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보병사단

 





'''제15보병사단'''
'''第十五步兵師團'''
'''The 15th Infantry Division'''
[image]
'''대성산 이상무'''
'''창설일'''
<colbgcolor=#fff> 1952년 11월 8일
'''상징명칭'''
'''승리부대'''
'''소속'''
[image] 대한민국 육군
'''상급부대'''
[image] 제2군단
'''규모'''
사단
'''역할'''
휴전선 중동부 전선(철원, 화천) 방어
'''사단장'''
[image] 소장 권영현(학군 27기)
'''주임원사'''
원사 이용택
'''위치'''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명월리

1. 개요
2. 상세
3.1. 위치
3.2. 상세
4. 예하부대
4.1. 사단직할대
4.2. 제38보병여단 번개
4.3. 제39보병여단 을지
4.4. 제50보병여단 독수리
4.5. 포병여단 명포
5. 과거부대
6. 출신인물
6.2. 장교/부사관
6.3. 병
7. 기타
7.1. 근무환경
7.2. 사단가
7.3. 부대구호
8. 사건사고
8.1. 노승원 소령 성추행 사건
8.2. 구상훈 이병 가혹행위 은폐 사건
9. 여담
10. 매체에서의 등장

'''보병사단령'''
'''제1조(설치)''' ① 육군에 보병사단(이하 "사단"이라 한다)을 둔다. ② 사단은 관할구역의 작전·훈련 및 군 행정에 관한 사항을 관장한다.
붉은색 원
태양을 상징하며, 사단의 용맹성을 의미.
푸른색 원
평화를 상징하며, 자유와 평화를 의미.
노란색 원
을 상징하며, 사단의 무궁한 번창을 의미. [1]

1. 개요


대한민국 국군 육군 제2군단 예하 제15보병사단. 상징명칭은 승리부대. 사령부는 화천에 위치하며 철원화천의 최전방 GOP, GP를 지키는 철책사단.

2. 상세


좌측의 제3보병사단, 우측의 제7보병사단과 함께 중부전선을 담당하는 최전방 부대로, 휴전선 155마일 정중앙에 위치해있다고 설명한다. 부대가 주둔하는 강원도 철원군화천군의 산악지형 특성상 산악전 부대로 분류된다고 한다.[2] 그래서 포병도 산악포병이라는 희한한 별칭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행군은 거의 을 타는 게 당연시되며[3] 이 산을 중심으로 사단의 거의 모든 부대가 산 중턱 혹은 근처에 퍼져있기에 부대에 따라서는 산을 오르내려야 밥을 먹거나 눈을 치울 수 있는 곳도 많다. 1996년에는 수해로 인해 사단 사령부를 포함한 거의 모든 지역이 초토화되었고, 18명의 장병들이 사망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DMZ 책임지역을 관리하고 1차적으로 적의 도발을 방어하는 최일선 부대이다.
별로 널리 알려진 부대가 아니지만 의외로 15보병사단은 6.25 전쟁에서 전공을 세운 전통있는 사단이다. 1952년 11월 8일 제12보병사단과 함께 강원도 양양 전진리에서 38, 39, 50 보병연대를 기반으로 창설되었고, 이듬해 2월까지는 후방에 주둔하고 있었으나 5사단과의 임무교대를 시작으로 최전선에 투입되었다. 53년도부턴 1군단에 배속되었으며 직후 강원도 고성군 351고지에 배치돼 북한군을 상대로 351고지 전투 등 수차례의 쟁탈전 끝에 현 위치를 고수하는데 성공했으며, 그 부근에 세워진 통일전망대 한켠에도 이를 기리는 전적비가 세워져 있다.
승리부대라는 별명도 고성을 두고 벌어진 전투의 승리 뒤 이승만 대통령프란체스카 여사의 의견을 따라 '싸우면 반드시 승리하는 부대'라는 의미로 하사했다. 이후 60년대에는 여주, 이천, 양평에 주둔하다 춘천시 오음리로 이동 후 2군단에 배속된 뒤 64년 부터 현 화천 및 철원 일부 지역에 주둔중이다. 이 부대는 4.19 혁명으로 서울특별시고려대학교에 배치되었으나 사단장 조재미 육군 준장은 이승만이 내린 진압 지시를 당당하게 거부했다.
경례구호로 대한민국 해군공군의 경례구호와 동일한 '필승'을 사용하고 있다. 육군에서 15사단 이외에 같은 필승 구호를 사용하는 부대로는 제30기갑여단이 있다.
부대 심볼은 3개의 동심원이 겹친 형태로, 각 원에는 다음과 같은 상징과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4] 15야(음력 15일 밤)의 밝은 보름달을 상징하며 작전 지역을 음영없이 밝게 비추고 살펴 지킨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생긴게 양궁 과녁판같이 생겼다고 해서 과녁판 부대라고 부를 때도 있다. 또는 계란 후라이 부대.
멍(푸른색), 피(붉은색), 고름(노란색)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020년 국방개혁으로 인해 12월 1일부로 예하 연대들이 여단으로 변경되었다.

3. 신병교육대




3.1. 위치


'''제15보병사단 신병교육대 (승리신병교육대)'''
'''第一十五步兵師團 新兵敎育隊'''
'''The 15th Infantry Division recruit training center'''

'''위치'''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봉오리 587-1

3.2. 상세




4. 예하부대




4.1. 사단직할대


  • 사단사령부
  • 본부근무대
  • 수색대대

  • 공병대대
    • 본부중대
    • 1중대
    • 2중대
    • 3중대
  • 정비대대
    • 1중대
    • 2중대
    • 3중대
    • 정비중대
  • 정보통신대대
  • 군사경찰대대
  • 화생방지원대
  • 의무근무대
  • 전차중대
  • 방공중대
  • 보충중대
  • 보급수송대대
타 부대와 마찬가지로 몇몇 대대를 제외하면 사령부 옆에 옹기종기 붙어있다. 사령부 안에 있는 본부대와 통신대의 통합 막사만 제외하고는 전부 구막사다.[5] 그래서 타 연대 통신병들이 통신대대에 오면 시설 좋다고 부러워하기도.[6] 2011년에 사단 연병장에 남성대에서 공수해온 잔디를 깔아서 현재 잔디가 깔려있다.

