16~20대
이종걸'''

제21대
강득구


'''대한민국 제16-20대 국회의원
이종걸
李鍾杰 | Lee Jong-kul
'''
<colbgcolor=#004ea2> '''출생'''
1957년 5월 22일 (67세)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상도동
(現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
'''본관'''
경주 이씨
'''학력'''
예원학교 (졸업)
경기고등학교 (졸업 / 72회)
서울대학교 (공법학 / 학사)
'''신체'''
178cm
'''병역'''
육군 병장 만기전역
'''종교'''
개신교(감리회) → 천주교(세례명: 그레고리오)
'''가족'''
조부 이회영, 배우자 정락경, 슬하 2녀
'''소속 정당'''

'''의원 선수'''
'''5'''
'''의원 대수'''
16, 17, 18, 19, 20
'''현직'''
한중문화협회 회장
상생과 통일 포럼 자문위원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경력'''
제16~20대 국회의원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사
역사문제연구소 이사
새천년민주당 당무위원
열린우리당 당무위원
열린우리당 원내수석부대표
제30~31대 대한민국농구협회 회장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당무위원
더불어시민당 상임공동선거책대위원장
前 법무법인 나라 대표변호사
'''별명'''
종걸리, 폭트남
'''외부 링크'''
공식 사이트
1. 개요
2. 생애
3. 논란
4. 소속 정당
5. 여담
6. 선거 이력
7.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법조인, 정치인이다.
덤으로 선조의 초상화를 보면 외모가 조금 닮은 편이다. 조부 이회영 선생이 이항복의 11대손이므로 본인은 13대손이 된다.

2. 생애


1957년 서울특별시에서 우당 이회영의 손자이자 이회영과 한산 이씨 이은숙[1]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인 아버지 이규동[2]과 어머니 변봉섭의 2남 1녀 중 장남[3]로 태어났다. 전 국회의원이자 국가정보원장 이종찬의 사촌 동생이다.[4] 그리고 성재 이시영의 종손자이다.
국민학교 시절 경기도 시흥군 안양읍(현 안양시)으로 이사하여 성장[5]했다. 예원학교[6]-경기고등학교(72회)를 졸업하고[7]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하여 노동자 야학운동을 하다가 대한민국 육군 병으로 복무하였다. 이후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다시 학사편입으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공법학과 3학년에 편입하였다. 1988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당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 가입하였다.