4.2. 제38보병여단 번개


  • 여단본부
  • 1대대
  • 2대대
  • 3대대
GOP 근무를 들어가는 부대로써 부대 전체가 민통선 내에 위치하고 있어 함부로 접근할 수 없다. 특이한 점은 연대본부가 오히려 예하 대대보다 전방에 있고, 강원도의 험난한 환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곳이다. 즉, 작계지는 가파르고, 여름엔 토나오게 덥고, 겨울엔 대충... 영하 15도에 눈이 펑펑 온다.
이 연대가 담당하고 있는 GOP는 15사단에서 가장 험한 데다 동쪽에 접한 7사단 섹터에 준하는 최악의 난이도를 자랑하고 있으며, GOP의 주 병참선인 승암고개[7] 역시 경사가 가팔라서 겨울철에는 승하차 구간으로 필히 지정되어 눈이나 비로 길이 어는 날에는 휴가 출발이든 복귀든 '''걸어가야 한다.''' 소초가 GOP 깊숙한 곳에 있는 병사들은 그저 묵념... 심지어 적근산 정상 부근의 헐떡고개는 커브를 한번에 돌기도 힘들뿐더러 경사도 승암고개보다 심하다.[8] 실제 적근산 정상 전봇대 설치를 위한 민간 크레인 차량이 헐떡고개를 오르다 180도 뒤집힌 적이 있다. 그래서 부식도 병사들이 내려와 도수운반을 하나 동절기 준비를 위한 드럼통 운반은 병사들로도 한계가 있어 치누크가 정상으로 공수해 주는데 워낙 진귀한 광경이라 이따금 언론에서도 군부대의 동절기 준비라며 취재를 온다.
여담으로 이 부대에 배치되면 탈영할 생각은 접는 게 좋다. 왜냐하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GOP라인은 말할 것도 없고, 페바지역도 전체가 민통선에 지뢰밭 투성이이고 유일한 도로는 당연히 검문소 천지인데다가 나머지는 전부 산이고 민가도 거의 없는 오지 중에 오지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과거 탈영한 병사가 길을 피해 산으로만 도망친 적이 있는데 3일 동안 걸었음에도 민가가 안 보여 자수했다는 곳이 이곳이다.
15사단 내에서 이 부대에 배치되었다면, '''안타깝지만 고생길 확정이다.''' 상술했듯 지형이 험하고, 페바 대대는 훈련도 비교적 많고[9] 시설이 굉장히 열악하다. 사단 내 타부대, 심지어 바로 옆에 있는 2포병여단 예하 포대나 이기자, 칠성부대의 예하 대대들이 신막사를 사용하기 시작한지가 오래인데도 GOP 소초를 제외한 전 부대[10]가 구막사를 사용하고 있으며, 일부는 여전히 '''일자형 막사'''[11]라 동기/계급별로 나누기가 불가능해 부조리도 은근히 있다. 이런 막사들은 1급 발암물질 석면 타일이 천장에 설치되어있다. 이것도 모자라 일부 막사엔 쭈그려 앉아 싸는 화변기가 여전히 쓰인다.
심지어 연대본부조차 구막사를 쓰는데 이것도 워낙 좁아 일부 인원을 컨테이너에 상시 수용할 지경인데, 바로 앞에 있는 67포병대대는 사단 본부대 뺨치는 신막사를 쓰고 있어 매우 비교된다. 게다가 연본에 딸린 PX조차 황량해서 굉장히 슬프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강원고속 버스가 각 대대와 직할대를 싹 돌아서 태우고 와수리를 찍고 동서울터미널로 가는데 2시간 10분이면 가능하기 때문에 타 연대보다 휴가 나가기 편하다는 점, GOP 포상휴가가 많다는 점에서 위안을 얻자. 물론 워낙 외딴 곳에 처박혀 있느라 외박 나갈 수 있는 곳이 화천 읍내, 철원군 와수리 말곤 없다는 점은 또 안 좋지만... 그냥 포기하고 마음 비우는게 편하다.
기타 사항으로 민통선 안 말고개 정상 부근에 한국군 보병 6사단의 금성 전투 전과를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탱크는 덤. 말고개를 넘으면 철원군과 철원평야가 나온다. 그리고 장혁김준현이 이 연대에서 복무하였다.
2020년 12월 부로 연대에서 여단으로 승격되었다. 이는 39연대, 50연대, 포병연대도 여단으로 승격되었다.

4.3. 제39보병여단 을지


[image]
  • 여단본부
  • 1대대
  • 2대대
  • 3대대
이 부대 또한 38여단과 더불어 GOP 근무를 들어가는 부대로써 옆의 38연대 보다는 대체적으로 낫다는 평이다. 이 부대 관할로 승리 전망대가 있으며 가끔 민간인이나 VIP들이 찾아온다. 가끔씩 대학생들 국토대종주하러 온다. 마현리 대대, 육단리 대대, GOP 소초 모두가 신막사를 사용하고 있는데다 GOP 섹터도 옆의 38연대보다 대체적으로 평탄한 편인데, 문제는 관할 섹터중에 '''명백히 꽝인 롤러코스터 천국의 계단 섹터'''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첫 줄에서 언급했던 승리 전망대는 전망대의 특성상 인근 지형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데, 이 승리전망대와 인접해있는 소초가 바로 문제의 '''꽝'''이다. 이 소초가 관리하는 섹터내에는 인근지형에서 가장 높은 곳과 가장 낮은 곳이 동시에 존재하는데, 이 가장 높은 곳과 가장 낮은 곳의 거리가 꽤 가깝다. 말로 들으면 별 거 아닌거 같지만, 그야말로 흉악할정도로 높은각도의 경사에 특유의 험난한 지형과 낙후된 계단, V자 협곡 등이 콜라보레이션을 이루어 괴랄한 최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데, 전 사단을 포함한 GOP 섹터중에서도 손꼽히는 난이도로 유명하다.[12] 험난한 경사때문에 소초 내 부상자가 끊기지 않고 발생하며 그로 인한 공석을 메꾸기 위한 병사 파견이 끊이지 않을 정도라서, 병사들 사이에서는 전역이 빨라지는 소초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다. 이러한 최악의 난이도에 아이러니하게도 인근의 승리전망대 덕분에 교통시설이 좋기 때문에, 방송국등에서 촬영도 자주 나오는 편이다. 이러한 특수한 상황의 섹터는 한곳 뿐이며, 이외에는 대체적으로 평탄한 평지지형의 섹터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38연대의 GOP보다는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육단리 대대 옆에는 필승회관이라고 해서 회관과 영외PX가 있으며 부대 근처에 마을이 있다. 교통이 타 부대보다 낫기 때문에 접근성이 좋은편. 이 부대 병사들 또한 다목리 말고 와수리를 이용하므로 오히려 서울까지 가는데 50연대보다 시간이 적게 걸린다. 50연대 병사들이 타는 버스는 서울로 나가는데 광덕고개를 넘기 때문. 이 광덕고개를 넘으면 포천시인데 내려가가보면 그 유명한 박달 유격장이 있다. 이 부대 또한 모 산을 관할하기 때문에 제집처럼 드나들기 때문에 퍼지지 말자. 정상에서 북쪽을 바라보고 앉으면 북한이 잘 보인다. 2010년에는 북한군 GP초소에서 이 연대소속 GP로 총격을 가했으나 바로 맞대응 사격을 하기도 하여 뉴스에도 실린적이 있다.(이 대응에 민간에게 알려지지 않은 진실이 있다.) 45초 완전 작전이라고도 하며 즉각 대응을 한 병사들은 여러차례 포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 부대가 관할 하는 곳에 유격장이 있으며 예전 모 대대가 주둔하다가 떠난 후 유격기간에만 사용하는 막사가 있다. 화장실이 최악이며 샤워실도 상상에 맡길 것. 그래도 텐트치는거 보단 낫다. 9월 말 부터 유격뛰는 인원들은 강원도 특유의 추위를 고려하여 화학대에서 제독차를 지원해줘서 온수!!로 샤워를 할 수 있다.
39연대는 연본이 구막사였으나 현재 btl 공사를 마치고 신막으로 입주했다. 예전 구 막사 특히 수송대/의무대 막사는 최악.....(수송대는 인정하지만 의무대는 괜찮은편. 연대본부에 딸려있는 본부중대가 진짜 건물이 쓰레기였다.) 거기에 사람이 살수 있는가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후졌다. 또한 거기는 밥 먹으려면 거진 등산을 해야하기 때문에... PX도 황량했다. 현재는 신막사로 바뀌어 나름 살기 좋아졌다.취사장이 복지관과 같이 붙어있어(옛 취사장은 군수과 창고가 되고..) 밥먹으러 갔다가 2층으로 올라가 노래방이나 사지방 등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연대 본청과 생활관이 한 건물로 통합되어있고,최근에는 본청 중앙 입구 위에다가 대형 사단마크를 설치하였다.
사실 15사단에서 가장 나은 선택지 중에 하나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 예하 전 부대가 신막사에 입주하였고, GOP 근무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에 속하는데다[13], GOP 포상휴가도 잘 나와 근무 조건이 제일 낫다. 물론 동서울까지 가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게 함정. 그래도 38연대에 비하면 시가지에 조금 가깝다.

4.4. 제50보병여단 독수리


[image]
GOP에 투입되는 38, 39여단과 달리 후방에서 훈련만 줄기차게 뛰는 부대다. 예비대인 만큼 훈련량은 27사단 뺨치며, 상호간 합동훈련도 자주 뛴다. 여기에 신병 교육대대를 운용하고 있는데, 2010년 말 대대 하나가 제2신병교육대대로 전환되자 남은 전투대대는 산악대대 딱 하나만 있어서 연대에 부과된 훈련을 (그 대대가 도로 환원되기 전까지) 산악대대가 죄다 뛰어야 했고, 그 결과 대대원 전부가 FTX[14]의 달인이 되라고 매주 주변 산을 오르내리게 했다.[15] 심지어 당시 대대장도 '특공대' 라는 별명답게 빡세게 굴려서 사격을 3차례 실시 중 18발을 못 맞히면 맞힐 때까지 매번 호출돼 사격을 해야했으며 아침 먹기 전에 FTX, 점심 먹고 FTX, 자기 전에 5대기는 덤... 심지어 예하 중대 하나가 평가훈련을 뛰는데 나머지 중대도 같이 훈련을 뛰라고 하는 바람에 예정에도 없는 날벼락을 맞았다.
심지어 유격 때도 일과를 끝마치고 녹초가 된 간부들에게 야간 사격도 시켰다. 급기야 2012년때엔 진급욕심이 과해져 매월 40 km 야간행군, 3개월마다 60 km 100 km 무박2일 행군을 계획했다가 무산되기도 했다.
신막사가 건축되기 전까지는 시설 수준이 15사단 최악이었으며 내무부조리 또한 심했다. 현재는 제2신교대가 전투대대로 환원됨으로써 나아졌고, 현재 연대본부를 제외한 전 대대가 신막사 애용 중이다.
산악대대 근처에는 이외수가 사는 감성마을이 있다. 매 주마다 한 번씩 해방촌 구보를 하니 숙달되지 않은 신병은 퍼지지 말자. 퍼지면 욕 많이 먹는다. 군가는 덤.[16] 현재 아침 자율뜀걸음 방식을 운용하다가 너무 요령을 피운다는 의견이 올라오기도 했고 대대장이 바뀌어서, 다시 휴일을 제외한 매일 아침 소대뜀걸음으로 변경되었다. 운이 좋으면 이외수를 볼 수도 있다.
하여간 훈련에 찌들은 산악대대에서 직접적으로 와 닿는 장점이 있다면 동서울행 버스를 탑승할 수 있는 다목리가 코 앞이라 휴가 가기가 굉장히 편하다는 것이다.[17]
또한 50연대 본부로 배치받는 병사들은 비교적 깔끔한 신교대를 보고 연대본부는 이보다 더 좋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설 개선의 관심도가 낮아 연대에서 제일 낙후되어 있다.[18] 연본에는 본부, 통신, 의무중대가 본관 2층을 사용하는데 안이나 밖에나 안습이다.
그나마 옛날에는 동기생활관이라 의무, 통신, 본부중대가 같은 생활관을 썼으나, 새로 부임한 지휘관이 아무것도 모르고 눈에 보이는 실적이나 올리려고 이건 말도 안 된다면서 중대별 생활관으로 최근에 바꾸었다. 그래서 옛날에는 다른 중대끼리 교류가 있었으나 요즘은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지방은 컨테이너박스 3개에 나뉘어서 사용할 수 있다. 지원중대는 생활관 몇 개로 나와있지만 본관과 시설이 별 다를바가 없다.
수송대는 연대본부 건물과는 조금 떨어져 있다. 다른 연본과 같이 구막사를 사용 중이며, 2009년에 리모델링을 한 이후로 나름 살 만한 생활관이 됐다. 대신 길다. 예전에는 한밤중에도 여름의 열기가 식지 않아 샤워하고 난 뒤에도 땀을 흘렸다고 하였으나[19] 리모델링 후에는 연본에서 특히 화장실만큼은 제일 좋다. 또한 연본에서 인원이 가장 많은 관계로 사지방도 수송대 것은 따로 있다. 다만 본부중대에 있는 PX까지 거리가 상당히 멀다...군가를 3번 이상은 불러야 도착한다... 연본 근처에는 승리회관이 있는데 면회나 분대회식, 간부회식 등으로 사용되며 영외 PX도 하나 딸려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연대본부는 말이 본부지 여러모로 시설은 제일 나쁘다. 그래도 밥은 맛있는 편. 굳이 순위를 매겨보자면 수색중대>신교대>연본>돌격대>산악. 수색중대는 진짜 맛있다. 심지어 식사추진된 음식마저도 연본 내부에서 갓한 것보다도 맛있다. 또한 가끔 야간 사격훈련 중에는 수색보급관이 식사추진에 기본 밥과 라면까지 넣어주기도 한다!
상술했듯 예비대답게 훈련량이 굉장히 많음에도 휴가 일수는 얼마 되지 않아서 신교대 조교라도 안 하면 군생활 평균 40일 이상 받기 힘들다. 38, 39연대는 평균 60일 정도를 받음을 고려하면 적은 편. 게다가 부대 위치들도 어중간해서[20] 외출/외박 휴가 가려면 차로 좀 더 가야한다. 그나마 동기생활관이 대부분 잘 되어있고 부조리가 적은 편이라는 게 위안거리.
또한 수색중대[21] 시설은 연대본부보다도 구식이다. 독립중대다 보니 시설도 엄청 작고 구조도 생활관-본부 생활관-행정반-생활관 순으로 일직선이다. 독립부대의 특성상 넉넉한 보급과 수색중대장의 재량으로 형편에 맞게 자율적으로 부대가 운영되는 장점도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좁은 공간에서 피해갈수 없는 병영부조리와 노동 혹사를 경험할수 있다. 병영선진화에 따라 점차 나아지고 있지만 현실의 한계로 완전히 뿌리뽑기는 불가능한 상황..
GP에 투입된 소대는 거의 초소에서 근무하겠지만, 근무에 투입되지 않았다면 여타 부대와 동일하게 일과생활을 한다. 특히 GP 특성상 어지간한 고장은 초소인원들끼리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하다 보니, 상/병장급 인원들과 간부 분대장 이상 인원들은 작업의 달인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인원이 적다 보니 말년 병장이라도 놀 수만도 없다. 특히 오전에는 매일 철책점검 작전을 하는데, 그 중 최고로 피땀 나는 경로가 있다. (중대원들이 부르길 그곳의 이름은 봉담계곡?) 경사로가 약 70도로 꺾인 부분이 있는데, 위에서 내려가려고 할 때 약 800 m 아래에 있는 계단이 보일 정도이다. 문제는 그 계단까지 내려가는 경사가 엄청나서 무릎에 힘을 제대로 안 싣고 발을 디디면 어떻게 굴러떨어질지 상상도 안 간다. 당연히 다시 올라오기도 빡세다. 내려가서 반환점을 찍고 올라가기 시작할 무렵이면 허벅지에 힘이 풀려서 올라가기가 무척 힘들다.
고난의 최대 피크는 겨울이다. 강원도 철원의 기후가 그렇듯이, 춥기도 춥지만 눈이 엄청나게 온다. 눈이 빨리 내린다면 11월 초부터 내리기 시작하며, 강원도 아니랄까 봐 5월 중순까지도 눈이 내린다. 수색중대 전역자들 중 겨울 좋아하는 사람은 미친 놈이 아닌 이상 없을 것이다. GP근무 중에는 눈이 온다면 오전작전 때 보급로와 작전경로 위주로 제설작업을 나간다. 말은 쉽다. 보급로가 약 2 km가 조금 안 되고, 작전경로가 한쪽 기준으로 1.5 km 좀 안 되니까 솔직히 거리만 보면 우루루 몰려나가서 작전하면 괜찮다. 그러나 작전 중에 투입할 수 있는 인원이 한정되있다.
시설은 2개 GP가 다 옛날 초소치고는 괜찮은 편이다. 보통 해당 근무지역의 GOP와 GP가 같은 사단인 경우가 많은데, 50연대 수색중대가 맡은 GP는 타 사단의 GOP와 더 가까워서 부식 추진도 타 사단에서 온다. 그런 이유로 PX 이용은 조금 힘들다. 그나마 짬이 좀 되는 상병장급들은 주둔지에 있는 본부소대나 동기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내선전화로 부탁하여 편지나 택배추진차량에 카드를 맡기며 추진하기도 하지만, 동기 없는 이등병들이나 일병들은 그런 부분에서 불편할 것이다.
게다가 독립중대답게 짬밥 질도 괜찮아서 근처 산악대대와 신교대대장급들도 와서 맛보고 가고, 연대장도 자주 와서 먹고 갈 정도였다.[22] 사실 이 비결은 수색중대 보급관들의 입김이 가장 컸다. 수색중대 취사병은 본부중대 주둔지 취사병 2명과 소대 취사병 1명이다. 보통 소대취사병들은 주둔지 교육때 같이 교육받지만, 중대에 두개소대가 주둔시에는 취사지원을 나가 중대취사병을 돕는다. 일반대대에서는 취사소대가 따로 있지만, 독립중대는 그런 게 없다. 중대 하나가 소대 하나나 다름없다. 갈굼도 취사병들은 피해갈 수 없기 때문에, 지들이 살려면 최소 반찬이 부족하거나 맛이 없으면 되기도 하고.
그래서 타 부대와 달리 라면 레시피가 별로 발달하지 않았다. 왜냐고? 라면도 파송송, 계란~탁 해줄 취사병들이 있는데 굳이 내무반에서 맛도 없는 봉지라면 먹을 필요가 없으니까.. 예전에 있던 행보관이 취사병 하나가 밥 태우는 꼴을 보고 바로 GP에 있는 소대로 가는 추진차량에 태워버리고 직접 밥을 했다는 소문도 있다.
수색중대 막사 바로 옆엔 PX가 있는 승리회관이 있는데, 문제는 영외이다 보니 뒷문을 이용해 나가야 하는 판국이다.[23] 뭐 이걸로 말이 많긴 했는데,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러서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 PX 갈 때마다 전우조 3명으로 당직사관한테 뒷문 열쇠를 받아 열고 나갔다 들어왔다 해야 하는 식이라 조금 번거로웠다.
2015년에 막사를 새로 짓느라 1대대로 잠시 이사를 가서 막사 한켠을 빌려서 사용하다가 여름즈음에 신막사가 지어지고 돌아왔다. 당시 8월에 서부전선 포격도발사건으로 이사를 하던 도중 다시 짐을 가지고 돌아오느라 이사를 총 세번 해야했다. 남북 양쪽의 GP가 전면 철수한 현재는 옛말이 되었다.
관할구역에 문화재로 등록된 인민군 막사가 있는데, 볼 것도 없다. 그냥 덩그러니 집 한 채 있을 뿐.