2.1. 정치 경력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자유민주연합 김일주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노무현을 지지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8] 이후 2013년까지 대한농구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또한 열린우리당 원내부대표를 역임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10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8년 국정감사에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에게 "MB의 졸개"라는 표현을 사용해서 유인촌 장관이 "찍지 마 X발"이라는 표현을 하게 만들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5년부터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를 역임하고 있다.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를 주도했으며 3월 2일 마지막 주자로 나와 대한민국 국회의원 단독 연설론 가장 오래 발언한(12시간 32분) 인물이 되었다. 그동안 문재인 대표와 의견 대립이 많았고, 원내대표가 2달 가까이, 당내 업무를 거절한 것은 당시 진보진영 대다수가 비판했던 일이다. 필리버스터를 통해서 다시 보게 되었다는 의견이 많고,[9] 새삼스레 선친들의 독립운동 행적이 재조명 되기도 했다.
2016년 20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만안구에서 시, 도의원을 지낸 새누리당 장경순 후보[10]와 맞붙었다. 투표전 여론조사에서는 별로 상황이 좋지 못했으나 개표결과, 45.4%를 득표해 8762표차로 이기고 5선에 성공했다.
그리고 2016년 4월 15일 비상대책위원으로 선임되었다. 그와 함께 비주류로 분류되는 김종인, 박영선 의원 등의 만류에도 7월 29일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로 출마하였고, 8월 5일 당 대표 예비경선을 통과했다. 그러나 8월 27일 본 전당대회에서 친문 세력의 지원을 받은 추미애에 밀려 패하였다.
그후 19대 대선 경선에서는 이재명 후보 지지선언을 했다. 그렇지만 문재인이 후보로 선출되자 문캠에 합류했다. 합류 후에는 정력적으로 대선에서 활동했으며, 특히 대선토론 당시 유승민에게서 "북한이 우리의 주적이냐?"라는 공세에 대해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반박했다. 특히, 이종걸과 문재인이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더 주목받았다. 해당 글의 페이스북 원본 링크
[image]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는 지역구 숙원사업인 박달동 탄약고 이전/지하화, 탄약부대 이전부지를 포함한 130만평에 첨단영상정보산업 직접단지 조성을 위해 방송통신위원회국방위원회 에서 적극적 활동했으며 오랜 동안 인내와 끈기로 만안이 새롭게 변화하는 스마트벨리 프로젝트를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게 하였다(이종걸의 노력으로 문재인정부의 국정운영과제, 이재명경기도지사 공약화). 그러나 국회 예산과 법률제정에 강력한 영향력을 갖은 5선의 중진이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사업으로 이종걸의원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2018년 6월 21일 새 당대표를 뽑는 8.25 전당대회 출마를 당내에서 가장 먼저 공식화했다. 하지만 컷오프 당하면서 결선까지 진출하지는 못했다.
2018년 8월 16일부터 트위터를 재개했는데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 간단하게 작성하는 식으로 트윗을 게재하고 있다. 워낙 사이다식으로 작성하기 때문에 '폭트남(폭풍트윗남) 이종걸'이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이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자 및 당원들 사이에서는 조상신 이회영께서 강림한 것이 아닌가 하는 반농담조의 의견들도 있을 정도.
2019년 9월 28일 조국 수호 집회 에 참석하여 "문재인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 "조국을 통해 검찰개혁 이루자" 등의 발언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통일 정책과 검찰개혁을 적극적으로 옹호하였고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위해 대부분 의원들이 지역구 관리에 전념하여야 할 때, 여러 방송사의 TV토론, 언론 인터뷰 등에 출연하여 평소 소신에 따라 발언함으로써 민주당과 문재인정부에 큰 힘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2020년 2월 민주당 경선에서 본인의 보좌관이었던 강득구 에게 밀려 탈락했다.
2020년 3월 24일, 더불어시민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이는 민주당이 비례연합정당 "시민을 위하여"에 참가하기로 결정하고 이 당의 기호를 앞으로 옮기기 위한 작업이다. 이종걸 외에 7명의 불출마 의원들이 합류함으로써 더불어시민당은 21대 총선에서 법률상 원내 제5당이 되어 기호5번을 부여 받았다.

2.2.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


이종걸 원내대표는 원내대표 취임 이후 문재인 당시 당대표와 사사건건 대립하며 당대표의 당연한 권한인 당직 인사권에 시비를 걸며 대립각을 세워 왔다. 특히 2015년 12월부터 2016년 1월까지 수십여일 넘게 당무를 거부하기까지 해 더민주 주류파 친문 지지층 내에서 "쫑걸 리"란 비아냥을 들어왔으며 조금 더 강경한 더민주 지지자들은 20대 총선에서 반드시 물갈이를 해야할 의원들 중 한 명으로 꼽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번 필리버스터를 기획한 주역이었고, 박영선 의원의 잘못으로 인해 하마터면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끝은 심히 미약할 뻔 했던' 필리버스터를 가까스로 유종의 미를 거두며 수습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비상대책위와 의원 총회에서 필리버스터를 이어가려 노력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종걸 의원의 노력은 김종인 비대위원장에게 꺾였고 막바지 동력을 잃은 필리버스터의 마무리라는 중책이 그에게 맡겨졌다. 결국 이종걸 의원은 마지막에 국회연설시간 최고 기록을 경신하면서 모든 필리버스터 참여 의원들에게 노고를 전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참고로, 이종걸 의원은 원하지 않은 계기로 인해 필리버스터를 종결하는 것이 아쉬웠는지, 수정안에 대하여 새누리당과 합의되기 전까지는 필리버스터를 끝내지 않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11]

3. 논란




4.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2000 - 2003
정계 입문

2003
탈당[12]

2004 - 2007
입당

2007
탈당[13]

2007 - 2008
입당

2007 - 2008
합당[14]