4.5. 포병여단 명포


  • 포병연본
    • 제26포병대대 상무
    • 제67포병대대 충무
    • 제68포병대대 청룡
    • 제998포병대대 백호
포병연본과는 달리 대대들은 여러 곳에 퍼져있는데 한 곳만 빼고는 하나같이 접근성이 좋지 않다. 그 한 곳도 산 중턱.. 예전 포병연대 한 대대에서 송승헌이 복무하였다. 병과 특성상 독립포대가 많으며 998포병대대만 신막사였으나, 좁고 험해터진 민통선 내부의 67대대에도 신막사가 완비되었다. 2020년 12월엔 26포병대대도 신막사가 완비되었다. 바로 앞에 있는 38연대 본부와 매우 비교되는 모습을 자랑한다. 그 좁은 5번 국도로 수십대의 공사차량이 드나들었으니.
15사단 포병연대는 6ㆍ25 전쟁 중인 1952년 8월 7일 전남 광주 포병학교에서 제9야전포병단으로 창설됐다. 이후 1953년 4월 1일 현재의 15사단에 예속됐다. 특히 부대는 6ㆍ25 전쟁에 참전한 몇 안 되는 포병연대로 수도고지전투(강원 금성군)와 한국군 최초의 제병합동 화력지원 전투로 기록된 고성지구전투(강원 김화) 등 창설 7개월 만에 100여 차례의 전투에 참전, 9344명을 섬멸하고 24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후 부대는 1986년 7월 육군 장비전력화 계획에 의해 155㎜ 개량형 견인곡사포 KH-179를 도입했고 1996년 12월에는 포병대대 사격지휘체계(BTCS : Battalion Tactical Command System) 배치를 완료했다.
또 1999년 4월에는 승리 포병 훈련장을 마련, 전술전기 연마의 토대를 구축했고 2005년 11월 전자 기상관측장비 GL-5000P의 전력화, 2008년 8월 육군전술지휘정보체계(ATCIS : army tactical command information system) 전력화, 9월 BTCS A1전력화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전력 보강을 해 왔다. 2014년 11월 신형 포병관측장비 TAS-1K의 전력화를 완료해 포병전력의 타격능력을 크게 향상시켰다.
17년 기준 998포대, 67포대가 신막사에 입주해 있으며, 998포대와 67포대는 K-9자주포를 사용하고 있다. 26포대와 68포대는 구막사를 사용하고, 포도 KH-179라 여러모로 고달프다...

5. 과거부대


2005년에 신축[24]되었으나, 현재는 일반 전투부대로 전환되었다.
산 중턱을 깎아서 만든 부대인지라 위병소와 통합막사와의 고도차는 60m 가까이 된다. 특히 막사로 가는 중간지점에 50m 정도의 경사로(신막고개)가 있는데, 경사가 상당히 가파르기 때문에 여기에 처음 와서 의류대 메고 올라갈 때 방심하면 낙오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기 바란다. 실제로 병사들끼리 위병소를 지났다고 훈련(특히 행군)이 끝난 게 아니다. 라는 말이 돈다. 신교대였던 과거나 일반 전투대대인 지금이나.
2013년부터는 제1신병교육대대에서 훈련병들의 교육을 맡고 있기 때문에 다시 이전처럼 야전부대로 돌아갔다. 덕분에 산악대대가 좀 덜 힘들어졌다. 이전에는 연대의 모든 훈련을 도맡아서 힘들기로 유명했다.

6. 출신인물



6.1. 사단장


'''볼드체'''는 대장 진급이 된 사단장.
'''역대 제15보병사단장'''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초대
이정석


사단장

00대
김종태
예) 중장
3사 6기
국군기무사령관
국회의원
'''00대'''
'''권오성'''
'''예) 대장'''
육사 34기
육군참모총장,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대리'''
'''이순진'''
'''예) 대장'''
3사 14기
합동참모의장, 제2작전사령관
[25]
36대
이용광
예) 중장
학군 16기
제3군단장

'''37대'''
'''김영식'''
'''예) 대장'''
육사 37기
제1야전군사령관

38대
조국제
예) 소장
육사 39기
前 사단장

39대
최영철
예) 중장
육사 41기
육군교육사령관

'''40대'''
'''안준석'''
'''대장'''
육사 43기
지상작전사령관

41대
전동진
중장
육사 45기
제3군단

42대
권영현
소장
학군 27기
사단장


6.2. 장교/부사관



6.3. 병


  • 김성식
  • 김스카이: 유튜버. 38연대 수색중대에서 복무했다.
  • 김준현: 개그맨으로 38연대 수색중대에서 복무했다.
  • 김재우: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에서 메이커부대 출신 99군번임을 밝히면서 27사단, 3사단 다음으로 15사단 승리부대를 언급하였다. 보직은 K3 기관총 사수.
  • 브라더수: 현재 군악대 목관악기 연주병으로 복무중이다.
  • 상추: 연예병사로 입대하였으나 안마방 사건으로 인해 50연대 예하 대대로 전입했다.[26]
  • 송승헌: 포병연대 예하 68대대에서 복무했다.
  • 수현: 이 곳 신병교육대를 수료 후 50연대에서 복무했다.
  • 야식이: 먹방 BJ 겸 유튜버. 39연대 수색중대에서 복무했다.
  • 엉덩국: 포병연대 예하 67대대에서 복무했다.
  • 임채성: 22사단 임병장 총격난사 전까지 정부수립 이래 최악의 무장탈영의 주범자. 전차대대 소속이었다. 현재 무기징역 선고받고 감옥에 수감중
  • 장수원: 젝스키스 멤버로써 군악대에서 복무했다.
  • 장혁: 38연대에서 복무했다.
  • 정용화: 이곳 신병교육대를 수료하고 702특공연대에서 복무했다.
  • 정재헌: 수색중대에서 복무했다.
  • 지은성: 배우.
  • 천지: 2020년 8월 10일, 이 곳 신병교육대로 입대했다.
  • 태일: 2019년 6월 10일 입대, 사단보수대대에서 복무했다.
  • 투탁: 39연대 예하 대대로 전입했으며 대성산 작전 지역에서 경계 근무를 했다.
  • 한선태: 수색대대에서 복무했다.
  • 황치열: 15사단 화학지원대에서 복무했다.
  • 김선응: 15사단 최전방 수호병으로 복무했다[27]

7. 기타



7.1. 근무환경


재수가 좋지 않은 이상 별별 힘든 곳에 걸릴 공산이 크다. 연대의 경우 미묘하게 산지지역과 평야지역이 교차되어있는 작전지역이 있고 이 중 사단이 덜 신경쓰는 연대도 있으며, 그런 연대 산하는 고생을 더 한다.
그렇기 때문에 12사단, 21사단과 더불어 피박 중 하나다. 7사단이나 27사단도 이런 취급을 안 받는 점을 생각하면 왠지 안습이다. 거기에 15사단 자체도 어떤 곳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실례로 몇몇 전역자들은 15사단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은둔부대로서 북한군이 쳐들어오면 갑자기 튀어나와 막아내는 부대."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그도 그럴것이 워낙 산골인데다가 '''삼면이 메이커 부대로 둘러싸여 있다!!!''' 때문에 이 사단에 배치받게 되는 신병들에겐 괜찮은 부대로 소문 나 있으나... 27사단에 가려서 그렇지 훈련이 상당히 빡세며[28] GOP섹터는 7사단에 버금가게 '''최악'''이다. 특히 모 연대의 '남산-해운대' 섹터는 전체 GOP섹터 중 가장 험한 지역중 하나로 손꼽힌다. 여기 배치되는 보병 특기 신병들은 개고생이 확정이다. 일단 여름에는 39도까지 올라가고 겨울에는 영하 30도 이하로 떨어지는 저주받은 기후에 GOP 지역의 거의 모든 섹터가 맥도날드 로고 마냥 이어져 있고, 운전병들에게도 굉장히 애로사항이 꽃피는 지형이었으나 도로만큼은 점차 나아지는중... 예전 사고사례를 보면 고개부분의 도로가 비포장도로 길이었기 때문에 간부들이 오토바이타고 출퇴근하다가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20년 전만해도 전 구간이 포장 도로가 아니라 죄다 비포장 길이었다. 현재 GOP 지역 일부분을 제외하고 어지간한 도로는 포장이 되어있어 운전하는데 크게 지장은 없다. [29] 하지만 사단 본부마저 영내 지형이 험악하기에(...)
매년 1월에 화천군에서 화천산천어축제가 열릴 때면 사단과 연대에서 병사들을 뽑아다가 주말에 많이 축제에 즐기기 위해서 내보낸다. 일과중에 당당히 외출을 할 수 있으므로 좋긴 하지만 가을에는 민ㆍ관ㆍ군 한마음 축제라는 이름으로 대성산 축제를 하는데 걸그룹을 초청한적도 있었다. 근처 감성마을에 사는 이외수가 축제기간에 부대 위병소로 찾아와서 근무자에게 랜덤으로 한장 주고 가는 식의 포상휴가증을 뿌리기도 했다고 한다. 여러가지 행사가 있다. 가령 예를 들어 의무대에서는 인바디 체크를 해서 측정 결과를 알려준다던가 유격체험 및 타로카드 심리체험, 플스로 위닝 대회나 철권을 하여 상품을 주기도 한다. 2011년 기준. 축제하는 곳 뒤에 대성산회관이 있는데 목욕탕을 이용해도 좋다. 근처 다목리의 식당에서는 파닭이나 중화요리, 순대, 막걸리 떡볶이 등 여러가지 음식을 팔며 물가는 당연히 비싸며 서울보다 500원 정도 비싼수준. 옆에 다목초등학교에서 본격적인 축제가 벌어지는데 놀다가 뒤를 보면 사열대 위에 사단장님이 허허허 하면서 앉아계신게 보인다. 여기서 잘하면 포상휴가! 2011년에는 포병연대 소속 모 대대가 받았다.
ㅜㅜㅜㅜㅜㅜ

7.2. 사단가


'''1절'''
'''화랑의 넋을 이은 대한의 건아'''
'''무쇠같이 뭉치어 달려나가자'''
'''산천도 떠는구나 거칠 것 없다'''
'''지키자 금수강산 우리 손으로'''
'''드높이 휘날려라 승리의 깃발'''
'''원수를 무찌르는 제15사단'''
'''2절'''
'''철모를 조여라 굳게 조여라'''
'''겨례의 비원을 풀어야 한다'''
'''오늘도 다시 한 번 맹세 하노라'''
'''이루리라 조국통일 우리 손으로'''
'''드높이 휘날려라 승리의 깃발'''
'''원수를 무찌르는 제15사단'''

7.3. 부대구호


승리부대 용사의 다짐이라는 게 있다. 주 용도는 아침점호.
'''하나, 나는 자랑스러운 승리부대 용사다'''
'''하나, 나는 승리 5대 전투영웅의 군인정신을 계승한다'''
'''하나, 나는 최고의 전사가 된다'''
'''하나, 나는 보름달 정신을 이어 밝은 병영문화를 창출한다'''
'''하나, 나부터 현장에서 행동하고 실천한다'''