2011
당명 변경

2011 - 2013
합당[15]

2013 - 2014
당명 변경

2014 - 2015
합당[16]

2015 - 2020
당명 변경

2020
더불어시민당 입당을 위한 탈당

2020
입당

2020 -
합당[17]

5. 여담



6.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선거구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안양 만안

'''36,557 (38.81%)'''
'''당선 (1위)'''
'''초선'''[18]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59,346 (51.90%)'''
'''재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41,660 (44.64%)'''
'''3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58,326 (50.87%)'''
'''4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55,217 (45.39%)'''
'''5선[19]'''
  • 국회의원 선거만 5번 나가 전승을 거두고 있다. 사실 욕을 많이 먹어도 경기도에서 민주당계 정당으로 한번도 패하지 않고, 전승을 거둔 점은 높이살만하다. 민주당이 완패했던 2008년 총선에서도 당선되었으니... 그러나 결국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경선서 강득구[20]에 밀려 출마하지 못하게 되었다.[21][22]

7. 둘러보기










[1] 첫 부인이었던 달성 서씨가 죽은 이후 1908년에 다시 장가를 들었는데 그 주인공이다.[2] 2014년 3월 12일 별세[3] 여동생 이주원, 남동생 이종현.[4] 이종찬 항목에 나오듯 이종걸의 아버지인 이규동은 의 부친인 이규학과 이복형제지간이다. 사유는 전술한 대로....[5] 참고로 이건 이종걸 의원이 상당히 강조하는 내용이다. 실제 그의 집도 현재 안양시 만안구 박달동에 있고, 출신 초등학교도 안양에 있는 만안초등학교일 정도.[6] 피아노 전공. 후에 경기고등학교 동기 노회찬 의원이 결혼할 때 피아노 반주도 해줬다. 축가도 담당해서 노동운동가의 결혼식답게 일반 노래가 아니라 민중가요인 그날이 오면을 불러주었는데 노래를 잘 불렀는지는 모르겠다고 한다(...) 2013년 예원학교 신관 준공식에도 참석하여 테이프 컷팅을 한 적도 있다.[7] 참고로 '''최후의 고입고사 세대'''다. 경기고등학교를 비롯한 모든 서울시내 고등학교 입시가 폐지된 건 1974년부터이다. 또 '''화동 교사 마지막 졸업생'''이기도 하다. 고교 동기로 고승덕, 황교안, 노회찬, 김기준, 김용덕 대법관이 있다. 72회는 졸업생 720명 중 450여명이 서울대에 진학했다.[8] 참고로 이때부터 2012년까지 내리 경쟁후보로는 한나라당-새누리당정용대 후보가 나섰으나 매번 졌다.[9] 필리버스터 철회 명분이 무엇이었든 간에, 절차로 보면 김종인 위원장이 일방적으로 철회 요구를 한 터라, 당 지지 세력 및 당내 강경파를 달래기 위해 원내대표로서 고육지책을 쓴 걸로 보면 될 것이다.[10] 17, 18, 19대 선거에서 모두 패한 정용대 후보는 결국 공천을 받지 못했다.[11] 여당과 야당이 법안 순서를 두고 싸우고 있는데, 일단 선거법이 먼저, 보안법이 나중에가 야당이다. 당연히 여당은 보안법이 먼저다.[12] 당내 노선 갈등[13] 당내 노선 갈등[14] 민주당과 신설 합당[15] 시민통합당과 신설 합당[16]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17] 더불어민주당에 흡수 합당[18] 2003년 11월 열린우리당으로 당적 변경[19] 2020년 3월 더불어시민당으로 당적 변경
2020년 5월 12일 더불어민주당 흡수합당
[20] 전 경기도의회 의장, 경기도 연정부지사[21] 사실 5선이면 국회의장 선거 나가도 문제는 없다.[22] 이종걸과 같은 시기 옆 지역구에서 활동하던 이석현도 마찬가지로 민병덕에 밀려 경선탈락하였고, 또 다른 옆 지역구에서 활동하던 미통당 소속 심재철이재정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로써 안양3대장으로 불리던 이들은 20대 국회를 끝으로 동반퇴장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