8. 사건사고




8.1. 노승원 소령 성추행 사건


현역 육군 소령이 현역 육군 대위에게 각종 가혹행위와 '''"하룻밤만 같이 자면 군 생활 편하게 해주겠다"'''는 등의 파렴치한 성희롱과 성추행을 가한 끝에 피해자인 여군 대위가 자살한 사건. 여군 대위에 대한 성추행, 피해자 자살, 가해자의 아버지가 장성 출신이라는 보도, 소속부대의 증거 위변조 의혹 보도, 1심 집행유예, 결국 국회의원 4명이 국방부를 항의방문하고 국방장관이 재조사를 지시한 뒤에야 대법원에서 실형이 선고되는 등 한국군 내의 여군의 처우와 군내 사망사고를 다루는 고위 장교의 안이함, 군사법원의 한계 등 국군의 많은 문제점이 결집된 사건이다.
2012년 10월 16일, 15사단 부관부 인사행정장교로 복무했던 오혜란 대위(여군 54기)는 15사단 부관참모인 노승원 소령(3사 35기)에게 10개월 동안 지속적인 언어폭력과 성추행에 시달리다 자신의 차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노승원 소령은 오혜란 대위에게 "하룻밤만 같이 자면 군 생활 편하게 해주겠다"라며 지속적으로 성관계를 요구했다. 약혼자가 있는 오혜란 대위는 이를 거부하자 10개월 동안 매일 보복성 야간근무를 시키는가 하면 다음 날 아침 출근해서 막상 야간근무한 서류는 제대로 보지도 않고 집어 던지는 등의 가혹행위를 했다.
피해자의 기록으로 사건을 재구성한 기사. 지독한 모욕과 가혹행위가 이어졌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피해자가 불교 신자였음에도 기독교도인 노 소령 은 '''매주 교회에 나올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아무리 군대고 장교 사이라지만 신앙 생활에 이런 식으로 강요와 간섭을 하는 것은 지극히 잘못된 일이다. 이 사건을 보도한 한겨레의 기사에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아버지가 장성 출신이라 사건을 보고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피해자 오 대위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노 소령이 다른 여군 6명에게 폭언과 폭행을 가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 일로 인하여 부관부가 전격 해체되었으며 1심 판결에서는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이 선고되어 논란[30]이 되고 있다. 군 검찰과 노 소령 변호인 둘다 항소할 뜻을 밝힘에 따라 2014년 11월 기준으로 2심 고등군사법원에서 재판이 진행되었으며 가해자 노 소령은 집행유예 상태로 불구속 수사를 하고 있었다.
사건에 대한 15사단의 대응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증거 위변조 의혹은 1심의 약한 형량에 더해 여론의 공분을 사는 계기가 됐고, 결국 국회의원들이 국방장관에게 직접 항의방문을 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백미는 부사단장이 '''무속인의 말을 빌미로 유족에게 가해자를 용서하라고 권한 사건'''. '''유족이 분노한 것은 당연하다'''. 그보다 한국 육군 부사단장 정도 되는 고위 장교가 자살한 부하 장교 유족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 밖이다.
증거 위변조 의혹도 제기돼 결국 국회의원 4명이 국방부를 항의 방문했고 국방장관이 재조사를 약속하는 사태로까지 번졌다.
피해자 오혜란 대위는 순직이 인정돼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2014년 11월 4일, 군인권센터에서 심리부검결과에서 오 대위의 자살원인이 성추행과 가혹행위로 인한 우울증으로 나왔다. 15사단 배치 이전에는 정신적인 문제가 없었는데, 15사단 배치이후 노 소령의 성추행과 가혹행위로 인해 정신병이 생겼고, 이로 인해 자살했다. 군인권센터는 죄목을 강제추행죄에서 강제추행 치상죄로 격상하라고 고등군사검찰부에 요청했다. 2014년 12월 18일, 고등군사법원 선고공판에서 가해자 노 소령은 보통군사법원의 원심을 깨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마침내, 2015년 7월 9일, 대법원은 가해자 노 소령에게 징역 2년 선고를 확정했다. 그와 동시에 2심 고등군사법원에서 제시하지 않았던 성폭력 특례법 제42조 제1항에 따른 신상정보 등록대상자로도 등록되었다.

8.2. 구상훈 이병 가혹행위 은폐 사건


[image]
'''해당 사건을 뉴스화면 캡쳐하여 인터넷에서 재구성한 짤방'''
2012년 2월, 해당부대에서 근무하던 구상훈 이병이 19일만에 쓰러져 식물인간이 된지 1년 7개월만에 깨어나고, 1년이 지나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자신은 구타당해 실신한 것이라고 KBS 취재기자를 통해 최초로 폭로된 사건이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KBS 시사기획 창에서 2014년 11월 11일 방영되므로 사건내용이 추가될 수 있다.
구 이병의 뒤통수에 난 상처가 '''욕창'''[31]이라는 군의관의 말에 관계자들은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고 당시 군의관은 진술서를 쓰지 않았다. 또한 군 수사기관은 구 이병 부모들에게는 '''뇌동정맥 기형에 의한 뇌출혈'''이라 말해 가족들이 납득했다고 군 수사기관은 주장했다. 문제는 KBS 취재기자가 입수한 2012년 3월 9일 구 이병 간호 기록집을 보면 '''욕창없음'''이라고 표기되어있다. 3월 5일, 부모에게 욕창이라고 설명한 군 당국이 거짓말 했을 개연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며, 사건 당일 구 이병의 상처에 대해 다 알고 있었다. 구 이병이 의무대에서 누워있을 당시에는 생활복 상의에 군복 하의 상태였다고 한다. 구 이병 부모는 사건이 일어난 이후, 군 관계자에게 구 이병의 군복, 옷가지, 소지품을 돌려달라고 했는데 항의를 했음에도 끝내 돌려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당시 구타 가해 지목 선임병사 7명중 한 명[32]은 뻔뻔스럽게도 '''구타나 가혹행위 본 적도 없고 한 적도 없어요'''라고 말하는 건 물론 무고죄로 맞고소하겠다고 나섰다.
구 이병 가족들은 사건 초기에 청와대 신문고, 인터넷 게시판 등에 올리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구 이병의 증언으로 가족들은 현재 사건 당시 가해 선임병사들을 형사고소 준비하고 있다. 구 이병 변호인은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 임병장 공동변호인과 제28보병사단 폭행사망 사건 가해병사 하 병장 변호인을 맡고있는 김정민 변호사이다.
사건이 커지자, 육군 측은 구 이병이 의식을 회복한 것에 대해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육군 측에서 정부 유관기관 및 민간 수사기관 등과 공조하고, 또한 가족이 원하면 가족을 참여시킨 가운데 재수사를 하기로 결정했지만, 가해자들이 전부 전역했고, 피해자도 전역해서 육군이 수사할 권한이 없는데 여론이 빗발치니깐 사건을 무마해 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 와중에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재조사한다면서도 기존 군 수사결과를 신뢰한다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2014년 12월 17일, 육군에서 재수사가 밝혀졌는데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사건이 은폐된 거 그대로 발표했다.# 구 이병 가족들 및 시민들은 이 결과를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 절대 다수. 조사과정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병사들은 계속 무고죄 드립을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라 향후 구 이병과 가해자들은 현재 민간인 신분이기에 고소가 접수되면 민간수사기관을 통해 수사진행될 예정이다.
유투브댓글중 같은부대에서 군생활을 했었던 당시 선임병사라고 주장하는 사람에 따르면 정확히는 폭행당하고 어지러움증을 호소하다가 화장실에서 쓰러진걸 발견하고 군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증언1증언2

9. 여담


연예인 송승헌장혁이 복무했던 부대로 유명하며, 그 외에도 성우 정재헌이 수색중대, 아이돌 그룹 젝스키스 출신 장수원도 이 부대 본부대 군악대 출신이다. 개그맨 김준현은 38연대 수색중대 출신이었으며, 상추는 불미의 사건으로 50연대로 전출 오게 되었다. 근데 소문으로는 전역할 때까지 춘천병원에 몇 개월 동안 있었다고... 가수 전영록도 이 부대 출신이다. 해당 연예인이 부대에 있던 시절에는 산천어 축제 등 군부대 관련 축제 때에 지원 온 연예인이 꽤 빵빵했으나, 현재는 그냥 조촐하다. 비슷한 사례로 김태우가 복무했던 27사단이 있다. 번외로, 소셜 페스티벌 텐트 24시로 유명한 이광낙도 15사단 39연대 모 대대 중사 출신이다.
송승헌의 경우는 당시로서는 어떻게 다뤄도 곤란해질 병사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민통선은 아니지만 인적이 드문 부대로 배치되었다. 그래서 자대 배치 시 대부분의 사단이 그렇듯이 포병연대에 일단 차를 타고 갔고, 당일에 자대가 된 105밀리 견인포병대대에서 차를 몰고 와서 다른 신병들과 함께 실어갔다. 이 항목에서 '원래 배속되었던 대대 위치가 도로변'이라고 서술된 이유는 15사단 포병연대가 다목리에 있는 점에 기인한다. 그리고 그 몇 시간 사이에 포병연대의 행정병들이 깔깔이에 송승헌 싸인을 다 받았다는듯 하다(…). 유일하게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래로 봉오리가 붐빈 적은 송승헌이 전역하던 날이라고 하는데 일본에서 팬[33]들이 와서 진을 쳤다고 한다. 일본을 비롯한 국내외 팬들을 실은 관광버스 40대가 봉오리 길을 막아서 50연대 돌격대대 공지합동 훈련이 지연되었다고 한다.[34] 당시 거기서 근무하던 부사관분의 말이 물동량 차량이 관광버스 때문에 이동을 못해서 오후 늦게 훈련을 출발했다고 한다.
찰지구나 드립으로 유명한 엉덩국도 여기 포병대에서 복무하다가 2016년 4월에 전역했다.
군복무 시절에는 팬클럽과 일본에서 정기적으로 소포가 왔었는데, 1인이 먹는 건 턱도 없고 포대 전체가 일과 이후에 꾸역꾸역 티비를 보면서 먹는 걸 일주일 내내 일과처럼 해야 치울 수 있을 정도로 배송되었다. 예전에는 인사행정병 혼자 쫄래쫄래 소포를 들고왔지만, 송승헌 전입 이후로는 분대마다 1명씩 일병을 징발해서 단가로 실어날랐다. 차량이 동원된 때는 발렌타인 데이뿐이다. 차량을 운영하려면 기름이 필요한데, 포병 작전에 써야하는 차량 연료를 수송관의 허가와 상부에 서류 요청까지 감수해가며 영내에서 짐나르는데 썼다는건 예비역 수준만 되어도 헛소리인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간부들의 연구실에 보관하려 했으나, 적절치 않은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에 내무반 피시방에 쌓아두게 되었다. 피시가 너무 낡아서 병장들도 잘 쓰지 않았기 때문에 원래는 철야한 당직병들의 숙소처럼 쓰였지만, 그 이후에 용도가 변경된 것이다. 체력단련실은 건물 외곽의 요철 부분에 칸막이를 세워서 만든 공간이므로, 당연히 벌레와 쥐가 들끓을 그 공간에는 소포가 보관된 적이 없었다.
원래 소포 내용물로 사제 음식물을 반입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으나, 일본에서 오는 소포들이 처치곤란인 데다가 송승헌 한 사람만 예외로 해줄수가 없어서 이후로는 음식물 소포를 따로 반송하지 않게 된다. 그 외에는 매니저를 통해 체력단련실에 비품을 기증하였고, 플스2 슬림 버전과 위닝 일레븐을 가져왔다.
군생활 자체는 무난하게 한 것 같으면서도 나름 이런저런 일은 있었다. 몇몇 에피소드는 잘해야 대학생 정도이던 병사들에게 사회생활의 단편을 보여줬달까... 굳이 에피소드를 좋은 걸로 하나 들자면, 일병 진급 당시 연예인 부대 차출이 왔지만 거절하였다.
2009년 장혁이 주말에 매니저와 둘이 방문해서 출신 대대 전체에 아이스크림을 돌리고 간부들과 저녁을 먹고 가기도 했다. 근무 당시 간부들의 증언으로는 궂은 일도 마다않고 특권의식없이 열심히 군생활을 했다고 한다(송승헌과 반대되는 복무태도였다고…). 대대 시설병으로 복무했는데 여름에 유격 훈련중 비가 많이 와서 전투복 바지에 사타구니(...)가 쓸려 상처가 났다는 목격담이 있다. 근데 장혁이 이렇게 성실히 복무한데는 다 이유가 있다. 장혁 항목을 봐도 알겠지만 장혁은 군대 안갈려고 브로커가 개입된 병역비리를 저질렀다 걸린 전과가 있다. 그 일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열심히 임한것이라 보는게 맞겠다. 이후 여러가지로 그 병역비리에 대해 진심으로 후회한다는 언급도 했다.
지금은 많이 잊혀졌지만, 최악의 무장탈영 사건으로 기록된 혜화동 터미네이터 사건임채성이 이곳 15사단 소속이었다. 부대 흑역사.
2010년에는 북한군 소초에서 15사단 GP로 총격을 가했으나 바로 맞대응 사격을 하기도 하여 뉴스에도 실린 적이 있다.
그 다음해에 대통령 부대표창을 수상하였다. 총 9회 수상.
15사단 출신들이나 주위사단 출신들은 알겠지만 사단 위치가 어중간한 화천군철원군에 걸쳐서 위치해 있어, 화천 쪽에선 철원에서, 철원 쪽에선 화천에서 지원을 받으라고 해서 불쌍한 거지사단으로 유명하다. 아마 22사단과 더불어서 많은 GOP 사단 중에서 가장 가난한 사단이 아닐까 싶다.
결론적으로 가난하고 지형도 뭐 같고 사람들도 어디 있는지 잘 모르며, 여름엔 드럽게 덥고, 겨울엔 드럽게 추운 그런 곳이다.
육군 간부들 사이에서 베스트 유배지로 유명하나(이거 진짜다! 전차승무 초급반 교육 같이받던 15사단 소속 알동기 들이 교육수료 하고 자대 가자마자 전역할때 까지 연락이 안됐다), 위치 특성상 작전수행에 매우 중요한 부대이기 때문에 겉으로 안 좋은만큼 진급은 타부대보다 잘 된다.
미국의 16명 전쟁영웅으로 유명한 고 김영옥 미 육군 대령이 6.25 전쟁 기간 미 육군 7사단 31연대 1대대를 이끌고 싸우던 곳이 바로 7사단 5연대 GOP 지역과 15사단 38연대 GOP 지역이었다.
예능 프로그램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에서 2군단 예하 사단들 중 유일하게 한 번도 출연을 못 한 부대다. 그나마 27사단 수색대대 편에서 수료식 당시 군악연주를 15사단 군악대가 담당하긴 했다.

10. 매체에서의 등장


워게임: 레드 드래곤에서 제2차 한국전쟁 캠페인의 한국군 주요 세력으로 등장한다. 캠페인 자체가 한국전쟁을 국제전으로 키운 것인데다 설정상 공산권 최후의 발악이라서 소련과 중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북한군을 막아내기는 좀 버거운 전력이다. 하필이면 시점도 90년대 초반이라서 한창 국군이 전력 증강을 시도하던 때에 딱 걸려서 무장도 좀 구닥다리가 많다. 가령 기껏 있는 전차연대가 M48A5K라서 T-72 시리즈와 간간이 섞여 등장하는 T-90을 상대하기 버겁다. 함께 등장하는 제3기갑여단K-1 전차로 무장한 것과 대조적이다.

[1] 달이 가장 강조되는 이유는 보름달->15일->15사단이라는 연상 때문. '십오야 둥근 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2] 15사단 사병들은 처음 자대배치하면 선임이 자신들의 부대를 '''육군 유일의 산악보병부대'''라고 조소를 흘리며 말한다. [3] 신병교육대에서 실시하는 행군도 마찬가지다. 제1신병교육대에서 실시하는 행군의 경우, 4km 행군을 제외하고는 모 고개 정상(해발 695m)까지 등반하는 것은 필수이며 제2신병교육대에서 실시하는 40km행군의 경우 여기에 추가적으로 근처에 있는 모 산의 정상까지(해발 1100m) 등산해서 다른 길로 내려왔다가 앞에서 언급한 고개까지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코스가 포함되어있다. 이 구간이 굉장히 힘들다... 20도 기울기의 길이 15km 정도 이어진다. 하지만, 이쪽으로 자대 배치를 받는다면 2년 동안 1100m 정상을 훈련, 제설 등의 이유로 뒷산 가듯이 동, 서, 남, 북로를 통해 최소 10번 이상 갈 것이니 미리 익숙해지는 게 편할 수도 있다. 그나마 동,서,북로는 경사가 봐줄 만 한데, 남로는 중반쯤 걷다보면 그 이후의 경사는 가히 기절할 수준이다. 하지만 훈련소에선 남로를 통해 등반하지 않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하지만 서로가 더 힘들다. 남로보다 수 km는 긴 듯. 거기다가 서로는 구간 포장에다 거진 비포장길이다. 하지만 동로는 포장길이라 매우 등산하기가 좋다. 물론 민간인은 출입금지다. 북로도 나쁘지 않으며 여긴!! 짧다[4] 4개라는 말도 있지만 애초에 사단 창설 당시부터 3개의 원이라고 말한다.[5] 보충중대 기간병 생활관은 본부대에 있다. 공군파견병도 같이 생활[6] 본부대의 경우 같이 붙어있는 통신대대쪽에 동아리방이라고 하는 PC방이 있다. 통신대 전용이다. 반대로 PX는 본부대 막사에 있다. 그런데 통신대대도 같이 이용하고 있다. PX병은 현재 통신대 PX병이 전역한 이후로 본부대 PX병 두명이서만 운영하고 있다.[7] 예전에 무장 탈영했던 병사가 여기서 잡힌 적이 있다. 근데 그 주위는 온통 지뢰밭이다.[8] 불행 중 다행인 점은 상당수 병참선들이 포장된 상태라 헛바퀴 돌 일이 적다는 점이다.[9] 더군다나 GOP에 들어가면 필히 사고를 칠 인원들을 페바의 한 대대에 쓸어넣다 보니 부조리도 상당히 존재하는데다 GOP 포상휴가도 없어 휴가마저 적다.[10] 말고개 대대, 적근산 대대, 장평동 중대, 수송대 전부![11] 이는 생활관 항목 참조.[12] 단 육체적인 고됨은 있지만, 막사나 장비 보급등이 전부 최신식으로 제공되며 연대내에서도 어느정도 형편을 봐주는 편이므로 부상자로 인해 T/O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생활의 쾌적함은 보장 되어있는 편이다.[13] 단 꽝에 걸리지 않는다는 조건하에[14] Field Training eXercise, 전술 훈련.[15] 이는 비단 이 연대뿐만 아니라 옆동네 7사단 3연대도 비슷할 정도로 만연했다.[16] 그런데 이런 것들은 전부 부조리라고 진즉에 폐지되었다. 현재는 자율 뜀걸음을 하지만, 대대장이 바뀐 이후 병사들이 너무 요령을 피운다면서 해방촌 반환점에서 간부들이 대기타면서 반환점까지 제대로 돌았는지 확인하는 번호표 같은 것을 주는 방식으로 바뀌었고, 2016년 이후론 크게 번호표를 준다거나 하지는 않는다.[17] 대신 9시 이후에는 서울로 나가는 차가 없으니 주의할 것. 1박 2일에도 나온 중국집인 효동각(현 아비가)도 있어 밥 먹기도 괜찮다.[18] 사실 여긴 연대에서 제일 낙후된 산악대대 건물이었는데 이들이 신막사로 옮겨간 뒤 그보다 열악한 직할대가 온 것이다.[19] 이는 각종 파견이 많은 수송대의 특성상 어쩔 수가 없다. 한정된 막사 안에 원래 인원도 지내기 빠듯한데, 각종 파견 복귀 또는 급작스런 신병유입이 있다면 매트리스 2개에 3명이 껴서 자는 등 열악한 상황이 벌어진다... 이를 해결키 위해 2013년 말엽 생활관 끝에 있는 다용도실을 리모델링해 생활관으로 바꿨다. 예전 다용도실에서는 연등과 라면 취식을 자주 했는데 거기 엄청 큰 쥐도 살았다. 귀신이 있다는 애기도 들었다. 음료수도 박스채 보관했는데 다들 중간에 몇 개씩 빼먹었다. 수송대장실에는 당직병과 사관이 야식용으로 먹을 라면과 커피용으로 물을 끓일 수 있는 주전자나 포트가 있다.[20] 산악대대는 민통선 바로 밑이다.[21] 수색중대엔 총 5개 소대(본부소대와 수색 4개소대)가 있다. 수색소대는 2개월 분기로 2소대당 1개 GP를 번갈아 근무하며, 근무기간이 아닌 소대는 주둔지에서 대기한다. GP근무시에 해당임무를 교육기간이라 칭할 수 있겠다.[22] 워낙 사리곰탕을 좋아해서, 사리곰탕이 배식될 때마다 거의 항상 수색중대에 들려 밥을 먹었다.[23] 군대에서는 위병소와 철책, 담벼락을 무단으로 한 발자국만 넘어가도 탈영이니까.[24] 제2신병교육대대가 더 빨리 신축된 이유는 원래 전투대대였으며, 육군 훈련기간이 8주로 늘어남에 따라 신병교육대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한때 안마방으로 유명했던 상추가 여기에 배치됐으나 그 본인은 춘천병원에서 군생활을 날림하셨다.[25] 2008.03.∼2008.04. : 육군 제15보병사단 사단장직무대리. 대위 시절 38연대에서 3대대 10중대장과 연대 작전장교, 4대대 작전과장을 역임했다.[26] 사단 보충중대에서 전출 대기도중에 본부근무대 막사 내에서 생활했는데 기간병들이 몰려가서 싸인을 받았다(...) 분위기는 좋았다.[27] K201 사수였다.[28] 50연대의 경우 행군훈련이 굉장히 많다. 더군다나 행군코스는 산으로....산악 대대 부대원이라면 상황 걸릴때마다 인접산과 고개를 제집 드나들듯이 갈 것이다. 산이 하나같이 경사가 더럽다.[29] 가끔가다가 씽크홀이 보이긴 한다.[30] 피해자 유가족과 합의도 하지 않았고 노 소령 조차 반성의 기미가 없었는데도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피해자 유가족을 우롱하고 있단 증거. 일단 1심을 맡은 군단 소재 보통군사법원이 독립성 보장 제로인 곳인지라...[31] 주로 쇠약하거나 누워서 지내는 환자, 노인 등에서 발견되는 질환. 쉽게 말해 몸을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 혈액 순환이 안되는 부위가 썩어들어가는 질병이다.[32] 간부 지원을 하지 않았다면 당시에 이미 제대했을 것이다.[33] 거의 대부분 할줌마[34] 산악대대는 훈련중이었는데 원래 행군경로는 송승헌이 전역하는 부대 앞 도로를 따라가는 것이었는데 많은 버스와 인파로 인하여 경로를 수정하여 멀쩡한 도로를 두고 산길로 행군을 계속했다. 강원도의 겨울이었기에 당연히 산에는 눈이 많이 있어 행군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